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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산]
상장바위산(상정바위산)
정선군 북평면사무소에서 등산로를 정비하여 놓은 상장바위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조양강이 사행하며 만들어 놓은 지형이 마치 우리나라 지도와 같이 생겼습니다.” 정선읍사무소에 근무하는 나병기씨(49세)의 자랑이다. 금대봉 검용소에서 발원한 검용수가 고계천(골지천은 일제가 지은 이름)이 되어 임계천, 송천, 오대천을 쓸어모아 조양강으로의 구색을 갖춘 후 나전을 지나 정선 시내로 흘러들기 전에 멋진 폼으로 한번 크게 휘돌아 아라리 예행연습을 하고 정선시내를 유유히 빠져나가곤 한다. 이렇듯 한번 크게 도는 곳에 솟은 산이 상장바위산(1,006.2m)이다. 산행 들머리가 되는 문곡마을에는 유명한 네개의 바위(문산사암·文山四岩)가 있다.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목에 있는 상산암(商山岩), 동자샘을 지키는 동자암(童子岩), 신선과 부처 모습의 선불암(仙佛岩), 국립지리원 지형도에 상정바위로 잘못 표기된 상장암(上將岩)이 그것이다. 무릉도원으로 이어지는 산길 이번 산행은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상정을 상장으로, 즉 상장바위산으로 바로 잡는 일을 할 겸 정향나무 향기 품는 5월 2일 정선노두산악회 이명재(53세), 주춘옥(42세), 전재옥(32세), 전영옥(27세), 정연선씨(26세), 구절초등학교 원미화(29세)선생님, 태백 한마음산악회 이상본(50세), 손길원(40세), 임대수(49세), 박복재씨(43세) 부부 등 일행은 정선군청 옆에 있는 나병기씨 자택에 모여 문곡리로 향한다.
정선 시내는 서울에서 정선까지 장보러 오는 관광열차의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정선 장날이다.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정갈한 거리에 순박하고 생기 넘치는 주민들 모습들이 너무나 보기 좋고 아름답고 부럽다. 정선읍 정선 제2교에서 42번 국도를 따라 반점치를 넘어 나전 방면으로 약 5킬로미터에 이르니 정선선 철길 아래로 빠져나가는 굴다리가 있다. 여기서 기차 굴다리 밑을 통과하여 곧바로 42번 국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원을 그려 조양강변로를 따르니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여름이면 물놀이 성수기 때 쓰레기 수거료를 받던 이곳에는 태공들이 벌써 강변에 터를 잡아 아침 낚시를 즐기고 있다. 물의 흐름이 여유를 부리는 옛 문곡나루터를 지나니 햇빛에 반짝이는 여울목이다. 어릴 때 저렇게 예쁜 여울목에서 쇠리(쉬리) 보쌈을 하던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1980년 여울목에 가설한 ‘세월교’를 건너니 문곡본동이다. 문곡마을은 세월교인 잠수교를 놓고 그런대로 오지를 면했다. 마을 앞 제방을 따라 민박집이 몇채 있고 강건너 절벽에는 양수발전 철탑이 보인다. 제방이 끝나는 곳에 닿으니 날머리가 될 지점에 대형 등산안내 그림지도와 간이 화장실이 있는 공터다. 배나무골(백운동)과 수무골이 만나 내려오는 계곡에 인접한 공터에 주차하고 조양강 하류쪽의 큰골로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관광버스 한대가 들이닥친다. 배낭 걸친 떼거리가 내리더니 모두 강변 자갈밭으로 흩어진다. 수석 동호인들이 탐석을 온 것이다. 시간은 어느덧 10시, 큰골과 작은골 가에는 뼝대 밑으로 바위 틈서리에 돌단풍꽃과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리고 등산로는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워 운치를 더하는 무릉도원 가는 길로 이어진다. 몇날 몇달이고 하염없이 걷고 싶은 강변 길은 아쉽게도 20분쯤에 끝나고 저절로 미루나무, 버드나무 농가가 있는 큰골, 작은골의 삼거리 합수점이다. 작은골 방향에는 화살표를 그려 ‘정상10km’라 쓴 등산로 안내 푯말과 예쁘게 쌓은 돌탑이 있다. 취재진은 삼거리에서 오른쪽 큰골로 든다. 길은 5분쯤에 조팝나무에 묻힌 폐가 한채 앞에서 계곡을 건너 숲으로 향한다. 