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 작품에 잠재되어 있는 감정을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유용하고도 효과적으로 표현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휘자는 반드시 악보의 이해에 그 첫번째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음악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판단은 악보 자체에 대한 완전하고도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휘자의 첫번째 임무는 악보의 연구에 있다.
1. 악보 연구의 특성과 원칙
지휘자는 악보 연구를 할 때 단순한 음표에 대한 해독자로서가 아니라 창조적이고도 독창적인 예술가로서 접근해야 한다. 연주가는 어떤 음악을 표현할 때에 자신 만의 개인적인 표현을 하겠다는 강한 욕구가 있어야만 한다. 작곡가는 자신의 창조적인 음악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는 한 수단으로써 악보로 표기하는 것이며, 지휘자의 도전은 그 악보를 표현 풍부한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악보에 대한 연구 과정이 이런 해석을 창조적인 지휘자를 통해 가능하게 해 준다
음악을 창조하는 그 기초로써 지휘자는 악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하며 그 악보에 대해 자신의 마음 속에 명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휘를 할 때에 머리 속에 그려진 음악의 구현이 우선되어야 하지, 작곡가의 음표를 단순히 연주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휘자가 악보 연구를 통해 그 악보를 완전히 자기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지휘자가 음악에 전적으로 자신을 투신하지 않는다거나 해석을 조직적으로 하지않는다면, 그 지휘자는 자신의 기초를 세우지 못하는 것이고 단순히 음표의 소리만을 연주자들에게 지휘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지휘자를 만드는 과정은 가장 기본적인 음악적인 기술과 지식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악보에 대한 연구에 전제되는 조건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창조하려는 원의가 요구된다.
악보를 연구하는 동안 지휘자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음악 자체에 집중해서 행동과 마음으로 도전해야 한다. 악보 연구는 상당한 정신 집중을 요구하는 외로운 작업이다. (악보 연구의 과정 중에는, 누구나 그 음악을 연주단 앞에서 기계적으로 지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거부해야만 한다.)
지휘자는 정신이 산뜻하고 자신이 악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에 악보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악보 연구를 하는 동안 정신집중을 잘 할 수 있다면 음표를 자신의 마음 속에 소리로 바꿀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받게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음악이 주는 이미지를 계속 간직하게도 도와준다.
악보를 연구할 때, 지휘자는 조용한 악기로 해야 한다. 그 악기란 바로 자신의 마음이다. 자신의 조용한 악기로써 악보에 대한 지식이나 감정적인 이미지를 얻는 기술을 터득하지 못한 지휘자는 심각한 장애자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악보에 대한 지식이나 이미지 없이는 그 사람의 지휘 기술 (지휘 동작) 이 얼마나 완벽한가에 관계없이 그 사람은 지휘대에서 효과적인 음악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가운데 악보 연구를 하는 지휘자에게 외적인 또 신체적인 소리의 반응은 결여되어 있겠지만 정신적인 과정은 절대로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휘자의 정신은 악보 연구 내내 반드시 민감하여야 하고 활기차야 한다. 여기에는 예리한 음악적인 상상력 내지 창작력의 연습이 중요하다.
악보 연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주어진 악보를 공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음악의 길이, 복잡성, 예술적 질, 그리고 각자의 축적된 음악적 지식, 경험, 기술, 특별히 악보를 읽어내는 능력과 비례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악보마다 또 지휘자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
젊은 지휘자들이 매일 매일 악보 공부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현명한 일이다. 연주가들이 매일 악기 연습을 하듯이 지휘자들도 악보를 연구해야 한다. 지휘자들은 언제 어디에서 공부할 것이며, 악보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 또 만들어 내고자 하는 소리를 위해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적어도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규칙적인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
결국 주제는 음악이며 음악은 바로 악보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자신의 정신, 시간, 주의력을 음악에 집중하여야 한다.
새로운 음악을 매일의 규칙적인 악보 연구를 통해서 공부하는 것은 지휘자로 하여금 악보 읽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음악적인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야만 침체의 함정에서 피할 수 있다. 각 지휘자는 새로운 악보를 연구하는 것과 관련해서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해야만 한다.
