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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s Letter(45) 2003. 3. 28
주안에서 사랑하는 문대헌 형제 부부에게
언제나 변함 없는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때마다 일마다 약속하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그분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문안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지금 온 세계는 이라크와 미.영 연합군의 전쟁으로 인하여 날마다 화제 거리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이기에 그들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고, 그들의 고통이 바로 나의 고통이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곳 고국도 이라크 전쟁에 비전투병 파병 문제로 국론이 찬반으로 양분되어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대의 명분과 국익의 실리가 따르기 마련이므로 어느 결정이든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 주님의 사역자는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묵상하여 보게 됩니다. 지난 주 이사야 21장을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말씀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혹독하고 어려운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그들의 탄식을 그치게 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그들의 멸망당할 모습을 기뻐하기보다는 그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며 자신이 마치 임산한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을 경험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사야21:1-4) 하나님의 계시를 충실하게 전하면서도 인간고에 깊이 동정하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아름다운 윤리성이 감동적입니다. 단순한 흥밋거리나, 이교도들이 심판 당하는 것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형상을 입은 귀중한 영혼들이며, 마지막 세대 최대의 선교지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함께 그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참해야 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고 사랑과 평화와 자유가 임하고 그곳에 우리 주님의 구원의 아름다운 복음의 소식이 힘있게 전파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 일을 위하여 모슬렘 가운데 수고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합시다.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으로 인하여 모슬렘 가운데서 反韓 감정도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선한 뜻이 온전히 이루어져 전쟁이 없고 평화가 깃드는 그 날을 소망하며,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며, 복음으로 인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평화의 통로로 사용되도록 기도합시다. 여기에 평화를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중략---나는 인간을 믿습니다. 무기의 힘과 전쟁의 광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지만, 진정한 우리 마음의 힘을 신뢰합니다. 총과 폭탄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힘, 사랑의 힘을 전쟁터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첨단 무기의 힘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부드러운 사랑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력한 사랑과 정의의 마음들이 함께 하면 폭력과 전쟁조차 떨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기의 승리가 인간의 패배임을 입증해 보이고 싶습니다. 이 낯선 곳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서 그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나온 제 마음입니다“ 이 글을 우리의 사명과 연관지어 묵상하여 볼 때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사탄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어 참된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달려온 사명이 참으로 귀중하며 보람됨을 경험하여 가는 복된 생애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달에는 선교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시대적 특징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발견하여 보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제 4시대의 선교적 사명의 선봉에서 어떤 도전과 선교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귀중한 통찰력으로 선교 역사에 기억되는 훌륭한 사역자가 되도록 생각하며 연구하는 선교 사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박 남 규 부부 서신
선교 역사의 여러 시대(Eras of Mission History)
1. 개신교 확장의 여러 단계들 (Ralph D. Winter의 글을 편집한 것임)
개신교 운동은 첫 200년 간은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선교 조직이 처음 결성되고 오랫동안 힘겨운 노력을 한 끝에서야, 개신교 선교사들의 노력이 처음으로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최초에 성공을 거둔 선교사 중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너무 신경을 쓰느라 여념이 없어서, 다른 미전도 지역들로 나아가지 못했다. 개신교들은 처음으로 선교사들의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 다른 문화권에 있는 어린 교회들의 실상과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 시작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두 번에 걸친 중대한 시기에, 새로운 선교 영역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개신교 운동이 한걸음 진보되게 한 지도자들이 일어났다.
네 단계
이것은 SIM의 해롤드 풀러(Harold Fuller)가 말한 선교 활동의 단계이다.
대부분의 선교 활동에서 선교 기관들과 그들이 개척한 현지 교회간의 관계는 네 가지 발전 단계를 거친다. 이러한 단계들을 이해하면 교회들과 선교회들이 선교를 하면서 종종 서로 다른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은 제한된 자원을 우선 순위에 맞게 배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선교사들은 먼저 새로 생긴 교회의 ‘성숙도를 확인’하고, 미전도 지역 복음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그 교회의 요구들을 비교 검토한 것을 근거로 중대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1) 개척 단계(Pioneer Stage): 어떤 종족 집단과 처음으로 접촉한다. 다른 은사들과 더불어 지도력의 은사가 필요하다. 신자가 없으므로 선교사가 스스로 많은 일을 지도하고 또 감당해야 한다.
