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의 TV아사히 방송팀이 한국을 찾아왔다. 특집 프로그램인 ‘세계의 놀라운 3면기사(三面記事)’에 출연할 주인공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전세계에서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나 실재하는 사건 혹은 기이한 인물들의 이면(裏面)을 추적하는 이 팀은 한국에서 ‘장풍 도사’란 별명을 가진 양운하(梁運河·46)씨를 취재했다.
장풍(掌風), 말 그대로 손바닥에서 바람이 나온다는 뜻이다. 중국 무협소설 같은 것에나 등장함직한 환상적인 장면이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서울 성산대교 부근 한강변. 강폭이 무려 1200m에 이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양씨가, 맞은편에서는 실험대상 5명이 서 있었다. 양씨는 특유의 자세를 취해 단전호흡(丹田呼吸)으로 몸속의 기를 손바닥에 모은 뒤 장풍을 쏘았다. 30초 후 한 사람이 훌떡 뒤로 넘어가더니,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머지 4명 모두 쓰러져버렸다.
실험 대상자들은 각기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가슴을 미는 것을 느꼈다”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고 느낀 점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에게 일어난 현상이 잘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양씨의 설명에 의하면 손에서 바람이 나간다는 장풍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일 뿐, 실제로는 자신의 몸에서 기(氣)가 방사(放射)된다는 것. 바람이 아닌 기여서 거리에 구애를 받지 않고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운기방사(運氣放射)라고 표현한다.
사상 초유의 실험에 양씨가 거뜬히 성공한 것을 확인한 방송MC 키쿠다(菊田)씨 역시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서 있더니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양씨에 대해 뻣뻣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녀의 허리가 90도로 꺾어졌다.
일본 방송팀은 이 실험에 앞서 양씨의 장풍을 회의적인 시각에서 검증해보려는 듯했다. 일본 스탭 중 건장한 20대 청년이 직접 장풍을 맞아보기도 했고, 양씨가 최면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다고 가정, 실험자의 등 뒤에서 장풍으로 잡아당기는 테스트도 거친 터였다. 심지어 기가 통하는 생명체는 다 교감된다는 양씨의 말에 한국의 경찰견을 수소문, 개 실험까지 했다. 조련사가 우수한 훈련 능력을 보이는 셰퍼드에게 꼼짝 말고 서 있으라고 지시한 뒤, 양씨가 장풍을 쏘자 개가 힘없이 풀썩 고꾸라졌던 것.
지난 3월28일 이런 장면이 일본에서 방영된 이후 양씨는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일본 기공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양씨와 견줄 만한 기공 고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6월 초 우리 고유의 기체조인 ‘학춤기공’을 보급하고 있는 정준씨(‘하루 10분이면 기가 살아난다’의 저자, 동아일보사 간)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래 전 지리산에서 수련하던 양씨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친분을 나눠오고 있다는 그는 기자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하소연했다.
“양선생이 일본으로 도망간답니다. 그 사람 없으면 그나마 간신히 지탱해오던 한국 토속기공은 맥이 끊어지고 말아요.”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진작부터 양씨의 존재를 알고 있던 재일동포 사회에서 이번 일본 방송 출연을 계기로 양씨를 ‘모셔가려는’ 교섭을 해왔다. 잘 대접받지도 못하는 한국에서 기공 실력을 썩히지 말고 아예 일본으로 오라는 제의였다. 주택에 넉넉한 생활비까지 제공하겠다는 달콤한 유혹과 함께. 양씨 역시 91년 속세에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지금까지의 서울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와 춘천 등지를 떠돌아다니던 참에 일본측 제의가 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는 양씨를 만나보기로 했다. 마침 그는 춘천 근방의 한적한 산장에서 며칠 쉬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가평을 조금 지난 길목에서 외진 곳으로 한창 들어갔더니 산기슭에 아담한 카페(굿모닝 베트남)가 자리잡고 있었다. 80년이 넘은 초가집을 원형대로 복원해 만든 이 카페 한쪽에는 양씨가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방이 마련돼 있었다. 카페 주인 김진승씨(48)는 양씨 팬인 듯 양씨의 초상화를 카페 마루에 전시해두고 있었다. 제주 갈옷 차림으로 한가로이 마당을 거닐고 있던 양씨가 미소로 맞았다.