2.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
기악 지휘자들은 아래와 같은 음악의 규칙에 대해 정확한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음악사, 음악문헌, 음악형식: 서양음악에 대한 역사와 음악문헌에 대한 지식, 특별히 작곡형식의 발전, 연구 형태의 발전사은 지휘자로 하여금 시대적인 전망을 제공한다. 이런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하는 기술 (research skill)이 필요하다. 동시에 외국어를 아는 것도 권장된다.
음악 이론과 분석: 다양한 형태의 음악이나 작풍을 분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모든 지휘자들이 갖추어야 한다. 19세기에 이르는 음악의 많은 형태, technique, style 등과 친숙한 것 이외에, 현존하고 있는 많은 기악곡을 차지하고 있는 20세기의 작품에 대해서도 상세한 지식이 필요하다.
작곡: 악보는 작곡자의 창조적인 생각이나 음악적인 창조력의 신체적인 표현이다. 지휘자의 주된 임무는 작곡가와 상당하는 창조성, 통찰력, 이해로써 작곡가의 악보를 공부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지휘자는 음악적인 작품들이 어떻게 작곡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작곡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작품을 쓰는 과정에 관계되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작곡의 경험을 통해 지휘자는 외부에서의 관람자의 위치에서 내적 관람자의 위치로 옮아간다. 그렇게 되면 그 지휘자는 작곡가의 정신의 내적인 작업을 더욱 충분하게 이해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젊은 지휘자들은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작곡 능력 때문에 작곡을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느낄 필요가 없다. 작곡 공부, 그것이 어느 만큼의 기본적인 것이든, 는 적어도 음악분석의 능력을 키워준다. 그리고 악보를 더욱 완전하고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것이다.
청음과 시창: 지휘자는 그의 예술과 기술을 위해 두 가지 형태의 청각적인 기술을 이용한다. - 내적인 듣기와 외적인 듣기이다. 악보를 공부하는 동안 발달되는 내적으로 소리를 듣는 기술은 성취될 목적을 제공해 준다. 외적인 듣기는 지휘할 적에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평가해 준다.
악보를 정확하게 능숙하게 읽는 (즉, 악보를 쉽게 읽고 동시에 마음 속으로 그 소리를 듣는 것) 능력은 많은 경우에 개인적인 내적 듣기의 기술에 달려있다. 음악에서 내적 듣기와 외적 듣기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만, 내적 듣기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기초를 확립시켜 주는 것은 바로 외적 듣기이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 시창이나 청음이라는 과목으로 외적 듣기의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시창이나 청음에 약한 지휘자들은 피아노나 음반의 도움없이 악보를 읽거나 마음으로 음악을 듣기에 힘든 것을 느낄 것이다. 어떤 부족함이든지 그것들은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관현악법, 조옮김 그리고 조표읽기: 지휘자들은 악기의 조옮김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건반 악기 기술: 비록 건반악기를 쉽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모든 지휘자들에게 요구되는 꼭 필요한 기술은 아니라 하더라도, 건반 악기를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유익하다. 건반악기는 지휘자를 포함한 모든 음악가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악기이다. 모든 지휘자들은 가능한 최대한의 건반악기를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기악기의 연주: 적어도 한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외에, 지휘자는 가능하면 여러 형태, 여러 규모의 연주 단체에서 연주해 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다.
악보 연구의 순서
1 단계: 악보 안내
A. 악보 표지 혹은 악보 머리말 페이지에 적힌 정보를 읽는다.
B. 악보 첫 페이지를 살핀다. 아래 질문에 답하라
1. 전조된 악보인가? 아님 C조?
2. 악기 편성이나 악보 기재하는 데 이상한 점들이 있는가?
C. 악보를 넘기면서...
1. 모든 빠르기, 박자의 변화, 조표를 살펴보라.
2. 친숙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음악 용어, 음표, 표시등을 명확히 하라.
3. 다소 늦더라도 다음 단계를 위해 똑 같은 속도로 악보를 읽어 나간다.
2단계: 악보 읽기
1. 중간에 끊어지는 일 없이 악보를 읽고 들을 수 있는 빠르기를 정한다
2. 이 단계에서는 음악을 분석하지 말 것. 상세한 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말 것
3. 자신의 직감이나 음악적인 상상력을 이용하라. 악보를 보면서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느낌 등을 생각해 보라.
4. 음악을 외우려고 하지 말 것.
5. 피아노를 사용하지 말라.
6. 음반을 사용하지 말것.