솔붓꽃이 숨어있고 노간주나무, 미루나무를 보며 또 한번 계곡을 건너니 물소리 들리는 곳에 농가 한채와 25분전에 삼거리에서 본 예쁜 돌탑이 다시 나타난다. 돌탑과 산행안내 푯말 앞에서 식수를 준비한다. 큰골을 버리니 바위에 붉은 페인트로 화살표시 방향의 왼쪽 밭둑으로 따라 들어선다. 서서히 경사를 더하며 20분쯤 오르니 슬그머니 계곡을 벗어나며 왼쪽 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벌떡 일어선 급경사에 안내 푯말도 있고 붉은 페인트도 길을 자주 안내한다. 나무등걸을 잡아당기며 네발로 기어오르는 능선을 15분쯤 헐떡거리니 조양강이 문곡리와 덕송리를 굽돌며 대한민국 지도를 보여주는 조망이 트인 곳이다. 앞으로 계속 보여줄 경관이건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념 사진도 찍고 40여분을 노닥거린다. 그리고 조양강을 왼쪽 발 아래로 내려다보며 급경사 바윗길이다. 길을 따라 3분 정도 내려가니 제2전망대가 있다. 다시 5분쯤에 안내 푯말이 있는 삼거리이다. 큰골과 작은골에서 올라오는 길이 여기서 만나 정상인 상장바위로 오르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경사가 잠시 누그러드는 길목에서 허기를 해결하고 오후 2시에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을 한다. ‘정상 3.1km’ 푯말을 뒤로하니 ‘정상 2km’ ‘제1전망대 정상 1.5km’ ‘철쭉 군락지’ 푯말이 계속 나타난다. 마침내 중식 후 1시간만에 상장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주릉에 닿으니 헬기장 위에 정상 푯말과 삼각점이 있는 상장바위산 정상이다. 정상 남쪽 절벽 끝에서 조양강을 굽어보는 조망이 단연 압권이다. 조양강 조망 매우 뛰어난 정상 덕송리의 내반점, 외반점, 송오리, 월천을 감싸 안은 모습이 우리나라 지도와 같고 삼면의 바다는 조양강이 배역을 맡았는데 자연의 멋에 그저 놀랄 뿐이다. 북쪽에는 북평면의 안산인 남산(754m) 뒤로 백석봉(1,170.1m)과 옥갑산봉(1,302m)이 있고, 동쪽에는 반론산(1,068.4m)과 고양산(1,150.7m)이 중첩하고 서쪽은 가리왕산(1,560.6m)의 너른 날개 죽지로 하늘을 가렸다.
하산로는 등산로가 잘 정비된 작은골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겠으나 남산 방향으로 뻗은 북북서 능선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오후 4시 정상을 뒤로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은 가시덤불과 잡목이 뒤엉켜 길도 희미하다. 등산로는 홀아비꽃대, 바람꽃 종류, 노루귀, 구슬봉이 등의 봄꽃과 처음부터 산행 내내 따라 다니는 솔붓꽃의 낙원이다. 바람에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정향나무도 산행을 즐겁게 한다. 하산은 뾰족한 부리를 맞대고 살이 통통한 바위 한쌍을 지나 30분 정도 올라 924봉에 서기전 안부에서 왼쪽 수무골로 한다. 이곳에는 발음이 비슷한 문곡리 수무골, 고양리 스무골이 있다. 문곡리 수무골은 ‘시묘살’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예로부터 이곳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부모 묘소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묘살’이라는 장례의식이 이어져왔다. 이렇듯 옛날 효자들이 시묘살이 하던 시묘골이 와전된 것이다. 짐승 발자국만 있는 계곡으로 30분쯤 내려서니 경운기 길이 반기는 수무골이다. 오후 5시, 힘든 산행은 거의 끝난 것 같아 여유를 부려 임대수씨의 닭튀김을 비롯하여 남은 음식들을 모두 꺼내놓고 잠시 쉬었다 간다. 마을의 흔적은 있건만 20채 정도의 집들은 세월속으로 사라지고, 둘레 4.5미터와 높이 25미터, 나이 260년쯤 된 느티나무만 폐가 앞에 쓸쓸하다. 어느덧 30분쯤에 합수점이다. 소를 몰고 오는 학생에게 백운동을 물어 보니 배나무가 많아 배나골 또는 배나무골이란다. 수무골, 배나골의 합수점을 뒤로하니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린다. 10분 정도에 계곡을 벗어나니 아침나절 헤어졌던 조양강이 반긴다. <글 사진·김부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