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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달마봉(635m : 속초/외설악)
*일 시 : 2005. 1. 30(일), RTNAH 제12차 산행(40명), 날씨(쾌청)
*코 스 : 목우재-526봉-달마봉-635봉-(울산바위-내원암)-안양암-신흥사-소공원주차장
*소 시 : 오전 10시 20분 ~ 오후 3시 00분 완료 → 총 4시간 40분간 소요
2004. 9. 12(일)
달마대사 모습을 빼어 닮은 해발 635m의 암봉(岩峰) 달마봉(達磨峰)!
산봉우리의 둥글기가 흡사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와 같다하여 달마봉이라 명명했다.
그가 남긴 <二入四行>(報怨行. 隨緣行, 稱法行, 無所求行 : 카페 산행후기 7번 참조)의 가르침을 음미하는 달마봉산행은 2004년 9월 12일(일) 한솔산악회에 편승해 종일 우중산행을 치르며 불만스러웠던 조망에 대한 미련을 챙기고, 설중산행을 즐기고 싶은 욕심에서 재도전하는 오늘이다.
영랑호(永郞湖)의 잔잔한 물결에 달마봉의 모습이 비친다고 하는 달마봉 풍경은 진달래가 필 무렵의 봄 산행과, 만산홍록(滿山紅綠)으로 변한 가을 단풍산행도 그만이지만 심설산행도 그에 못지않은 풍광이다.
새벽 05시 50분. 집을 나섰다.
세찬 새벽 겨울바람이 바지가랭이를 훌칠 때마다 따끈한 온돌 아랫목이 간절하다.
과적인원에 대한 은근한 걱정이 앞선다.
오전 6시 40분.
오늘은 알티나 발족 이래 다수의 회원이 참여한 날이다.
30명 내외를 적정선으로 시작한 친목산우회의 당초 계획과는 달리 다인수 참석에 다소 당혹했으나, 즐겨 찾아오시는 분들을 내칠 수 는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빡빡한 좌석이 다소 혼란한(?) 시작의 오늘이 됐다.
오정호-정묵연 선생님 부부와 연관된 이원분-최인호-김복희 선생님-유덕순 원장님, 작년 12월 중순 미팅이후 처음 만난 김병찬씨, 그리고 그의 지우인 안병만씨, 그리고 김포의 최자영씨, 강성윤씨가 대동한 김해용-이형로씨, 오랜만에 참여한 한희자 선생님과 김광석씨, 그 동안 몇 차례 예약을 파기하더니 끝내 동참한 김정옥씨, 지난 상해봉 참여이후 두 번째로 합류한 전금순씨, 중대갈봉 산행 이후 두 번째로 참여한 정옥자-최영순씨, 연말연시 해맞이 산행 이후 금년 첫 출석한 장용섭-한미자 커플, 그리고 단골회원 여러분 등 40명의 大(?)식구를 실은 버스(새문화관광 주영복 기사)가 미시령을 향한 질주다. 예술에 가까운 곡예사 운행솜씨다.
홍천 휴게소를 떠날 때 알사탕 몇 알이 회원들의 손에 쥐어졌다.
어는 스폰서의 작은 행덕이다. 고마운 마음이 시리도록 남아있다. 무엇 하나 챙겨주려고 애쓰는 왕언니 김옥희씨의 마음이 곱다. 과거 어느 때 그 고운 마음에 흠집을 냈던 몹쓸 사람이 생각나 잠시 씁쓸했다. 사람을 겉으로 평가하는 額面主義가 빚은 에러다.
마음을 읽어라. 그러면 모두가 평화하리라.
오전 10시 20분.
미시령을 넘으며 우측에 열린 울산바위의 뒤꼭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음을 새삼 음미했다. 그 옆구리에 촛대처럼 돌출한 달마봉 암봉을 지그시 바라보는 아침이 느긋하다 싶었는데 어느새 목우재 마루다. 눈에 덮인 들머리와, 작년 9월 12일 우중의 들머리를 오버랩 시켰으나 얼른 확인이 되지 않아 잠시 망연했다. 어느 산이고 춘하추동 한차례 이상 밟아보지 않은 산은 완전한 내 것이 아니다. 그만큼 산은 까다롭게 우리의 애를 태운다.
