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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제 14 구간 산행기
(무르티고개 ~ 윗갈치)
1. 산행일자 : 2007년 12월 9 일(일 요일)
2. 산 행 지 : 가야산(677.6m) - 충남 예산
3. 날 씨 : 맑음
4. 참 석 자 : 박봉하, 박상호, 안상경, 윤희원, 이용준, 장현옥(6명)
5. 산행계획
[1] 총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총 산행 약 15.4km, 8시간 20분 정도
[2] 구간별 거리
무르티고개(105m)--2.0km--안산(148m)--매봉재(130m)--은봉산(280m)--2.2km--나분들고개(90m)--간대산(175.5m)--3.8km--모과울고개(60m)--1.3km--성연고개(80m)--2.1km--성왕산(252.3m)--1.6km--성황당고개(120m)--내동고개(90m)--2.4km--윗갈치(29번국도, 60m)
[3] 소요시간
(1) 서산, 기상(05:00) ∼ 식사(05:30/06:10) ∼ 무르티고개(06:30)
(2) 무르티고개(06:40) → 은봉산(07:25) → 나분들고개(08:30) → 간대산(09:00) → 포장도로(09:20) → 기지국/124번철탑(10:00) → 모가울고개(10:30/점심/11:10) → 113.2삼거리(11:30) → 성연고개(12:00) → 성왕산/깃대삼각점(12:45) → 서낭당고개(13:20) → 안부/송전탑(13:55) → 6번철탑(14:35) → 윗갈치(15:00)
(3) 윗갈치, 29번국도(15:20) ∼ 서산IC ∼ 서해안고속도로 ∼ 수원(18:00)
■ 탈출로 : 운산 개인택시(041-663-3769)
6. 산행의 실제(산악대장 제공)
[1] 일정 및 소요시간 : 총 산행 약 15.4km, 8시간 20분 정도
[2] 구간별 소요시간
(1) 서산, 기상(05:00) ∼ 식사(06:27/07:10) ∼ 무르티고개(07:30)
(2)무르티고개(07:40)→은봉산(08:21/08:35)→나분들고개(09:10)→간대산09:33)→율목2리입구(09:57/10:08)→모가울고개(10:43)→성연고개(11:13/11:42)→구억말안부오거리(12:18/12:30)→성왕산(12:43)→성황당고개(12:53/13:01)→내동고개(13:15) → 윗갈치(14:05)
(3) 차량회수(14:15/14:55) ∼ 식사(15:15/16:30) ∼ 대호방조제 ∼ 서해안고속도로 ∼ 수원(19:00)
[4] 탈출로 및 편의사항 : 서산 개인택시(041-665-8208), 음암면 식당(041-663-1408), 지곡면 우정식당
7. 산 행 기
[1] 산행전
서산에서 하룻밤을 유숙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다. 05 : 30분경 기상을 하여 배낭을 챙겨 밖에 나와 보니 대장과 윤사장은 오늘 산행의 도착 지점(윗갈치)으로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떠나고 없다.
06 : 00시를 지나 대장과 윤사장 도착,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본가설렁탕」집을 찾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24시 영업을 하기 때문인지 몇 군데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한 테이불에는 젊은 남녀 네 명이 주변 손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술잔을 비우며 떠드는데 보기도 민망스럽고 참 염치없는 젊은이들이란 생각이 든다. 종업원들도 자주 이런 경우를 겪었는지 자제를 시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서산 지리도 밝지 못하고 이른 아침이라 도가니탕으로 주문을 했다. 어제 과음을 한 때문인지 입맛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산행을 위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식당을 나왔다.