(2) 부모 단계(Paternal Stage): 외국인 선교사들이 현지인 지도자들을 훈련시킨다. 가르침의 은사가 필요하다. 어린 교회는 선교회와 성장기 자녀 관계이다. 하지만 그 ‘부모’는 ‘온정주의’를 피해야 한다.
(3) 협력 단계(Partnership Stage): 현지인 지도자들이 외국인 선교사들과 동등한 상대가 되어 일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성인 대 성인의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측 다 변화하기가 어렵지만 교회가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4) 참여 단계(Participation Stage): 외국 선교사들은 더 이상 동등한 협력자가 아니며, 초청을 받을 때에만 참여한다. 완전히 성숙한 교회가 지도력을 맡는다. 선교회가 남아 있는 한, 선교회는 교회를 강하게 세워 마28:19-20의 원래 목적들을 달성하도록 하는 일에 은사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는 한편 선교회는 다른 곳에서 제1단계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
2. 네 사람, 세 시대, 두 전환기 : 현대 선교
(Four Men, Three Eras, Two Transitions :Modern Mission)
세 시대
원터는 개신교 선교 활동 역사에서 나타났던 세 번의 폭발적인 진보를 묘사한다. 각각의 진보는 세계의 특정한 영역 혹은 미전도 지역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세계 복음화라는 전체 과업을 완수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 첫 번째 시대(The First Era) :연안 지역으로
이 시대는 월리암 캐리(William Carey)가 개척한 시대로, 부분적으로는 건초더미 기도회와 관련된 학생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선교 구조는 전형적인 비 교단적 선교회이다.
이 시대의 두 가지 놀라운 특징은 놀라운 희생 정신과 선교 전략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이다.
‘서른이 안된’ 청년 윌리엄 캐리는 주님의 지상사명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목회자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자, 왜 그들이 스스로 주님의 지상사명(대위임령)을 따르지 않았는지 이유를 말해 보라고 도전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이교도들을 구원하기로 하신다면 하나님은 당신이나 우리의 도움 없이 그 일을 하실 것이요” 라고 말하면서 캐리를 비난했다. 캐리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제를 분석한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 할 의무에 대한 연구’를 끈기 있게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작은 책을 읽고 캐리의 몇몇 친구들이 마음의 확신을 얻어 작은 선교기관을 만들었다. 그것이 캐리가 말한 ‘수단’ 이었다. 그 조직은 취약하고 연약했으며, 캐리가 인도(India)로 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후원만을 해주었다. 하지만 캐리의 영향은 영어권 세계 전역에 미쳤으며 그의 작은 책은 개신교 선교 운동의 대헌장이 되었다.
윌리엄 캐리는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모라비아 교도들은 그린랜드와 미국과 아프리카에 사람들을 보냈다. 하지만 캐리의 작은 책은 복음주의 대각성과 함께 미 대륙과 유럽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다. 거의 순식간에 반응이 나타났다. 두 번째 선교회가 런던에 세워졌고, 스코틀랜드에 둘, 네덜란드에 하나, 그리고는 영국에 또 하나의 선교회가 세워졌다. 그 무렵이 되자, 모든 사람들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캐리의 주장이 옳다고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다섯 명의 대학생이 캐리의 책에 도전을 받아 그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후에 ‘건초더미 기도회’(Haystack Prayer Meeting)라고 알려진 이 소박한 기도 모임이 나중에 가서는 미국의 ‘수단’-즉 미국 해외 선교 위원회(American Board of Commissioners of Foreign Mission)-이 되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학생 선교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 운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른 학생 선교 운동의 모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캐리가 배를 타고 인도를 향해 떠난 이래 25년 간 미 대륙과 유럽에서는 12개의 선교 단체가 생겨났으며, 개신교 선교의 첫 번째 시대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말해서, 이 첫 번째 시대의 선교는 당시 대부분의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주로 몰두하고 있던 일에 비하면 가련할 정도로 영세한 소규모의 것이었다.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은 쉽게 먹히지 않았으나, 결국에는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캐리의 영향으로 보스턴의 몇몇 여성들이 여자 선교 기도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선교적 지식 면에서나 선교를 하고자 하는 욕구 면에서나 여자들이 주역이 되었다. 얼마 후 여자들은 독신 선교사로 선교지에 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1865년 무렵 미국의 미혼 여성들이 여자 선교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로마 카톨릭의 여자 수도단처럼 독신 여성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전적으로 본국의 독신 여성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었다.
