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 2004.8.26 - 8.29 O 코스 : 인천 - 나고야 - 야마나시현 -이사와온천 - 5합목 - 후지산 - 이사와온천 -코후시-나고야 - 인천 O 등산 : 6.5Km 7시간 10 분소요 O 하산 : 7.5Km 3시간 30 분소요
◎ 8.26 (수)
인천 공항 G 라인 앞에 09:00시가 되니 미사연 산악회 김동원 국장님 얼굴이 보이며 몇분이 모이시는데 지난번 백두산 갈 때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10 명중 여자가 3명이고 나보다 연장자가 5명이다, 회장님이신 서울 이홍선님(32년생)은 집나이로 73 세이시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52년도에 소위를 달았고 81년도에 대령으로 예편하셨다고 한다, 백두산을 종주 하셨고 말레이시아 고닥키나바루(4101m)를 비롯하여 대만 일본등의 3000m 급산을 여러번 오르셨다고 했다, 11:00 시 출발 전까지 우리끼리 오리엔테이션을 갖았는데 서울 이강덕사장님(52년생) 부부는 안나푸르나와 일본 북알프스를 다녀왔고 서울 강대동사장님(43년생)도 일본 북알프스를 다녀왔다고 했다, 화성 윤수돌사장님(52년생)은 백두산 종주와 현재 백두간을 절반쯤 하고 있다고 했다, 과천 나한수세무사님(39년생) 안송자님(45년생)부부 수원 고재우사장님(42년생) 서울 남경화여사님도 지리 설악등 이름있는산은 다올랐다고 하였다,
5합목에서 등산 준비하는 일행들
O 나고야
인천공항을 떠난비행기는 정확하게 100분만에 나고야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뒷좌석에 초등학생들이 근100명 정도 탔다, 부천 까치울.광명 광덕.시흥 신천초등학교와 서로 자매결연을 맺은 나고야초등학교 들간에 친선 축구시합을 하러 왔다고 한다, 인솔선생님은 일본의 초등학교에서 8월초에 우리나라에 다녀갔기에 답방을 한다고했다, 초등학생들이 일본선생님들에게 줄 복분자 술등 선물을 들고 내리는 모습이 퍽으나 정겨워 보였다,
공항에는 가이드인 진문제님(38년생.제주출신)이 마중나와 있었다, 진선생님을 따라 버스를 타고 후지산이 가까운 200Km 쯤떨어진 야마나시현으로 이동했다, 두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나고야는 깨끗하고 아담해 보였다, 아파트도 거의가 5층이나 3층이고 지진때문인지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도 소형차가 월등히 많았다,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좁았다,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었고 어떤곳은 낫으로 베는 곳도 있었다, 칡넝쿨이 우거진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마을에는 백일홍.무궁화.해바라기.코스모스꽃 등이 우리나라와 똑같이 많이피어 있었다, 3776m의 후지산을 찾아가는 길이기에 굽이굽이 산길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영화속에서 본 스위스 어느 곳 같은 아름다운 가와구찌 호수옆을 지나고 일본에서 두번째 길다는 10 Km 가 되는 에나산 터널을 지나 이사와온천에 도착했다,
O 5합목 (2305m)
좋은 온천물에 목욕을 하고 일식으로 저녁을 잘 먹었다, 산에 올라갈 가벼운 배낭만 메고 버스에 올랐다, 19:30분에 출발한 버스는 21:00시가 조금 지나 5합목(2305m)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5합목은 일반등산객들이 후지산에 올라가는 출입구라고 한다, 후지산에 오르는 등산로는 이곳말고도 3곳이 더 있는데 5합목코스가 가장 안전하고 약 70-80% 가 이곳으로 오른다고 했다, 5합목에는 사사가와라는 33세의 일본인 후지산 등산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금년들어 우리팀이 26번째라고 한다, 미국팀 4회 일본팀 21회를 안내했는데 한국팀은 우리팀이 처음이라고 한다,
ㅇ 합목
아주옛날 일본인들이 밤에 램프불을 들고 후지산을 오르는데 램프에 든 석유가 다 소비되면 다시 석유 한홉을 램프에 넣어 산에 오르곤 했는데 석유 한홉이 소비되는 거리를 1개 합목이라고 한다, 후지산은 1합목부터 본8합목까지 9개합목이 있다고한다, 본 8합목은 3360m 인데 3776m 정상까지는 80분이 걸리는 험한 등산로이다,
ㅇ 후지산 등산은 6-9 월까지 4개월인데 일반인은 7월과 8월 2개월만 허용한다고한다, 6월과 9월은 전문산악인이나 이름있는 산악회에게만 사전에 신청을받아 심의후 등산을 허용한다고 했다,