마루턱에서 남쪽으로 50m 따라 내려간 우측 얕은 콘크리트 가드라인을 두른 둔덕위로 눈에 덮인 다른 들머리가 보인다.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시작부터 금강송이 가득 찬 너른 수레길 오르막은 상당히 미끄럽다.
11분 만에 닿은 삼거리 합류지점은 처음 확인했던 들머리에서 올라온 길과 만나는 곳이다. 소나무 사이로 상수리와 떡갈나무 나목이 가득하다. 처음부터 아이젠과 스팻츠 착용을 권고한 것이 퍽 잘됐다는 생각이다. 10분 후에 만난 3거리 우측으로 본격적인 주능선이 열려있다. 소폭의 평탄한 오솔길에는 이미 쌓인 눈에 발자국들이 선명하다. 러셀을 할 필요없이 발자국만 따라가면 무난한 산행이 마쳐질 것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속세와의 한시적 단절을 의미한다.
땀을 흘리며 무아지경에서 경사를 치고 올라가는 순간만은 가장 진실하고 무균의 진공지대를 巡遊하는 시간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길이 끝나는데서 산이 시작한다’는 표현은 잠정적인 세상과의 격리다. 산에서 흘리는 뜨거운 땀방울에서 작은 생명과 희망을 발견한다. 산은 나에게 가장 인간적인 부분에서부터, 너무나 순결하고 순진무구한 부분을 낱낱이 알려준다. 산은 확실한 스승이인 동시에 해탈이다. 그래서 산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의 응시하며 읽는 눈을 얻게 된다.
생존의 참뜻을 등산과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생각하는 것이 버릇처럼 굳어졌다.
산에 오르면 나와 남, 그리고 세상이 보인다. 여행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돌아갈 집이 있으니까 한다’는 대답처럼, 등산 역시 ‘거기 산이 있으니까 한다’는 존재등산의 가치관에 갈증을 느낀다. 떠남과 돌아옴, 이것은 모든 인간들이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일탈본능과 귀소본능의 이율배반이 아닐까 싶다. 일탈과 귀소를 반복하는 우리는 일탈할 때의 심정으로 귀소한다. 어떤 이유로든 지금처럼 지금 산을 탄다는 뜻보다는, 산이 나를 탄다는 浮雲의 경지로 접어들기를 바란다. 의도적인 고난을 흔쾌하게 받아들이는 습관을 관능적인 쾌락보다 더 즐기는 자신을 행여 변태라고 詰責당하진 않을까 염려스럽다.
10시 39분.
늦잠으로 불참한 박명자씨의 문자 메시지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어쩌다 늦잠을 잔건지, 정말 속상합니다. 즐거운 산행 바랍니다.”
그네와 이미 6시 15분 경 불참사실을 통화한 바 있다. 그네 외에도 박관례씨-비구름내외와 김주영씨가 개인 사정으로 사전 불참연락을 취한바 있고, 연락이 불통인 회원은 H-Y-C 등 8명이었다. 사람을 적당하게 긴장시키고 용해시키는 순간이다. 웃음으로 새벽을 맞으며 주고받은 의미있는 이야기가 싱그럽다.
10시 50분.
속초시 전역과 신평벌을 이룬 노해가 장관이다. 석호(潟湖)인 영랑호와 청초호 보다 겨울바다가 더 짙은 먹물색깔이라는 것을 재확인한 오늘이다. 지난번 못 봤던 조망을 오늘의 날씨가 확실하게 열어주었다. 속초 앞 겨울바다색깔이 어떠하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한희자 선생님의 답변이다.
“지난 해 말 다녀온 뉴질랜드 바다보다 못하군요!”
“ …… … ”
좌측 지능선 무명봉우리에 꽂힌 무선전화 중계 철탑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화채능성 좌측에 걸쳐있는 토왕성폭포와 비룡폭포-육당폭포가 빙벽이 되어 정지당한 겨울같다. 빙벽은 살아있는 겨울에 대한 반역은 결코 아니다. 겨울은 이렇게 다면적인 상황으로 우리들을 향해 자신을 설명한다. 액체에서 고체로, 다시 기체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액체로 순환한다. 가장 정확한 융통성을 갖은 겨울은 가장 사랑을 받아야 할 계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푸대접이다. 그렇다고 겨울은 불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우리들과 함께 공존한다. 나는 그런 겨울을 지독하게 사랑한다. 애무의 눈길은 늦동이를 바라보는 마음만큼 자상하다.
