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로마노에서.
이탈리아
밤 비행기를 탓으니 보석처럼 반짝이는 도시만 보인다 가로수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보며 웬지 모를 동질감과 고향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가족 공동체 중심이라서 남자들은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가족과 함께 지내기를 좋아하고, 태어난 고향에 돌아가 살고 죽기를 원하며 또 그렇게 하며, 모계 사회라서 어머니 없이는 살수 없는 나라라니. 신기하고 재미있고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퇴근 후 마시고 놀 수 있는 장소가 없다니... 밤 문화가 없다는 얘기인데. 일단은 한국 남자들은 죽어도 살수 없는 나라가 분명했다 태어난 아기는 7일까지 안아주지도 않고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며 마무리를 짓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칠 뿐만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사고의 수준으로 친구가 될 수 있으므로 사고의 폭을 중요시하고. 개인의 독창성을 중요시 하여 절대 남을 모방하거나 닮으려고 하지 않는 민족이었다. 오래된 집일수록 비싸며, 집 기초공사만도 10년은 걸려야 하니 정말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도 따라서 할 수도 없는 문화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우리와 비슷한 환경과 성격을 지녔으리라는 생각은 오류였다 . 그들은 천천히 문화였고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아 대지는 누런 빛깔이었으며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리니 초록의 계절을 가졌다. 한국인들은 넓고 편하고 새것을 좋아한 반면 그들은 오래되고 불편한 것 작은 것을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참을성 많은 민족이었다. 조명도 비추기 위한 것이 아닌 느끼기 위한 빛이라니... 신비감마저 든다. 국민 소득이 우리의 두 배를 넘는 나라임에도 작은 길, 작은집. 작은 차로도 만족하는 그들 앞에서 허영심으로 가득 찬 내가 어찌 부끄러워짐을 느끼지 않겠는가
11월 3일
고대 로마의 중심지로 2500년 동안 로마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포로 로마노로 갔다. 포로라는 뜻은 공공광장이며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이 밀집 되어있던 지역이었다 시저 신전, 원로원, 개선문등이 남아 있었다.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위대한 역사가 감지되었다 .
캄피돌리아 언덕을 지나 콜롯세움 광장으로 갔다. 중간 중간은 아직도 발굴중인 지역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호수에 지어진 콜롯세움은 거대한 투기장겸 극장이었다. 생사를 겨루는 검투가와 짐승의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오는 듯 하다 그걸 바라보며 야만적인 쾌락에 몰두했을 이탈리아인들의 야만성을 엿볼 수 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사진 촬영만 했다. 이곳도 비용에 비해 볼게 없다나?
강의 신인 홀르씨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 잘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욱 유명해진 진실의 입을 구경하러 갔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넣었으면 입 주변이 닳고 닳아서 반질반질 거렸다. 두려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러야 되는데 모두들 웃으며 사진을 찍으니 거짓말한 적이 없다는 말 이렸다. 믿어지지 않는다.나 자신조차도.
트레비 분수
다음은 처녀의 샘이라 불리우는 트레비 분수로 갔다.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으며 동전을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도 있어서 많은 이들이 뒤돌아서서 열심이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처럼 나도 남을 모방하는 일에서 한번쯤 빠져볼까? 대신에 그 유명한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이탈리아인처럼 목에 힘을 주어본다. 난 다르답니다!!! 그러나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사람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트레비 분수에서 15분 정도 걸으니 스페인 광장이다. 17c 스페인 영사관이었던 지역으로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티 교회의 종탑과 각종 명품점 들로도 유명하고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 하단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젊은이들이 계단에 앉아 있다. 바이런, 키이츠. 괴테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던 카페도 있다. 우리도 어슴프레한 저녁에 계단에 앉아 다른 여행객들에 섞여 웃고 떠들어본다 남편의 따뜻한 손을 살며시 잡으며 웃어본다. 이 여유로움이 바로 행복이리라. 추억이리라.
