다른 나라의 청춘들이 진흙을 뒤집어 써가며 ‘록페스티벌’이라는 것에 미쳐 있을 때, 한반도의 심드렁한 청춘들은 학교 축제에나 찾아오는 가수들을 향해 일괄적인 박수를 치는 게 ‘축제’의 전부인 줄 알았다. 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의 여파로 말도 안 되는 ‘록페스티벌’이 급조되긴 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포천의 어떤 공터에 국내 헤비메탈 밴드들 공연을 보러 갔던, 거짓말 같은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이동 막걸리를 마셨겠지, 아마도) 그런 우리에게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킨 대사건이었다. 동시대 록밴드 공연을 볼 일이 거의 불가능했던 그 시절, 레이지 어겐스트 머쉰과 프로디지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나 그 원대할 뻔 했던 역사는 폭우 속에 휩쓸려 버렸다. 남아도는 기운에 비해 록밴드 내한 공연은 가뭄에 콩 나듯 이루어졌기에, 기다리다 지친 나와 친구들은 12개월 할부를 결의(!)하고 바다 건너 후지록 페스티벌 원정에 나섰다.콜드플레이, 푸 파이터스, 팻보이슬림, 뉴오더 등 훌륭한 라인업과 쾌적한 분위기로 대감동을 안겨줬던 그 때의 후지록 페스티벌은 내 마음 속 록페의 스탠다드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나서 2006년부터 한국에 대형 록페스티벌 문화가 시작되었고, 한국인이면 대개 그러하듯, 그 동안 참았던 음악사랑+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록페 입시공부하듯 록페를 돌았다. 인천이든, 지산이든, 난지도든, 올림픽 공원이든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초심은 이렇듯 열정만발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에너지는 사그라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의 자리는 앞쪽 펜스에서 점점 밀려나 돗자리 깔고 보는 뒤쪽으로 이동했다. 서 있기보단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행사장에서 파는 싸구려 음식과 술에 대한 불만도 커져서 먹거리를 직접 챙기다 보니 짐도 늘어났다. 밴드 라인업보다 주차공간 혹은 대중교통의 편의성에 대한 정보가 더 중요해지고, 음악도 모른 채 패션만 요란하게 하고 등장하는 멋부림 소년소녀들에 대한 투덜거림도 늘어갔다. 날은 왜 이렇게 덥지? 에어컨 나오는 데 없나? 갑자기 비는 왜 쏟아지지? 집밖에 나와서 이게 뭔 고생이람?
그렇게 늙어가고 있다가 뉴욕에 왔더니 이 동네는 수십 명의 뮤지션들이 참가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없다. 임대료와 인건비가 비싼 동네라서 계획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대신 수많은 단독공연을 즐기느라 돈이 줄줄 새어 나갔다. 여름엔 큰 공원이나 특별한 공연 장소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공연들을 묶어 ‘페스티벌’이라 불리는 행사가 많았다. 그러나 경험해왔던 페스티벌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페스티벌 갈증을 달랠만한 행사는 2011년부터 맨하탄과 퀸즈 사이에 위치한 ‘랜달스 아일랜스’란 작은 섬에서 열리고 있는 ‘거버너스볼 뮤직 페스티벌’이다. 초창기에는 1일 페스티벌이었다. 벡, 모디스트 마우스, 패션 핏 등 당시의 핫한 뮤지션들의 이름이 올라왔으나 센트럴 파크에서 몇 개 밴드 모아놓고 하는 여느 공연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캘리포니아의 코첼라나 시카고의 롤라팔루자로 향하곤 했다. 무릇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한다면 저 정도 스케일은 되야 하지 않겠는가. 영국 글래스톤베리가 일본 후지산보다 가까워졌지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튜브 중계나 보며 대리 만족이나 하는 신세였지만.
