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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不離俗 俗離山...최치원
俗離山(1,058m)은 바위의 산이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과 서해바다까지 뻗어 나간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분기점에 솟아 올라 조선팔경의 하나이자 소금강, 또는 제 2의 금강이라 불리는 속리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삼국유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風岳鉢淵數石記)'에 산명의 유래가 전한다. 법주사가 창건된지 233년후인 신라 선덕왕 (784년) 때의 일이다. 진표율사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고 있던 소들이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이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렇게 뉘우치는 마음이 절실한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어찌 감응이 없겠느냐며, 머리를 깎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 수도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암명산인 속리산은 속리산과 함께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 등을 합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속리산 국립공원은 속리산과 화양구곡, 쌍곡구곡 등 3개의 독립된 지역으로 나뉜다.
속리산은 조선조의 역대왕들과 인연이 깊다. 태종은 자신이 왕자였던 시절 왕자의 난 때 비명에 간 배다른 두 형제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천도불사를 법주사에서 크게 벌였다. 그후 죄의식을 씻은 태종은 1406년 지방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충청도에 보령이라는 지명이 둘 있어 그그 중 하나를 고쳐야 하게 되자 이 고장의 지명을 갚을 報자와 은혜 恩자를 써서 보은으로 했다고 한다.
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속리산의 가장 큰 매력은 연중 어느 때나 주등산로가 개방된다는 점이다.
속리산은 8이란 숫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산이다.
속리산은 삼구곡 (三九曲) 팔봉(八峰), 팔대(八臺), 팔문(八門)의 명산이다. 우선 속리산의 이름이 여덟가지다. 산내에는 여덟 개의 석문이 있어 내석문(內石門), 외석문(外石門), 상환석문(上歡石門), 상고석문(上庫石門), 상고외석문(上庫外石門), 비로석문(毘盧石門), 금강석문(金剛石門), 추래석문(墜來石門)이 그것이다. 산중에 8대가 있으니 문장대(文藏臺), 입석대(立石臺), 경업대(慶業臺), 배석대(拜石臺), 학소대(鶴巢臺), 은선대(隱仙臺), 봉황대(鳳凰臺), 산호대(珊瑚臺)다.
또한 8봉이 있어 제일봉 천황봉(天皇峰: 1058m)를 비롯하여 비로봉(毘盧峰: 1032m),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 1031m), 보현봉(普賢峰), 관음봉(觀音峰: 982m), 묘봉(妙峰: 874m), 수정봉(水晶峰 566m)으로 여덟개의 봉우리를 솟구친다. 특히나 천황봉은 낙동강(농암천)과 금강(천상천), 남한강(달천)의 세 물줄기가 갈리지는 삼파수봉(三派水峰)이다.
이 산 중 어딘가에는 팔진도법(八陣圖法)으로 진을 친, 세인들은 찾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도인들만의 별세계가 있다고도 한다. 속리산에서는 한강·금강·낙동강 등 우리나라 3대 하천으로 흘러드는 물이 갈라지는데 이를 삼파수 또는 삼타수라고 한다. 속리산 삼파수는 충주 달천물, 오대산 우통수물과 함께 가장 좋은 물로 꼽힌다.
속리산 남서쪽 보은골은 예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불려왔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은 충북의 상징물이 되었고, 이에 버금가는 정부인송(貞夫人松) 또한 명물이다.