빙벽을 오르는 빙벽 매니아들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고목 줄기에 매달린 매미라고 하면 저들에겐 욕된 표현일까?
달마봉을 향한 능선엔 콘크리트 벙커와 교통호도 눈에 묻힌 채 긴 동면에 들어있다.
<나이 들면,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
오늘 오신 손님이 해주신 말씀입니다.
나이 들면, 앉고 서고 눕고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고. 옳은 말씀입니다.
함부로 살면 한 번에 무너지고 맙니다.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지요.
좋은 벗들, 참 좋은 이웃들, 때로 내게 아픈 충고와
나무람을 아끼지 않을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 이철수의《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중에서 -
젊었을 때는 조금 어질러져도 용서나 용인이 되지만, 나이가 들면 곧바로 치명타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하라는 경구다. 그러나 우리들의 욕심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거나 만용으로 인해 자칫 균형을 잃어버리곤 해 낭패를 당하곤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다는 얘기다. 나이를 더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고통이 수반한다.
능선 우측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송이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소문난 이곳이다. 송이도 지금은 白雪 아래에서 깊고 편안한 겨울잠에 빠져있다. 온갖 시름을 잊은 채 말이다. 항용 그렇듯 능선 길은 잔재미가 있어 좋다. 눈이 덮인 겨울능선은 그 재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한다. 오늘 겨울 설산산행을 즐기려는 일행들에겐 그간 굶주렸던 설산능선 행보에 환희를 맞으리라.
磨砂가 깔린 암반 슬랩지대도 모두 눈에 덮여 無碍의 행보다. 작은 봉우리다.
작은 산이라고 우습게 알게 아니다. 까다로운 암릉과 암봉도 있고, 협곡도 여러 곳이다.
암릉과 암벽지대 통과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地籍 경계지점이 되는 작은 봉우리다.
차라리 서북풍은 훈풍에 가깝다.
526봉 암봉도 白衣에 덮여있다.
11시 40분.
거대한 암석으로 구성된 달마봉 아래를 지나가며 위를 바라본 풍광도 작년의 그것이 아니다. 거북이바위와 그 뒤편에는 삐죽 나온 남근석도 오늘은 달콤한 이야기로 변한다. 거북이 머리와 남근석에 묻힌 함수가 생각나 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11시 50분.
달마봉을 안고 도는 중간지점 안부다.
뒤돌아 보본 촛대바위도 남근석처럼 崛起(우뚝 일어섬)한 자태다.
달마봉 우측을 감고 올라가는 오르막이다. 염려했던 김복희-유덕순-이원분 선생님들의 행보도 순조롭다. 예상대로 김정옥씨가 다소 어려운 행보라는 전갈이다. 후미대장과 강윤성-최윤영씨가 동행하고 있으니 그리 염려할 바는 아니다.
오후 12시 05분.
달마봉을 감고 돌아 완전 통과한 암릉 안부에 선등한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땀을 식히며 작은 술잔이 움직이는 소리가 청아하다. 자연에 묻힌 술잔이 목줄을 타고 흐르는 일행들의 표정이 한결 맑다. 서북쪽 산릉에 박힌 울산바위가 고고한 자태다. 달마봉을 올려다보는 시선도 청정하기 그지없다.
걸림이 없이 살 줄 알라.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같이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법보장경
지난 1월 20일 강서교육청 00연수 당시 변산 월명암 좌측에서 보았던 계도문이다.
계조암을 향한 능선을 타고 오르고 내리는 코스다.
12시 40분.
두 줄기의 암벽이 길게 뻗어 내려간 내리막 협곡이다. 그랜드 캐넌을 축소한 암벽으로 이뤄진 협곡이다. 조심스런 행보다. 이곳이 ‘달마산의 그랜드케넌’이라고 말했더니 앞서가던 일행 중 누군가 대꾸한다.