7. 마음으로 그 마음에 대해 느끼는 과정을 평가해 보도록 하라. 악보를 보면서
내적으로 듣는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
P.S. 지휘자는 악보 읽기의 이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야 하며, 악보를 읽기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마음이 맑을 때 악보를 읽을 것이다. 높은 차원의 정신 집중은 음악에 빠져들게 하고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3. Phrasing을 정한다. 어디에서 음악을 끊을 것인가. 그러나 화성을 고려하지 않고
멜로디 만으로 phrase를 정하지 않도록 할 것, 종지형을 살펴볼 것
4. Dynamics를 정한다. (세게? 점점 여리게?)
5. Color/texture ( vibrato 없이 선명한 소리? 부드러운 소리? 강한 소리?)
6. 휴지: 어디에서 얼마만큼 쉴 것인가?
7. 연주 때 중요한 passage에 신경쓸 것
인간이 서로에게 의미있는 소리를 최초로 전달할 무렵부터, 지구에는 합창이란 것이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합창단을 조직하여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우리 인류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이다. 참으로 가치있는 능력이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도 이 같은 능력을 흉내낼 수는 없다. 한 무리의 새들이 조화를 이루며 날아갈 수는 있어도 그들이 지저귐을 합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짐승, 벌레 혹은 새들이 함께 모여 짖어대거나 윙윙거리거나 지저귀고 심지어는 물고기나 갑각류 등도 함께 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인간의 합창처럼 구조적이지는 못하다. 우리 인간이 합창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혹은 놀이터, 교회, 텔레비전 등 무수한 사회환경을 통해 어린시절에 모두 마스터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만국 공통의 기술이기도 하다. 학교 음악시간이나 교회의 성가대에서만이 아니라 아마존의 밀림이나 아프리카의 평원에서도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굴에서 살던 원시인들이 그들이 부르던 노래를 벽에다 새겨 놓았다거나 청동기시대 부족이 그들의 노래를 적어 놓았을지는 만무한 일이다. 음악학자들은 선사시대 음악의 유전자를 복원하겠다는 헛된 포부를 기지고 있다. 그것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개화된 오늘날에조차 어려운 일이다. 아즈텍인이나 고대 이집트인들의 종교제전에서 합창단이 불렀던 노래를 듣는다거나 그리스시대에 쓰였던 합창음악을 들어보겠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유대교회당에서 고대 유대인들의 창법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시편창법과 동일하다는 데에 시비를 걸지는 못한다(유대인의 창법은 예수 그리스도 시대 이전에 이미 4천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합창음악의 많은 부분이 망각의 강속으로 수장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테이프 레코더로 무장한 문화인류학자들은 서구화의 물결에 의해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음악을 보존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속도만 놓고 볼 때 열대우림지대의 파괴는 방송에 의해 영향을 받는 민속음악, 종족음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합창음악은 우리의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종교행사나 친목행사에서 불려지는 노래가 그것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평생 뇌리에 남게 된다. 유아기의 동요리듬이나 크리스마스 캐롤송, 놀이터에서 불렀던 노래, 그리고 성장한 후 술집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연상하면 된다. 이같은 노래는 맥이 끊기지 않는 한 널리 퍼져나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널리 불리는 노래들은 그 어느것도 천년 전에 존재했던 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이 불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개중에는 상당히 긴 역사를 지닌 것도 있다. 아이들이 '두껍아 두껍아'를 부른다고 하자. 그들은 단지 이전의 아이들이 불렀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멜로디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가사를 첨가한다고 할 때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유명한 노래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새로운 기호나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암기해서 부르는 노래는 변하기 쉬운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기보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초기 단선성가나 기독교 의식의 멜로디 등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교회 성가대는 10세기 이전까지는 기억에 의해 단선성가를 불렀는데 이럴 경우 특별히 잘 외워지는 멜로디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같은 혼돈을 개탄하던 중 유일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암기 대신 무언가를 표기하는 것이었다. 새로이 고안된 음악기호를 노래가사 위에 적기 시작한 것이다. 높은 음은 낮은 음보다 상대적으로 높이 적었다. 즉 가로로 긴 보표를 기준으로 하여 음표를 정렬하였다. 그런데 성가대가 악보책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성무일과(가톨릭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매일 정한 시간에 바치는 기도) 멜로디를 제창형식으로 부르게 됨에 따라 전에 불렀던 합창음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기보는 음악을 보존하게 해 준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작곡자가 연주하기에 앞서 우선 음표로 계획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전의 작품보다 훨씬 복잡하고 독창적인 소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기보를 통해 서양문명에 있어서 위대한 작곡가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이 창작해 놓은 불멸의 보고들이 악보형태로 영구보존되는 것이다.