시인 고은선생은 <절을 찾아서>에서 속리산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속리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기골이 올연하거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마치 많은 남자를 만나서 그들과 헤어져 본 중년 여인의 관능을 저 혼자 품고 있는 음덕을 자랑하는 산으로, 그 산이 거의 원을 그리면서 커다란 절터를 비워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법주사는 선문의 추상같은 위엄도 없고 허황한 협잡도 없이 동양사람의 큰 도량을 표상 한다'
속리산이 있는 충북 보은군은 신라때 삼년산군(三年山郡), 고려 때 보령(保齡)이라 부르다가 조선조 태종 6년(서기1406년) 지방행정구역 조정때 보은(報恩)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태종은 왕자시절(이방원)에 일으켰 던 왕자의 난으로 비명에 간 두 이복동생(방번, 방석)에 대한 죄의식에 고민하였는데 이곳 속리산 범주사에서 천도불사를 크게 열어 원혼을 달랜후로는 죄의식을 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침 충청도에 '보령(保寧 과 保齡)’이란 이름이 두군데 있었기 때문에 행정구역 조정때 이 고장의 지명을 '은혜를 갚았다’는 뜻으로 '보은(報恩)'으로 하였다고 한다. 조선 명종때 남사고는 이 곳 보은을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있다. 십승지지(十勝之地)란 조선조 명종때 남사고(南師古)라는 풍수(風水), 천문(天文), 복서(卜書), 상법(相法)에 능통한 예언자가 천난(天難), 외난(外難), 인난(人難)의 피난처로 제시한 곳을 말한다. 즉, 소백산(小白山) 풍기(豊基)골, 태백산(太白山) 춘양(春陽)골, 속리산(俗離山) 보은(報恩)골, 두류산(頭留山:지리산)운봉(雲峰)골, 공주(公州) 유구(維鳩)-마곡(麻谷) 양수간, 예천(醴泉) 금당(金堂)골, 영월(寧越) 정동(靜洞)상류, 덕유산(德裕山) 무풍(茂豊)골, 부안(扶安) 변산(邊山), 가야산(伽耶山) 만수동(萬壽洞)을 이른다. 속리산의 명소 탐방
■ 말티고개
한남금북정맥(漢南金北正脈)을 넘는 고개가 말티고개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을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엷은 돌(박석)들을 깐 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의 말티고개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보은에서약 7㎞ 지점에 있으니 속리산 입구에 첫 고개로 높이 800m이다. 박석재라고도 부르는데, 옛부터 이 고개길에 넓고 얇게 뜬돌,즉 박석을 깔아 놓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박석은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엷은 돌들은 3~4리나 깐 것이라고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다. 아마 이 길의 형태를 만든 시초가 아닌가 여겨진다. 고려 태조가 속리산에 거동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다. 태조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탐독하며 살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태조는 조부의 유적을 찾아온 셈이며 이때 길을 닦은 것이다. 조선왕조 세조가 이곳을 찾아올 때도 길을 고쳤고, 이때도 다시 박석을 펴 놓았다. 지금은 옛날 길이 간간히 눈에 뜨일 뿐이다. 1924년 충북지사 박중양이 처음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개설하였고 1967년 도로폭을 10~15m로 확장 개수하였으니 열두 굽이를 뱀처럼 굽이돌아 고개마루에 이르러 굽어보는 전망은 장관이며 특히 아침 해뜰 때의 속리산 방향의 아침 놀과 해질녘에 보은쪽의 저녁 노을은 가히 절경이 아닐 수 없다 .
■ 정이품송과 정부인송 속리산에 입구에 위치하여있는 600년이 된 명승으로 정이품송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이 17의 3번지에 서있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1962년 12월23일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높이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10m의 노거수이다. 밑부분에는 외과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아직도 수세는 싱싱하고 나무 모습은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듯 단아하여 곧잘 명승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나무이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 또는 '연거랑이나무', '연괘송(輦掛松)'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일설로는 세종대왕이 행차하면서 이 나무 밑을 지날 때 늘어진 나뭇가지가 저절로 올라가 대가(大駕)를 무사히 지나게 하자 신통하게 생각하여 정2품(正二品: 판서급)을 하사하였다는 전설도 전한다.
