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유일한 대하 사극 [대왕세종이] 종영되었습니다.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한글 창제"를 선포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요, 개인적으로 최근 2,3년 사이 방영된 역사물 중에는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꼽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이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상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영된 많은 사극이 그러했듯 [대왕세종]도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역사왜곡의 논란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요. 사실 [대왕세종]의 역사왜곡은 다른 사극에 비해 우려할 점이 상당이 많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BS 대하사즉 [대왕세종]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1. 고려황실 부흥세력
이성계에 의해 망한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원주, 간성,삼척 등을 떠돌다가 2년 후인 1394년 이성계의 명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이후에 왕씨 일가를 모조리 멸족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전국에 방을 붙여 "왕씨들에게 섬을 하나 내줄 테니 강화 해안에 모두 모이라." 하였습니다. 공양왕이 죽은 후 목숨의 위협을 느낀 이들은 이성계의 이같은 약속만을 믿고 강화도행 배를 탔다가 모두 수장되고 말죠.
하지만, 이 모략을 간파한 일부 왕씨들은 배에 오르지 않고 숨어 살게되는 데요. 이때부터 자신들의 성씨를 전(온전할 전)씨, 옥씨, 전(밭 전)씨, 용씨 등으로 속여 목숨을 부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드라마에서처럼 옥환(玉煥)이 수장으로 있는 " 고려황실 부흥세력"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이들이 대궐을 침입하여 왕을 암살하기 직전에 실패한 것은 근거 없는 사실입니다.
2. 양녕대군은 대표적 친명파였다.
태종 8년에 명나라로 간 사신이 황제가 조공에 대한 답례로 직접 지은 찬불시를 내린 것도 모자라 다시 그를 따로 불러 또 한 번 답례품을 하사하자 그만 감격에 겨워 그만 황제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사신으로 가서 많은 답례품을 하사받고 돌아가니 그야말로 자신의 체면이 제대로 선 것이죠.
바로 양녕대군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에서 양녕이 명나라의 월권에 대항하며 부왕인 태종의 뜻에 반기를 품고 외숙부와 함께 요동정벌 위한 준비를 하는 장면은 양녕의 성향과는 완전히 반대 설정입니다.
3. 함길도로 귀양을 간 충녕?
고려황실 부흥세력과 본의 아니게 연루된 충녕은 이들의 실체를 알고 그들을 설득하려 해보지만 실패하고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은 함길도로 귀양을 가게 되는데요. 이 장면은 [대왕세종]의 대표적인 역사왜곡이기도 합니다.
드라마에서 역사에도 없는 기발한 설정을 하게 된 이유는 첫째, 양녕이 폐위되는 원인을 제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해서고 둘째, 세종 시절 가장 신임받았던 두 인물과의 처음 만남을 풀어내기 위한 작가의 미봉책인 듯싶네요.
☞ 참고 글
2008/04/28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 세종]충녕이 함길도 경성에서 만난 최윤덕과 이천은 누구?
4. 드라마 속 장영실의 모습은 진실일까?
관노출신의 미천한 출생 탓에 성장과정에서의 그의 자료는 전무합니다. 하지만, 동래 현감 한영로의 딸(다연)과의 사랑이나 다연이 명나라로 가서 황제의 후궁이 되는 설정은 다들 아시겠지만 허구입니다. 또한, 장영실이 발탁된 건 세종때가 아닌 태종(이방원)때 였습니다.
중요한 건 그는 발명가가 아닌 뛰어난 금속 기술자였으며 현재 알려진 그의 업적은 대부분 이천이라는 기술감독과 이순지라는 이론가와 함께 이뤄낸 성과입니다.
장영실이 명나라 사신으로 몇 번 다녀온 사실은 있지만 그로 말미암아 천문학 비밀이 밝혀진다는 설정을 이순지가 안다면 섭섭할 수도 있겠네요.
☞ 참고 글
2008/11/03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세종]장영실 파직사건의 전말은?
2008/08/23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세종]과학자가 뽑은 조선 최고의 과학자는 장영실이 아니다?
2008/08/05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세종]장영실은 세종이 발탁한 인물이 아니었다!
2008/07/27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세종]장영실의 명나라 행, 그 진실은?
5. 갑자기 사라져버린 세종의 사랑이야기
충녕의 청년기부터 등장하여 몰래 충녕을 사모하며 위기에 빠진 충녕을 도와 주었던, 결국엔 명나라 사신으로 간 충녕의 장인 심온에게 돌아 오지 말라는 서신을 목숨을 걸고 전달하고 그 죄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선(이정현 분)으로 기획 단계에서는 세종이 가장 총애했던 후궁 신빈 김씨로 등장했던 인물이지만 이정현의 개인 사정으로 중도 하차하게 되어 아쉬움이 남네요.
신빈 김씨는 공노비로 소헌왕후의 시중을 들다 세종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됩니다. 왕후인 소헌왕후와의 갈등 없이 잘 지내다 세종 승하 후 여승이 됩니다.
6. 집현전 학자에 대한 아쉬움
[대왕세종]이 다른 사극에 비해 워낙 인물의 성격이 뚜렷이 구분을 시킨 드라마라 등장인물 하나하나에서 작가의 치밀함이 보였는데요. 아쉽게도 극의 흐름을 주도한 조말생이나 황희, 장영실, 윤회, 최만리 등에 비해 집현전 학자에 대한 설정은 조금 미흡했던 거 같습니다. 특히 이들을 단지 드라마 흐름에 필요한 정치적 도구로만 묘사했던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중에 박쥐 처럼 개인의 조말생과 최만리의 뒤에서 줄서기만 하던 김문(金汶)과 세자(문종)의 사부이며 신숙주의 아버지인 신장(申檣)에 대한 왜곡은 도를 지나치지 않았나 싶네요.
☞ 참고 글
2008/08/04 - [시청각 교육/컨텐츠속 역사이야기] - [대왕세종]집현전 학자 김문(金汶)과 신장(申檣)은 누구?
* 마치며...
KBS [대왕대종]만큼 정치적 상황이나 인물에서 심한 왜곡을 했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왕대종]은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대하사극’이며 '정통사극'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역사드라마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교육적인 역할을 일부 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고구려나 그 이전시대가(신화적 요소가 강했던) 아닌 엄연히 실록이나 역사적 기록이 많은 시대를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를 시청하는 많은 이들(특히 학생들)은 사극과 드라마상의 내용을 진짜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따라서 이러한 역사 왜곡에 대한 보완장치 없이 작가의 상상력에만 힘을 실어주는 다분히 시청률을 의식한 사극의 제작은 방송국에서도 한 번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