1200년경에 우리는 최초의 천재를 만나게 된다. 페로티누스(혹은 페로탱)라는 음악가인데 당시 새로이 지어진 파리 노틀담 성당에 속해 있던 인물이다. 그의 총명함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고음악의 기준에서 볼 때 그의 작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길고 풍부하며 번뜩인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놀라운 곡들이다.
그러나 천재도 죽는다. 다만 페로탱 사후에도 그의 음악을 담은 악보는 생명을 잃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 그것들이 발굴되고 해석되었으며 현대 가수들이 부를 수 있도록 기보되었다. 600년이 지난 후 페로탱의 작품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합창단이 부르기에는 쉽지 않은 요소들이 내재해 있던 것이다. 이에 음악학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노틀담 성당은 대규모 건물이고 성가대 또한 대규모이지만 페로탱의 음악을 담고 있는 악보는 단순한 기보로 되어 있어 합창보다는 한 사람이 부르기에 적합하였다. 이 음악은 합창단에 의해 불려지기를 원한 것일까? 아니면 독창으로 의도된 것일까?
그 판단은 독창자의 취향에 달려있다. 그리고 여기에 의심 가는 사실이 있다. 페로탱 시절에 적용되었던 것이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하는 점이다. 적어도 l5세기까지 작곡가들은 합창보다는 비르투오조적인 독창자를 위해 작품을 썼다. 복잡한 음악을 정의할 수 있는 기보법의 위력 덕분에 합창보다는 작고 전문적인 솔로이스트 앙상블에게 눈을 돌렸던 것이다. 앙상블이 기량을 더해감에 따라 음악은 더욱 복잡해지고 부르기도 어려워졌다. 음악과 그것이 불려지는 건축공간사이에는 점점 관련성이 희박해져갔다. 소규모 청중의 귀에 들리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페로탱의 비루투오조적 솔로들은 단지 대제단 옆에 앉아 있는 몇몇 성직자를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성당에서와 같은 울림에는 관심이 없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중세와 르네상스는 성악의 신기원을 이룬 시대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것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성가대가 매일의 전례 속에서 단선성가를 불렀다는 점으로 한정된다. 적어도 l5세기까지는 합창단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작곡가들이 맘에 드는 작은 연주그룹을 위해서 작곡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l500년 이후에도 오늘날 우리가 합창 레퍼토리라고 여기는 많은 작품들이 실은 독창을 위해 존재했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영국에서는 탈리스와 버드의 모텟이나 몰리와 윌크스의 마드리갈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합창단이 아니고 콘소트였다. 시스티나 경당에서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을 들었다면 합창으로 불리는 빈도만큼 솔로에 의해 불려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바흐의 b단조 미사까지도 합창협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학자 죠슈아 리프킨에 따르면 곡의 초연은 거의 최소한의 인원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바흐의 작품을 거대하게 생각한 나머지 수백명의 합창단을 조직한 사람들은 바흐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바흐의 음악은 군더더기 없는 몇 명의 솔로에 의해 연주될 때 에너지와 부양력과 명징함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한 무리의 현을 배제하면 나머지 현으로 연주가 가능하며 합창을 배제하면 솔로앙상블의 연주가 가능하게 된다. 과거 작곡가에게 대비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오늘날 우리가 그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합창음악이 존재한다. 소규모 합창단을 위한 것, 대규모 합창단을 위한 것, 초대규모 합창단을 위한 것 등으로 말이다. 모든 레파토리가 풍부하게 존재하며 여러 상황에 맞춰 구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나 연주홀, 오페라 극장, 교회의 회당 혹은 잠실운동장의 스탠드 등이다.
그러나 바흐의 b단조 미사나 윌리엄 버드의 4성부를 위한 미사, 기욤 드 마쇼의 노틀담의 미사를 부르기 위해 악보를 준비해야 한다면 사전에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해득실관계를 잘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