[2] 산행 들머리 무르티고개
07 : 35분, 오늘 산행의 들머리 32번 국도로 진입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삼거리에는 과일을 판매하는 간이매점과 트럭 한 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 매봉재
07 : 40분, 신발 끈을 단단히 졸라매고 배낭과 스틱을 챙겨 대나무 밭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07 : 59분, 다소 가파른 능선에 올랐다 안부 4거리로 내려섰다. 『매봉재』에 도착한 것 같다. 『매봉재』는 성연면 평리. 상평 북쪽의 야산으로 산 모양이 매와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매가 살았다고 한다.
[4] 은봉산(銀峰山)
안부 사거리를 지나 약 10여분을 진행하니 107번 송전탑이 나온다. 대장은 멀리 앞서가 보이지 않고 박사장, 윤사장, 안교장이 뒤를 따른다 생각했는데 기척이 없다. 등 뒤로 아침 햇살을 받으며 峰(269봉)에 올라보니(08 : 12분경) 칡넝쿨이 잡목을 뒤덮고 가시나무와 억새가 뒤엉켜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협소한 급경사 오름길로 이어진다. 잡목으로 뒤 엉킨 좁을 길을 지나는 데 연신 나무 가지가 얼굴을 스쳐가고 가시나무와 칡덩굴이 발목이며 옷을 끌어당긴다. 아마도 여름에 이곳을 통과했더라면 迷路를 헤매고 다녔을 것 같다.
08 : 23분, 어렵게 잡목 덩굴 길을 빠져 나와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산봉에 올랐다. 많은 표시기와 『큰산(구 은봉산), 괜차뉴』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역시 이곳도 잡목이 무성한데 눈꽃이라도 핀 듯 잡목 가지와 떨어진 낙엽에 하얀 서리가 내려 있다.
『銀峰山(284m)』은 충남 서산시 음암면과 당진군 정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당진군 향토유적 6호 (1997. 6. 20 지정)인 안국사터」가 있는 곳이다.
은봉산 정상에 올라 후미 팀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7,8분을 기다리니 후미 팀 도착이다.
[5] 나븐들 고개
08 : 35분, 후미 팀이 가쁜 숨을 고르자 곧 출발이다. 은봉산을 뒤로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니 큰 나무(상수리) 한 그루가 있고 길이 Y자로 분기된다. 이곳에서 우측은『봉화산(峰火山, 305m)』가는 길이고 마루금 표시기는 좌측으로 내림 길로 달려 있다.
08 : 45분, 잡목 구간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진입
08 : 55분 全州李氏 墓를 지나고
08 : 57분, 201봉에 올라 다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휴식도 잠시 다시 출발하여 3분여를 진행하니 임도 삼거리(묘1기)가 나타난다. 좌측으로 진행.
09 : 10분, 시멘트 포장도로인 『나븐들(羅盆野)고개』에 도착 했다. 도로를 건너자 바로 오름길로 이어지고 초입에 등산로 입구/정상 1.2km라 표시된 이정표를 세워 놓았고 枕木階段을 설치해 두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 같다.
[6] 간대산
09 : 18분, 계단을 오르고 넓은 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르니 삼각점(405, 복구, 78년 10월 건설부)이 있고 멋진 정자가 봉 정상에 우뚝 세워져 있는데 먼저 도착한 안교장, 윤사장, 장부장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잠시 숨을 진정시키고 정자에 올라보니 전망이 너무 좋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면서도 사방이 툭 터져 막힘이 없다. 이곳이『간대산, 175.2m』정상 팔각정이라고 한다.
간대산은 서산시 음암면 탑곡리와 당진군 정미면 덕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음암 8경 중 제1경이라고 한다.
[7] 율목 2 리 입구
09 : 33분, 「간대산 0.2km, 하산로 도당1리 1.0km, 하산로 문양2리 0.9km」라 표시된 이정표가 있는 능선 삼거리에 도착했다. 산악대장과 박사장을 만났는데 『간대산』정상을 다녀온다고 한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문양2리(이마을명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옛 문기리(文起里)에서 문(文)자를 따고 장양동(章陽洞)에서 양(陽)자를 따서 문양리(文陽里)가 되었다.) 로 방향을 잡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잠시 내려서니 체육 시설 ---> 묘 1기 ---> 송전탑이 나온다.