“그랜드 케넌이 아니라 ‘그×도 개×’이랍니다.”
그래서 잠시 쓴 웃음이 솟았다. 우리식 조크다. 그래서 너남없이 킥킥거렸다.
깊숙한 협곡 내리막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도 달마봉의 산행은 절반 이상 거친 셈이다.
환상적인 절경이 깔린 능선이다. 몽환(夢幻)의 코스다.
북풍한설을 몰아낸 눈소나무, 해금강, 울산바위 너머 황철봉, 마등령에서 소청봉 아래로 흐르는 공룡능선, 재청본-중청봉, 대청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화채능선, 화채봉에서 동해바다로 빠져나간 861-송암산 능선이 속초시를 둘러싼 노해에 안방의 가구처럼 질서정연하게 제 위치를 점거하고 있다. 달마봉에서 만난 동대문 연합회 인디언 산악회(약 20여명)원들과 합류가 된 능선이다.
아까보다는 싸늘한 서북풍이 몰아친다. 그러나 바람의 세기와 風溫은 초봄바람처럼 훈기가 담겨있다. 커다란 바위지대를 우측에 두고 내려섰다가 오르는 지점에 양경태 대장께서 일행은 물론 다른 산악회회원들까지 쉽게 오르도록 리드하고 있다. 새벽에 전달한 간이로프를 매어두고 말이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 더욱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지점이다. 그렇게 한참을 수고하고 있는 그였다. 얼마 후에는 후미리더 홍기오 대장님 몫도 남아있을 것이다.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닥아 온 울산바위가 천상 실제 모양을 축소한 미니어처 모형도다.
그리고 왜 그렇게 왜소하게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로프가 걸린 긴 내리막 암릉이다.
멀리 신흥사 전경이 조감도처럼 산뜻하게 비친다.
오후 1시 20분.
사거리 안부다. 바닥에 이정표를 깔았다.
우측은 학사평 저수지로, 좌측은 안양암 방명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진달래, 단풍나무, 신갈나무가 나목이 가득한 오르막 능선이다.
오늘 산행 중 마지막 오르막이다. 작년 이맘때 금연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대신 먹성 좋은 하이에나처럼 눈에 띄거나 손에 쥐면 무엇이곤 마구 먹어치우던 정재근씨를 상대로 놀려대던 오희숙씨의 힐난이 떨어진 지점이다.
송림지대 肉山 능선이다.
작년 9월 솔밭 사면 숲이었던 이 지점에서 당시의 회원들과 함께 황금싸리버섯과 밤버섯 채취에 열중하던 두 김연자씨의 잔영이 묻어있는 곳이다. 바람소리가 거세다. 겨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초적인 생명의 소리다. 설악의 <雪>답게 정강이를 빠트리는 깊이의 적설지대다. 설악의 꽃은 누가 뭐래도 ‘눈’이다. 눈이 없는 설악은 눈알 빠진 호랑이다. 설악의 가치는 눈이 덮였을 때 그 진가가 돋보인다.
눈이 없는 설악은 윤기없는 동백나무 잎새 같아서 영 마음이 닫지를 않는다.
그래서 설악을 아끼는 사람들은 겨울이면 미치광이처럼 설악을 찾아든다.
이름 그대로 <雪嶽>이 아닌가.
오후 1시 45분.
겨울의 소리가 들린다. 겨울에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역시 바람소리가 으뜸이다. 겨울소리의 진정한 낭만과 멋은 바람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겨울바람은 겨울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겨울바람소리, 겨울 눈 내리는 소리, 겨울이 숙성하는 소리가 어우러져 침묵의 소리로 겨울은 모든 것을 포옹한 채 자신의 존재를 일깨운다. 자연이 만든 기막힌 화음의 질서다. 그래서 겨울은 숨찬 생명력을 이어가는 靜中動이다. 그래서 겨울은 더욱 신선한 영혼을 부르며 생존의 의미를 두텁게 한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근육과 골격에 새롭고 힘찬 에너지를 담는 역동적인 계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생명의 신비가 고스라니 얹어진 겨울은 그래서 더욱 참신하다.