다행히도 ‘거버너스볼’이 미국 전역의 뮤직 페스티벌 붐과 함께 급격히 성장해 작년부터 미국 동부의 자존심을 지킬만한 헤드라이너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올해는 잭 화이트, 뱀파이어 위켄드, 스트록스, 아웃캐스트, 데이먼 알반, 스푼, 인터폴, 스키릴렉스, 제임스 블레이크, 피닉스 등 웬만한 페스티벌이 부럽지 않은 라인업을 선보였다. 행사 기간은 무려 2박 3일! 가격은 250달러! 그리하여 나는 3일권 두 장을 3개월 할부 옵션으로 구매해 4년만에 뮤직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는 행사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거버너스볼은 뮤직페스티벌치곤 제한이 많았다. 일단 섬 내부의 공원이 공연장이어서 숙박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도 없었다. 돈 들여 페스티벌 셔틀버스를 타거나 30분 넘게 자동차 매연을 들이키며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 위치였다. 더 황당한 건 이 페스티벌이 11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밤낮으로 음악에 취해 노는 게 아니라, 신데렐라라도 된 듯 12시가 되면 현실의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다음날 또 같은 경로를 거쳐(셔틀버스를 타거나 걷거나) 출근을 해야 하는 이상한 페스티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20대 청춘들은 마냥 흥겨워 보였다. 자기네들끼리 너무 흥겨워서 타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음식 부스에 줄을 서 있으면 새치기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30분을 기다려 먹은 음식은 비싸고 양도 적고 맛도 없었다. 행사장 밖 슈퍼마켓에서 2달러하는 저가 맥주를 10달러 넘게 주고 사서 마치 백 만원 짜리 와인 마시듯 홀짝홀짝 아껴먹어야 하는 상황. 한편, 개나 소나 닭이나 말이나 다 함께 쓰는 간이 화장실 상태는 그 곳을 화장실이라 부르면 진짜 화장실에게 미안해지는 그런 수준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신나 보였다. 함께 간 30대와 40대 음악 동지들은 그나마 얼굴이 동안임에 감사하며 어린이들 틈에 끼어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좋아하는 밴드를 영접하면서 최대한 즐겁게 즐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시야를 방해하고 사방에서 어젯밤 일을 떠들어대도, 참고, 참고, 또 참으며 말이다. 그리고 이틀째가 되던 날, 누군가가 말했다. “뮤직 페스티벌은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아.” 다른 이들도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생상태보다 더 난처했던 부분은 따로 있다. 공연을 고를 때마다 내가 한 물 간 인간처럼 느껴졌다. 미국 유명한 페스티벌 라인업에 비하면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2014년 음악 흐름을 반영한 라인업이었다. 스케줄의 구도는 명확했다. 록음악 대 EDM. 잭 화이트 vs. 스키릴렉스, 네코 케이스 vs. 라 루, 티비 온 더 라디오 vs. 그라임스, 바스티유 vs. 와쉬드 아웃, 브로큰 벨스 vs. 디스클로저, 인터폴 vs. 엠파이어 오브 더 선, 뱀파이어 위켄드 vs. 악스웰&잉그로소(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등등. 간간히 힙합 대 록의 구도도 있었다. 저넬 모내 vs. the 1975, 스트록스 vs. 차일디쉬 감비노, 프랭크 터너 vs. 얼 스웨트셔트, 더 헤드 앤드 더 하트 vs. 제이 콜, 그리고 아웃캐스트 vs. 데이먼 알반.
매 시간이 힘든 결정이었다. 이건 마치 청자의 음악 취향이 얼마나 동시대적이고 선구적인지 판정하는 시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DM의 시대를 살고 있으나 마음이 동하는 건 함께 성장해온 록밴드들이었고 우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팽팽한 접전이었다. 올해의 빅이슈인 아웃캐스트의 재결합 무대를 보려다가 인파에 밀려 데이먼 알반이 외롭게 연주 중인 무대로 발길을 돌리던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싶었다. 엄청나게 후진 이번 앨범 곡들을 데이번 알반의 얼굴만 보며 꾹 참고 들었다. 그러다 시카고의 젊은 래퍼와 드 라 소울이 깜짝 등장해 알반과 고릴라즈의 몇 곡을 불러주자 금세 행복해졌다. 맙소사, 내가 원하는 건 디너쇼인가.
