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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te Runner을 우연히 읽었다. 남주는 사업가로 성공한 아빠덕에 하인을 두고 유복하게 자란다. 다만 출산중 사망한 엄마가 없다는 것이 단점인데 이는 하인의 아들 하산도 마찬가지다. 그의 엄마는 출산후 도주했기 때문이다. 남주와 하산은 한살차이로 하산은 형이자 도련님으로 남주를 받들면서 성장한다. 하인은 아프간에서 차별받는 하자라족으로 소수인 시아파로 경제 정치적으로는 하위계급이다. 다만 교육열은 높은데 소설에서는 문맹이 많은 것으로 나온다. 4
장난을 치자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주였고 기도하는 무슬림에게 거울을 반사시키는 악행으로 혼나는 것은 항상 하산이었다. 왕자와거지에 나오는 매맞는 아이의 역활을 한 것이다. 사실 착한 일을 하면 보상받는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통해 나타나고 있지만, 그 것이 임무인 경우는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니 하인의 아들로서는 주인의 아들의 옥체를 손상시키지도 않으면서 계도하는 효과를 낸다면, 특별하게 선한 일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수있다. 5
남주의 아버지는 그가 5살때 고아원을 짓기로 한다. 카페트를 수출하여 건축에는 문외한이었지만 2층고아원 설계도 하고 건축비를 모두 사비로 충당했다. 기술자, 전기공, 배관공, 잡역부는 물론 수염에 칠할 기름값이 필요한 공무원뒷돈까지 지급해야 했다. 14 하산의 아버지는 남주의 아버지가 태어난 해에 5살이었는데 고위층 청년이 마약에 취해 교통사고를 내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것을 명망있는 판사였던 남주의 할아버지가 데려다 키워서 남주와 하산관계와 비슷하다. 28
남주는 아버지가 하인에 불과한 하산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질투를 하고 있었는데 그가 유일하게 아버지와 닮은 연싸움에서 승자가 되어 12년간의 질투감을 끝내고자 노력한다. 아버지와 같이 그도 연싸움의 승자가 되지만, 그의 큰 기쁨은 새로운 슬픔을 불러온다. 그를위해 떨어진 상대방의 연을 천번이라도 찾아오겠다는 하산이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서 남주가 하자라족인 하산에게 잘 대해주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패거리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다. 71
패거리가 남주에게 손을 봐주려는 것을 하산은 새총으로 외눈을 만들겠다고 협박하여 막아낸다. 그들은 복수를 위해 기회를 보다가 최고의 트로피인 마지막 떨어진 연을 쫒는 하산을 쫒아 장이 끝나 인적이 끊기고 후미진 시장뒤에서 하산을 포위한다. 남주는 이를 찾아내기는 했지만 부상을 염려하여 보기만하고 이는 평생 그에게 후회를 하게 만든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은 보디가드가 그를 보호하다가 상처를 입었다고 대통령이 보디가드를 대신해 상처입어야 할까? 게다가 더 건장하고 많은 수의 패거리를 소년 둘이서 막아낼 수있었을까?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미안함은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남주의 행동은 여기까지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비난할 수없다. 하지만 그는 죄의식에서 탈피하기위해 그를 위해 천번이라도 연을 찾아오겠다는 하산을 무고하게 되는데 이는 어리다는 것을 감안해도 잘못된 행동이다. 85 남주는 새로운 하인을 고용할 생각이 있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가 혼만 난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하산이 근처에 있으면 두통이 나곤 했기 때문인데 하산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데려와 아들처럼 키웠고 40년간 같이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하산은 혼외자식이기에 더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릴 때 봤던 양심회로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로봇이 감정이 없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심회로를 만들어 부착했더니 오히려 더 난폭해졌던 내용이다. 어쩌면 남주는 양심이 남아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니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셈이다. 물론 좋은 사람도 아니기는 하다. 95
남주는 나와 같은 해에 13세가 되었다. 생일파티에 400명을 초대했는데 그중 300명은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도 아프간에서는 13세의 생일이 한국의 돌잔치나 회갑연과 비슷한 중요성을 가지는 모양이다. 각자 선물을 가져왔는데 대부분 아버지가 도와줬던 사람들이었다. 그중 요리사는 조리를, 정육점주인은 송아지와 양을 직접도축하여 가져왔고 대금을 한사코 거부했다. 요리사는 식당을 차리도록 아버지가 돈을 빌려줬는데 한사코 받지않자 빌려줬던 돈을 받지않으면 귀가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여 돈을 갚았던 사람이었다. 100
남주는 생일선물로 받은 돈과 시계가 사라졌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모든 사람을 소집했다. 하산에게 돈을 가져갔냐고 묻자 그는 가져갔다고 대답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부정했다면 모두가 믿었을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해본적이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져가지않았다고 대답했다면 화살은 남주에게 오고 그는 그의 비행을 고백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기에 하산은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희생한 셈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도둑질이 최악의 범죄라고 주장하던 아버지는 용서한다고 이야기했지만, 하산과 그의 아버지는 짐을 이미 꾸렸고 떠난다고 통보했다. 아버지는 막아보려고 했지만, 그들의 결심이 확고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대목은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한다. 왕자와 거지에거 매맞는 아이가 하산이라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했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남주를 보호하는 것이 과연 남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들이 능력이 않되는데 더 좋은 여자를 얻어주고 능력이상의 집과 생활비를 사용하게 한다면 그 부모가 죽은 후의 아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111