첫 번째 시대에는 두 가지 매우 훌륭한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파송된 선교사들이 보여준 놀라운 사랑과 희생의 모범이다. 특히 아프리카는 금지된 대륙이었다. 1775년 이전에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선교는 완전히 실패했다. 가톨릭의 모든 노력과 모라비아 교도들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첫 번째 시대 직전에는 어떤 종류의 선교사를 막론하고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1790년 이후 수십 년 간 사실상 자멸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송된 용감한 선교사들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의 공격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 질병과 죽음의 무시무시한 통계는 어느 시대, 어느 운동에서도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대의 처음 60년 간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중 2년 이상 살아 남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러한 그들의 엄청난 헌신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에 필자는 겸손하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첫 번째 시대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선교 전략에 대한 수준 높은 통찰력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그 운동을 통해 서너 명의 위대한 선교학자가 배출되었다. 그들은 본국의 선교 기관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분명하게 알았다. 선교회 조직에 대해서는 헨리 벤(Henry Venn)의 말을 참조할 수 있다. 헨리 벤은 유명한 클라팜 복음주의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교회 선교회 설립자의 아들이었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선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회라는 측면에서 비추어 볼 때, 스스로의 힘으로 현지인 사역자들이 지도하는 현지인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을 생각할 때, 선교회의 진보는 주로 현지인 사역자들을 잘 훈련하고 배치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선교사가 현지인 사역자 밑에서 잘 훈련된 현지인 회중들에게 둘러싸여서 모든 사역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감독을 점차 늦추어 가다가 마침내 서서히 중단시킬 때, 좋게 말해서 소위 ‘선교의 안락사’가 일어난다. 그럼으로써 선교 사역이 안정된 기독교 공동체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럴 때 선교사와 모든 선교 기관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Harold Fuller가 말한 선교 활동의 단계들(개척 단계, 부모 단계, 협력 단계, 참여 단계)과 동일한 것들이 나와 있음을 보게 된다.
첫 번째 시대의 노력은 더디고 힘들기는 했지만 열매가 있었으며, 낯익은 여러 단계들, 곧 개척 단계에서는 교회가 없었다가 부모 단계에서는 어린 교회가 생겨나고, 협력 단계와 참여 단계에서는 보다 복잡하고 성숙한 교회가 생겨나는 단계를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연안 지역에 주로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먼저 내륙 지방이 없는 곳의 선교사들이 문자 그대로 철수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 두 번째 시대(The Second Era) : 내륙 지방으로
이 시대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주도한 시대이며, 후에 주로 학생 자원 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라는 학생 운동이 중심이 되었다.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해 있는 선교 조직들은 ‘믿음 선교회(Faith Mission)'라고 불리었다. 신참 선교사들은 때로는 이전 시대에 개발된 선교학적 지혜를 대부분 무시했지만, 결국에는 거의 모든 지리적 지역에 교회들을 세웠다. 1940년이 되자 이러한 업적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새 사실‘로 경축되었다. 분명 모든 곳에 교회들이 설립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 복음화가 사실상 완수되었다고 생각했다. 일부 선교 기관들은 선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여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1865년에 일어난 두 번째 상징적 사건은 훨씬 더 중요했다. 적어도 두 번째 시대를 여는 데 있어서는 그랬다. 경험도 짧고 윌리엄 캐리처럼 아직 삼십도 채 안된 한 젊은이가 내륙 지방을 강조하는 완전히 새로운 선교회를 처음으로 세웠다. 두 번째로 나타난 이 당돌한 젊은이에게 사람들은 역시 부정적인 눈초리밖에는 보내지 않았으나, 그는 윌리암 캐리와 마찬가지로 통계치들과 표와 지도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나서 중국의 내지인 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람들은 중국 내지에 갈 수도 없을 뿐더러 死地로 보낸 젊은이들의 피를 다 책임질 거냐고 물었다. 이러한 힐난조의 질문을 듣고 그는 망연자실했다. 해변을 거닐면서 해결책을 길이 모색하고 있을 때 마침내 하나님이 해답을 주셨다.