09 : 49분, 체육시설 ---> 묘 3기 ---> 송전탑 ---> 발지압 길을 통과하니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고 길옆으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이어진다. 어릴 때 탱자를 따 향긋한 냄새를 맡던 생각이 나 땅에 떨어진 탱자를 주워 배낭 주머니에 담아본다.
09 : 50분, 2차선 포장도로
09 : 55분, 율목 2리 입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어제 먹다 남겨 둔 계란과 감자 등으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가졌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율목 2리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소나무 숲을 이룬 율목 마을 입구가 너무 싱그럽다.
[8] 모가울 고개
10 : 23분, 墓地群을 지나고
10 : 34분, 124번 송전탑을 지나면서 가시나무 잡목이 가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
10 : 44분,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했다. 道路 邊에는「서산 ~ 정미」간 활포장 도로공사 표지석이 있고 건너편 대나무 숲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다. 포장도로를 횡단하여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다 보니 아크릴 판에 『모가울고개』라고 쓰인 표지판이 대나무에 매달려 있다. 『모가울고개』는 음암면 율목리에 있는 고개로 동구에 모과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9] 서산 구치소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직진, 파란지붕 축사를 지나고 곧이어 소나무 숲 오름 길로 접어들었다. 묘 2기가 있는 능선 봉에 올랐다 잠시 후 묘3기가 있는 곳에서 좌측 내려섰다.
10 : 56분, 민가가 있는 밭 가장자리를 통과.
11 : 12분, 산속에 큰 건물이 보이고 건물 둘레로 2m 높이는 족히 됨직한 철망이 처져 있다. 철망을 따라 진행하다보니 「이곳은 제한지역이오니 허가 없이 접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서산구치지소장」이라고 쓴 경고문이 붙어 있다.
[10] 성연고개
금북정맥 종주의 위치를 가늠하는 확실한 지점이 되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하고 철망을 따라 3, 4분 더 진행하니 소나무 숲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런데 금북정맥 표지기가 직진 내림 길과 오른쪽(구치소 옆) 방향으로 달려 있다. 어디로 가야하나 망설이다 오른 쪽으로 방향으로 내려 가다보니 길이 사라지고 없다. 다시 되돌아 와 직진으로 내려가니 급한 절개지가 나타난다.
11 : 20분, 절개지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섰다. 『성연고개』다. 성연면(聖淵面) 갈현리에 있는 고개로 「성연(聖淵)」이란 마을의 연못에서 용이 승천한 뒤부터 마을이 번창하므로 성스러운 연못이라 하였다고 한다.
오늘 산행 중 점심 식사는 이곳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 것으로 돼 있다. 산악 대장, 미리 전화를 해 두었는지 성연고개에 도착해 보니 점심 식사가 도착 돼 있다. 시멘트 바닥 길에 신문지를 깔고 점심상을 차렸다. 산행 중 따끈한 밥과 찌개로 점심을 먹어보는 맛도 여간 아니다.
[11] 구억말 삼거리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하고 출발이다. 마루금을 따라 숲속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마루금은 생태 체험학습장을 만들기 위해 야생화를 심었다고 진입을 금지 시키고 우측 절개지 아래는 鷄舍가 있는데 조류독감을 막기 위해 접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성연고개 포장도로로 나와 갈현2리(성현고래)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지나(11 : 40분경) 계사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 잠시 진행하다 계사 뒤 절개지를 따라 오르는데 양계장 주인이 나와 절개지를 오르지 못하게 한다. 양계장 주인과 입씨름을 하다 되돌아 나와 약 100여 m를 더 진행을 하여 民家 직전 정맥 표지기가 달려 있는 산으로 올라붙었다.