6년후 남주가 18세가 되던해에 부자는 소련의 침공으로 위험해진 조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도피한다. 누구도 믿을 수없었기에 하산부자가 떠난후 1년미만의 기간안에 이직하곤 하던 하인에게도 말하지않고 마실가는듯 떠났다. 국경으로 이동하던 중 아프간과 소련군의 제지를 받는다. 소련군은 트럭짐칸에 같이 타던 밀출국 일행중 젊은 부인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고 울부짓는 그녀와 남편을 위해 남주의 아버지는 수치도 모르냐고 보호에 나선다.
남주와는 정반대의 영웅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소련군이 총알세례에 대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방에 죽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지않으면 자신이 목숨을 걸고 덤빌 것이므로. 다행히 다른 소련군이 제지하여 남편으로 부터 손에 무수한 감사의 키스를 받기는 했지만, 과연 이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사실 아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아버지는 죽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타당한 판단일까?
생물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짝을 지은후 키우고 죽는다. 결국 성장기에는 나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자녀가 생기면 그들이 가장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가 성장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다른 사람보다는 중요하지않을까? 물론 목숨을 걸고 지켜준 여인이 다시 목숨을 걸고 남주를 지켜줄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기대값은 영웅적인 행동을 해서 생을 단축할 기대값과 비교해서 크기는 어려울 듯하다. 더우기 친척이나 친구가 아니기에 그 차는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126
남주부자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남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는 아프간인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취업하여 존경받던 부자상인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로 전락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소설상의 설정인지는 모르지만, 장사라는 능력을 가진 아버지가 단순노동으로 고생한다는 점이다. 할아버지처럼 판사였다거나 지주였다면 새로운 세상에서 빈손으로 시작하면 당연하겠지만, 장사를 통해 부를 이룬 아버지는 처음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근로자로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있겠지만, 그것이 장기간 지속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41
남주는 아프간 주말벼룩시장에서 여주를 만나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여주는 장군의 딸이었는데 남친과 야반도주했지만 실패해서 귀가했고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청혼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첫눈에 반하는 것은 외모의 영향이 크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내면은 그렇지않다는 것을 안다. 151 아버지는 줄담배를 피운 결과로 폐암판정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남주가 자기는 어떻게 하냐고 울면서 호소해도 이미 22살이나 되었으니 성인으로서 혼자 살 수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고 사실 현명한 판단이다. 굳이 더 살 이유가 없다면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165
아버지는 주변에 폐암을 비밀로 하라고 요구했다. 동정을 받기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벼룩시장에서 쓰러졌고 많은 아프칸인이 문병을 왔다. 이 부분도 맘에 든다. 동정은 쉽게 사그러든다. 마지막 순간에 집중되는 것이 더 좋다. 어차피 알려질 사실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이 그가 얼마나 세상에 필요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강아지도 밥을 주던 주인이 죽으면 문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168 여주의 아버지는 남주의 아버지의 청혼을 승낙했지만 여주는 남주를 먼저 만나기를 원했다. 자신이 한달간 남친과 살았다는 것을 미리 고지하기위함이었는데 적어도 그녀는 그보다 용기가 있다. 174
남주의 아버지는 여주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승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에는 주차장이 부족해서 모스크에서 여러 블럭을 헤메고야 주차가 가능할 정도였다.그가 삶을 의미있게 살았던 증거를 죽으면서 보여준 셈이다. 185 남주는 소설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여주는 아이를 가지려하지만 임신에 실패한다. 의사는 원인을 알 수없다며 입양을 권했지만, 혈통이 중시되는 아프간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200
아버지의 오랜 사업파트너가 파키스탄에서 그에게 연락했다. 꼭 보고싶다고. 남주는 파키스탄을 방문하여 그가 죽어가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죽어가는 그는 부탁을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먹이도 짝도 중요성을 잃는다. 여생이 얼마남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부탁한 것은 하산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아들을 아프간에서 구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다시 좋은 사람이 될 수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주가 하산에게 했던 일을 알고 있고 죽기전에 남주가 바른 길로 귀환하기를 원한 것이다.