“네가 그 젊은이들을 중국 내지로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짐은 즉시고 벗겨졌다. 허드슨 테일러는 세계에서 가장 복음이 미치지 못한 종족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부족하고 연약함 중에서도 하나님은 이상할 만큼 그를 높이셨다. 허드슨 테일러 뒤에는 신령한 기운이 돌았다. 성령은 그를 많은 웅덩이 속에서 건지셨으며, 결국에 가서 중국 내륙 지방에 있는 6,000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섬겼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이제까지 있었던 선교회 중 가장 협조적이고 잘 섬기는 기관이 되었다. 다른 선교회들은 20년이 지나서야 테일러가 특별히 강조한,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내륙 변경 지방을 대상으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선교사로서의 경력보다는 그리스도의 대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애를 마칠 무렵까지 사역 기간 중 반 정도만 중국에서 보냈다. 테일러는 중국에서 여러 번 다시 나와서 그 나머지 반의 시간은 본부에서 선교 동원을 하는 일에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는 중국이 초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의, 즉 주님의 지상사명 성취가 관심의 궁극적 초점이었다. 첫 번째 시대의 초기 단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이 진척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학생 운동을 일으키셨다. 이 운동은 해외 선교를 위한 학생 자원 운동(Student Volunteer for Foreign Mission)으로서 다른 어떤 것보다 대규모 운동이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교 기관이었다.
1880년대와 90년대에는 대학생이 오늘날의 37분의 1정도밖에 없었는데, 학생 자원 운동은 10만 명의 선교 헌신자를 배출했다. 2만 명은 실제로 해외로 나갔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나머지 8만 명은 고국에 남아서 선교 활동의 토대를 재건해야 했다. 그들은 평신도 선교 운동(Laymen's Missionary Movement)을 시작했으며, 기존의 여자 선교회를 강화했다.
1925년까지 역사상 가장 큰 선교 운동이 한창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두 번째 시대 선교사들은 마침내 그들이 처음에 무시했던 기본적인 교훈들을 배웠으며,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주로 ‘내륙’ 지방의 여러 새로운 곳에 교회를 개척했으며, 1940년이 되자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새로운 사실’로 세계에 ‘어린 교회’들이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이러한 교회들이 지닌 강점들로 인해, 현지인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일반적인 의미의 복음 전도만 하면 남아 있는 미개척 지역까지 완전히 복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점점, 사실상 선교사들이 그처럼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1865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선교사들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것이 논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시대가 중복된 기간을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1865년과 1910년 사이의 45년 간(오늘날 1934년과 1980년 간을 비교해 보라)은 첫 번째 시대인 내지 시대의 개척 단계에 적당한 전략간의 전환기였다.
1910년에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세계 선교 대회가 열린 직후,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은 세계 대전이 두 차례 일어났고, 전 세계의 식민지 조직이 와해되었다. 1945년 무렵에는 해외에 있는 많은 교회들은 식민지 세력이 철수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선교사들이 없어지게 될 것에 대해서도 준비를 했다. 어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선교사들은 가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졌다. 본국 교회 교인들도 느낄 정도였다. 개척 단계와 부모 단계는 더 이상 적절한 단계가 아니었으며, 협력자 단계와 참여자 단계가 더 적절했다.
1967년에 미국 출신의 전체 전임 선교사 총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러한 감소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인들은 필요한 교두보들이 모두 확립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1967년경에는 북미 출신의 모든 선교사 중 90% 이상이 이미 상당 기간 속해 온 강건한 현지인 교회들과 더불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선교의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 시대(The Third Era) : 미전도 종족들에게
이 시대는 학생 자원 운동 출신의 두 젊은이-- 카메론 타운젠드(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에 의해 시작되었다. 맥가브란은 현시대가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지는 해’가 아니라 ‘뜨는 해’라고 주장했다. 그 시대는 부분적으로 기독 학생회(InterVarsity)와 관련된 학생 해외 선교회(Student Foreign Mission Fellowship) 및 다른 동원 사역이 중심이 되었다. 많은 새로운 부서들과 선교 동원 기관들이 등장했다. 비서구 선교 기관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나 이전의 선교회들을 능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타운젠드는 번역된 성경이 없는 언어 집단에 초점을 맞추었다. 맥가브란은 간과된 사회적 집단들을 지적했다. 이같이 두 가지로 종족 집단을 구분하는 것은 종족 집단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두 접근법은 민족 언어학적 접근(언어적 혹은 인종적 차이에 따른 ‘수평적’ 분류)과 사회 문화적 접근(미묘한 문화적 전통들과 편견들을 고려하는 ‘수직적’ 분류)이다. 란프 윈터는 및 다른 사람들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카메룬 타운젠드는 선교지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까지 불사했다. 그는 ‘두 번째 시대’ 선교사로 과테말라에 가서 과거에 행해지던 일을 기반으로 일했다. 다른 모든 선교지와 마찬가지로 과테말라에도 선교사들이 이미 설립된 현지인 교회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타운젠드는 과테말라의 대다수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타운젠드는 마을마다 다니며 스페인어로 된 성경을 나누어주면서, 스페인어로 복음 전도를 하면 과테말라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할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 인디언이 그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똑똑 하시다면 왜 우리말은 하지 못하시는 거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타운젠드는 이전부터 사역하고 있던 한 선교사 집단을 돕게 되었는데, 그들은 토착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인디언의 언어로 전해야 한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타운젠드가 이러한 새로운 관점을 기반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겨우 23세였다.