정이품송 정남 직선거리 약 1km되는 외속리면 서원리 안돌마을 어귀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사람들은 정부인송이라 부르며 정이품송의 부인이라고 생각해 왔다. 정이품송이 키도 훤칠하게 크고 꼿꼿이 서서 의젓한 것이 다분히 남성적이라면 이 정부인송은 키도 좀 낮은 편이고 가지를 옆으로 뻗어 차분하고, 한쪽으로 다소곳이 기운 품이 영낙없이 대가집 정숙한 부인을 연상케 한다. '정부인’이란 이름에 관한 유래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정이품송의 부인이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조 관제에서 정/종이품(正/從二品) 벼슬을 한 사람의 부인에게 주어지는 가자(加資)가 곧 정부인(貞夫人)이니 정이품송과의 관계에서 붙여진 이름 같다. ■ 괴산 선유동 계곡(선유구곡)...<아래 답글 선유구곡 참조>
선유계곡은 1984년 공원구역이 2배로 확장 되면서 공원으로 편입된 곳이다. 매표소를 지나 5분쯤 들어가면 바위에 선유동문이라는 음각이 있다. 이곳에서 10분쯤 더 올라가면 옛날 도사들이 불로장생 연단을 끓였다는 연단로, 신선들의 바둑놀이에 도끼자루 섞는 줄 모른다는 난가대와 기국암 등이 선유구곡을 형성한다. 이곳에는 아이들이 놀만한 얕은 물가가 있다.
■ 법주사(사적 및 명승 제4호) 우리나라 3대 불전중의 하나인 호서대가람 법주사는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24년째인 진흥왕14년(553년) 의신조사가 천축으로부터 장경을 싣고 이 곳에 이르러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준엄함을 보고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 곳이라 생각하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했으며, 신라 혜공왕12년과 고려태조 원년 그리고 세조대왕때에 각각 중수 중창됐는데 인조2년(1624년)에 임진왜란으로 전부가 소실된 것을 옛 것을 모방해서 복원한 것이다.
@ 대웅보전 대웅보전안에 안치된 3존불상은 국내 좌불상으로서는 최대의 것으로 높이 5.5m 허리둘레 6.6m로 벽암대사에 의해 건조됐다고 전해오고 있다.
@ 팔상전(국보55호) 기둥만도 561개에 높이 21.2m의 이 팔상전은 목조 5층 탑파형 건물로 전국에서도 단 하나 뿐이며 법주사의 표징이며 건축학상으로도 독특한 점이 많은데 첫층에서 5층까지의 비례가 매우 안정되고 장중하며 옥개 모서리의 하늘을 향한 전곡은 경쾌한 율동을 나타내서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건물안에는 석가여래의 행적을 여덟폭 그림으로 그려서 동서 남북에 각각 2장씩 봉안하고 있어 팔상전이라 부른다.
@ 쌍사자석등(국보5호)
@ 석연지(국보64호) 극락세계의 연화지를 상징해서 만든 이 석조물은 풍려아윤한 작품으로 조각기법 또한 정묘하다.
@ 사천왕석등(보물15호) 화사석 4면에 사천왕상을 1구씩 각각 조각하고 있어 사천왕석등이라고 불려지고 있는데 모든 부위의 양식이 균형잡혀 있고 조각수법이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 마애여래기상(보물216호) 불상 오른쪽 암면에는 음각으로 짐을 실은 말을 끄는 사람과 짐실은 말 옆에 꿇어앉은 소(牛)등을 묘사했는데 이는 의신조사가 불경을 실어오는 모습과 소가 법을 구했다는 전설을 그런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쇠솥과 돌독 돌독은 길이가 약 3m 둘레가 5m로 옛날 불교가 전성하던 때 3만승도가 운집할 당시 밥솥과 저수용 또는 김치독으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 탈골암과 약수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탈해왕 때 경주김씨의 시조인 김어지가 약수를 마시고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해서 탈골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일설에 의하면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이곳에 절을 짓고 제자들에게 불교를 수도케 한 결과 인간번뇌를 해탈하여 조사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탈골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 화양구곡 ...<아래 답글 화양구곡 참조>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로 경북에서 흘러내려오는 박대천의 지류인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3km의 계곡 경승지를 화양구곡이라고 부른다. 한줌의 흙도 보이지 않는 흰 반석에 맑은 물이 구비쳐 흐르면서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 경관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를 펼쳐 지면서 남쪽으로 속리산과 백악산을 끼고 소백산맥을 가로질러가는 계곡상류가 상주쪽으로 뻗어 선유동으로 이어진다. 화양동은 일찌기 인조(1623~1649년)때부터 숙종조(1674~1720년)까지 중신을 두루거친 우암 송시열이 이곳 산수를 사랑해서 은거했다가 왕의 부름에 의해서 조정에 나갔다가 돌아오고 하기를 몇번이나 거듭했다는 일화로 유명해져서 우암과 관련된 유적이 많으며 한때 이름을 떨친 화양서원도 바로 이곳에 있다.
