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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위기의 시대,
당신이 원하는 변화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젊은 철학자
에바 폰 레데커의 강력한 선언
어려운 시절이다. 경제 불황과 정치의 혼란 속에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과로로 소진되는 삶. 변화를 꿈꾸기에는 막막하지만 냉소하기에는 심각한 지금 새로운 자본주의 비판이 도착했다. 1982년생 독일 철학자 에바 폰 레데커는 한나 아렌트와 카를 마르크스를 두 축으로 소유의 문제를 비판하고, 인간 행위의 가치를 되찾는 사유를 펼친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여성들의 파업까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포착하는 철학 에세이.
👩🏼🏫 저자 소개
에바 폰 레데커
철학자이자 논픽션 작가. 1982년에 태어나 독일의 킬, 튀빙겐, 케임브리지, 포츠담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연구 조교로 일했으며 2015년에는 뉴욕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초청 강사로 한 학기 동안 가르쳤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철학 매거진》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쾰른 극장에서 철학적 대화 ‘에바와 사과’를 진행하고 있다. 유기농 농장에서 자라면서 딸기 재배, 직거래, 말 사육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 그는 브란덴부르크 시골에서 살고 있다. 저서로 생태적 자유와 시간적 문해력에 관해 쓴 『머무를 자유(Bleibefreiheit)』(2023)와 새로운 저항 형식의 철학을 탐구한 『삶을 위한 혁명』(2020)이 있고 마야 괴펠과 함께 쓴 『생성과 소진(Schopfen und Erschopfen)』(2022)이 있다.
📜 목차
들어가며
1장 (재산을) 지배하다
2장 (물건을) 상품화하다
3장 (노동을) 소진하다
4장 (생명을) 파괴하다
5장 혁명
6장 (삶을) 구하다
7장 (노동을) 재생하다
8장 (상품을) 공유하다
9장 (재산을) 돌보다
나가며
감사의 말
참고 문헌
📖 책 속으로
해방은 고귀한 요구가 아니라 절박한 과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다양한 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기에 단순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는 삶을 위한 혁명을 경험한다.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형식의 투쟁이 출현 중이다. 100여 년 전의 사회적 혁명의 재개도, 5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민권 운동의 연장도 아니다. 새로운 형식의 저항은 위협받는 절박한 삶을 위한 활동과 연대적으로 조직된 생활에서 시작된 혁명이다. 혁명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에 존재하고, 여성 살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죽은 지구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를 의식하게 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들어가며」중에서
어느 시점에서 나는 나의 굳어진 절망을 떨쳐 버리도록 위안을 주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포석, 금속 대문, 플라스틱 창문을 본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물론 석회 공장, 크레인, 컴퓨터가 동원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손이 있다. 인간의 손이 있다. 어떤 손은 고무망치로 포석을 두드려 가며 포장도로를 깔고 있었고, 또 다른 손은 트럭 운전대 위, 공장, 회계 부서에 있었다. 문신이 있는 손, 매니큐어를 바른 손, 금반지가 끼워진 손. 마인 항에서 지게차로 컨테이너 판을 운반하는 손, 공급업체에서 일하는 손이다. 인산염 광산에서 일하는 손, 작업복을 세탁하는 손, 접시를 내놓는 손, 손을 잡는 손들. …… 거리의 포석 하나하나는 인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가리킨다. 그것은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며 과거로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텅 빈 거리에서 허탈하게 웃는다. 이 세상이 어떻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계속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손으로, 다르게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노동을) 소진하다」중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청산해야 할 독을 인류와 동일시하는 위험이다. 환경운동의 일각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울한 나르시시즘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은 말썽꾼일 뿐이며 자연의 조화를 망쳤으며 온난화는 열병이고 바이러스는 면역 세포라는 것이다.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비워야’ 한다. 이 입장은 에코파시즘으로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는데, 단순히 말해 잘못된 것이다. 에코파시즘은 인간 동물 자체가 아니라 인간 동물의 조직 형태와 경제 활동 방식이 에코파시즘의 발원지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자연은 복수 같은 등가적인 범주를 알지 못한다. 지구 생태계 역시 우리가 기생충처럼 붙어 있는 폐쇄적인 유기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맥락이다. 인간혐오는 게으르다. 반응 능력을 통해 특히 다른 종과 교란된 자연 순환의 수호자이자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이 행성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빨리 몰래 떠나는 대신, 우리는 곧 과일나무에 손수 수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전에, 농약으로 뒤덮인 값싼 노동력이 필요 없도록 생산 방법을 시급히 관리해야 한다.)