더 가깝게 다가든 울산 바위는 마치 거대한 세트장이다.
울산바위를 북두칠성으로 삼고 시각이 변화할 때마다 울산바위의 얼굴은 따라서 변한다.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장난감처럼, 때로는 세트장처럼 바뀌는 울산바위는 경북예천 용문사 본당 옆에서 만난 윤전대와 흡사하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노라면 鳥葬을 끝내고 육탈한 고승이 연상된다. 울산바위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잠시 어린애같은 망상에 빠져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리며 적설지대 내리막을 통과한다. 금강송 노목들이 빼곡한 지대다. 오직 순진무구한 자신의 빼어난 몸매를 지닌 금강송은 늘 저렇게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가며 뽐낸다. 그 절개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오후 1시 50분,
계조암 아래 마지막 휴게소인 음식점에 내려섰다.
예서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은 약 3~4분 거리인 지척이다.
먼저 내려섰던 일행 일부는 繼祖庵의 흔들바위까지 다녀왔다고 자랑이다.
정묵연선생님 일행, 우리의 왕언니인 김옥희씨, 후미 홍기오대장과 강성윤씨 일행, 그리고 모든 회원들이 휴게소에 무난하게 내려온 사실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서둘러 하산을 종용했다. 내원암-신흥사-설악동공원을 지나 주차장까지 4~50분간 거리다.
신흥사(神興寺)를 좌측을 호위하는 권금성과 칠형제봉, 세속에 찌든 마음을 모두 벗고 지나가라는 세심천(洗心川), 세심천을 가르는 극락교와 洗心橋를 건너 소공원 방향으로 내려서면 좌측에 높이 18m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靑銅좌불상이 있다. 이 지점은 원암골, 가는골, 저항령계곡의 계류들이 합해 쌍천이란 이름으로 바뀌는 합수머리다.
오후 3시 00분.
설악동소공원을 지나 매표소 앞 주차장이다.
목우재를 들머리로 달마봉 정상-울산바위-계조암-내원암-신흥사를 거쳐 소공원에 이르는 7Km 거리에 후미 일행 모두가 내려서는데 소요된 산행시간은 4시간 40분이다.
설악동 C지구 끝 주차장 천주교 옆에 위치한 ‘강원식당’으로 옮겨 치르는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학사평저수지와 안양암으로 갈리는 사거리에서 곧바로 하산해 시간적 여유가 남았던 안병만-최자영씨 두 사람은 ‘회’ 먹거리를 찾아 속초시내로 나간 탓에 동석하지 못하고 나머지 39명이 회동한 자리다. 산채뷔페(산나물 20여 종류)식당 안으로 들어선 일행들의 瞳孔에 광채가 일어난다. 설악산의 추위와 설산산행과정에서 치른 긴장감의 해이, 그리고 적당한 피로감이 식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고 준비한 소주잔은 食前의 식욕촉진제다.
해가 기우는 설악동의 오후 겨울은 일찍 찾아든다. 엄습하는 추위가 만만치 않다.
귀로에 오른 시각은 속초로 나갔던 안-최 두 사람이 합류한 직후인 오후 3시 52분이었다.
안양암 부근에서 어느 늙은 아낙네의 亂場좌판을 설거지하듯 몽땅 사들인 정재근감사님의 行德으로 얻은 깨엿이 회원마다 돌려졌다. 그리고 나른한 식곤증이 추위에서 녹아내리는 표정마다 피곤이 주근깨 자국처럼 묻어있었다.
귀로는 미시령이 아닌 동해안을 거쳐 한계령길을 택했다. 수십 년의 산악회 경험을 치른 주광복 기사의 노련한 운행솜씨가 빼어났다. 시원한 동해를 좌측 옆구리에 바짝 끼고 달리는 차창 밖 풍경도 별미였다.
겨울 바다 박명(薄明)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고통처럼 단순한 몇 포기 섬들이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소주처럼 쓴 물결을 휘젓는 바람소리가
아 바람이, 하늘에선 박명의 구름장들이 빙빙 돌아간다
웅크리고 박혀 있는 몇 포기 섬들
갯벌에는 여인 서넛이
허리 구부릴 때 그네들에게 잡혀주는 몇 마리 게새끼가
매어 달리는 이 풍경
아 바람이,
짧은 해안선을 짧게 달구는
풀뭇불빛 같은 이 풍경.
