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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부터 8월 19일 까지 8박 9일의 일정으로 중국의 티벳과 구채구를 다녀왔다. 8월 11일 김해공항에서 출발하여 북경에 도착 다시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로 날아갔다. 성도에 도착하여 서이상무호텔이라는 곳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떠날 티벳의 라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8월12일) 아침 일찍 라싸로 가기 위해 호텔을 출발하여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분지라 그런지 아침부터 더운 김이 푹 내 뿜어졌다.
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성도에서 라싸까지는 약 1시간 40분의 비행시간이 걸렸다. 운좋게 창가에 앉게 되어 바깥경치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약 1시간쯤 지나 아마도 히말라야 산맥 위를 나는지 솜털같은 구름과 함께 바로 밑으로 산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어찌도 그렇게 산봉우리가 많은지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높은 산봉우리엔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었고 아마도 몇 만년 동안 쌓였을 만년설은 태양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라싸공항에 도착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이란다. 해발이 3700M라고 한다. 공항을 나서면서 드디어 우려했던 고산증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산증의 증세로는 숨이 가쁘다든지 머리가 아프다거나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배가 아프다든지 등의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아 ! 벌써부터 발걸음을 옮기니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라싸 시내로 들어가는 동안 나의 몸이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을 하는지 처음보다는 어지러움과 숨이 가쁜 증세가 덜 하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라싸 시내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첫 번째 코스인 세라사원으로 이동하였다. 세라사원은 티벳의 4대 사원 중의 하나이면서 승려들의 교육기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창 전성기 때에는 약 5000명의 승려가 수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매일 3시 30분부터 사원 앞마당에서 100여명의 승려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손바닥을 치면서 열심히 토론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하고 장난하는 것 처럼도 보이나 수행의 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토론 수업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노부링카사원으로 일명 보석사원이라고도 한다. 달라이라마가 여름 별장으로 이용하는 곳이란다. 다른 사원과는 달리 나무와 꽃과 풀들이 잘 가꾸어져있어 아름다움을 더하였고 사원이라기 보다는 공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의 모양도 티벳의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사원을 둘러 보는데 갑자기 어지러움이 느껴져 걷기가 몹시도 힘이 들었다. 천천히를 외치며 한 10걸음 걷고 쉬고 또 10걸음 걷고 쉬고 하면서 돌아보았다. 티벳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저물어 갔다.
다음날 (8월 13일)호텔에서 식사를 마치고 드레풍사원으로 이동하였다. 드레풍사원은 규모도 크지만 사원 둘레의 미로와 같은 길은 순례자의 길로도 더 유명하고 항상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시내를 다니는 티벳의 장족들은 누구나 손에 경륜이 적인 경통을 돌리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 곳 사람들은 불교가 생활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1위라는 것을 들었는데 척박하고 가나한 삶이지만 얼마간의 수입이 생기면 어김없이 사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 곳 사람들이 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경통을 들었거나 또는 물통(보온병과 같이 생긴)을 손에 들고 다닌다. 이 물통 속에는 ‘버터’라고하는 기름이 들어 있고 이 기름을 성수로 여겨 부처님께 바치는 것을 가장 기쁨으로 여긴다고 한다. 드레풍사원으로 오르는 길은 참 힘들고 고달팠지만 맑고 투명한 하늘 색깔은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라사 시내 자체가 평균 해발 3500M가 넘기 때문에 아래로 내리쬐는 태양빛은 참 강하고 따가웠다. 이 곳에서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이 태양광을 활용한 태양열 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태양광을 반사시킬 수 있는 판을 넓게 두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려 두면 30분도 안되어 물이 끓는다고 한다. 아무튼 자연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줄 아는 지혜에 또 한번 감탄하였다.
점심 식사 후에 티벳에서의 하이라이트인 포탈라궁으로 갔다.
라싸의 중심에 높이 솟은 언덕 위에 세워진 포탈라 궁은 달라이 라마가 거처하던 곳으로,정치와 종교 권력의 중심지였으며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현재의 포탈라 궁은 1645년부터 1693년 사이에 5대 달라이 라마가 개축한 것으로, 원래는 티벳을 최초로 통일한 송첸 감포왕이 당나라로 부터 맞아들인 문성공주를 위해서 창건한 것이었다.