하산의 아버지처럼 하산의 아들도 부모가 같이 죽게되는 불행을 겪었다.하산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프간 고위층 청년의 마약운전에 희생되었는데 하산부부는 탈레반에게 희생되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자라족에게는 아프간도 아프간을 침입한 소련도 소련을 밀어낸 탈레반도 한결같았다. 최근에 미군이 진입했다가 철수했는데 미국은 과연 달리 대했을지 궁금하다. 실력이 없으면 넓고 풍요로운 북미대륙을 빼앗기듯 당하게 되있다. 차이는 일본이나 독일처럼 학살을 하느냐 그래도 영국이나 미국처럼 착취만하느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213
남주는 아프간에 가기로 한다. 하산이 이복동생이었고 하산부부가 아버지의 집을 지키다가 탈레반에게 살해되어 고아가 된 조카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양심이기 때문이다. 하산은 남주의 모함으로 집을 떠났지만 아버지가 도피하면서 사업파트너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도 늙어서 하산을 찾아간 것이다. 그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밤새 흐느끼다가 아침에 카불로 따라나섰다.
그런데 사업파트너의 질병치료차 파키스탄으로 여행하는 동안 탈레반이 하산에게 집을 떠나라고 했고 그는 이를 거부하다 총살되었고 이를 보던 부인도 덤벼들었다가 남편을 따르게 된다. 여기도 생각할 만한 부분이다. 아버지의 집을 지키는 것이 아들을 고아로 만들면서까지 해야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물론 소설적인 설정을 위해서는 충분히 있을 수도 있지만, 현실 생활에서 생물은 크고 짝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것이 본능인데 사회적인 가치가 이러한 기본 가치를 뛰어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리고 아버지가 있었다면 말리지 않았을까? 249
남주가 카불로의 여행중에 하룻밤을 보냈던 아프간의 집에서는 그를 위해 숙식을 제공하면서 환대했다. 그를 태우고 운전을 하던 주인의 동생이 그의 방문목적이 집을 팔아 미국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빈정대자 형은 자신의 집에서 손님에게 무례한 행위를 금했고 남주가 이복조카를 찾기위해 왔다고 대답하자 그의 선한 행동에 감동했다. 세 아들들이 남주의 손목시계에 관심을 가지는 듯해서 막내에게 선물로 주었지만, 잠시후 시계는 바닥에 놓여졌다.
정말 그들이 관심있었던 것은 시계가 아니고 음식이었다. 그들은 고기는 탈레반만이 얻을 수있어 푸성귀만을 제공하는 것을 미안해했지만, 그 것도 그들이 먹을 음식을 제공한 것이어서 아이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알게된 그는 26년만에 똑 같은 짓을 한다. 하산을 모함하기위해 그랬듯 잠자리 아래에 돈을 넣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그가 다시 좋아지는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여기서도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인간도 생명체로 먹고 자고 배설을 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먹기를 손님에게 제공하는 관습은 유목민족에게서 많이 내려온다.