<평균율 2, 현대문학사, 1972>
물 위에 오래 뛰어 오르는 순색(純色)의 바다가 사무치게 아름답다.
침묵이 자리잡은 바다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겨울바다를 찾는 것일까.
오후 4시 41분.
한계령 고스락을 내려가며 장수대를 향한 44번 국도는 경쾌했다. 이대로라면 8시 30분 전후해 귀경하리란 계산이었다. 그러나 고원동 내설악 관광휴게소 3거리-원통을 지나면서 예상대로 차량이 밀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차량의 폭증이 아니라, 도로공사와 1차선 도로가 평균적인 통행량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던 도로 탓이다. 관행적인 지, 정체가 약 2시간 30분간 지루하게 이어갔다. 차량행진이 풀리기 시작한 지점은 홍천읍을 약 20Km 앞둔 철정검문소를 통과하면서 엉킨 실가닥 매듭이 풀리듯 원만한 흐름이 나타났다.
홍천-양덕원-용두리-용문-양평-양수리를 통과하는 경강국도는 예상 밖으로 일사천리다. 웬 행운인가 싶을 정도다. 오늘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껄꺼름하게 남았던 강성윤씨와의 오해도 앙금이 되지 않기를 빈다. 문득 뱉고 보니 그의 심란한 마음을 완전하게 소화하지 못한 불찰이 목구멍에 걸려있다.
“오늘 산행이 무척 좋았습니다. 날씨가 좋았고, 여러분들 모두의 즐겁고 환한 표정이 좋았고, 베테랑 주 기사님의 운행솜씨도 좋았고, 음식 맛도 좋았고, 또 금년 처음 만끽한 눈산행도 좋았습니다.”
좋았다는 형용사를 반복하는 話者 자신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 산행안내당시 뱉었던 ‘느닷없는 행운이고 축복’이었던 하루였다.
“오늘 처음 나오신 신입회원인 김해용-이형로씨, 김복희-유덕순-이원분 선생님, 김정옥씨, 그리고 김병찬-안병만씨, 김포 부회장님인 최자영씨와 우리 일행 모두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참여한 주부들의 10시 이전 귀가를 목표로 바튼 차량운행을 위해 잦은 재촉을 한 것은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저 자신도 집사람이 출타 후 밤 10시 이전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마다 감당하지 못하는 울화통으로 속을 끓이곤 했습니다. 인지상정입지요. 재차 여러분들의 너른 이해를 바랍니다.”
차주 산행계획(남한산 오전 9시 5호선 마천역 종점), 그리고 나머지 2월 산행계획을 전달했다. 오늘만큼 화려할 평창 백두-잠석봉, 덕산온천이 있는 용봉-수암산에 대한 짧은 개관설명을 부연했다.
“선두 양경태 대장님과 후미 홍기오 대장님, 그리고 주광복 기사님, 그리고 무사한 산행을 마친 우리 모두의 행운을 축하하는 자축의 박수를 보냅시다.”
천호동에서 김복희 선생님, 잠실부근에서 송원동씨, 동작교 부근에서 오영삼 이사님부부, 당산역에서 대량인원이 하차했다. 조낙연씨가 하차하며 2월 한 달은 출타(渡美)로 자리를 비우게 된다며 다소 송구한 표정의 인사다. 이미 설악동 주차장에서 오영삼 이사님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바 있다. 유쾌한 여행이 되기를 빈다.
도시가스 앞에서 강태영 고문님과 유덕순 선생님, 보건소 앞에서 김연자 총무님과 홍영미씨, 하이웨이 주유소 앞에서 정재근 감시님과 홍기오씨 부부, 그리고 김자연씨와 장서방과 항상 트레이드마크인 환한 미소로 눈 布施를 하는 한미자씨 내외. 김병찬-안병만-최자영씨 일행, 발산역에서 본인과 김해용-이형로씨, 방화동에서 김옥희 왕언니와 김정옥씨, 종점인 김포시에 강영성 이사님 부부와 최영복씨의 하루가 저무는 밤이다.