ㅇ 사사가와군이 안내하는 우리팀 10명은 매표소에 42000엔을 주고 들어갔는데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446,000원 정도다, 가이드가 없는 개개인은 대피소에 인적사항과 연락처만 기록하면 되며 무료로 입장한다고 했다, 가이드가 딸리면 단한명이 가더라도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ㅇ 특히 야간에 등산로가 험하고 고산증세로 도저히 등산을 못할 때는 7합목에서 본 8합목 정상에 이르기까지 13 개소의 대피소가 있는데 단체가 몇시간 잠잘때는 2000엔이고 개인별로 잠잘때는 5000엔이라고 한다, 우리팀 남여사님이 고산증세가심해 약4시간 정도 쉬는데 5250엔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55,000원을 주었다고 했다,
O 후지산 (3776m)
21:50 분에 5합목을 출발한 우리팀은 사사가와군을 따라 천천히 산에 올랐다, 다른팀과 섞이지 않도록 유치원생이 선생님을 따르듯 사사가와군 배낭의 깜박거리는 불빛을 보며 걸었다, 한국팀은 못 보았으나 미국인으로 보이는 외국팀은 여러팀을 보았다, 휴식시간에 사사가와의 말로는 중국사람들은 돈을 아끼려고 가이드 없이 자기들끼리 처음에는 신나게 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정상정복을 못하고 내려온다고 했다, 이유는 오버페이스로 힘이 다 빠졌고 고산증 때문에 실패한다고 하였다,
겨울옷을 입고 나무 지팡이에 철인을 찍어주며 돈을받는 일본노인
22:35 분 6합목을 통과하면서 부터 힘이 들었다, 지그재그로 오르는 산길이 우리나라 등산로처럼 흙이 아니고 화산재로 된 길인데 굵은 모래같은 흙이 어떤곳은 발등까지 푹푹 빠지는 곳도 있기에 걷기엔 무척 힘이 들었다, 자주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사람도 많았다, 23:40 분에 7합목에 도착하면서부터 고산증세가 왔다, 머리도 좀 띵하고 다리도 무겁고 무척 힘이 들었다, 우리일행중 혼자오신 50 대 초반의 남여사님은 고산증 때문에 힘들어 도저히 못가겠다고 하여 7합목 대피소에 들어가 쉬고 아침에 하산할 때 가이드가 데리러 가기로 했다, 서울 어떤 산악회 회원이고 전국의 산을 거의 다녔다는 여자로서는 베테랑이라고 하는데 고산증에는 어쩔수 없었나 보다,
등산로 표식
7합목 부터 우리일행 뒤를 계속 따라오는 동경에서 온 30세의 회사원 이라는 아가씨 두명은 참으로 착하고 고마웠다, 남이버린 작은페트병과 과자봉지를 계속 쓰레기 봉지에 주워담는걸 여러번 보았다, 캄캄한 밤이고 고산증과 추위로 산에 오르기도 힘든데 꾸준히 쓰레기를 줍는 것을 보고 일본의 미래를 보는것 같았다,
쓰레기를줍던 착한 일본 아가씨들
헤드렌턴을 켜고 올라가지만 무심코 앞만보고 걷다가는 화산잿덩어리 바위에 머리를 부딛칠 수 있는 곳이 10 여 곳이 있어서 앞에 가는 가이드가 주의를 환기시키면 일본말을 잘 알고 계시는 회장님께서 머리조심을 외치고 계속 뒤로 전달이 되어 아무 탈없이 올랐다, 앵두알 만큼씩 큰 화산재가 깔린길,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가파른 등산로와 무지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은 후지산이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란 걸 실감나게 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험한등산로
후지산 정상에있는 표지석
정상입구의 나무조형물(일본 사람들이 신성시 하였음)
05:00 시에 어렵고 힘들게 정상에 올랐으나 짙은구름 때문에 일출을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 사사가와군의 말로는 매우 좋은 날을 골라 왔다고 한다, 바람도 덜 불고 비가 안왔기에 좋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등산은 금년들어 다섯번째라고 하였다, 10분간 휴식할때 스틱을짚고 잠깐씩자며 고산증과 추위를견디고 힘들게 힘들게 올라간 정상은 허전하고 황량했다, 생각했던것보다 너무나 차이가나기에 둘린것만같았다, 사방을 훑어보아도 사진과 그림에서 본 만년설은 없었다, 산꼭대기는 그저 푸석푸석한 화산재와 분화구뿐이었다, 분화구도 백두산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처럼 멋있고 품위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마치 폭탄이 떨어져 푹 파인 것처럼 볼품없는 구덩이였다, 절벽으로된 분화구 주위에서는 계속화산재더미가 무너져 내리기에 큰 포크레인이 분화구 주위가 더 손실되지 않도록 공사를 하고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 분화구는 깊이가 100 m는 되지 않을것 같지만 백록담보다는 5 배 쯤 넓어보였다,
