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이야기
이야기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영산성지학교를 방문한 것이 그 해 6월이었던가요. 영광읍에서 학교를 찾아가는 길 양쪽으로 펼쳐지던 담배밭, 고추밭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금방 출소하여 여전히 보호 감호를 받고 있던 아이들,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 가출하여 길가를 배회하던 아이들, 귀고리에다 노랑머리를 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었지요. 제도권 교육에서는 도저히 포용하기 어려운 이 아이들,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부터 저는 이들에 대한 또 한번의 교육적 배려가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잠시 쉬었다 다시 길 가도록 도와주는 '간이역' 같은 것, 그런 것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저의 고뇌는 교육부가 97년초 발표한 '교육복지 종합대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해마다 중고등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7만, 8만명에 이르는 중도탈락생들을 위한 대안학교의 설립운영방안, 바로 그것이었지요. 당시만 해도 '대안교육'이니 '대안학교'니 하는 말들은 우리 모두에게 생소했던 때였습니다. 일부 시골지역,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공교육과 전혀 다른 형태의 교육을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기억에 새롭습니다만, 학교모양을 갖춘 대안학교로는 홍성의 '풀무학교,' 영광의 '영산성지학교,' 그리고 지금의 간디학교 전신인 산청의 '숲속마을 작은학교' 정도였고, 대부분이 계절형 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공동육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변산의 '공동체마을'이나 안산의 '들꽃피는 마을'은 우리 공교육과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인 탈학교 형태를 띠고 있었지요. 하여튼 전국을 다 뒤져도 20여 곳이 채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교육학계에서 조차도 미국에서는 70년대 붐을 이루었다가 작금은 한물 간 연구주제가 되어버린 대안교육에 관한 연구가 전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7월로 접어들어 '대안학교의 법제화와 60억의 재정지원' 이라는 후속조치를 발표했으니, 대안교육 관계자들마저 반신반의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정신없이 앞서나간 교육부의 정책을 유사이래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영산성지학교의 곽진영 교감선생님, 숲속마을 작은학교의 양희규 교장선생님, 들꽃피는 마을의 김현수 목사님, 두레마을의 김진홍 목사님, 그리고 푸른꿈학교 설립을 준비하시던 김창수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당시 우리나라 대안교육운동을 이끌던 재야 운동가들과 종교계 지도자들이 교육부의 대안학교 설립 허용과 재정지원 방침에 일제히 환호하며 동참의사를 표명했을 때, 저는 교육부장관으로서 자그마한 기쁨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공교육내로부터 저항도 만만찮았습니다. 대안(alternative)이란 그 무엇을 대체한다는 것인데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말에 탐탁하게 생각할 리 없었겠지요. 공립학교로 지원될 교육예산이 대안학교로 흘러들어 가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교육부내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대부분의 정서는 대안학교가 무슨 학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학교 설립인가권을 가지고 있는 교육청 공무원들의 냉소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제가 97년 8월, 장관직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가고 나서의 일이었지요. 그 해 10월, 대안학교 설립을 허용하는 법이 마침내 통과되고 이에 따라 이듬해 개교를 신청한 14개의 대안학교에 대하여, 인가 마감시한인 97년 12월이 다 가도록 인가해 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교육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들은 얘기 몇 마디 해야겠습니다. 교육청 공무원들이 법 집행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저의 뜻에 공감한 교육부의 젊은 관료들은 제가 떠난 후에도 대안학교 챙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대거 지방출장 가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IMF직후였다지요. 해외연수차 김포공항에 집결했던 교사들마저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관료들은 감사원 감사를 받으면서까지 16개 시도교육청 담당공무원들을 데리고 영산성지학교와 간디학교로 내려갔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던 12월 말, 두 곳의 대안학교에서 현장연수가 이루어졌답니다. 곽진영선생님이 나서고 양희규선생님이 나서, 공교육에서 소외받은 우리네 아이들을 지원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그들의 작전이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요. 교육청 공무원들은 감동을 받았고, 12월 29일 전남교육청이 영산성지학교를, 12월 30일 경남교육청이 산청 간디학교를 인가했다는 낭보가 교육부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개의 대안학교들이 1998년 3월에 개교하게 되었지요. 청원의 양업고등학교와 경주의 화랑고등학교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부지를 물색하던 끝에 가까스로 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안학교들이 양적으로는 인가받은 학교만 24개에 이르고, 질적으로도 다양하게 성장했습니다. 저는 대학 강단으로 되돌아와서도 제가 불씨를 지핀 대안학교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양업고등학교 개교식에 다녀오고, 영산성지학교도 방문했습니다. 교육부 수장을 다시 맡으면서는 서울의 하자센터와 분당의 이우학교, 그리고 12월 주말을 이용하여 안산의 들꽃피는 학교에도 다녀왔습니다. 교회에 몰래 들어와 잠을 자던 가출청소년들을 데리고 출발한 들꽃피는 학교가 이제 어엿한 사단법인으로 일어선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른 음지의 아이들인 탈북자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중에 있습니다. 학내분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문계형 대안학교인 담양의 한빛고는 정상을 되찾고 있다고 들었고, 간디학교는 경남교육청과의 지리한 싸움을 끝내고 밀월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합니다. 이우학교는 자유를 꿈꾸는 서머힐(Summerhill)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수원의 대명고는 최초의 공립 대안학교로서 도시형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유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중학교과정의 대안학교도 6개나 생겨났습니다. 화랑고에서는 재작년에 고려대에 진학한 학생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제 강화도의 산마을고등학교만 학내갈등의 후유증이 치유된다면, 명실상부 이들 24개의 대안학교들은 "공교육 체제내에서의 대안적 접근"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합니다.
