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이 너무나 막막하고 힘겹더라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리코의 눈먼 이’는 가장 가련한 사람 중의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도시 예리코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도 눈까지 멀었으니, 이 보다 더 가련한 사람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 한방이라고, 그 가련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순식간에 인생 역전을 이뤄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해 있었는데, 예리코의 소경이 인생 역전을 이뤄낸 비결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는 목이 빠지게, 정말 간절하게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마치 구조를 기다리는 난파선처럼, 구급차를 기다리는 응급환자처럼,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번 따라가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강렬히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또 그의 예수님을 향한 기대감, 믿음은 또 얼마나 컸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안테나는 오로지 한 방향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만나 뵙고 말겠다는 강한 열의, 그분께 도움을 청해보겠다는 열의, 그분은 반드시 나를 더 나은 삶에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 그 능동성, 적극성이 그의 외침 안에 들어있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부르짖음이 얼마나 컸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갑작스런 외침, 돌발 상황 앞에 사람들은 당황한 나머지 ‘조용히 좀 하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단 한 번의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욱 큰 소리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절박하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새 삶을 향한 ‘눈먼 이’의 열정, 적극성, 간절함이 드디어 하늘에 닿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와 만나십니다. 시각 장애로 인해 비참하고 혹독했던 그의 지난 삶을 다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따뜻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기다렸다는 듯이 ‘눈먼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예수님을 향한 그의 호칭은 어느새 ‘주님’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눈먼 이’에게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을 넘어, 이스라엘의 왕을 넘어,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그래서 자신의 삶과 죽음, 인생 전체를,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당신 손에 쥐고 계시는 ‘주님’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예리코에서 그러하셨듯이 우리 앞에 멈추셔서 우리 얼굴을 내려다보시며, 우리의 인생 전체를 바라보시며 똑같이 질문 하나를 던지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오늘 우리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곰곰이 살펴보니 여러 측면에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비록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정작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정말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네 인생 수백 수천 번 되풀이 되는 윤회의 삶이 아니라,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금쪽같이 소중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떵떵거리며, 자신만만하게 살아가지만, 사실은 잠시 머물다 사라져가는 뜬구름 같은 존재임을, 이 보잘 것 없고 유한한 존재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눈을 볼 수 있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이번 생이 너무나 막막하고 힘겹더라도 잘 견디고 넘겨, 언젠가 이 삶이 지나가면 그림같이 아늑하고 따뜻한 하느님의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볼 줄 아는 눈을 청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첫댓글 아멘
나이 들어 갈수록 잠시 머물다 사라져가는 뜬구름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