---「(생명을) 파괴하다」중에서
이주는 그 자체로 항상 삶을 위한 혁명이며,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투입하고 절대적인 참여권을 주장하는 과정이다. 지중해의 상황은 인명구조 작업의 성패가 이주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불안정한 풍선보트가 리비아 해안을 떠나 공해에 그 운명을 맡길 뿐이다. 마지막 남은 구조 작업은 범죄화에 맞서 싸우는 인권단체와 활동가들 그리고 바다와 오랫동안 연결되어 온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각각 4대째, 5대째 시칠리아 어부인 카를로와 가스파레는 상륙 금지에도 물이 새는 보트에서 난민을 구출해 시아카 항구까지 안전하게 데려왔던 일을 설명한다. 구조 활동에 대한 설명은 긴급 상황에 주목한다. 가스파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정치인 중 누구도 공해의 어두운 밤에 도움을 청하는 필사적인 외침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합니다. 선원이든 아니든 누구도 외면하지 않았을 겁니다.” 긴급 상황에 대한 올바른 태도 외에도 카를로와 가스파레는 바다와의 올바른 관계라는 또 다른 모티프를 사용한다. “만약 내가 구조를 요청하는 외침을 무시했다면, 나는 다시는 바다를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삶을) 구하다」중에서
인간은 아이들을 그렇게 쉽게 놓아 버릴 수 없다. 중환자실에서 단결해 걸어 나올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 파업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고 나면, 시위는 소모적인 부문의 집단적 재조직, 즉 노동자의 요구와 해당 업무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함께 우선시되는 재조직을 요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바로 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이다.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누구에게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병인이나 환자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삶을 위한 사회적 돌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열어 주는 것은 바로 불가능한 파업이다. 브란덴부르크에 사는 나의 이웃은 독일 통일 후 요양원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그녀는 그곳까지 가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매일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절망에 빠진 요양원 거주자들이 몰래 손빨래한 기저귀를 말리려던 라디에이터를 청소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명확하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떻게 효과적인 저항으로 이어지는지는 불분명할 때가 많다. 결국 여성들의 파업은 다양한 착취와 굴욕의 경험을 다루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베로니카 가고의 말처럼, 이 파업에는 고립된 슬픔을 거대한 저항의 힘으로 통합할 수 있는 무언가가 넘쳐 난다.
---「(노동을) 재생하다」중에서
올가 토카르추크는 노벨상 연설에 앞서 어린 시절 일화를 통해 “4인칭”, 즉 우리가 아직 접할 수 없는 관점에서의 내러티브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그녀를 임신한 토카르 추크의 어머니가 창밖을 우울하게 바라보는 사진이 있다. 어렸을 때 나중에 작가는 어머니에게 왜 사진 속 어머니가 슬퍼 보이는지 물었다.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네가 아직 그곳에 없었고 나는 네가 그리웠어.
아직 없는 것을 어떻게 그리워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윤곽이 이미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윤곽이 과거의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 형태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물지배의 경계에 닿는 모든 삶이 더 큰 자유와 연결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삶을 위한 혁명을 이끄는 두 번째 갈망은 아직 알 수 없는 것, 즉 지배보다는 양육, 착취보다는 공유, 소진보다는 재생, 파괴보다는 구원을 지향하는 세상을 그리워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있다.
---「(재산을) 돌보다」중에서
🖋 출판사 서평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한 여자도 잃을 수 없다’는 어떻게, 왜 싸우는가?
위기의 시대에 불이 붙는 새로운 저항들의 공통점
지배하지 말고 기르자,
착취하는 대신 공유하자,
채굴을 멈추고 재생시키자!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비판
인간 행위를 향한 사랑의 몸짓
독일에서 출간 즉시 좌우를 막론한 언론의 찬사가 쏟아진 이 책은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으면서도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던 변화에 이름을 부여한다. 바로 ‘삶을 위한 혁명’이다. 생명을 앗아 가는 죽음의 체제에 저항한다는 것. 미투 운동에서 퀴어 퍼레이드, 기후정의 행진까지 ‘내용’이 서로 다른 이 모든 움직임들에 공통적인 ‘형식’을 찾은 것이다.
유년 시절에 농장에서 자란 에바 폰 레데커는 무표정한 도시에서 우울에 빠지지만, 또한 길 위에 포석을 깔고 건물을 짓고 간판을 올린 인간의 행위를 긍정한다. “세상이 사라지기를 바라야 하는 유토피아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그는 ‘사물지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근대 시민권 운동에서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았던 소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것이다. 아렌트의 행위 이론과 마르크스의 최신 발굴 문헌, 오드리 로드에서 올가 토카르추크까지 동시대의 레퍼런스를 통해 파편화된 경험과 낡아 가는 사회이론을 종합하고자 시도한다. 변화를 꿈꾸며 좌절하다가도 다시 시작하는 당신에게 동료가 되어 줄 책이다.