묘 1기를 지나 능성에 올라 우측으로 진행하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잠시 따르다 삼거리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12 : 03분 봉 오름
12 : 07분, 잡목이 무성한 봉에 올랐다 임도로 내려 섬
12 : 12분, 나무가 베어진 숲을 지나고 자갈이 깔린 도로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산으로 오른다.
12 : 21분, 『구억말』 안부 삼거리에 도착이다. 잠시 휴식.
[12] 성왕산(聖王山)
12 : 36분, 구억말 안부에서 숲속으로 진입해서 약 6분여를 진행, 묘 1기를 지나고
12 : 42분, 특징이 없는『성왕산』직전 봉을 지나.
12 : 47분, 오늘 산행의 마지막 고비가 되는 『성왕산(聖王山, 252m)』정상에 올랐다. 이 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산리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삼각점과 무인 감시 시스템이 있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망을 둘러놓았으며 철망에는 『성왕산, 252.3m, 괜차뉴』표지판을 달아 놓았다.
서산 문화원의 서산문화>민속자료 『온석동 -온동(溫洞) 전설』전설에 따르면 『성왕산』을 이곳 사람들은 『서낭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서낭산』아래 온동(溫洞) 마을에는 한 가난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 어느 날 뒷산인 서낭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독사뱀에게 물렸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으므로 뱀이 동면하는 달이었는데 도 예기치 않게 독사에게 물린 것이었다. 돈이 없는 나무꾼인지라 집에 돌아와 집 앞에 있는 샘물에 가서 독사물린 곳을 씻어내고 그 물을 먹었더니 신통하게도 아무 후유증 없이 씻은 듯이 나았다. 뿐만 아니라 그 샘물은 한 겨울인데도 의외로 뜨거운 물이 아닌가!
나무꾼은 하늘이 도와주신 고마운 뜻으로 알고 이 고마움을 이웃에게라도 어떻게든 보답해야겠다고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던 차에 그해 봄에는 이 곳 마을과 온 나라에 전염병인 염병(장질부사)이 만연되어 마을 사람들은 질병으로부터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때 착한 나무꾼은 자기가 독사뱀에게 물렸을 때 자기 집 샘물로 상처를 씻고 물을 먹었더니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환자들에게 약을 지어다 먹이는 것보다 자기 집 샘물을 퍼다 먹이고 목욕을 시켜 보라고 하였다. 이 말대로 염병 환자들에게 샘물을 떠다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나니 환자들은 씻은 듯이 병이 나았으므로 이 말은 삽시간에 퍼져서 이 약물을 긷기 위해 온동(溫洞) 마을에는 물 길러온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는 이야기가 언제부터인가 전설로 전해오고 있으며 이런 연유로 온동(溫洞)이라는 마을 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로만 이야기가 있을 뿐 온동에는 온수가 나오는 곳은 아직 없다고 하며 다만 성연면 일람리로 넘어가는 서낭산길 밑 정모씨 집 앞에 샘이 있는데 그 샘은 옛날부터 “냉천샘”으로 물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어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아무런 기구나 의약품이 없던 예전에 땀띠가 난 환자들이 “냉천샘”에 와서 샘물로 목욕을 하면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여름이면 男女老小할 것 없이 샘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최근에 온석리(溫石里)라는 지명과 온천수와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어떤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돌아보고 온천수가 나오는 곳에는 붉은 개미가 서식하는 것인데 이 “냉천샘” 주변에도 붉은 개미가 서식하고 있다고 했다는 미확인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붉은 개미가 그곳 말고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므로 그 말의 의미는 별 가치가 없는 말인 것 같다.
<출처> 서산문화원> 서산문화> 민속편
[13] 성황당 고개
성왕산 정상을 뒤로하고 조금만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급경사 내림 길을 10여m 내려오니 귀가 멍할 정도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개 사육장이다. 소리가 워낙 요란하고 냄새도 고약하여 뛰는 걸음으로 사육장을 벗어나 시멘트 도로로 내려섰다.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성황당 고개』에 다다랐다. 『聖王山』도 넘고 운치가 있는 성황당 고개라 쉬어갈 만도 한데 산악대장, 개 사육장이 지척에 있기 때문인지 맞은편 임도를 따라 오르다 휴식 시간을 갖는다.