이 궁 안은 1,000개가 넘는 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방들은 달라이 라마들이 살았던 막사들을 비롯하여 그들이 묻힌 화려한 무덤들과 정부 관청들, 불교 경전들을 손으로 목판 인쇄하였던 인쇄소,신왕 즉 달라이 라마를 직접 호위하던 최고 지위에 있는 승려들이 운영하는 정부관리 교육 학교, 화려하게 장식이 된 수 백개의 회당과 성전으로 쓰인 것들이다. 방 외에 홀과 복도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처, 보살, 성인 그리고 악마 등 티벳의 만신전 상들이 수천 개 있다. 궁 바깥으로는 원형의 하얀 탑들이 서 있는데,
원래 방어 시설이었던 것으로, 전설에 의하면 미래의 엄청난 홍수로부터 포탈라 궁을 안전한 곳으로 날려 보내기 위한 날개들이었다고 한다. 왕궁의 건물 밑에는 승려들과 시중들이 거주하고, 달라이 라마와 섭정들의 보물과 국가보물 등을 보관하는 작은 방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식량 보고와 순례자들의 선물들, 여러 해 동안 포탈라 궁 안의 모든 방들에 램프를 켜기에 충분할 정도로 많은 양의 기름을 쌓아 놓은 창고가 있다. 마지막으로 건물 바닥에는 적들을 가두기 위한 지하 감옥이 있다. 포탈라 궁을 돌아볼 때는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시계방향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으며, 현재 이 곳은 승려들이 관리하는 국립 박물관과 능으로 되어 있다.
맨 위 꼭대기에는 역대 달라이라마들의 무덤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포탈라궁은 관람객이 너무 많아 하루에 입장하는 입장객을 제한하고 있으며 시간타임을 두고 입장을 시키고 있으며 입장할 때 검색도 엄격히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죠캉사원 대소사라고도 한다. 티벳의 감포왕이 그의 두 아내(중국과 네팔에서 옴)가 티벳으로 가져온 부처상을 간직하기 위해 지은 절이다. 오랫동안 수백만 티벳 순례자들에게 영적 중심지이자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티벳 불교의 중심사원이다. 조캉사원 안에는 3개의 기념비들이 있다. 왼쪽 기둥은 823년에 티벳 왕과 중국 황제간의 동맹을 기록하기 위해 남긴 돌이다. 오른쪽에 있는 두 개의 갓돌은 1794년 중국이 천연두가 만연하였을 때 그 전염과정을 알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성전에는 티벳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 중의 하나인 문성공주가 1,300년 전에 장안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상이 안치되어 있다.
사찰의 바깥 뜰과 입구는 성소를 향해 절하고 있는 순례자들로 항상 붐빈다.
티벳을 여행하다 보면, 이곳을 목적지로 순례를 하러 오는 많은 티벳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주변의 상점들에는 티벳의 수공예품을 파는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붐비는 시장거리를 순례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돌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이 시장거리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한 바퀴 돌고나니 너무나 힘이 들어 넓은 광장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냥 주저 앉아버렸다. 그 모습 또한 순례자처럼 보였다.
티벳에서의 셋째날 (8월 14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남쵸호수를 보기위해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라사에서 200KM나 떨어져 있어 약 3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가는 동안 바깥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었는데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고 날씨 또한 변덕이 심하여 비가 오는가 싶으면 다시 쨍쨍 햇빛이 비치곤 했다.