11월 4일
아침 일찍 출발해 나폴리로 향했다. 먼저 2000년 전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로 폐허가 된 도시인 폼페이를 방문했다. 닳아서 반들반들해지고 움푹 패인 마차 길과 인도, 집안 마당까지 연결된 수로와 지하 저장고, 술집, 빵집. 방앗간 거기다가 사창가까지 대문 안에 그려진 개 조심 표시의 개 그림까지 도대체가 지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들의 지혜로운 기반 시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식당에서 피자를 먹었다 . 한국에서 먹던 피자와는 달리 고소한 빵이 일품이었고 야채가 많이 들어있지가 않고 담백했다. 기타 반주로 열창하는 이탈리아인의 노래 솜씨가 파파로티 못지 않을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들의 노래 속에서는 낭만과 열정과 사랑이 뿜어져 나왔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더욱 감동적이었을텐데...
카프리섬에서
이번에는 카프리행이다 . 기차를 타고 쏘렌토 항구로 향했다. 학생들이 하교하는 시간인지 많이 보였다.
장난스럽고 쾌활한 젊음은 우리의 아이들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습한 날씨로 인해서 주택들은 산 중턱이상에 많았다. 기차도 산중턱에서 내달리고 있어서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볼만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항구로 가는데 고불고불한 좁은 길을 따라 운전수는 잘도 달린다 쏘렌토 항에서 40분간 배를 타고 카르리섬으로 갔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절벽의 비좁은 공간에도 흰색의 별장이 들어서 있다.
그건 묘기로 보일만큼 아슬아슬하게 위치해 있다 이번에도 절벽을 따라 버스가 달리니 옆을 보면 낭떠러지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외국인 가이드가 “아찔해요” 라고 말해 웃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건 목숨을 건 여행이었던 것 같다.
사고가 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분위기 망칠까봐 참았다. 여름이면 부호들의 요트로 바다가 가득 찬다니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특권도 부자들만의 몫일까? 중턱에서 내려서 일인용 케이불카를 탔다.
견고해보이지 않아서 저걸 타고 어떻게 정상까지 올라갈까
의구심도 들었는데 타고 보니 웬걸 의외로 편안하고
또 혼자만의 공간으로 바다와 섬과 하늘과 대지를 음미하기에 더없이 안성마춤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비취빛 바닷물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쏘렌토만이 한눈에 보인다. 하필이면 카메라 밧데리가 여기에서 나가다니...
남한테 부탁하기를 싫어하는 남편을 제치고용감하게 부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진을 남기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리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부르며 매혹적인 나폴리를 머릿속에 되새겼다.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렬들
11월5일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의 안쪽에 위치한 카톨릭 교황국인 바티칸시국을 방문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담장을 따라 구불구불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두 시간인데 우리는 40분이면 되겠다니 다행이다. 면적이 0.44제곱 킬로미터.인구는 1000명이며 바티칸궁전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이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성베드로 대성당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 앞에서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더욱 흥미로워진다 4년 6개월 동안 혼자서 독자적으로 천정내부에 그림을 그렸다는 천지창조는
인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웅대하고 아름다우면서 깊은
인본주의 사상이 깃들은훌륭한 작품이었다.
석회 반죽을 해서 석회가 마르기전에 그림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석화 반죽을 들고 사다리를 오르내렸을까?
천국 연옥 지옥 세부분 중에서 특히 연옥에 있는 저 두개의 장부를 보라 지옥으로 다시 가야할 사람의 명단이 든 장부가
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사람의 명단이 적힌 장부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현재 우리 인간사를 비꼬고 내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뉘우쳐야 할 것이다. 나라도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어서 천국으로 가볼까나.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탄압받았던 시절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었던 지하묘지인카타콤베를 방문했다.
그 깊은 땅속에서도 길이가 500km나 된다니 가히 그 넓이를 짐작할 수 있겠다. 층층으로 관처럼 땅속을 파내어서 만든 그 기술이 놀랍다. 다행이 석회분이 많이 섞여 있어서 일단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굳어져 무너지는 일은 없다니 환경에 적응하는 그들의 생활방식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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