분명 우리 시대에 윌리엄 캐리와 허드슨 테일러에 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카메론 타운젠드이다. 캐리와 테일러처럼, 타운젠드는 여전히 미전도된 선교지가 있음을 보았으며, 반세기에 가깝게 세계의 소외된 부족민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켰다. 처음에는 이전부터 있던 위원회들이 부족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캐리와 테일러처럼, 타운젠드도 결국에 가서는 스스로 위클리프 성경 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었는데, 그 선교회는 이러한 새로운 선교지를 대상으로 일하기로 헌신한 단체였다. 처음에 타운젠드는 세계에 약 500개의 미전도 부족 집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멕시코에서만 많은 수의 부족 언어들이 사용되는 것으로 미루어 판단하고 있었다). 후에 그는 그 추정치를 1,000개로 고쳤으며, 그 다음에는 2,000으로 고쳤고, 현재 그 수치는 5,000에 가깝다. 그것이 거대한 과업이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감에 따라 조직의 규모도 커져 갔다. 오늘날 그 선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만도 4,000명이 넘는다.
타운젠드가 과테말라에서 생각에서 잠겨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도날드 맥가브란은 언어적 장벽이 아니라 인도(India)의 놀랄 만한 사회적 장벽들의 심각성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타운젠드가 부족들을 ‘발견했다면’ 맥가브란은 보다 보편적인 범주를 발견했는데, 그는 그것을 ‘동질 집단(homogeneous units)'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 그것을 ’종족 집단(people groups)' 이라고 흔히 불린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각각 독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에게 ‘수평적 분할’ 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지리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사회적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집단들에 대해 ‘수직적 분할’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맥가브란이 사용한 용어는 두 종류의 분할을 다 묘사하지만 그는 보다 미묘한 수직적 분할에 대해 더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그런 집단에 침투해서 집단의 경향을 따라 선교학적 돌파구를 부지런히 이용하면, 그 종족 집단에 대한 전략적인 ‘하나님의 다리(bridge of God)'가 확립된다. 이 진리의 자명한 결론은 그런 돌파구가 마련될 때까지는 일반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새로운 선교회를 설립하지 않았다(타운젠드는 기존의 선교회들이 부족들의 도전에 적절히 반응하지 않을 때 새 선교회를 설립했다). 맥가브란의 활발한 노력과 저술들을 통해 교회 성장 운동과 미개척 선교 운동이 수없이 많이 일어났는데, 교회 성장 운동은 이미 복음이 침투한 집단들 안에서 교회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썼던 반면, 미개척지 선교 운동은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썼다.
이전에 활동했던 캐리와 테일러처럼 타운젠드와 맥가브란 역시 20년간 사람들의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다. 하지만 1950년대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934년에서 46년이 지난 1980년이 되자, 1910년에 열렸던 것과 같은 회의가 열려 이 두 사람이 강조했던 바로 그 잊혀진 집단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개척지 선교에 대한 에딘버러 1980 세계 협의회는 대표단을 파송한 선교회 숫자 면에서 역사상 가장 큰 선교 집회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놀라운 일은 57개의 제3세계 선교 기관들이 대표단을 보낸 것이었다. 이것은 세 번째 시대의 예상치 못한 성공이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열린 청년 집회인 국제 학생 미개척지 선교 협의회는 앞으로 모든 선교 집회에 상당수의 젊은 참가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었다.