분화구주위 등산로 길이 위험하고 험하기에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한바퀴 돌려면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고 했다,
후지산 정상 분화구(눈도 풀한포기도 없음)
정상에서 약 90분간 800엔짜리 컵라면으로 아침을먹고 사진촬영하고 추위에 덜덜떨며사방을 돌아보는게 전부였다, 우리팀이 정상에 올랐을때는 영상 1도 였지만 바람이불어 무척추웠다,
구름때문에 늦게야보는 일출
O 하산
참 재미있는 모습들이었다. 밤새도록 잠안자고 고산증세와 추위로들 떨었기에 아무 곳에서나 쉬면서 앉아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다 내려오는지 실로 놀라웠다, 적게는 2-3명 부터 40-50 명씩 그룹을 이룬 팀도 많고 500명도 훨씬 넘어 보였다, 올라갈때의 등산로는 협소하니 내려오는 길이 별도로 있다, 화산재를 도쟈로 밀어서 길을 내놨기에 넓기는 했는데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끌어져서 '아이쿠, 하이' 소리가 수시로 들렸다, 잘생기고 건장한 미국청년도 쿵 넘어지며 큰 물병을 놓쳤다, 4각진 물병이 잘도 굴렀다, 물병을 주어 주었더니 멋적어 하며 연신 땡큐땡큐했다,
한국에유학온 미국대학생들 (korea no good 이라고하며 한국대학생들이 미군에게 돌을던진다고 비판하기에 소수의 학생들이라고 설명해 주었음)
마치 영화에서 보는 패잔병이나 포로들의 행군 같았다, 특이한 것은 쿵 넘어져도 화산재이기에 옷에 흙이 뭍질 않았다,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길이 지루하기도 했다, 올라갈때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7합목부터는 그러니깐 약 3000m 조금 못미쳐부터는 풀 한포기 없는 화산재로만 이루어진 산이었다,
겨울에는 눈이 3 m 이상이 쌓이고 강한돌풍이 시도때도 없이 불기에 헬기가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공사장비는 괘도가 달린 도쟈로 운반하고 있었으며 육안으로 보이는 포크레인과 도자가 10여대 되었다, 우리가 하산할때도 3대의 도쟈에 자재와 인부들이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
내려오면서 보니 말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7합목 까지 올라갈때는 12,000엔이고 내려올때는 10,000엔 이라고 했다, 우리돈으로 127,200원 과 106,000원 인 것이다, 5합목에 와서 보니 말도 10 여마리가 있고 10 여명이 탈수 있는 마차도 있었다, 79년도에 암석이 붕괴되면서 단체등산객 여러명이 사망하였기에 하산은 도쟈로 길을 낸 지금의 하산로만 이용한다고 했다,
◎ 8. 27 (금)
계획은 11:00 시에 하산 완료였는데 1시간 빨리 내려왔다, 후지산 가이드 사사가와군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우리는 가와구치 호수근처로 이동했다, 밤새 잠들 안자고 힘이 들었기에 버스에 타자마자 모두 잠들었다, 가와구치 호수에 도착하여 가이드 진선생님이 깨워서야 모두 일어났다, 점심은 정통 이태리 정식이라는데 신기하기만 했지 내 입맛에는 그저그랬다, 점심 후 모두 맥주를 마시며 춥고 힘들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며 힘들었다는 이야기들을 하며 서로의 고생담을 이야기했다, 결론은 안나푸르나 .말레이시아 고닥카나바루(4101m) 대만 옥산. 3330m일본 북알프스 보다 후지산 등산이 힘들었다고들 했다, 어제 와서 짐을 두고갔던 이사와온천으로 돌아와 오늘 일정은 마무리 했다,
(가이드 사사가와군의 말에의하면 현재까지 후지산에오른 최고령자는 103세의 일본 할아버지였는데 올라갈때3일 내려올때2일 걸렸다고한다, 그할아버지는 106세로 2002년도에 돌아가셨다고했다, 그할아버지는 70세때부터 20여차례 후지산에 오르셨다고했다)
후지산 등산로 입구인 5합목
◎8.28 (토)
O오르골숲 음악감상
08:10 분 이사와온천을 떠나 가와구치란 곳으로 갔다, 이곳은 사과.복숭아.배.포도의 주산지라고 했다, 가와구치 호수옆에 위치한 어느개인이 만들어 놓은 오르골숲 음악감상실에 들어 갔다, 시골극장처럼 깨끗하게 단장한 실내에 각종악기들을 구비해 놓고 스위치를 넣으면 기계가 돌아가면서 각종 음악을 연주하였다, CD나 녹음테잎이 아닌 기계에서 나오는 생음악인 것이다. 크고 작은 인형들이 사방에서 반주와 장단을 정교하게 맞추고 있었다, 어른 팔뚝만큼 씩 큰 비단 잉어들로 가득한 양어장과 각종 장미꽃등 정원도 대단했다,
O 원숭이쇼.
