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는 편집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말이니 실제로는 삭제요망 *
* 너무 길면 과감히 편집해도 무방하고,(앞부분 과감히 생략) 팜플랫 자리가 없으면 안실어도 된단다 *
* 수정을 필자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해도 무방하고 저작권은 너희가 갖도록 *
* 이거 읽는 나등대회원들은 수정을 좀 봐주길..추가내용도 가능함. *
* 등대지기 역사로 남기를 *
등대지기 20주년기념 정기 콘서트에 부쳐
1기 회장 김요겸
우리 등대지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전 1987년 빈해원[지금도 군산에 있는지?]이라는 중국집에서 탄생 하였다.
신상훈(어업과), 박용훈(통신과)외 2명이 [팜플랫 보고 창단멤버 모두 쳐놓도록] 카톨릭 동아리방을 빌려서 기타2대로 좋은 노래를 나누고 차한잔 나누며 시작한 것(등대지기 창설)취지이 그 시초가 되겠고,
1989년에 비로서 총학측으로부터 인가를 얻어 소룡동 옛 캠퍼스(현 군산과학고 부지) 스탠드 밑에서 써클(동아리)생활을 시작하였다. 머리가 많이 부딫치던 스텐드 동아리방의 추억들.
1기는 등대지기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오디션 없이 통신과 남학생들과 수산경영과 여학생들을 위주로 대거 뽑았었고, 수산가공과 여학생 1명(박윤미)과 양식과 남학생1명이 각각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통신과와 수경과를 제치고 초대 총무와 회장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부회장은 오정후(토목과)
2기는 지금까지 이어오는 오디션 방식인 자유곡과 지정곡으로 등대지기란 노래를 처음으로 부르게 했었다. 가창력 말고 음정과 박자 악보 보는 능력을 체크하기 위해서이다.
최호진군이 수석으로 입동하는 기쁨을 안았고
1차 합격자로는 김재환, 최호진, 권영주, 김희경 외1명 이었다
그후로 2차합격자는 조승빈, 이상민, 화명이 등이었다 [2기 명단 채워 넣으시오]
동아리명에 대해서는 당시 후보로 올라온 뿌리깊은나무, 여울목, 그루터기 등 3개의 후보작을 물리치고, 수산대의 이미지에 맞으며 어두운 군산문화의 한줄기 빛이 되고자 당시 회장이던 김모군의 제안으로 “등대지기(Light House Keeper)”로 확정 되었다.
등대만큼 강력한 상징어로 사용되는 것도 흔치 않다. 실제로 등대를 본 적이 없는 이들도 막막할 때면 인도의 손길 ‘등대’를 갈망한다. 때로 바다안개보다 더 지독한 암흑을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 항해야말로 하루에 3000번이나 변치 않고 깜박여 길을 안내해 준다는 파바리츠 등대 같은 구원의 불빛이 간절하기 때문이리라.-임사라 동화작가-
첫 행사로는 축제전야제 7곡을 소화 하였고,
“사랑의 기쁨-마르티니-, 창작곡 내가 광야에서, 젊은 연인들-서울대트리오-, 작은연못-김민기- 등등 가야금 삼병창으로 불리우던 기타 3인방 (필자, 조승빈. 이성만)
그밖에 분위기 무르익는 쌍쌍페스티벌 찬조를 하게 되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정태춘 박은옥- (김희경, 필자 듀엣)
당시 키스타임도 있었었는데...
그후 전군가도로 벚꽃 축제때 사이클 대회를 열었었고(회비 3천원-모두 자전거 대여료로 사용)
제1회 SMC로 운일암 반일암에서 개최 하였다. 놀고 먹으며 음악 강의 시간도 주어진 시간이었다
1기 박정배가 일정 장소섭외 등을 맡아서 수고 하였었다
이때쯤 등대지기의 영원한 건배어 회장이 "등대!"외치면 나머지 회원들이 "지기!"라고 화답하던 풍속이 태어났었다.
제1회 정기 총회에서 2대회장으로 양홍선(어업과)과 부회장 김재환(선박전자과), 총무로 권영주(수산경영과)가 선출되었고,
지금은 사라진 소강당에서 제1회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최초의 스폰 구하러 다니고 한달간 날마다 연습했었고
기타 반주자의 손가락은 청동색으로 물들러가고 뭉그러지고
학교식당에서 3백원짜리 라면으로 석식을 때웠었고
당시 식사후 휴식시간에 등대팀과 지기팀으로 나누어 테니스공으로 야구도 하였었고
(남잔 왼손) 부친개를 부쳐오는 여학생이 있었고(이명숙)
사회자는 남자는 양복, 여잔 미용실에서 올린 머리 하고 흰색과 푸른색이 어울린 한복을 입고
진행 하였었다. 다들 처음하는 콘서트라 실수가 많았었고 끊어지는 부분도 많이 나왔었다.