밤 10시 5분.
발산역에 내리다.
질척거리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M주점에 들려 넋두리를 목욕탕을 나서는 기분으로 털어버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하루가 여물어 가는 밤이 되리라. 그리하여 오늘이 사망하고 새로운 내일을 탄생을 기다리리라.
▼트윅스터族…인생고민-책임감 NO
타임 최신호(24일)는 이들처럼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새로운 종족, 트윅스터(twixter․between의 고어인 betwixt에서 나온 말)가 지구촌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윅스터는 가정을 꾸리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살며, 직장을 갖지 않거나 갖더라도 금세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성인이지만 말투와 옷차림, 노는 방식은 10대와 다름없다.
10년 전만 해도 이들은 X세대로 치부됐다. 그러나 이제는 일시적 유행이나 한 세대의 돌출적인 행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대학 졸업을 최대한 늦추며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편입되면서 져야 하는 책임감을 거부하는 중간 단계가 생겨난 것. 미시간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1970년만 해도 부모와 함께 사는 26세의 자녀는 11%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20%로 2배 가까이 됐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성인으로 키우는 사회의 도덕적 중추와 경제 체제가 망가진 결과라고 경고한다. 청년 고용시장이 붕괴되면서 대학 졸업장만으로 직장을 잡기 어려워졌을 뿐 아니라 대학 교육이 직업 현장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등 선진 각국에서도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트윅스터들이 무책임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모색하는 긍정적인 시기를 보낸다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최고로만 키운 대졸 자녀가 방에 틀어박혀 장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훌쩍이며 우는 모습을 볼 때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충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타임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자녀가 11세가 되면 구체적인 취미를 개발하도록 하고 협동, 의사소통의 문제를 관찰할 것 -좋은 대학에 입학하라는 이야기보다는 직업 생활의 실제에 대한 규칙적인 대화를 할 것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말 것
-게임, TV 시청 등 수동적 놀이시간을 엄격히 제한할 것 등이다.
헤어지는 연습에 익숙한 우리들은 또 다른 재회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손곱아 기다린다.
*교통 :
-항공[서울에서 양양국제공항 매일 5회(40분 소요)운항(아시아나 항공 2회, 대한항공 3회)
공항에서 설악산행 시내버스 → 종점에서 호텔 셔틀버스 이용
(대한항공 예약전화 : 1588 - 2001, 아시아나 예약전화 : 1588 - 8000
-승용차
1코스[울-영동고속도로-대관령-강릉-38휴게소-설악산입구(7번 국도)-설악산공원]
2코스[서울-영동고속도로-하진부(오대산국립공원)-진고개-금강-주문진-설악산입구(7번 국도)-설악산소공원(4시간 10분 소요)]
3코스[서울-양평-홍천-한계령-양양-설악산입구(7번 국도)-설악산소공원(4시간30분)]
4코스[서울-양평-홍천-용대리-미시령-목우재-설악산소공원 (4시간 소요)]
5코스[서울-양평-홍천-내면-구릉령-양양-설악산 입구-설악산 소공원 (4시간 30분 소요)]
강남. 동서울 고속터미널 (속초행 매 30분 간격 출발
시외버스/ 상봉. 구의 터미널 (속초행 매 30분 간격 출발)
※ 터미널에서 호텔까지 7번 버스 이용
*숙식 :
-설악동 지구(호텔 4개동:347실)
;설악파크호텔:121실 033-636-7711), 켄싱턴호텔: 109실 033-635-4001~3
설악산 관광호텔:43실 033-636-7101, 설악교육문화회관(가족호텔):74실 033-636-7540
여관 80개동3,227실, 설악산유스호스텔 1개동 87실 033-636-7115
-오색 지구 (호텔1개동:227실 033-672-8500 )
;오색그린야드호텔(가족호텔), 여관6개동:167실
-백담 지구 (민박가옥 18동 54실) ; 장수대 지구(민박가옥(한계리) 41가구 175실 )
-대피소
중청 150명 1,600고지 설악산 중 最高지대, 대청봉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 일출절경
첫댓글 좋은 산행과 산행기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