음악감상후 근처에 있는 입장료가 1500 엔인 원숭이 쇼를 보러 갔다, 한국 사람은 우리팀 밖에 없는데 원숭이 조련사가 원숭이가 배용준이노 만큼 잘 생겼다고 하자 일본 구경꾼들이 특히 여자들이 박수를 우뢰같이 치며 열광했다, 또 원숭이가 인형을 골대에 차 넣자 안정환이노가 찼다고 하니 와아 하며 박수가 터졌다, 쇼 자체는 원숭이가 절하고 뜀틀 넘고 목발짚고 다니는 것 뿐인데 배용준과 안정환을 넣어서 힛트를 치고 있었다, 입장료가 1500 엔이기에 무척비싼 구경을 했으나 배용준과 안정환이 나오기에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왔다,
O 야마나시 와인공장
이 근처 에서 생산되는 포도와 각종 과일로 와인을 생산하는 공장인데 공장내외부와 술통이 저장된창고와 와인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구경하고 시음토록하는데 술을 잘 먹는 사람들은 취해서 나온다고 했다, 각종 와인이 수십가지가있고 마른안주도 있기에 실컷들 마셨다, 술을 못먹는 나는 포도즙과 과일즙을 석잔 마셨더니 배가든든했다, 술은 공짜로 실컷 먹고 와인 공장에서 직영하는 포도밭아래 야외식당에서 돌판구이 점심은 돈을내고 잘 먹었다,
큰 포도나무에 포도 수백송이가 열려 있었음
O 승선협 폭포
승선협 폭포로 가는 길에 공금으로 포도를 샀다, 조고만 시골동네인데 나이드신 친정엄마와 40 이조금넘은 딸이 포도를 팔았다, 가이드 진선생님이 한국에서 온 분들이니까 좋은 걸로 달라고 했더니 딸이 한국이란말에 무지하게 반가워하며 봄에 자기도 배용준을 볼려고 서울에 다녀왔단다, 그러면서 좋은 걸로 많이 주었다, 배용준의 덕을 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 후지산 밑 산골마을에서 포도농사짓는 40대 일본 아주머니에게까지 우상이 된 배용준은 독립군 만큼이나 애국자인가 싶다, 머루포도,청포도,거봉을 샀는데 내 생전 그렇게 맛있는 포도는 처음 먹어봤다, 한국인으로 일본에 귀화해서 도자기의 대가가 된 아사카와 형제의 기념관과 야마나시현 산속의 승선협 폭포를 구경하고 일정을 마무리 했다,
일본사람들의 가족묘지 (봉분 유골은없음,산이나강에 뿌린후 이름만 새겨두었음)
O 보고 느낀점.
1. 거리가 깨끗했다, 2. 시가지 주택가 옆으로 흐르는 물이무척 깨끗했다, 하수구에서 나오는 물도 정화되어 나오는걸 봤다, 3. 차타고 가면서 담배 피우는 운전자를 여럿 봤는데 담뱃재를 자기차 재털이에 털었다, 우리나라는 밖에 재를 터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보인다, 4. 포도나무가 어른 장딴지 만큼 굵고 포도가 수백송이 씩 열렸다, 농약을 안하니 그냥 먹어도 되었다, 복숭아도 무척이나 달고 맛이 있었다, 5. 음식문화의 차이겠지만 무척 싱겁게 먹고 소금은 일체 먹지 않았다, 6. 온천에서도 비누를 잘라서 쓰는 검소함을 보았다, 7. 도시나 농촌이나 소형차가 훨씬 많았다, 8. 70 넘은 분들이 호텔, 식당 등에서 일하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9. 모두가 친절했다, 산에서도 앞서갈 때 꼭 예를 표하고 지나갔다,
O 참고사항.
1. 일본 여행시는 110V 짹을 갖고 갈 것. 일본은 110V 만 사용하기에 220V 짹은 사용할 수 없음, 2. 커피를 갖고 갈것, 자판기 커피는 가장 싼게 120엔 인데 맛이 없음. 호텔,여관에서 녹차를 타 먹도록 뜨거운 물을 공급함, 3. 김치,깻잎,고추장등 반찬을 갖고 가면 훨씬 좋음,
O 인원이 적었기에 오붓한점도 있었지만 좋은분들을 일행으로 만나 즐겁고 유익한 여행을 하였다, 그분들께 거듭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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