이 곳 사람들의 운전 습관을 보면 웃기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추월하는 것은 예사고 교통신호 무시하는 것은 일상화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지 추월을 하면 상대방 쪽에서는 속도를 낮추어주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우리 나라 같으면 난리가 나지 않았겠나 싶다. 가면서 보이는 것은 넓은 평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과 높은 산도 아랑곳 않고 올라가 풀을 뜯는 야크(검은 소)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어지는 산등성이에는 수많은 깃발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마도 이 곳이 장족들의 화장터이거나 무덤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여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장족들이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자기 집에 걸어 두었던 풍탁(5가지 색깔의 깃발에 경전을 새겨 둠)을 그 곳으로 옮겨 걸어 둔다고 한다. 이 풍탁에는 불교의 경전이 적혀있으며 색깔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의 깃발은 부(富)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드디어 3시간을 달려 남쵸호수의 입구에 도착하여 까다로운 입장 수속을 마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있는 남쵸호수는 티벳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만큼 ‘하늘호수’라고도 하고 유일하게 짠 맛이나는 소금기가 있는 호수이다. 얼마나 호수가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고 물빛깔이 푸른 하늘을 닮아 하늘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해발 4700M에 위치하고 있어 호수까지 걸어가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남쵸호수를 오기전 해발5190m인 휴게소에 내렸을 때엔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던지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추워 겨울파카를 입고서야 내려설 수 있었다. 다시 입구로 내려가 라사시내로 들어 가기위해 3시간의 버스 여행을 해야 했다. 피곤도하고 고산증에 시달리기도 하여 잠깐 잠깐씩 눈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잠이 들만하면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에 눈이 반짝뜨이곤 했다. 오는 도중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엔 몇 만년에 걸쳐 쌓였을 만년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티벳에서의 2박 3일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여행이었다. 그러나 꼭 한 번은 오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떠나기가 서운하였다.
8월 15일 다시 성도로 날아갔다. 성도에 도착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였다. 고산증이 싹 사라진 것이다. 성도에 도착하여 첫날 만났던 가이드 이동욱씨를 만나니 참 반가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낙산대불을 보기위해 약 2시간을 달려갔다. 성도는 사천성의 중심도시답게 거리는 아주 깨끗하였고 주변의 상가도 정리가 잘 되어 첫 느낌이 도시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여름에는 날씨가 무더워 아침 저녁으로 살수차가 다니면서 거리에 물을 뿌리고 있었고 그 옛날부터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지하동굴은 지금은 지하도로 이용하여 한 낮의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니 놀랍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시골의 한적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무들이 잘 자라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다.
언덕배기엔 차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녹차가 많이 생산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속도로로 잘 달리던 버스가 고속도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국도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왜 낮에 고속도로를 전면 통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 보았더니 고속도로 위에서 큰 사고가 나서 사고 수습을 하느라고 통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정시간보다 좀 더 걸렸지만 고속도로와는 또 다른 거리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낙산에 도착하니 푸른 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가는 강 건너편에 산이 보였다. 그 산이 바로 낙산대불이 있는 곳이란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낙산대불을 보러 갔다.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 좋았다. 배를 타고 들어가니 서서히 낙산대불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낙산대불의 엄지 손가락 손톱 위에서 5명의 사람이 바둑을 둘 수 있다고 한다. 낙산대불은 성도의 남쪽에 위치한 낙산시(落山市)의 민강(岷江), 청의강(靑衣江), 대도하(大渡河) 세 개의 강이 모여 흐르는 지점에 위치한 릉운산(凌雲山) 절벽을 깍아 만든 것이다.
"불상이 하나의 산이요, 산이 하나의 불상이다(佛是一座山, 山是一尊佛)"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가 거대하며 대불의 높이가 71m, 머리 높이가 14.7m, 귀 길이 6.72m, 코 길이 5.33m, 눈썹 두께가 24m나 된다.
대불 주위로 100명이 넘는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불상으로 꼽힌다. 불상 뒤편의 절벽에는 "해사동(海師洞)"이라고 불리는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는 대불을 만들기 시작한 해통법사가 기거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불은 당나라 시기였던 713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해통법사가 죽고 난 뒤인 90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어졌다. 대불을 구경하는 데는 배로 건너가 산을 돌고 버스로 돌아오는 방법과 산에 오르지 않고 대불만 보는 방법이 있다.
낙산은 이 대불 하나만으로도 1년에 관광 입장료 수입만 우리 돈으로 약 7000억원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입장료 수입만 7000억인데 그 외 부수적으로 거두어 들이는 수입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간다.
8월 16일 비행기를 타고 구채구로 이동하였다. 성도에서 약 50분간의 비행 끝에 구채구 구황공항에 도착했다. 구채구 구황공항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몹시 추웠다. 역시 해발고도가 3500M가 넘어 산소는 희박했다. 그러나 우리는 티벳에서 3일간의 강훈련 덕분에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산증세는 아주 적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황룡으로 이동하였다.