제도권밖은 어떻습니까. 대안학교가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던 서울 도심에만 하자센터, 난나를 포함하여 11개의 도시속 작은학교들이 공교육에서 소외받은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미산에, 구의동에, 서울 인근에는 일산, 파주, 하남, 부천지역에, 저멀리 지리산 실상사에 이르기까지 초등과정의 대안학교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교육밖 움직임들을 '건강한 교육본질 회복운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인가받지 않은 학교로 멀리하기 보다는, 진정한 교육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한 공교육의 파트너로 함께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원한다면 아주 쉽게 인가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길을 터주기 위하여 지금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학교법인을 만들지 않고도 학교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인가받지 않은 대안학교와 야학들에게 컴퓨터도 지원해 주었습니다. 내년 1월에는 대안학교 교사들에게도, 기존 학교 교원들에게만 제공해 왔던 해외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대안교육은 온갖 어려움을 헤쳐 가며, 열정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결정체이기 때문에 무서운 자생력과 실험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들꽃같은 생명력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안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합니다. 교육이 무엇입니까. 진심과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바로 키우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에 감동이 서려야 그것이 교육입니다. 그런데 대안교육에는 감동과 교감, 열정과 헌신이 있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진정한 교육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우리 대안학교의 7년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안교육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교육적 효과를 발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제도권교육에 주는 엄청난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 교육은 실험정신과 자기쇄신의 노력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에 온갖 교육적 소외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대안학교들은 인가받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 사회를 향해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아기를 지나 막 여덟살 소년기로 접어든 우리 대안학교들이 제도권교육에 건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할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인가받은 대안학교들은 그 종류나 유형에 있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안학교가 소위 말하는 문제아이들을 다루는 학교라는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양한 메뉴의 대안학교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저는 다수의 대안학교들이 학급증설이나 중학교 신설 등 외연확대에 너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들이 본래 의도하는 우리 교육의 '대안적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영주체들의 재정자립은 물론이고, 아직은 우수 교사 확보와 교육과정 콘텐츠 개발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일부 대안학교들은 '준공립학교'화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안학교 스스로가 그렇게 싫어하던 관료화, 관성화, 상투화, 현실 안주 현상이 일부 대안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다고도 합니다. 어느 대안학교는 대학입시 준비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채근에 학교철학이 훼손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학생 선발과정이 좀 더 신중해져야 되겠습니다. 자기혁신에 소극적이면 더 이상 대안학교라 부르기가 어렵겠지요. 양적 확대보다는 질 관리에 좀 더 신경써야 하겠습니다.
일반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색다른 교육이념과 방법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의 성공 여부는 그러한 교육을 담당하는 헌신적인 교사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리는 바로는, 대안학교들이 자꾸 생겨나다 보니 각 학교들이 우수교사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이 교원양성에 왜 그토록 많은 준비를 했는지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간디학교와 이우학교는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자체 교사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제 대안학교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양질의 교사 확보를 위한 공동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교사양성을 어떻게 하고 콘텐츠를 어떻게 하겠다기 보다는 대안학교 스스로가 하는데 측면 지원해 드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저는 대안학교를 법제화한 장본인으로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공동의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97년도 당시 대안학교 운동을 이끌어 오셨던 분들은 어찌 보면 1세대 대안학교 운동가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 선구자들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대안교육에 관한 새로운 철학과 지식, 이론, 필요하면 정책대안 까지도 창출하는 소위 "대안교육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곳을 거점으로 하여 우수 교사 확보라든가, 교육과정과 관련한 현안을 파악하고 공동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안학교들의 대안'을 모색해 보십시다. 이러한 혁신의 자세만이 우리 대안교육의 안정적 정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그동안 저에게 대안교육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시고 영감을 던져주신 연세대 조한혜정 선생님, 들꽃피는 마을의 김현수 목사님을 비롯한 대안교육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謝意)를 드립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대안교육을 향해 정진하고 계시는 원광대 이강래 선생님께는 이 자리를 빌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04년 12월 23일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안병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