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모두 네 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장은 큰딸, 큰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주체다. 그런데 내용은 ‘나는’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 ‘그’ 그리고 ‘당신’으로 호명되며 엄마의 실종, 그 부재의 자리에서 간단없이 솟구치는 엄마의 기억과 고통스럽게 대면한다. ‘너’가 호명되는 1장이 더욱 그러한데, 마치 피의자를 심문하는 분위기마저 든다.
흥미로운 것은 ‘그’와 ‘당신’이 호명된 2장과 3장이 엄마의 이야기를 더 절실하고 더 풍성하게 받아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인데, 여기서 장남과 남편의 자리가 이야기의 구체성에 기여하는 측면을 지적하기는 쉽다. 그러나 작가의 분신인 ‘너’의 자리가 ‘그’와 ‘당신’ 속에 매개되고 간접화되면서 소설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결국 이 소설에서 읽고 견뎌내야 하는 것은 ‘너’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작가가 자신의 이전 텍스트를,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필사(筆寫)하며 다시 한줄 한줄 써내려간 소설이다.
“부엌을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냐? 해야 하는 일이니까 했던 거지. 내가 부엌에 있어야 니들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그랬으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 하믄서 사냐? 좋고 싫고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지.” 엄마는 왜 그런걸 묻느냐 하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다가 “좋은 일만 하기로 하믄 싫은 일은 누가 헌다냐?” 하고 중얼거렸다.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어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을 살아가야만 했었는데. 나는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세상에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모두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 잃어버렸을 뿐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여지를 남겨놓은 채 모두들 서서히 엄마를 잃어버린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이 되어 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엄마가 없는데도 봄이 오고 있다. 언 땅이 녹고 세상의 모든 나무에 물이 오르고 있다. 그동안 엄마를 찾아낼 수 있으리란 믿음은 뭉개졌다. 엄마를 잃어버렸는데도 이렇게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찾아온다. 텅 빈 폐허가 네 눈앞에 펼쳐졌다. 움푹 파인 발등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는 그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파란 슬리퍼를 신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실종된 여인.
이름 : 박소녀
생년월일:1938년 7월 24일생(만69세)
용모 : 흰머리가 많이 섞인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 지하철 서울역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입니다. 하루에 삼만 명가량 이곳을 찾아오지요.”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순간 섬광같이 떠오르는 엄마의 말. 언젠가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 너에게 “그 나라에 가게 되거든 장미나무로 만든 묵주를 구해다 달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 말인가 이 바티칸시국?
모든 슬픔을 연약한 두 팔로 끌어안고 있는 성모님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한 방울 감은 눈 아래로 흘러내렸다. 성당 입구까지 걸어 나와 긴 회랑과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광장을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피에타상 앞에 서 있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랴. 엄마는 이처럼 스스로 피에타상이 됨으로써 영원한 귀환에 이른다. 그곳은 ‘너’와 ‘그’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돌아가 지친 얼굴을 뉘어야 할 곳이 아닌가. 자신의 수난을 세상의 무릎과 품으로 돌려주는 존재. 그러므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의 탄식어린 갈구는 기실 여기서 그 대답을 얻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사랑과 깊은 문학적 감동을 일깨워준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게시자의 다른 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