황룡으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길을 구불 구불 내려 가야 했다. 워낙 긴 산길을 내려오다보니 브레이크를 식히기 위해 중간 중간에서 버스에 물을 보충하고 열을 식혀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구채구의 산야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황룡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 경이었다. 황룡명승구를 관람하는데에는 약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였다. 점심을 먹기는 이르고 하여 그냥 황룡관광부터 하기로 하였다.
황룡(黃龍)이란 지명은 '지형이 마치 용과 같다'고 해서 지어진 것. 4㎞에 달하는 계곡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 3400여 개가 계단 모양으로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이룬다. 황룡은 계곡 물에 의해 녹아내린 석회암 물질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기묘한 지형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알려져 있다. 황룡의 절경 중에서는 우차이츠(五彩池)가 단연 압권이다. 두어 시간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해발 3500m에 위치한 호수, 오채지에 이르게 된다. 수백 개의 조그만 호수가 다채로운 빛깔로 반짝거리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물의 깊이와 햇빛의 각도, 일조량 등에 따라 색이 다르다. 오채지까지 올라가는 길은 나무판으로 계단과 비스듬한 경사 길을 만들어 놓아 올라가기에 편안하게 해주었다. 발에 닿는 감촉도 좋고 주변의 경치를 보기에 눈이 바쁘게 돌아가 마치 발이 하늘에 둥둥 떠서 다니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 논처럼 사람이 일부러 삽으로 흙을 떠서 만들어 놓은 듯한 작은 연못들은 에메랄드를 온통 물 속에 쏟아 부어 놓은 것 같이 햇빛에 빛나고 있었으며 물의 깊이와 보는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물의 오묘한 색깔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아름다움에 온 몸이 저려오는 감동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마도 천상의 나라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진으로도 다 담지 못하고 이 세상의 어떤 수식어로도 다 표현하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며 오로지 내 눈속에, 가슴 속에 담아 둘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약 2시간 30분에 걸쳐서 황룡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채지의 입구인 사원에 도착하였다.
황룡안에는 절이 두 개 있는데 첫 번째로 나오는 절이 도교사원이고 두 번째 절이 불교사원인 황룡사란다. 이 불교 사원의 정문 위 현판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글자의 현판이 새겨져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황룡고사’라고 적혀있다.
절의 왼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니 바로 그 유명한 오채지가 있었다. 오채지는 이름 그대로 보는 시각에 따라 5가지의 색깔을 띤 너무나 아름다운 호수들이었다. 오채지에서 선녀가 된 듯한 환상에 젖어 사진도 찍고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자꾸만 아쉬워 내려가기가 싫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황홀한 오채지를 뒤로하고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걸음 씩 떼어 놓았다. 내려가는 길은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빨리하여 내려갔다. 중간 중간에 고산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니 티벳의 그 고생스럽던 일들이 떠 올랐다. 그러나 티벳에서의 고생이 이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준것 같아 오히려 즐거운 기억으로 다가왔다. 황룡에서 내려와 늦은 점심을 참 맛있게 먹었다. 솔직히 티벳에서는 고산증 뿐만 아니라 음식 때문에도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황룡의 그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 담고 숙박지인 구채구로 들어갔다. 오늘부터 이틀간 묵을 중여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7시에 장족의 집에서 열리는 바베큐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방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7시에 버스를 타고 장족집으로 달려갔다. 장족집에 도착하니 그 집의 아들들이 나와 손님을 맞는 의식인 ‘하다’를 하여 주었다. ‘하다’란 하얀 실크로 만든 긴 수건을 목에 걸어주면서 환영한다는 뜻의 말을 하면서 맞이하는 것이다. 환영인사가 끝나고 나서 그 집안의 예법대로 깨끗한 성수로 손을 씻고 경통을 돌리면서 한바퀴 돌았다. 이 때 반드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고 한다. 다음에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거실로 초대되어 들어갔다. 거실은 1층에 위하고 있었는데 한 가운데에 난로(시골의 부뚜막 같은)가 설치되어 있어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손님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기도 하고 온 가족이 모여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이 거실에는 사방으로 장식장이 놓여 있었는데 이 장식장 속에는 주전자와 쟁반, 대야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절에서 수공으로 만든 것들이며 시주를 할 때마다 절에서 선물로 준다고 한다. 이 물건들이 얼마만큼 진열되어 있느냐에 따라 이 집의 부를 나타낸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집은 상당한 부(富)를 갖고 있는 집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 바베큐 파티장으로 안내되어 갔다. 천막 안으로 들어갔더니 엄청나게 많은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에서 바베큐파티에 참석하는 것 같았다. 각 팀마다 도착하니 양고기를 삶은 수육 한 접시와 구운 감자 그리고 고춧가루에 소금을 뿌린 양념장이 나왔다. 처음에는 이 음식들에 손이 가지 않았지만 양고기 한쪽을 양념장에 찍어 먹어 보았더니 생각밖으로 냄새도 나지않고 고기가 연한 게 먹을 만 했다. 그러나 토속차인 말우유에 차를 발효시켜 만든 차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은 별로였지만 저녁 한때 장족의 집에서 그 들의 한 풍습을 체험해 본다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았다.