■ 말티재휴양림 장재저수지에서 휴양림을 바라본 경치는 한 푹의 산수화를 닮았다.
■ 속리산 관광기념 촬영장 ☏ 043-540-3392
■ 조각공원 국립공원 속리산내 조각공원은 속리산을 찾는 탐방객에게 볼거리 제공과 문화관광 서비스 및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충청북도 외속리면 서원리에서 산외면 신정리 상학봉 까지의 등산구간을 말한다. <산행 정보> 서원리-527봉-구병산-구병리/적암리-장고개 장고개-동관리-721봉-형제봉-피앗재-만수리 피앗재-천황봉-비로봉-입석대-신선대-세심정-법주사 문장대-관음봉-묘봉-상학봉-신정리
■ 속리산의 9臺
○문장대 정상에는 5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암석이 있어 세조대왕이 이 곳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 언제나 구름과 안개에 가려있는 봉우리라 해서 운장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법대 주변에 모여있는 바위들은 모두가 청법하면서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신선대 입석대와 청법대 중간 지점에 위치한 봉우리로 경관이 매우 수려하며 100가지 얼굴을 구상하는 암석 덩어리의 산봉우리이다.
○경업대 이조명장인 임경업 장군이 스승인 독보대사와 함께 이곳에서 7년간 수도하였다 한다.
○입석대
○산호대 이조 세조대왕이 잠행시 상환암에서 기도드릴때 학떼가 청계를 더럽게 함을 방지하기 위하여 암석굴을 봉쇄하였다 한다.
속리산국립공원의 산과 계곡 *군자산 *백악산 *도장산 *구병산 *군자남봉 *낙영산 *도명산 *묘봉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 *법주사 *칠보산 *쌍곡계곡 *쌍용계곡 *화양구곡 |
첫댓글 30년만에 허용된 천왕봉보고 산벚꽃의 정취에 흠뻑빠져보시게요. 서둘러 예약합시다.
나두 대리고 가주세요 울마누라랑 마누라동생하고 모두 대리고가면 안되까요?꼬리 달면 안잡아 먹지^&^
외? 같이 술먹으러고? 참숭악하냉..
김일순 39번좌석으로 예약합니다
모처럼 언니 얼굴 뵙겠네요 주말잘보내시고 휴일날 뵐께요...
김효복 성부덕 갑니다.
양동관, 김문수 7번, 8번 좌석으로 예약합니다.
오늘 가입했는디라~~가도 댈랑가 몰것쏘~~가고잡소~~~
고지숙외 옵션으로 4명 가능하신지? 회비는 얼마나준비~~? 차 멀미하는 관계로다가 좌석은 앞쪽으로다가 ㅋㅋ
좌송합니다이번산행에참석하지못할것같네요집안사정으로인헤서죄송합뫼데이
산행회비가얼마다요?
문극수님 외6명 예약합니다..
회장님 내외분 가십니다.
장덕비님. 서영숙님 예약합니다.
조영희님 외1명 예약합니다. 앞자리로 011-9621-0825
문금옥님외1명 예약합니다.
윤동주님 1외 예약합니다..
김창균님 외7명 예약합니다
김내환,최승주 2명 예약합니다.
승주씨는 바쁘시다더니 얼굴보여주신다하니 감사합니다 개업식때 꼭 연락주시죠~~
김용관.정진선님 예약합니다.
심영섭 자문위원님 내외분가십니다.
김만중님 외1분 예약합니다.
김복실 외2명 예약합니다
오영탁 박춘기 권용곤 예약 합니다
새내기 인사올림니다.. 낼 참석하면 볼수 있겠내요 잘 부탁 드리 그 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