처음 두 시대의 초기 단계들에서 그랬듯이, 세 번째 시대에도 수많은 새로운 선교 기관들이 생겨났다. 부족 선교회(New Tribes Mission)처럼 어떤 기관들은 이름 자체에 이러한 새로운 강조점이 나타나 있다. 복음 음반 선교회나 항공 선교회처럼 선교 기관의 이름 안에 부족들과 세계의 다른 고립된 종족들을 전도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과학 기술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있다. 미개척지 선교 연맹 같은 두 번째 시대의 일부 선교 기관들은 계속해서 미개척지를 강조해 왔으며, 이전에 간과되었던 종족 집단들에 더욱 더 침투해 들어가기 위해 계속 일꾼을 늘렸다. 보다 최근에 많은 사람들은 잊혀진 사람들은 부족민들 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집단들-그들 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기독교화 된 지역 한 가운데 있다-이 완전히 간과되어 왔다. 이 집단들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s)' 이라고 불리며, 인종적으로나 사회학적 특징 면에서 규정된다. 즉 어떤 기존 교회의 문화적 전통과 너무 다른 사람들로 정의되기 때문에, 그들의 특정한 전통 속에서 토착 교회들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복음 전도 전략보다는 선교 전략이 필요한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 시대의 특징이 해안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두 번째 시대의 특징이 내륙 지방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세 번째 시대의 특징은 ‘미전도 종족’ 이라는 보다 규정하기 어려운 비 지리적 범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미전도 종족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종족 집단들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너무나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세 번째 시대는 두 번째 시대보다 훨씬 더 서서히 시작되었다. 카메론 타운젠드와 도날드 맥가브란은 40여 년 전에 잊혀진 종족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일반 대중들은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보다 비극적인 것으로 우리는 첫 번째 시대와 두 번째 시대 개척자들이 사용했던 기술을 근본적으로 잊어버렸으며, 그래서 복음을 전혀 접해 보지 못한 종족 집단에 접근하는 법을 거의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는 미전도 종족의 범주에 약 10,000개의 종족 집단이 들어간다는 것을 안다. 비슷한 종족들끼리 합쳐 놓으면 이 무리들은 3,000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각 개개 종족에는 별도의 새로운 선교적 교두보가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벅찬가? 과연 이 일이 수행될 수 있을까?
3. 하나의 운동
윈터는 그 과업은 언제나 전 세계적인 것이므로, 비서구 선교회들이 그 일을 완수하는데 점차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논리적으로 마지막 시대가 될 수 있으며, 되어야 한다. 이 시대에 모든 종족 집단에 교두보룰 확립하고 필수적인 선교 과업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업은 역사상 한 번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계 기독교 운동이 그 과업의 완수에 지금처럼 근접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Can We Do It)
그 과업이 보기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선, 그 과업은 미국인들의 과업도 심지어 서구인들의 과업도 아니다. 그 일은 세계 모든 대륙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 문화권에 교두보가 확립되면, 선교 전략 대신 일반적인 복음 전도 과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복음 전도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신다. ‘개간(breaking in)' 작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 세계는 점차 더 상호 의존적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닫혀진 나라들’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 외국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완전히 닫혀진’ 것으로 간주되던 많은 나라들-사우디 아라비아처럼-은 이제 다른 나라들에서 수많은 숙련된 기술자들을 열심히 모집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여자를 밝히는 세속적 서구인들보다는 경건한 삶을 사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선호한다.
하지만 세 번째 시대의 선교 사역은 많은 다른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 세계적인 교회 연계망이 있는데, 그들이 분발하면 이 중요한 과업을 감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가 될 수 있으며, 또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진실된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모든 민족, 부족, 언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반드시 완수하도록 요구하셨다는 사실을 감히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대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 세대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더 핑계될 말이 없을 것이다.
4. 시대와 시대 사이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전환기
미개척지를 위한 개신교 선교 비전이 급격히 증가할 때마다 각 시기는 대략 네 단계(개척 단계, 부모 단계, 협력 단계, 참여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들이 서로 중복됨으로써 어떠한 전략이 적절한지에 관련해 혼란이 일어났다. 이전 시대가 성공했기 때문에 많은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귀환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일꾼들이 필요한 새로운 곳이 어디인지 상상해 보게 되었다. 개척지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개척 단계와 부모 단계에서 선교사들이 그들의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 시점이 지나면 많은 선교사들은 다른 미전도 종족들에게 가가나, 아니면 협력 단계와 참여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섬기면서 현지 교회가 자기 나름의 개척 선교를 해나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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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선교 시대간의 두 번의 전환기
첫 번째 시대 두 번째 시대 세 번째 시대
1792-1910 1865-1980 1934-?
연안 지방들 내륙 지방들 미전도 종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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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 부모 → 협력자 → 참여자
개척자 → 부모 → 협력자 → 참여자
개척자 → 부모 → 협력자 →참여자
각 시대가 중복되는 동안 선교의 우선 순위에 갈등과 혼란이 오는 시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