―서울에는 잘 안 올라옵니까. 서울 생활이 싫어졌다는 얘기도 들리던데?
“꼭 필요한 일이 있어서 서울 가는 것 외에는 가급적 피하려 합니다. 서울 공기가 답답하고 사람들도 그렇고…. 이제 한 15만명에게 기공을 보급했으니 더 이상 운기방사 같은 것을 선보일 필요도 없잖아요.”
사실 그는 기공계 뿐만 아니라 국내 방송가에서도 유명한 ‘탤런트’다. 장풍, 즉 운기방사는 시청자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 실험이기 때문에 TV 제작 팀들이 기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눈요깃감으로 좋은 그를 빠트리지 않는다. 하도 많이 TV에 출연해 ‘양PD’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그가 국내 단체 혹은 기업체에 출강, 기공을 가르친 사람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의 기공지도를 받은 유명인사도 적지 않다. 이종찬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박봉환 전 동자부 장관, 정호선 국민회의 의원, 도올 김용옥 교수, 윤병철 하나은행 회장, 김현종 WTO 법률자문관, 표재순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타악기 연주가 김대환씨, 국악인 김영동씨, 화가 남유소씨, 가수 이선희· 장사익·이덕진·김하정씨 등 각 방면의 사람들이 그와 인연을 맺었다.
언뜻 보면 그는 매우 성공한 기공사다. 명예와 함께 부(富)도 덩달아 따랐을 터이고…. 그러나 그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양복 입은 빈털터리 신사쯤으로 그를 묘사한다. 그는 그 흔한 기공도장 하나 없이 제자의 사무실 한 구석에 연락사무소를 차려놓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신세라는 것.
“제가 연예인 비슷하게 TV에 자주 출현해 운기방사 시범을 한 건 재주 자랑해 돈 벌자던 게 아닙니다. 우리 토속기공을 세상에 전파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기공 하면 중국이 종주국인 줄만 알고 떠받드는 세태에, 우리 몸에 맞는 우리 기공의 참 면모를 보여주고 주체성을 가지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참 어려워요. 사람들에게 좋은 것 가르쳐줘도 자꾸 엉뚱한 것에 빠져 회의가 들고, 세상 민심이란 게 그런 것인지….”
그가 말하는 세상 민심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이것이 그가 ‘출(出)서울’ 혹은 ‘탈(脫)한국’하려는 것과 연결되는 대목일 것이다. 그의 9년간 속세 경험을 통해 요즘 난무하고 있는 기공세계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얼마 전 양씨는 자신의 제자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40대 여성이 토속기공을 배워보겠다는 열정이 대단해 제자로 받아들였는데, 입문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기공 도장(道場)을 차렸다는 것이다.
“스승한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도장 차리는 제자는 세상 천지에 없어요. 도장이 무슨 학원이라도 됩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기초도 떼지 않은 상태로 사람들을 가르치겠다는 것인데, 그게 사이비 기공사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제가 참 기공을 전수하겠다고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제자라는 사람은 기공을 돈벌이가 되는 장사쯤으로 생각하고 쉽게 덤벼드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제자가 그러니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요. 그래서 다시는 제자를 받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양씨는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는 물질지향형 인간이 너무 많다고 한탄한다.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K변호사가 어느날 양씨를 찾아왔다. 그는 몸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풍 한번 쐬는 데 얼마면 되겠소?”
양씨는 몸이 아파도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직접 기를 배워 스스로 하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그는 막무가내로 두툼한 돈봉투를 내놓으며 기를 넣어달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양씨가 이를 거부하자 K변호사는 “다른 기공사는 돈만 주면 수도꼭지에서 물 틀어주듯이 기를 넣어준다고 하는데 당신은 왜 그리 뻣뻣하냐”고 하면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양씨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교양있다고들 하는 계층에서 오히려 물질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많이 보인다고 한탄한다.