[14] 내동고개
13 : 05분, 바위가 있는 봉(165봉)에 올라 우측으로 꺾어드니 납골묘가 있고.
13 : 12분, 德水張氏 納骨墓와 民家를 지나면 송전탑이 나타난다.
13 : 17분, 시멘트 포장도로 안부『내동고개』에 도착했다. 도로를 횡단하여 3분여를 진행하면 墓地群과 송전탑을 지나면서 완만하던 길이 가파른 오름길로 변한다.
[15] 윗갈치 가는 길
13 : 20분 바위가 있는 봉(186봉)에 올라다 능선을 따라 7,8분을 진행하니 삼거리에 삼성토탈(주) 산악동우회에서 세운 이정표(정상 100m / 온석동 1.5km)가 있다. 삼거리에서 우측 임도를 3분여를 진행하다 임도를 벗어나 우측 내림 길 숲속으로 접어든다.
13 : 30분, 임도 안부 삼거리에서 넓은 임도를 따라 직진하여 오르니 납골묘가 나오고 다시 50여m를 올라 보니 金海金氏 安敬公派 追慕堂(납골묘)이 있다.
13 : 40분, 시멘트 삼각점봉(198.4m)에 올랐다 잠시 내려오니 능선봉(190m)에 도착(13 : 45분경)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5분여를 내려오니(13 : 50분) 6번 송전탑이 나온다.
13 : 53분, 또 하나의 송전탑을 지난다. 곧이어 표고버섯 재배지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밭 가장자리로 직진을 한다.
14 : 02분, 골프연습장 옆 墓地(東門里 里長 韓公 東宇 頌德碑와 墓)를 지나
14 : 07분, 오늘 산행의 목적지『윗갈치』에 도착하는 것으로 금북정맥 14구간의 산행을 종료 한다.
[16] 지곡면 중앙리 박속 밀국 낙지탕
1박 2일, 장시간 산행으로 피곤하고 지쳤지만 아직도 장거리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이제 힘들었던 산행의 다리품을 풀어 줄 뒤풀이만 남았다. 윤사장, 서산 바다 근처에 왔으니 서산의 입맛 「박속낙지」로 산행의 피로를 풀어보잔다. 윤사장과 대장은 차를 회수하기 위해 『무르티고개』로 떠나고 나머지 넷은 택시 한 대를 불러 「박속 밀국 낙지탕의 원조」인 『우정횟집(충남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509-1 / ☎ 041-662-0736 / H.P 017-420-0763)』으로 향했다. 우정횟집은 한국음식 명가 1300집 중에 속하는 집으로 KBS, MBC, SBS의 맛있는 집 프로그램에 방영이 되었다고 한다.
바다 가에 있는 2층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미리 전화를 받았는지 상을 봐 두었다. 우리가 坐定을 하자 종업원 아주머니, 박속을 우려 낸 물에 살아 움직이는 낙지를 7, 8분 끓인 후 접시에 1차로 낙지 발을 잘라 놓는다. 김장 김치를 곁들어 이스리 한 순배를 돌리니 칼칼하던 목안이 후련해진다. 回車를 하기 위해 떠났던 윤사장과 대장이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주문한 낙지가 동이 나고 만다. 참 의리 없다는 눈총을 받을 줄 알면서도 당기는 입맛을 자제하지를 못한다.
낙지 머리통도 다 꺼내 먹고 밀국까지 끓여 먹는데 回車 팀 도착이다. 다시 한 번 이스리로 잔을 채우고 위하여를 외치니 이스리의 기운이 점점 도도해 진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갈 길도 멀어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으로 1박 2일의 산행 일정을 무사히 마친 것이 너무 뿌듯하다.