혁명에 대해 늘 궁금했지만
아무도 속 시원하게 풀지 않았던
다섯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
① 이제 와서 혁명을 이야기하다니, 시대착오 아닌가?
→ 혁명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근대의 프랑스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 같은 것이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혁명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에 존재하고, 여성 살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죽은 지구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를 의식하게 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이 모든 움직임은 반자본주의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임금노동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봉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파괴에 대항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투쟁으로 이어진다.”(10쪽)
②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 동물권 운동, 퀴어 퍼레이드, 기후정의 행진 등등 새로 등장한 사회 운동들은 역사 속의 혁명과 뭐가 다른가?
→ ‘삶을 위한 혁명’은 일상적인 반복에 기초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영웅, 급작스러운 단절은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현 시대의 주요한 특징은 새로운 형태의 실천주의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동을 마주하고 있다. 재분배 투쟁을 우선적으로 이끈다거나 시민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해양에서의 난민 구조, 살인적인 경찰 폭력에 맞서는 반인종주의적 투쟁, 성폭력과 여성 살해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파업, 종 소멸과 지구온난화에 맞선 환경운동, 전염병 시대 식품건강부의 노동분쟁. 이 모든 순간들이 삶을 위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저항은 계급화를 염두에 두거나 일부의 삶을 다른 삶의 부의 자원으로 취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생활상 중요한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주장한다.”(163~164쪽)
③ 여성은 투표권을 얻었고 흑인은 노예제에서 벗어났다. 역사상 많은 진보가 있었는데, 무슨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인가?
→ 문제는 ‘소유’다. 오늘날 여성, 흑인, 동물, 난민 들은 마치 소유물처럼 여전히 지배받고 있다.
“근대적 정체성은 노예제, 강제 노동, 가부장제 결혼의 섹슈얼리티와 돌봄노동 등 인간에 대한 소유권을 창출하는 제도 속에서 등장했다. 이러한 사물지배에 기반한 정체성은 처분권을 보증하는 제도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살아남는다. 이전의 지배자들은 그들이 지배하는 사지가 절단된 다음에는 더욱 잔혹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허구의 소유권을 계속해서 옹호한다. …… 노예 소유가 금지되고 난 이후에도 흑인의 삶은 가치 없게 여겨지고, 가부장적 결혼제도가 폐지되고 난 이후에도 여성성은 착취 대상으로 여겨진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착취당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소유이며, 이 모든 천연자원들, 도축을 위한 동물들 위에 자본주의가 세워진다.”(14쪽)
④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거나 아무 일도 없어서 좌절하며 죽어가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더 빠르게 생산하자는 ‘가속주의’를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을 말하는데, 바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딱 하루 동안, 당연히 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일을 중단해 보자. 당신은 과중한 업무, 혼자 하는 돌봄 모두 거부하고 다시 조정할 수 있다.
“지배가 강요하는 활동을 거부하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기대를 깨는 일을 적어도 하루 동안 당신은 할 수 있는가? 파업의 방법에 대한 질문을 열어 두면 때때로 가장 파업하고 싶은 일을 단순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인간은 아이들을 그렇게 쉽게 놓아 버릴 수 없다. 중환자실에서 단결해 걸어 나올 수도 없다. 그러나 일단 파업에 대한 욕구를 인정하고 나면, 시위는 소모적인 부문의 집단적 재조직, 즉 노동자의 요구와 해당 업무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요구가 함께 우선시되는 재조직을 요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바로 일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유이다. 일반적인 조건에서는 누구에게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병인이나 환자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삶을 위한 사회적 돌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열어 주는 것은 바로 불가능한 파업이다.”(224~225쪽)
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 ‘함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은 환상 아닌가?
→ 공동체만이 고립된 개인들이 느끼는 처절한 불안과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를 현실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때 공동체의 원리는 ‘따뜻한 친밀함’이 아니라 ‘냉정한 받아들이기’다.
“공동체 관계는 그 범위와 상관없이 연대에 기반한 분리를 허용해야 한다. 인정받고 싶지 않지만 단순히 충족되고 싶은 욕구, 갖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빚지고 싶지 않은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공동의 쇼핑 목록에는 없지만, 혼자 슈퍼마켓에 갈 때 직접 사 들고 오는 양주나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279쪽) “우리는 지금의 감시 자본주의가 부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후퇴와 안정, 그리고 무한한 익명성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아름답게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고립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더 큰 연결성이 필요하다.”(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