그런 경향은 기를 수용하는 쪽 뿐만 아니라 기를 보급하는 쪽에서도 적잖다. 일부 기공사들이 기공에 관심 있는 수련자들을 모아 몸안에 소주천(小周天;인체의 입맥과 독맥이 소통되는 운기 현상)을 형성시켜주는데 얼마, 대주천(大周天;온몸이 소통되는 운기 현상)을 이루는 데는 얼마 하는 식으로 기를 상거래(商去來)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것. 물론 양씨는 그런 행위는 정도(正道)가 아니며 실제로 효과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돈으로 기공을 사려는 시도는 놀랍게도 종교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일부 종교단체에서 양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영입’을 교섭해오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얼마전 한 종교단체의 핵심 간부가 어마어마한 스카우트 금액과 함께 부교주 자리를 제시하면서 자기 교단에서 신도들에게 기를 가르치고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또 신도가 1만명 정도 되는 어느 절의 소유주가 50평짜리 아파트에, 기사 딸린 차에, 한달 몇백만원의 용돈을 제시하며 영입작전을 편 적도 있다. 심지어 양씨의 아내한테까지 ‘공작’을 펴 아내가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양씨는 거절했다고 한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종교의 신도가 돼야 하고 교주의 권능으로 능력이 생겼다고 선전해야 합니다. 실제로 능력 있는 기공사들을 상대로 종교단체에서 섭외가 들어오는 경우가 없지 않아요. 종교단체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신도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손해볼 게 없을 거고요. 그 외에 저를 데리고 장사해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부지기수예요. 참으로 기가 막힌 세상이죠.”
양씨는 한국의 기공계가 이렇게 혼탁해진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의 기공사들에게 책임이 있겠지만, 시점을 따져보면 중국기공이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엉터리 기공사들이 난무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중국에 1주일 정도 다녀온 사람이 어느날 느닷없이 ‘기공 대사(大師)’로 변신해 있다는 것.
문제는 외국 기공이나 명상을 배워온 사람들이 그것이 제일인 양 토속기공을 우습게 여기고, 또 기공을 배우려 하는 한국사람들도 외국 것에 혹하는 현실이다. 양씨가 토속기공이 중국기공에 뒤떨어지지 않는, 그리고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기공이라고 아무리 외치고 행동으로 보여줘도 마이동풍인 세상이 그저 안타깝다고 말한다.
“자랑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 저처럼 운기방사를 하는 사람이 중국, 일본, 전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제가 TV에 나와 운기방사를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기를 체험케 해서 기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닫도록 유도하는 거지요.”
반면에 중국 기공사들이 상대방에게 기를 보낸다고 하는 것은 주로 ‘의념(意念) 방사’ 즉 생각으로 상대방의 기를 유도하는 능력이라는 게 양씨의 주장. 따라서 의념방사는 기공사가 몸안의 기를 운행시켜 실제로 기를 보내는 운기 방사와는 차원이 다르며, 엄밀히 말해서 염력 혹은 텔레파시 등 초현실 세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양씨는 92년에 중국 흑룡강성 아성(阿城)시 TV방송국 초청으로 중국현지에서 운기방사 공개시범을 했다. 한국 기공사로서는 최초로 토속기공을 중국에 선보이는 무대였다. 그는 운기방사 실험 뿐 아니라 기공마취 실험도 보여줘 중국인들은 그를 ‘기공대사’라도 칭하기도 했다.
이때 그는 세 명의 중국 기공사들을 만나 ‘대결’도 벌였다. 거기서 양씨가 중국 기공사 세 명 모두를 한꺼번에 넘어뜨리는 장면이 TV에 방영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때 그 기공사들은 의념방사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자기들이 의념을 보낼 테니까 나더러 기가 들어온다, 들어온다 생각하고 있으래요. 그래서 그건 기공이 아닌 최면이니까, 의념이니 뭐니 따지지 말고 거꾸로 내가 직접 기를 보낼 테니 받아보라고 했지요.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양쪽에서 동시에 기를 한번 쏴보자고 합의했지요. 그때는 내가 손바닥이 아닌 인당(이마의 혈)으로 기를 보냈는데, 상대방이 한 세바퀴 반 굴러 나자빠지더군요. 사실 보통 사람보다 기에 민감한 사람들이 제 기를 더 잘 받아들이지요. 나중에는 중국 기공사들이 한수 가르쳐주지 않으면 중국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농담성 협박까지 하더군요.”