8월 17일 구채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 버스로 구채구 입구까지 가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구채구 안에서는 다른 관광버스는 들어거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운행하는 환경버스(천연가스)로만 이동해야 했다.
구채구(九寨溝)는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북쪽으로 약 460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사천성 아패장강 자치주 구채구현에 속하며 4,000m가 넘는 고산준령과 원시산림을 배경으로 크고 작은 호수와 계곡들이 50킬로에 걸쳐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총면적 720萬㎢중 52%가 원시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숲속에는 팬더와 금사후등 각종 희귀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한 삼림벌채 노동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1992년 뛰어난 자연미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하며 풍경구는 세분해서 보면 구채구풍경구와 황룡풍경구로 나누어 지며 구채구(九寨溝)라는 지명은 이 계곡을 따라 생활하고 있는 9개의 티벳족(장족) 부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 중의 한곳이며 "자연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 “동화세계”, ”신화세계”로 불리우고 있으며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구채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비취처럼 영롱하고 명랑한 색을 띈 구채구의 물은 구채구를 대표하는 미경(美景)이다.
구채구는 크게 3개의 구로 나뉘며 영어의 Y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수정구와 일측구, 측사와구의 3개의 골짜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정구는 구구(溝口)에서 락일랑(諾日朗)까지로 총 길이가 약 3.8km이며 락일랑은 구채구의 중심이다. 여기서부터 구채구의 가장 높은 장해(長海)까지는 17.8k로 수심 40m에 끝없이 펼쳐진 호수는 바다로 불려도 좋을 정도이다.
장해 아래편에 위치한 오채지(五彩池)는 환상적인 빛깔이 으뜸인 곳으로 알려져있다. 호수라 보기에는 믿기 힘들만큼 에머랄드빛이 감돌고 있는데 남태평양이나 인도양의 환상적인 바다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이 호수의 영어 명칭이 "Multi-colour"로 소개될 만큼 다양한 색을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기온이 떨어져도 얼지 않는 이유(지하의 샘물 솟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신비로움이 감도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호수는 물이 줄거나 얼더라도 이곳은 얼지 않는다고 한다.
