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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해의산방
 
 
 
카페 게시글
◆ 유 적 을 찾 아 서 스크랩 안두희의 총탄에 암살당한 경교장을 가보다
山사랑 추천 0 조회 165 09.01.29 11:2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백범 金九 선생 서거 60주년을 맞으며~  

 

 서대문에서 광화문을 지나는 시내버스를 타보면 다음과 같은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다음은 "서울역사박물관,경교장,강북삼성병원입니다." ~

 서울역사박물관과 삼성병원은 알겠는데, 경교장이 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것 같습니다.

 필자도 버스를 이용해 그 앞으로 수없이 지나다니며, 최근에는 삼성병원으로 치료 받으러

 다닐일이 있어 이틀에 한번씩 강북삼성병원 내에 있는  경교장 앞을 지나다니면서도

 현대식 병원 건물 앞에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옛 건물을 보고서도

 그 건물이 경교장인지? 또 경교장이 무엇인지?  부끄럽게도 몰랐습니다.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이라면 차를 두고도 전철이나 버스를 잘 이용하는 필자나 내원객들은

 큰 도로에서 언덕을 걸어와 사진에서 보이는 경교장 앞을 바싹 붙어서 이동을 하게 되므로

 경교장을 무심코 지나치기가 쉽습니다. 수차례나 앞으로 통행을 하다가 경교장 건물 우측에

 작게 설치한 경교장 안내판을 발견하였습니다.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내  경교장(京橋莊)

 

 

  건물 측벽에 설치된 경교장임을 알리는 안내판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 465호,  소재지: 종로구 평동 108번지 1호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선생이 1945년11월 23일 국내에 돌아와 임시정부의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한 곳이다. 환국(還國)이후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이곳에서 열렸고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협상 등도 이

 경교장에서 결정, 추진하였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이 건물 2층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였다.

 김세연(金世演)이 설계한 이 건물은 원래 금광업자 최창학(崔昌學)이 개인저택으로 세워 사용하다 김구선생이 귀국하자

 선생의 숙소로 제공하였다. 건물은 정면 중앙 출입구를 중심으로 활 모양의 아치형 창이 좌우로 대칭 배치되어 있어 전체

 적으로 균형있고 우아한 인상을 준다. (상단 안내판 문구를 옮김)

 

 

  경교장 2층, 백범기념실에 설치한 모형,      건물 2층, 당시의 집무실을 2005년 6월 삼성병원에서 복원하여 기념실로 사용중,

 

 

  1층 중앙의 현관을 들어서면 병원과 연결된 통로가 나오며 우측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백범 기념실) 안내판을 보고 2층으로 오르면 기념실 문앞에 안내자가 근무하며 실내화로 갈아신고 기념실을 한바퀴

 돌아보는데는 약 10~20여분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집무실로 들어서는 통로, 한쪽 구석에는 김구 선생의 흉상이 내방객을 맞이합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다 옛모습으로 복원한 집무실,

 

 

 안두희가 집무실로 들어서서 창가에 앉아계신 김구 선생에게 발포 할 때의 위치입니다.

 

 

 

 4발중, 2발은 김구 선생의 머리와 가슴에, 2발은 창문을 뚫고 나간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유리창을 뚫고 나가며 사방으로 갈라진 모습이 그후, 동족간의 큰 분열이 있음을 예고라도 하는듯 보여집니다.  

 당시의 사진을 토대로 똑같이 재현한 유리창입니다.

 

 

 

 저격당시 총알이 뚫고간 유리창을 통해본 풍경입니다. 무릎끓고 애통해 하는 시민들이 보이네요~

 

 

 

 조국통일을 위해 활동하시는 생전의 모습,

 

 

 

 다시보니 60년전 건물이 잘 지어졌다 생각됩니다.  현관 캐노피 좌측의 2층방이 집무실로 쓰던 곳입니다.

 

 

 

  확대를 해보니 캐노피 위로 총알이 뚫고 나와 깨진 유리창이 보이네요~

 

 

 

 피습후, 서거하신 모습

 

    백범 김구 (白凡 金九)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않고,'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 독립이요'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는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나의 소원 민족국가에서)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교육을 받았으며 1894년 동학농민군의 선봉장이 되어

 해주성을 공격하였다. 동학농민운동 실패 후에는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1896년 치하포에서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

 한 복수로 일본 육군중위 스치다를 처단하고 투옥되어 옥중에서 신서적들을 읽고 개화사상을 키웠으며, 황해도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등 신교육 운동에 노력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등을 역임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지키고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진력하였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1932년의 이봉창,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내외에 큰 영향을 끼치고 독립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1940년 重慶에 정착한 백범은 임시정부 주석으로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활동을 전개 하였으며 항일

 운동의 최선봉 지도자로서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백범은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하였고 1948년에는 남한만의 단독 총 선거에 반대

 하며 남북한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을 하다 1949년 6월 26일 통일운동을 저해하려던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경교장 관람안내

 관람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   토요일 오전 10시~ 오전 12시 (관람료 없음)

 

 문의및 예약

 전화:(02)2001- 2781(강북삼성병원 홍보팀) /  인터넷: www.kbsmc.co.kr

 (편안한 관람을 위해 단체관람은 사전예약을 부탁드립니다)

 

 교통편및 약도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출구 (도보 5분) /   버스: 서울 역사박물관 하차(도보 5분)

 

  

경교장은 현재 삼성병원의 사유재산이고 병원에서 사용하다 집무실 한칸에 기념실로 복원한 관계로

전시규모는 크지 않으나  이승만 박사의 돈암장(敦岩莊)과 이화장(梨花莊), 김규식 박사의 삼청장

(三淸莊)과 함께 우리나라 해방 정국의 중심점인 건물이었으며 포병소위 안두희에 의해 2층 집무실

에서 암살당한 곳으로 관람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백범 서거 60주년을 맞아 경교장을 방문후, 그 옆에 위치한 경휘궁과 서울 역사박물관을 돌아보는 것

도 좋을거라 생각됩니다.

  

백범기념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kimkoo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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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31 20:58

    첫댓글 단아" 하네요~~산사랑님의 작품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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