양씨는 의념방사를 위주로 하는 중국기공 때문에 일반인들이 기공 하면 정신집중 혹은 생각 정도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신체에 매우 위험한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얼마 전에는 중국기공을 하는 조선족 초능력자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투시능력이 있다고 하기에 내가 저쪽 방에 가 있을 테니 투시해보라고 하니까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만히 그를 살펴보니까 머리에 온신경을 집중하는 투시능력을 너무 남용해서 눈이 시쳇말로 노랗다 못해 동태눈이더라구요. 얼굴도 노래지고 있구요. ‘너는 지금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말했더니 그렇다고 인정해요. 돈 벌려고 그 짓 더하다간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되니까 그만두라고 충고해 보냈습니다.”
양씨의 설명에 의하면 의념, 즉 생각으로 기를 보내는 것 등에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상기돼 정신질환 등 큰 부작용이 생긴다고 한다. 이른바 ‘주화입마(走火入魔)’라는 현상이 그것이다.
실제로 경희대 한방병원 기공진료실의 신용철교수는 “기공을 잘못 배워 기공병에 걸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신경정신과 의사인 김영우박사 역시 “최근들어 머리개발 수련을 하다가 환각, 환시, 환청 증 이상 증세를 느껴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양씨의 보충 설명.
“기공을 굳이 현대의학적으로 설명해보면, 제가 하는 토속기공은 호흡에 의해 혈관운동반사가 일어나는 개념이라고 하면 의념기공은 생각이나 명상에 의해 신경운동반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념 기공은 말 그대로 온몸의 신경회로가 뇌로 집중하게 됩니다. 이때 신경에 과도한 부하가 생길 경우 상기병, 즉 노이로제 신경증 같은 병이 생기는 것이지요.
저한테도 이런 상기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요. 평소에는 제 말을 믿지 않더니 다른 데 가서 몸이 고장나니까 저를 찾더라구요. 그때는 이미 늦은 상태인데도 안 고쳐준다고 떼를 써요. 속으로 참 어리석은 중생이로구나 생각할밖에….”
―사실 중생은 누가 진짜이고 가짜 기공사인지 잘 모르니까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
그게 참 문제이긴 해요. 그러나 몇 가지 살펴볼 단서가 있어요. 기공하는 사람들은 눈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눈에서 기운이 느껴져야지 눈이 풀린 사람, 죽어 있는 사람들은 의심할 필요가 있어요. 이게 좀 추상적인 것 같으면 상대방의 손톱을 한번 보세요. 손톱 색깔이 맑으면서 빨가스름해야 하고 반달이 있어야 운기(運氣)가 제대로 되는 사람입니다(그러면서 양씨는 자신의 손톱을 보여줌). 서양 의사들도 마취주사를 놓은 뒤 환자가 깨어나는 것을 환자의 손톱 색깔로 판단해요. 중국 기공사들도 저를 보더니 ‘이 자가 가짜가 아닌가’하고 손톱부터 살펴보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공을 구름잡는 식으로, 신비한 현상인 양 유도하는 사람들을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양씨는 인체에 대한 현대의학적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기공을 제대로, 그리고 빨리 배우며 또한 사이비들에게 속지 않는 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기가 인체 에너지이며, 인체 에너지를 관리하는 이른바 ‘기 테크’가 기공임을 전제로 말한다. 다음은 인체와 기공에 대한 양씨의 현대의학적 해석. 참고로 양씨는 생활체육지도자로 운동생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우리 몸은 크게 중추신경의 조절을 받는 수의근(隨意筋)과 자율신경의 조절을 받는 불수의근(不隨意筋)으로 구성돼 있다. 수의근은 다시 운동 등 빠른 동작을 할 때 작용하는 속근(速筋), 평상시 움직일 때 작용하는 중간근(中間筋), 그리고 거의 퇴화되다시피한 지근(遲筋)으로 구성돼 있다.
바로 여기서 기공의 몸동작이 여느 운동과는 달리 몸에서 땀이 빗물처럼 흘러도 숨이 차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아주 느린 동작에서 사용되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퇴화돼 있는 지근(遲筋)을 단련하기 때문이다.