왜 정착민족은 음식을 포기하지않는데 이동민족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때로는 숙식은 물론 아내까지 제공할까? 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에 기인하지않나 생각해본다. 개체보다 사회가 더 중요한 경우 나보다 더 필요한 손님에게 음식을 양보할 수있을 것이다. 나는 같은 장소에서 계속 살고 하루 굶어도 죽지않지만 이동하는 손님은 오늘 굶는다면 내일도 굶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키모가 아내를 제공하는 관습은 동종교배를 최소화하여 열성유전인자를 줄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254
거지가 구걸하는 것은 이전과 같지만, 어른은 거의 없고 아이들이 대다수인 것이 차이다. 나도 첫 중국을 방문했을 때 거지떼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회의를 마치고 북경관광을 시작했을 때 거지들이 접근하여 구걸을 했고 동행했던 상사가 1불을 주자 인근의 모든 거지들이 모여서 대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행했던 중국인은 절대 돈을 주지말라고, 1불은 엄청난 돈이라고 충고했는데 남주도 비슷한 일을 당한 셈이다. 많치 않은 성인 거지중 어머니의 동료 교수도 있다는 것도 특이했다. 한 때 이란에 초빙교수로 가서 강연하고 박수를 받던 행복했던 때를 기억하던 그는 지금 거리에서 산다.
어느 나라든 거지가 많다는 것은 국민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하고 그런 면에서 중국은 성공했지만, 북한과 아프간은 실패한 듯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주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받아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인간사회이기 때문이다. 국방도 중요하지만, 너무 치우친 자원배분은 생존을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탈레반이 정말 고아원에서 소년소녀를 데려다 강간했다면, 종교전쟁을 하는 원리주의자보다 더 나쁜 셈이다. 강간도 나쁘지만 특히 고아를 그것도 신을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를 만드는 셈이다. 257
고아원 이사의 행동은 탈레반이 한달에 한번 돈을 가져와서 소년소녀를 데려간다는 것에 대해 급여를 받은지 오래됐고 이란이나 파키스탄에 친척이 있어 도망갈 수도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 잔류하고 있다는 면과 이복조카에게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에 모른다는 입장을 바꿨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탈레반의 돈이 적어서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첫 내용과는 상충된다. 267 탈레반은 매일 오후에 경기장에서 학살을 한다. 돌로 던져 죽이는 것이다. 신의 뜻이라며. 하지만 예수는 죄 짓지않은자가 간음한 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
돌을 제일 먼저 던지는 탈레반이 바로 고아원에서 소년소녀를 데려다 강간하는 동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사형제에 반대하는데 죄인을 죽이기보다 종신노동형을 처함으로서 사회에 봉사하게 하는 것이 양측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지가 많은 사회에서는 사형수보다 거지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니 사형제가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간음이 돌로 처죽일 정도의 범죄인지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합리성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285
남주는 조카를 구하려갔다가 어릴 때 인종차별로 학대하던 친구에게 폭행을 당하게 되지만 오히려 마음은 평안하다. 그가 저지른 죄값을 받아서인지도 모른다. 조카는 그에게 울면서 폭행을 멈추라고 하지만 듣지 않자 새총으로 그를 애꾸로 만들고 도망에 나선다. 304 어렵게 탈출했지만 남주는 거의 죽을 정도의 상처를 치료하느라 고생하고 조카의 미국입국도 고아입증이 불가능해서 고생한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인도적비자를 받을 수있다고 해서 기뻐한 것도 잠시 다시 고아원에서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카는 자살미수를 하고 남주는 15년만에 기도를 하게된다. 364
그는 아버지가 신을 믿지않은 것을 회개하고 단식과 자선을 하겠다고 병원복도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기원한다. 그런데 신의 관점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려주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조카가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했는데 회복되어 다시 절망하게 되면 기쁘게 생각할까? 어차피 일반적인 최악은 죽음인데 그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어 사람들은 자살하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처럼 신을 믿기보다 자선을 행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소설은 이제 열장정도 남아 결말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생각할만한 기회는 많이 주고 있다. 370
아프간도 이란처럼 새해가 봄에 시작되는 모양이다. 새해를 기념하여 아프간모임이 있었고 남주는 오랬만에 연날리기를 하면서 조카의 미소를 획득한다. 386 장인도 미군이 장악한 아프간의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만사형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지금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다시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다. 원래 민심이 천심인데 탈레반이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극악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니면 아프칸문화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