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력(樗櫟)
장자에는 가죽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게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이르길 가죽나무라 한다. 큰 줄기는 울퉁불퉁한 옹종이 있어 먹줄을 칠 수도 없고 작은 가지는 돌돌 말리고 굽어져 그림쇠와 곱자를 댈 수 없으니, 길가에 서 있으되 목수가 돌아보지도 않는다. 크긴 하나 쓸모가 없으니, 뭇사람들이 한결같이 돌아서 가버리는 것이다."
가죽나무는 이 쓸모없음 때문에 베어지지 않고 장수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을 한문으로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고 표현하지요.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가죽나무는 흔한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쓸모없는 나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요. 그리고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는 크게 쓰임새가 없어서 저력((樗櫟)이라고 표현하면 재주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인간이란 의미로 자신을 낮추어 사용하는 말입니다.
참죽나무가 있습니다. 봄에 새순을 먹을 수 있어 좋은 나무인데요 참죽나무와 아주 비슷하지만, 먹을 수 없는 나무로 가짜 죽나무란 의미로 가죽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죽나무로 주사위를 만들어 놀았는데 이를 저포(樗蒲)라고 하지요. 금오신화의 ‘만복사 저포기’의 저포는 이 주사위 놀이를 의미합니다.
정말 가죽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일까요? 가죽나무는 빨리 자라서 재질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형편없는 나무의 대명사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나무 학계의 정설입니다.
나무는 목재로서 유용성 때문에 잘려져 수명을 다하지만 못생긴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오히려 천수를 누리게 됩니다. 쓸모없음이 쓸모가 되는 반전이 일어나는 셈이지요. 즉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씀이 됩니다.
장자 인간세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쓰임새는 알면서도 쓸모없는 것의 쓰임새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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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한글로 '저력'만 읽고는 底力인 줄 착각했습니다. 새 단어를 또 하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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