동양의학적 개념으로 볼 때 속근이 양(陽)운동이라면 지근은 음(陰)운동이다. 육상, 테니스 등 속근을 사용하면 나중에 숨이 차 헉헉거리게 된다. 이때 활성산소가 다량 배출되는데, 이것이 세포의 노화를 촉진한다. 스포츠 스타들이 단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기공운동으로 지근을 사용하면 퇴화된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므로 인체를 건강하게 해준다. 또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숨이 차지 않는다.
한편 자율신경 관할 하에 있는 불수의근은 우리 인체 중 오장육부에 집중돼 있다. 특히 기공 수련에서 중요시 하는 단전(丹田;배꼽 아래의 중요 혈) 부위는 대장이 감싸고 있다. 이 부위는 당연히 불수의근이기 때문에 대뇌의 명령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의념기공법으로 대뇌에서 단전에 명령해도 아랫배가 작동해 단전이 따뜻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단전이 아닌 머리가 상기돼 머리에 띠를 두른 것 같다거나 가슴이 답답하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장애가 올 수 있다.
반면 우리 고유의 단전호흡법은 말 그대로 아랫배 호흡(복식호흡이 아님)을 통해 단전 부위를 개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훈련을 통해 단전이 열리면 그 다음부터 단전이 자동적으로 알아서 호흡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복식호흡을 단전호흡으로 착각하거나 자연스럽지 못한, 인위적인 호흡으로 몸을 망치는 경우도 적잖다는 점.
“제가 어릴 적 산에서 공부할 때 가짜 도사를 만나 그 밑에서 3년간 지식호흡(止息呼吸:들숨과 날숨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호흡)을 하다가 장염에 걸리는 등 몸이 망가진 경험이 있어요. 그걸 회복하느라 무척 고생했어요. 연전에 어떤 스님을 만났더니 ‘나는 단전호흡을 해 한 뼘을 쌓았다’고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스님 단전호흡은 뭘 쌓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단전으로 호흡하는 겁니다’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면서 ‘무슨 소리냐. 내 배를 만져봐라. 이렇게 단전이 있는 아랫배가 딱딱해져 있지 않으냐’고 합디다. 이미 그 스님은 내가 잘못 배웠던 것처럼 몸이 아주 망가져 있더군요.”
양씨는 단전호흡 수련을 열심히 하던 선경의 최종현 회장 역시 인위적인 지식호흡을 주장하다가 결국 세상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또 몇해 전 박철언 자민련 의원이 아무개가 쓴 단전호흡법 책을 가지고 혼자 호흡수련을 하다가 탈장(脫腸)돼 병원에 실려간 것도 역시 잘못된 호흡법 때문이라고 했다.
“호흡은 여하튼 자연스럽게, 그러니까 들숨보다는 날숨을 약간 길게 하는 정도가 제일 좋습니다. 거꾸로 날숨보다 들숨을 길게 하다보면 장기에 물혹이 생기는 등 안 좋은 현상이 발생하기 십상이죠. 또 단전으로 개발하기 위한 호흡으로는 우리식으로 표현해 ‘두레박식 호흡’을 들 수 있어요. 우물에 두레박을 툭 던지죠(날숨). 그러면 우물물에 파장이 일죠(단전 자극). 그 다음에 두레박을 끌어올리고(들숨), 다시 툭 놔버리지 않습니까.”
양씨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기공을 배우면 자신의 건강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밝게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도층 인사들이 양씨가 보기엔 ‘기가 꽉 막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대표적인 예로 양씨는 ‘기 철학자’인 도올 김용옥씨(전 고려대 교수)를 든다.
김용옥씨는 몇해 전 양씨의 운기방사, 즉 장풍 맛을 직접 체험해본 후 자신의 저서에다 ‘그대는 나에게 기를 느끼게 해주었소’라는 글을 적은 뒤 양씨에게 책을 선물할 정도로 감격했다. 그러나 기 철학을 한다는 도올 자신은 정작 당시에 기가 너무 막혀 있었다는 것.
“도올 선생의 몸이 너무 막혀 있기에 기를 좀 넣어주었더니 그 머리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요. 그때 도올선생의 부인하고, 가수 이선희씨 부부가 다 함께 있으면서 그걸 목격했어요. 도울선생 부인이 ‘아니 당신 담배도 안 피우는데 머리에서 웬 연기가 나느냐’고 깜짝 놀랐지요. 그 양반은 하도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지 사기(邪氣)가 빠져나가는 것이 눈으로 보일 정도였죠. 후에 그 양반한테는 사기를 빼는 방법을 가르쳐드렸습니다.”
