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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소리길 2013.9.23
900년경 신라 학사 최치원이 이름붙인 홍류동의 각 명소를 1918년 제영시구題詠詩句를 붙인 연작시 형태의 예운 최동식 거사의 작품을 소개한다
<홍류동 19경>
1. 覓桃源
蕭蕭款段訪林邱
亂石喧豗萬壑流
花落鳥啼人跡少
雲深不辨舊時遊
호젓이 더딘 걸음으로 숲 언덕을 찾아드니
돌무더기 어지러운 구비마다 물결이 부딪히네.
꽂은 지고 새는 우는데 인적은 드물고
구름까지 깊어 예 놀던 곳 알 수 없어라.
2. 逐花川
角巾蠟屐撥雲迴
畿疊嵒屛鬱未開
磵路委蛇蒼蘚合
淙淙綠水泛花來
두건에 나막신으로 구름헤쳐 돌아드니
겹겹이 선 병풍바위가 눈앞을 가리네.
굽어 도는 계곡 길엔 푸른 이끼 끼었는데
졸졸졸 푸른 물에 꽃잎이 떠내려 오네.
3. 武陵橋
加壑飛紅枕澗身 건너지른 붉은 다리가 개울을 베고 누웠는데
如今不見避秦人 지금 진의 화를 피한 사람은 보이지 않구나
紅霞隔水聞鷄犬 붉은 노을은 물을 비껴나고 개.닭소리 들려오니
始覺桃源咫尺隣 비로소 무릉도원이 가까워짐을 알겠구나.
4. 七星臺
戌削穹窿老石臺
焚香禮斗步虛迴
縱知仁壽非求得
猶乞瓊醬捧玉盃유걸경장봉옥배
깍은 듯이 만든 활모양의 노석대老石臺에서
북두에게 예향하고 빈 걸음으로 서성거리도다.
비록 산수 즐기지 못할 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술 옥잔에다가 받들길 바라노라.
5. 紅流洞
春風躑躅發層蠻
膩漲臙脂水鏡間
若使重移楓葉景
溶溶錦浪半函山
봄바람에 철쭉이 온 산봉우리에 피어나니
거울 같은 물속에 붉은 연지 가득하구나.
만약에 단풍 붉은 빛을 다시금 옮긴다면
크고 넓은 비단물결에 반쯤은 잠기리라.
6. 농산정籠山亭
何日文昌入此蠻하일문창입차만 白雲黃鶴渺然間백운황학묘연간
已將流水紅塵洗이장유수홍진세 不必重聾萬疊山불필중농만첩산
최치원께서 언제 이 산에 들어왔던가?
이미 흐르는 물로서 세상의 때를 씻었으니
만겹 산으로 다시 귀 막을 필요는 없으리라.
7. 취적봉翠積峰
春山春雨染靑螺춘산춘우염청라 石氣涳濛樹影多석기공몽수영다
玉笛數聲雲不捲옥적수성운불권 也知峰月浴銀河야지봉월욕은하
산봉우리 봄비 내리니 푸른 빛 물들고
돌엔 서기가 가득하고 나무그림자 짙어지네.
옥피리 몇 가락에도 구름은 걷히지 않으니
봉우리의 달이 또 은하수에 목욕함을 알겠도다.
8. 泚筆嵒 맑을체, 맑을자
月斧磨礱墮蔚藍
瀼瀼玉氣碧毿
何年鐵筆題蒼壁
猶見玄雲出紫潭
신선의 도끼로 다듬어 푸른 하늘에서 떨어졌으니
양양히 맑은 기운이 길게 푸르구나.
언제 푸른 절벽에다 새겨놓았길래
현운玄雲에서 자담紫潭이 나옴을 오히려 보겠구나.
흰구름과 황학이 아득히 어우러진 때 였도다
9. 음풍뢰吟風瀨
溪聲山色朅來中계성산색걸래중 如羾寒門累始輕여공한문누시경
陶令臨流何足較도령임류하족교 浪吟明月與淸風랑음명월여청풍
물소리와 산빛 사이로 오가는 가운데
寒門에 오른 듯해 세속累가 비로소 가벼워지는구나.
陶淵明이 시냇물의 곁함에 어찌 족히 비기겠는가.
나도 明月과 淸風을 낭랑하게 읊조리네.
10. 광풍뢰光風瀨
明月三分水二分명월삼분수이분 松篁瑟瑟響飛雲송황슬슬향비운
箇中淸意誰知否개중청의수지부 我向山中一問君아향산중일문군
밝은 달은 세 조각이요, 물은 두 갈래로 갈라지니
송죽의 바람은 메아리 되어 구름위로 오르는구나.
이 속의 고요함을 뉘라서 알겠는가.
내가 산을 향하여 그대에게 한번 묻노라.
11. 완재암宛在嵓
皤腹酡容石丈人파복타용석장인 底事無言晉代春저사무언진대춘
先生袍笏重來拜선생포홀중래배 靜氣依然蓄素眞정기의연축소진
불룩한 배와 붉은 얼굴의 석장인이여.