2007. 12. 24
***************<참고자료>****************************
[1] 音巖面
면소재지는 도당리이다. 북쪽에 문길산(189m)·양대산(175m)·은봉산(284m) 등의 잔구성 산지가 남아 있을 뿐, 면 전체가 50m 내외의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룬다. 관개용수로는 동쪽의 성암저수지, 서쪽의 잠홍저수지가 이용된다. 쌀 이외에 마늘과 생강이 생산된다. 태안 - 당진을 잇는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가로지른다. 도당(道堂)·탑곡(塔谷)·문양(文陽)·율목(栗木)·부산(富山)·상홍(上紅)·신장(新莊)·유계(遊溪)·성암(星巖)·부장(富長) 등 10개 동리가 있다. 면적 43.96㎢(2002), 인구 10,931(2003).
[2] 안국사 사지
[ 2 - 1 ] 안국사 사지
◆ 소 재 지 정미면 수당리
◆ 지정내용 당진군 향토유적 6호(1997. 6. 20 지정)
◆ 안국사지는 당진읍에서 서남쪽으로 10.5km 떨어진 정미면 수당리 원당굴 은봉산 중턱에 있는 절터이다.
안국사지 석불에서 서남쪽으로 500m쯤 채석장을 끼고 올라가면 1,000여평의 터가 남아 있다. 이 터에는 젖소를 기르는 작은 목장이 있고 안국사터의 앞면은 돌로 축대를 쌓았고 터 안에는 장대석이 이리저이 나뒹굴고 주춧돌 3개가 보인다. 이 주춧돌들은 자연석이 아니라 양각 형태로 잘 다듬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빈터 한쪽에 작은 옹달샘이 있고 그 뒤쪽으로는 부속건물이 있었음직한 터에 기와조각이 흩어져 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현조에 보면『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창건연대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 않아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번창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찰 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석불, 석탑, 석축, 배바위돌 하수구 등이 현존하여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터의 동북쪽으로 500여m 쯤 아래쪽에 보물 100호인 석불입상과 보물101호인 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 배바위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 2 - 2 ]안국사지 석불입상
○ 소 재 지 : 정미면 수당리 산102-19
○ 지정내용 : 국가지정보물 제100호
○ 지정일자 : 1963. 1. 21 지정
○ 규 모 : 본존불높이 4.91m / 좌협시 보살상 3.55m / 우협시 보살상 2.95m
○ 시 대 : 고 려
○ 재 료 : 화 강 암
○ 안국사 터에서 동북쪽으로 500m 아래쪽에 석불이 세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보물 100호로 지정되었으며, 중앙의 본존불은 높이 4.91m로 머리는 원통이며 얼굴은 사각형이고 몸은 장대석을 깍아 세운 것같고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붙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머리에는 장방형 면류관을 쓰고 있다.오른쪽과 왼쪽 양편에 협시보살상이 있는데 왼쪽 보살상은 높이 3.55m, 오른쪽의 보살상은 2.95m로 오랜 풍상과 전란으로 안면 부분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있다.