다음날도 스키릴렉스에게 향하는 꼬꼬마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잭 화이트를 영접했고, 그 다음날도 이비자섬의 클럽을 공간 이동시킨 듯한 악스웰&잉그로소 무대를 외면한 채 뱀파이어 위켄드의 ‘옥스포드 콤마’를 따라 불렀다. 그나마 즐겨 들었던 라 루의 공연은 거의 최악이었고, 제임스 블레이크는 음악보다 목소리 큰 관중들 덕분에 감상이 불가능했다. 기대했던 디스클로저는 언더월드 주니어급의 음악으로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그래도 스푼이 더 반갑고, 티비 온 더 라디오가 더 멋졌다. 최고를 꼽는다면 잭 화이트다. 어떤 이는 아웃캐스트를, 어떤 이는 스키릴렉스를 말하겠지. 힙한 리스너라면 뱅크스나 다이어리어 플래닛 정도는 언급해줘야 할 것이다. 눈에 띌 만큼 번쩍이는 신인 밴드들을 찾지 못했다. 사실 새로운 밴드를 발견하겠다며(그리고 본전 뽑겠다며) 일찍부터 출근해서 팔짱 끼고 지켜볼 열정 따위는 없었다. 그보다 앉을 자리 찾는 게 더 중요했다. “재네들이 요즘 그 유명한 애들이야? 근데 어디 앉을 데 없나?” 뭐, 이런 대화랄까.
최근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는 SNS를 분석해 미국내 뮤직 페스티벌 인기 순위를 매겼다.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가 일등을 먹고 롤라팔루자는 4위, 코첼라는 5위를 차지했다. 공연외 놀 거리가 부족한 출퇴근 페스티벌인 거버너스볼은 뉴욕 EDM 페스티벌인 ‘일렉트로닉 주’보다도 훨씬 못한 19위를 차지했다. SNS 이용자들은 17세부터 34세 사이가 75퍼센트를 차지했고 이들은 뮤지션이나 공연보다는 ‘페스티벌 경험’에 대해 주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 1999년 못다 본 ‘공연의 한’으로 시작된 나의 록 페스티벌 순례 여정은 페스티벌 자체를 즐기는 지금의 흐름에 완전히 비껴난 셈이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나는 공연 감상 위주로 트위팅했다. 시대에 이렇게 역행할 수가 있나. 페스티발 공기도 달라지고, 메인 장르도 달라지고, 허리도 아프니 뮤직 페스티벌 팬에서 은퇴할 때가 됐나 보다.
이후 3일 정도가 지나고 허리 아픔도 잦아들 무렵, 20대 관중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은 잊히고 공연의 몇 장면들과 음악만 머릿속에 남았다.(치매인가) 그리고 충동적으로 ‘이번엔 감기 걸려서 제대로 못 놀았으니 내년에 제대로 놀아주마’라고 결심한다. 내일 모레가 마흔이지만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개의 ‘죽기 전 봐야 할 밴드’가 남아 있사옵니다. | 홍수경 janis.hong@gmail.com
첫댓글 아직 30대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ㅎㅎ 글래스톤베리의 관객층은 훨~~씬 다양해요. 60대도 다수...그 나이에도 페스티벌을 즐기는 세대가 우리 세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전 저질체력이긴 하지만 체력이 될때까지 간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ㅋ
저는 60대때도 페스티발 갈거에요~
2222
저두요!! ㅎㅎ
벽에 *칠할때까지 가보죠
전에 락뉴에서 미국의 인플레임스 메탈공연에 백발 할아버지가 슬램하면서 공연관람하다가 젊은관객들에게 환호받은걸 목격했다는 관람기를 본적이 있는데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벌써 몇년전보다 피곤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관리 잘해서 결심 지키려구요
체력이 따라줄때까지가 아닐런지요 ㅜㅜ
지금 우리나라 공연도 중년층 종종 보이던데요. 앞으로는 훨씬 많아질듯
진짜 어렸을 때는 왔다갔다하면서 공연 하나도 안빼고 다 봤는데... 이젠 힘들어서 불가능 ㅠㅠ
질문부터가 좀.. 병*같습니다..ㅡㅡ;
재미있는 글이네요~ 요 몇 년간 락페에서 뭐 저런 시덥지 않은 팀을 내가 보고 있어야 하냐며 짜증을 부린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ㅎㅎ
나이보다 체력과 상황문제인 듯요. 체력이 딸리면 길러서라도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