무슨 일로 진대晉代의 봄을 말하지 않는가?
선생이 도포에 홀笏을 꼽고 거듭 절하니
정기가 예전처럼 소진素眞을 쌓아 두었네.
12. 분옥폭噴玉瀑
飛虹撞石噴瓊瑤비홍당석분경요 萬顆玲瓏映碧綃만과영롱영벽초
箇是仙家眞寶藏개시선가진보장 莫敎流出武陵橋막교유출무릉교
하늘의 무지개가 바위에 걸려 고운 옥 뿜어내니
갖가지 영롱한 구슬이 푸른 비단에 비치네.
이것이 신선세계의 진보배창고인지라
흐르는 물도 무릉교를 벗어나지 않는구나.
13. 제월담霽月潭
金波瀲灩躍浮光금파렴염약부광 夜靜山空桂葉香야정산공계엽향
潭上何人吹碧玉담상하인취벽옥 飛來飛去曳霞裳비래비거예하상
금빛 파도 반짝이니 달그림자 일렁이고
고요한 밤 빈산에 계수잎만 향기롭구나.
그 누가 못 위에서 옥피리를 불길래
날아가며 드리우는 붉은 치마여!
14. 낙화담落花潭
風雨前霄鬪澗阿풍우전소투간아 滿潭流水落花多만담유수낙화다
道人猶有情根在도인유유정근재 雙淚涓涓添綠波쌍루연연첨록파
어젯밤 풍우에 골짜기가 요란하더니
못 가득히 흐르는 물에 낙화가 많아라.
도인도 오히려 정의 뿌리가 남아있어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
15. 첩석대疊石臺
重重石級似堆盤중중석급사퇴반 造物緣何巧削來조물연하교삭래
正眼開時方始見정안개시방시견 縹箱金笈錯雲罍표상금급착운뢰
거듭 포갠 돌무더기 쟁반처럼 쌓였으니
조물주가 무슨 까닭에 그 솜씨로 다듬었나.
바른 눈이 열릴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
옥빛 금빛 상자에 구름무늬 잔이 섞여있네.
16. 회선대會仙臺
鸞笙瓊珮二千年난생경패이천년 猶見層臺纈紫煙유견층대힐자연
休道仙人消息斷휴도선인소식단 一雙靑鶴下芝田일쌍청학하지전
난생鸞笙과 경패瓊珮의 이천년에
층대層臺에는 보랏빛 연기가 맺혀있네.
선인의 소식이 끊어졌다고 말하지 말라.
한쌍의 청학이 지전芝田에 앉는구나.
월간 ‘해인’ 2011년 9월호 통권355호
http://www.haeinji.org/home.html
17. 학사대
최치원이 거문고를 켤 때 학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전나무는 고운이 마지막으로 가야산
으로 입산할 때 들고다니던 지팡이가 이렇게 자랐다는 설도 있다.
18. 봉천대(奉天臺)
가야산 중턱에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19. 우비정(牛鼻井)
가야산 꼭대기 석굴 속에 있는 샘이다. 가야산은 우두산으로도 불리는데,
그 코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한다.
「무릉교(武陵橋)」佔畢齋 金宗直
虹橋如畵蘸驚波 그림 같은 무지개 다리 급(急)한 물결에 비치는데
橋上遊人側足過 다리 위를 지나는 사람 발을 조심(操心)하네 .
我欲揭之君莫笑 나의 옷 걷고 물 건너려는 것, 그대는 웃지 마소
孤雲寧蹈畏道麽. 고운(孤雲)이 어찌 위태(危殆)로운 길 밟았던가.
始覺桃源咫尺隣 비로소 무릉도원이 가까워짐을 알겠구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최치원
狂奔疊石吼重巒
여러 바위들을 바쁘게 달려 이 산(山) 저 산(山)에서 아우성치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의 말을 지척간(咫尺間)에도 분간(分揀)하기 어렵구나
常恐是非聲到耳
항시(恒時)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닿을까 보아
故敎流水盡籠山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山)을 온통 감싸게 한 것이라네.
[출처] 홍류동계곡(紅流洞溪谷) (박성일의 역사탐방) |작성자 박성일
가야산(伽倻山) 홍류동(紅流洞) 폭포 곁의 바위에 새겨 진 고운 최치원(崔致遠)의 시 한 수
狂奔叠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바위 골짝 치닫는 물 첩첩 산골 뒤흔드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말소리는 지척임에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却恐是非聲到耳(각공시비성도이) 세속의 시비 소리 행여나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롱산) 흐르는 계곡 물로 산을 둘러치게 하였구나.
<정구(鄭逑),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중에서>
저자 : 정구
http://www.culturecontent.com/main.do
‘kocca문화콘텐츠‘ 에서
伽倻山(가야산) 紅流洞(홍류동) -三人三首(삼인삼수)
伽倻山(가야산) 紅流洞(홍류동) - 金宗直(김종직)
九曲飛流激怒雷(구곡비류격노뢰)
아홉구비 폭포마다 성난 우뢰 부딪치고,
落紅無數逐波來(낙홍무수축파래)
낙화는 가이없이 물결 따라 쓸려가네.
