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lette
2007년 작, 디지털 작품(1755)
원본 이미지 크기5000 x 4180픽셀(59.8M) 해상도 300dpi, RGB모드, JPEG포맷.
나의 '파렛트'에서 만들어 내는 색깔은 얼마나 될까?
'색을 만들다, 색을 칠하다'라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게 만들어진 유채색을
'퍼즐' 맞추듯 '캔버스'에 끼워넣기를 마치면 내면으로 부터 솟구치는 情念들을 다 불사르
고 못다한 이야기를 다 한 것일까? 아니면 습성처럼 본능에 이끌려 허우적거리는 몸짓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색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색은 저마다의 형상으로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고 날카로운 몸짓으로 깊은 상채기를 내었다.
꿈많던 학창시절, 피가 터지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림공부를 하던 나의 장래는 화가가
되는 것임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노력한 결실로 나는 당대 최고의 미술학도였음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의 운명인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적록색약>이란 것을
알아차린 것은 대학입시 불과 4달 전이었다. 궤도를 수정활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던 나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리려 애써 호방한듯 큰 소리를 쳤고 S대학 미술대에 응시하였다.거의
만점 가까운 실기과목이 받쳐주어 당연히 나는 합격선을 통과하였지만 얼마후, 나는 교무처
로부터 실격통보를 받는 비운을 접했고 어린 시절 나의 꿈은 파편처럼 조각난 아픔으로 그림
세계와의 영원한 결별을 고했다.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지만 <적록색약>은 초록과 빨강이 작은 점을 이루어 집합되어 있으면
착시현상을 가져와 38이 88로 보인다거나 63가 68으로 보이는 착시로 <색맹>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그림 그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임에도 그 당시엔 그런 제도가 존재하였고 바로
그런 잘못된 제도때문에 그림세계와 생이별을 한 나는 내 인생의 30여년을 허비하게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파렛트'를 바라본다.
애써 외면한다고 비켜갈 바람이 있던가?
내가 묻어야 할 뼈가 거기에 있고 썩어 문드러질 살점들이 고스란히 그 위에 다 있는데....
캔버스를 사고 다시 물감이며 붓들을 사러 간 것이 2000년이었다. 불과 7년 전의 일이다.
다시 '캔버스'와 마주한 내 인생의 2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저 내 가슴 속 엉어리들을 한번
쯤 보듬어 줄 요량으로 시작했던 작업이 낮과 밤을 잊으면서 30여년의 긴 공백을 메꾸었다.
2004년 작업환경을 디지털로 완전히 바꾸면서 나는 거의 미친 개처럼 마구 할퀴고 달겨들었다.
영화에서나 보는 보름달, 늑대개의 포효였고 한맺힌 절규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365일 밤도
없고 낮도 없이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5시간씩 그 숱한 시간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겠는가?
봇물이 터지고 둑이 터져도 이 보다는 덜 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는 누구에겐가 지난 5년 동안
전 세계에서 내가 가장 그림을 많이 그린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했을까?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할 방법이 없을만큼 촛농을 한점 후회없이 다 태웠다. 그 질적인 우열과는 상관없이...
창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장마비의 시작이 갇혀있는 상념들을 다 씻겨갔으면 좋겠다.
그만큼 살풀이를 했으면 귀신이 열번도 더 감복했을 터, 가슴 속의 한을 좀 씻어 내어야 진정한
의미의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 비워야 담아짐을 누누히 말로는 잘 뇌까리는 자신이
정작 뭘 다 비워냈는가?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또는 '역시 오진국이야'라고? '뭔가 보여주
겠다'라고? 뭘? 그게 뭔데?
부질없는 집념이 화를 부른다.
괜스레 실속도 없이 남에게 경계심을 유발하고 적을 만들기 일쑤다. 그 보담은 밀린 독서도 좀
더 많이 하고, 신앙심도 키우고 자기성찰을 하는 기회를 가져야 그림의 질도 좋아지는 것이다.
이쯤이면 이제 겸손할 때가 되었다.
유리창으로 떨어져 굴러내리는 작은 빗방울 본다. 내 모습같은.......
첫댓글 선배님! 존경합니다! 청조25회 엄춘호입니다. 안타깝게 먼저 타계하신 고 정인근 선배님과의 인연으로 지기님께서 회원으로 등록하여 주었습니다. 그림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지만, 선배님의 그림세계를 보노라면 마치 어디 천국에라도 와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배님의 그 뜨거운 열정을 대하는 순간 가슴이 마구 뜁니다! 늘 건강하신 모습으로 좋은 그림, 좋은 글, 내내 더 높고 더 넓게 훨훨 펼쳐 나가시길 바랍니다!
아이고, 25회 후배분도 여기 들어오시는군요? 귀빈이시네? 만화가/교수인 박재동이 하고 동기시겠네요? 엄청 반갑습니다. 하찮은 그림에 후한 평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자주 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