반면에 기공예찬론자인 하나은행의 윤병철 회장은 양씨의 평가에 의하면 상당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윤회장은 현재 2m 정도 운기방사가 가능할 정도고, 지금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양씨를 거쳐간 대부분의 지도층 인사들은 시간이 없고, 배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그저 기를 받는 수준에서 멈추고 만다고 한다. 그러나 토속기공의 장점이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잠깐 짬을 내서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
양씨는 우리 생활주변에서 쉽게 목격되던 도리깨질, 물레돌리기, 노젓기, 썰매타기, 상모돌리기 등 전래 몸짓이야말로 기운동의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농부들은 하루종일 벼를 베고 도리깨질을 해도 지칠 줄 모릅니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일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팔과 다리, 허리 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여기에 천천히 호흡만 맞춰주면 그 자체가 완벽한 기공이에요. 바로 이런 것이 신토불이 기공체조고 우리 몸에 맞는 겁니다. 사람들이 외국것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지 유치하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직접 해 보세요. 몰라보게 건강해질 테니까.”
이를 테면 ▲도리깨질 동작은 관절염과 변비 및 몸통의 군살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고 ▲물레 돌리기는 어깨 군살 제거 ▲노젓기는 간기능 강화 및 요통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썰매타기 동작은 견비통 및 슬관절 질환에 효과가 있으며 ▲상모돌리기는 만성 두통과 목디스크 질환에 좋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가 현재 집중적으로 보급하는 5형기공(곰, 사슴, 학, 호랑이, 잠자리를 형상화한 동작)은 온갖 만성적 질환을 치료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그는 현재 서울 운니동의 정신세계문화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5형기공 등 토속기공을 가르치고 있다.
카페 ‘굿모닝 베트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고 허리도 뻐근했다. 피곤도 풀 겸 양씨로부터 운기방사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즉석에서 실험이 벌어졌다. 기자 역시 장풍을 맞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몸에 맥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양씨는 맥이 풀리는 것은 막혔던 기혈이 풀어지는 것이니까 좋은 현상이라고 ‘위로’했다. 실제로 양씨의 장풍을 맞고 오래 견디는 사람일수록 기가 많이 막혀 있다는 설명.
―그런데 일본에 진짜 가긴 갑니까?(그때까지 양씨는 그의 친구인 정준씨가 기자에게 한 말을 모르고 있던 상태였다)
“(깜짝 놀라며) 허허, 사람 마음을 투시하는 재주가 있네요…. 일본 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스위스 등지에 있는 동포들과 제자들이 한국에서는 할 만큼 했으니 자기가 사는 나라로 들어오라고 해요. 지금 고민중입니다. 토속기공이 한국에서 대접받지 못하니까 외국에서 빛을 봐 다시 한국으로 역수입하게 하는 것이 좋은지, 끝까지 한국에 남아 토속기공을 보급하는 것이 좋은지 잘 판단이 안 서네요. 한국에는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제자들도 몇 있긴 한데… “
사실 제자들 중 곽치산씨(척추건강센터 원장), 윤창대씨(LG화재 근무), 김신환씨 등 5~6명은 상당한 수준의 운기방사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 실력이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지 않아요?
“적당히 타협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 천성이 그렇지를 못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쉽게 끓고 쉽게 식은 ‘냄비 기질’이 마땅치가 않아요. 원래는 그런 천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데…. 게다가 처자식이 딸린 생활인이라는 신분도 무시할 순 없고.”
양씨는 기공이 아닌 무도인으로서의 경력만으로도 생활방편을 삼을 수 있다. 공인된 것만 따져도 태권도 5단, 불무도 7단, 활기도 7단, 합기도 7단, 십팔기 5단, 쿵푸 6단, 활법 7단 등 모두 44단이다. 기공을 하게 된 인연도 어린 시절부터 닦은 무술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기공의 길을 걸은 이상 다시 무도의 길로 생활비를 벌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직도 한국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는 건 도피가 아닐까요?”하는 말로 헤어지는 그의 뒤통수를 간지럽게 했다.
첫댓글 진실한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