半生不識桃源路(반생불식도원로)
반생토록 몰랐어라 도원길이 어디멘지,
今日應遭物色猜(금일응조물색시)
오늘에야 만났거늘 조화옹이 시기하네.
*김종직(金宗直:1431~1492) 본관은 선산(善山;일선 一善), 자는 계온(季) ·효관(孝?), 호는 점필재(? 畢齋), 시호는 문충 (文忠)이다.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1453년(단종1)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으며, 정자(正字) ·교리(校理) ·감찰(監察) ·경상도병마평사 (慶尙道兵馬評事)를 지냈다.성종(成宗) 초에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함양군수 ·참
교(參校) ·선산부사(善山府使)를 거쳐 응교(應敎)가 되어 다시 경연에 나갔다. 도승지 ·이조참판 ·경연동지사(經筵同知事) ·한성부윤 ·공조참판(工曹參判) 형조판서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까지 이
르렀다. 문장과 경술(經術)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가 되었고, 문하생으로는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김일손(金馹孫) ·유호인(兪好仁) ·남효온(南孝溫) 등이 있다.
성종의 특별한 총애를받아 자기의 문인들을 관직에 많이 등용시켰으므로 훈구파(勳舊派)와의 반목과 대립이 심하였다. 그가 죽은후인 1498년(연산군4) 그가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관(史官)인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은것이 원인이 되어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났다. 이미 죽은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그의 문집이 모두 소각되고, 김일손 ·권오복(權五福)등 많은 제자가 죽음을 당하였다.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그죄가 풀리고 숙종(肅宗)때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구미의 금오서원(金烏書院),함양의 백연서원(栢淵書院),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개령(開寧)의 덕림서원(德林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점필재집(?畢齋集), 저서에 유두유록(流頭遊錄) 청구풍아(靑丘風雅) 당후일기(堂後日記) 등이 있고, 편서에 동문수(東文粹) 일선지(一善誌) 이준록(彛尊錄) 등이 있다.
伽倻山紅流洞(가야산홍류동) - 경허(鏡虛)
孰云是水孰云巒(집운시수집운만)
누가 물이네 산이네 가름 하는가,
巒入雲中水石間(만입운중수석간)
물에 잠긴 봉우리 구름발에 닿았네.
大光明體無邊外(대광명체무변외)
안과 밖 끝없는 대 광명체여!
破腹點看水與山(파복점간수여산)
물과 산 가슴속에 점찍은 듯 보나니.
*경허(鏡虛,1849년∼1912년)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 했다는 대선사이다. 1849년 전주에서 태어났고,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淸溪山)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 하였다. 속가의 이름은 송동욱(東旭)이고, 아버지는 송두옥(斗玉)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가야산(伽倻山)에서 - 졸당(拙堂) 박총(朴聰)
長夏紅流洞(장하홍류동) 긴 여름 홍류동(紅流洞)에,
醋醮幾酒家(초초기주가) 뛰엄 뛰엄 몇 채 술집인가?
春心看不厭(춘심간부염) 봄기운 볼수록 싫치 않고,
鳥漁聽尤嘉(조어청우가) 새소리 들을수록 더욱 다정하다.
壯氣雲時聳(장기운시용) 웅장한 기운 구름에 가끔 솟고,
溪聲石處渦(계성석처와) 시냇물 소리 돌 틈에서 맴돌아 치네.
香山應此地(향산응차지) 향산(香山)이 아마 여기 있으리,
步破落來霞(보파락래하) 떨어지는 노을 헤치며 걷는다.
*<다른 풀이는> 긴 여름 홍류동 골짜기에 노을이 타오를 즈음 끼 많은 술집 주모 술상차려 놓고 잔에 술 따르면서 하 는 짓거리는 이상해도 젊은 여자, 부푼 젓 가슴 볼수록 싫지 않아 풀어 헤쳐 고기 발라 먹고 새소리 들으니 정말 좋아라. 때맞추어 커다란 하얀 속 살 엉덩이가 갑자기 힘있게 솟구쳐 오르니 계곡 물 소리는 돌틈 사이에 부딪쳐 소용돌이 치구나. 향산이 있다한들 아마, 이곳만큼 좋을까. 오래 동안 엉킨몸 마지막 힘꺾어 넣으니 금새 몸 풀리면서 떨어져 버리네. 어느 가을 홍류동(紅流) 기생집에서 조선조(朝鮮朝) 귀족(貴族)들을 풍자(諷刺)하여 짓은 시 (詩) 같다고도 한다.
*졸당(拙堂)박총(朴聰1353-1439)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삽포리에서 출생(出生), 자(字)는 명옹(暝翁), 호(號)는 졸당(拙堂)벼슬은 호조정랑(戶曹正郞)을 거쳐, 정포은의 문인(門人), 효행(孝行)으로 이조(吏曹)참판(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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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소일빈. 한자는 우리 글이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