권영주가 부른 창작곡 "너의 친구는" 이곡은 기타 3대와 팬플루트 반주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당시 동아리방에서 빨간 콘서트 포스터를 그리다 전경에게 맞아 입이 터진 박정배는 붕대 작은 입으로
애절한 최성수 노래로 많은 박수를 받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밖에 연습만 잘된 "꽃과 어린왕자"-김희경,조승빈(혼성듀엣),
"저 너머 빈들에서"-김재환, 필자,조호진,외1명(남성트리오)가 있었고,
실전에 강한 "뭉게구름"-이명숙, 조승빈, 화명이 외 1명 등이 있었다.
(신상훈 선배님이 퍼스트 기타를 도와주셨었다)
나이 많으신 예비역. 영원한 형 김재형씨의 해림가요제 대상곡인 차분한 "그대"와
분위기 만점인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백보컬 필자.조승빈
빨간 등산모자 쓰고 하모니카 목에 걸고 토속적인 이성만의 "성주풀이"
결고운 여성듀엣 김희경 외 1명 "예기치 않은바람"
이상민, 김재환, 권영주 외 1명이 부른 "사랑은 미지수"
상민이의 사랑을 고백하던 에피소드
그외에 기억나지 않는 노래가 몇곡 있었었고,
합창곡으로는 오프닝곡이 징검다리의 "님에게" -폼잡고 솔로 양홍선
엔딩곡은 해바라기의 "그날 이후"였었다" 반짝이는 불꽃놀이와 함께
앵콜곡은 '등대지기" 원곡 속에 커튼은 내려지고 있었다.
당시 학장님까지 오셔서 축하해주셨는데 당시 총학생회 출범식하구 맞물려 애를 먹었지만
총학측에서 꽃바구니를,
학교측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버스를 빌려 주기도 하였다(콘서트 끝난 후 귀가차편제공)
재미있었던 것은 기생들(기숙사생들)은 콘서트 보다가 다시 식당에 가서 식사한 후 다시 와서 관람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으며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어울리지 않은 과응원을 하거나 담배를 피는 학생도 있었었다.
(특히 여학생 솔로 박윤미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할때 많이들 피고, 한숨도 많이들 쉬었다.)
학장님 말로는 우리학교에 남여학생들이 모여서 이렇게 건전한 문화를 꽃피운 것은 첨이라고 격려하심.
게스트로는 삼각형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청쟈켓 입은 귀여운 허씨 여학생이 무대에 올랐었고,
그룹사운드 앵커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이승철 노랠 섹스폰과 함께 멋들어지게 보여주었었다.
등대지기 최초의 졸업식에는 모든 재학생 등대지기가 참가하여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정겨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 후 신입생환영콘서트와 거리콘서트 등을 통해 등대지기 이름을 알렸엇고,
4기 조충호(5기 이정석, 7기 한성진)가 이끄는 “양들의 침묵”이 대학가요제 전북 1위로 본선에 진출하기도 하였다. [더 추가할 내용 있거든 댓글 달아주기]
이상은 20년전의 모습들이었었고, 세월이 폭포처럼 쏟아져 10주년 콘서트때는 많은 등대지기출신들이 와서 우리의 생일을 자축 하였었다.
그 후 등대지기 써포터 성격의 “나등대”라는 동창회가 설립되었고, [몇년도지?]
이름 지은자 (7기 정현아)의 원래 제안은 “너등대”였었다.
2004년 나등대 초대총무를 지내던 7기 고 김은아의 충격적인 암사망시에는 전국의 많은 등대지기들이 모여 유가족을 위로하였었고,
(힘들게 암투병중이던 7기 김은아양(향년30세)이 6/3 카톨릭병원에서 그 아름다운 숨을 거두었습니다.)
정기콘서트는 해마다 계속 되고 한 두 번 쉬었나? [몇회 누락되었는지 여부 써주기]
[현재 정기콘서트는 몇회인지도]오늘날의 20주년에 이르기 까지 하였다.
멀티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날 누가 통기타 음악(포크송)을 하며, 취업난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친목단체성격이 강한 이 동아리에 흥미를 붙일 것인가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예전보다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정성으로 이 콘서트를 준비하였다.
자영업자, 회사원이 된 졸업생들도 따로 연습하여 모두 다 참여하는 20주년콘서트의 취지에 맞게 이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콘서트를 물심양면으로 준비하였다
우리는 작은 촛불로 시작된 이 등대가 30주년 40주년이 되어선 수억만 룩스의 밝은 빛으로 여러분께 다가설 것을 감히 약속 드린다.
우리의 등대는 군산포구와 우리 지기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켜있길 소망하며 격려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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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현란한 도시의 네온사인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즈넉한 등대 불빛을 닮은 지기들.
등대섬에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가족의 모습 속(나등대)에 작은 어선 한 척(등대지기후배들)까지도 끝까지 보듬어 안는 등대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첫댓글 이런건 원래 재학생들이 청탁해야 써주는 건데..사진도 찍어주고..뭘 바라겠냐지만
격려사가 성연이 말대로 추억록이 되었네. 너희들도 너희들 당시 콘서트를 추억하는 글들을 올려주면 좋겠다(등대지기 역사까진 아니더라도 좋은기록으로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