오른쪽 골짜기(일측구)에는 경해(鏡海)가 위치하는데 장해와는 달리 작고 아담한 호수이지만 산과 하늘이 마치 거울처럼 수면에 비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채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수로서 여기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얻는다는 속설 때문에 연인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경해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공작이 꼬리를 펼친 듯 아름답다고 하는 공작해(孔雀海)와 팬더곰이 나온다는 팬더해, 팬더가 가장 좋아한다는 죽순이 많이 서식하는 죽순해 등이 경이로움을 이어간다. 바위에 부딪혀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진주알 같다고 해서 붙혀진 진주탄 폭포, 오색 물빛이 햇빛에 비치면 공작의 깃털처럼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하는 오화해, 구채구에서 제일 낙차가 큰 고폭포 등이 있다. 왼쪽 골짜기는 측사와구로 낙일랑 폭포에서 장해까지 17km 구간으로 넓은 호수 뒤로 끝없이 펼쳐진 일년 내내 녹지않는다는 설산의 풍경과 원시림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구채구에서의 전일 관광은 이동에서부터 점심식사까지 모두 그 안에서 해결이 된다. 식당은 중심부에 있는 식당이 하나 밖에 없으므로 점심시간이 되면 자리를 찾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측구 관광을 끝내고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은 뒤 측사와구의 낙일랑폭포와 장해를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곳의 해자와 폭포들은 주위에 우거진 나무들로 하여 더 빛이 났으며 맑고 깨긋한 물빛은 정말로 부러울 뿐이었다. 그기에다가 중국의 환경보호 정책은 본 받을 만 했다. 그렇게 많은 관광객이 입장을 하는데도 쓰레기 하나 떨어진 곳이 없었고 물에 들어 가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쓰레기 버리기와 물에 들어가면 엄청난 벌금을 물린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모두 나무보판으로 만들어 그 아래에 있는 풀까지도 보호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본 받아야 되지 않나 싶다. 우리 나라의 국립공원이나 계곡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옴은 너무 과민한 반응 일까? 어쨌든 이런 것들은 배워야 할 점인 것 같다. 세계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전하고자하는 중국의 노력이 대단하고 곧 밀려올 중국의 힘의 엄청난 위력에 몸이 떨린다.
황룡과 구채구는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구경하고 나니 부자가 된 것처럼 뿌듯하기만 하다.
이 구채구는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장족이 운영하는 계곡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귀로에 장족마을 중에서 가장 큰 미을에 들어가서 쇼핑도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이구채구를 관광하고 나니 아직도 에메랄드 빛 푸른 계곡의 물과 산천어가 호수가에 떼거리로 노니는 모습, 낙엽한잎 없는 계곡물 정말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9시30분에 예약되어 있는 민속공연을 보러갔다. 장족과 강족이 펼치는 민속공연으로 노래와 춤, 그리고 의상퍼레이드 등 이국적인 전통 풍습을 관람하니 이 또한 즐겁기만 했다. 장족의 노인들로 구성된 노래공연단은 노인이 내는 소리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음을 내고 청아한 목소리는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시각은 벌써 11시를 넘어 있었다. 다음날 일찍 성도 떠나기 위해 대충 화장만 지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18일 이제 중국에서 마지막 여행지인 성도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구황 공항으로 갔다. 약 3시간 정도 밖에 못 잤기 때문에 눈은 거의 반은 감겨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이나마 눈을 붙일 수 있어 행복 했다.
성도에 도착하여 당대의 여류 시인인 설도라는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망강루로 갔다. 망강루는 4층 누각형식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로 지금은 위험하여 올라 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망강루가 있는 이 공원은 ‘죽도공원’이라고 하여 약 150여종이 넘는 대나무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다 같은 대나무 같은데 전부 이름이 다르단다. 설도기념관에서 설도의 석상을 보니 너무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당대에 이름 날린 시인이니 뭇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으리라 생각하니 부러울 뿐이다.
중국에는 어디를 가나 공원에서는 남녀 노소 구분 없이 노래와 춤을 즐기는 무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곳 또한 구석 구석에서 춤과 노래, 기 수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삼국지의 영웅인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인 무후사로 갔다.
무후사에는 유비묘(혜릉)가 함께 있었으며 삼국지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한 편에는 삼국에 관련된 여러 유물들을 모아 둔 삼국지 박물관이 있었다. 무후사를 끝으로 8박 9일의 티벳과 구채관광을 마치고 이제 북경으로 날아가 잠만 자고 8월 19일 아침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다.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지나간 흔적을 되새겨 보니 고생한 생각은 하나도 없고 그저 즐거운 생각만 가득하여 행복하기만 하였다. 이번 여행은 참으로 힘도 들었지만 이 세상의 세계라고 믿기지 않을 선경을 마음껏 가슴에 담아와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 이제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 CD앨범을 만들어 두고 두고 가슴에 새길 것이다. 이번 여행에 우리들을 잘 보살펴준 유성항공여행사의 남도영부장과 함께한 11명의 우리 회원들 고맙게 생각하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