[ 2 - 3 ] 안국사지 석탑
○ 소 재 지 : 정미면 수당리 산 102-1
○ 지정내용 : 보물101호
○ 지정일자 : 1963. 1. 21 지정
○ 시 대 : 고 려
○ 재 료 : 화강암
석불상 바로 앞 하단에는 보물 제101호로 지정된 석탑이 있는데 높이 2.85m의 4층 석탑으로 소박하고 돈후한 멋이 있고 탑신에 불상이 조각되어 학술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탑은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엉성하다. 땅위에 네장의 대석을 깔고 그중 두장의 긴대석을 지대석으로 삼았는데 대석 위에 우주나 탱주도 없는 자연석에 가까운 돌을 중대석으로 사용하였다. 갑석은 지대석과 같은 방향으로 2장의 판석을 얹어 놓았으며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돌로 되어 있고 옥신은 일층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없어졌다. 일층 옥신에는 사방에 우주가 있고, 일면에는 문비를 양각하였으며 다른 삼면에 여래좌상을 일구씩 양각하였다. 옥개석은 사층까지 남아 있으나 이층 이상의 옥신이 없어져 억지로 탑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옥개석은 옥신에 비해 큰 편인데 고려시대 석탑의 옥개양식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우각에서 추녀의 반곡은 심하고 추녀끝에서 깊숙히 들어가 받침 사단이 각출되어 있고, 낙수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전각에서의 반전은 밑에서처럼 심하지 않다. 이층이상의 옥개석도 같은 양식 이며 위층의 체감비율은 비교적 건전하다. 상륜부는 없어졌다. 이석탑은 조형에서 균형을 잃고, 돌의 다듬이가 거칠고 탑의 조각도 형식화 되어있다. 옥신의 조식이나 옥개석에 당시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어 고려중기 이후의 조성으로 보인다.
[ 2 - 4 ] 배바위 매향비
석불 뒤쪽에는 배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곳 안국사가 미륵 신앙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바위는 일종의 기도처이 기도 하고, 배바위에서 돌을 던져 석불의 갓에 얹히면 아들을 낳는 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배바위에는 얕게 판 글씨가 있는데 매향 비이다. 미륵이 이 땅에 내려와 극락을 이루어 주기를 기원하면서 향을 묻고 빌었다는 비문을 말한다. 배바위매향비는 <경오년(庚午年) 2월에 이미 북쪽 천구라고 하는 포구 동쪽에 향을 묻었으며 화주와 주민들의 힘으로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경오년은 최근이 1990년이었는데 갑자는 60년에 한번씩 돌아온다.
<출처> 외목마을 대호리조트
[3] 읍내동 봉화산(峰火山)
봉화를 올리던 산으로 부춘산의 정상(해발 197.8m)에 있다. 부석면에 있는 도비산과 고북면에 있는 고구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국가의 전란이 있을 때 봉화를 올리어 신속히 알리던 통신수단이 었던 곳으로 알려져 잇다.
날이 가물어 한해(旱害)가 심할 때 이곳 수령들이 기우제(祈雨 祭)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봉수대(烽燧坮)는 옥녀봉(玉女峰) 뒤쪽 옛 북주산성 내에 있다.
[4] 읍내동 부춘산(富春山)
서산시내에서는 가장 높은 주산이다. 서산팔경의 하나인 부춘초적(富春樵笛)도 이 산에서 유래된 것이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에 동에서 서로 뻗은 산줄기로서 남으로 비스듬히 경사진 것이 흡사 큰 소가 누운 것과 같다. 남향으로는 북을 뒤로한 산이므로 봄이 일찍 오고 산나물도 무성하게 돋아났으므로 이로 이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부춘초적이란 시구(詩句)를 대할 때마다 초동이 지게 지고 풀피리 불던 옛 정취가 다시금 새롭게 느껴진다.
[5] 갈산동-윗갈티 (上葛峙)
윗갈티란 마을의 위치가 윗편에 있다는 뜻이고 갈산 3통 전역을 말할 때 쓰는 광의의 지명이다. 갈티라는 지명은 성연면 일람리에서 구로(舊路)인 지석댕이 쪽으로 넘어오는 곳, 혹은 큰 말에서 성연면 일람리로 넘어다니는 고개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윗갈티에는 솔개재, 큰말, 윗갈치, 주말미, 지석댕이 등의 작은 단위의 마을이 있다. 그 중에 서 큰 말은 양지 바르고 전답이 좋아서 농촌으로는 공기 맑고 살 기 졸은 곳이다.
[6] 갈산동-큰 말
솔개재의 밑이고 윗갈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을이며 비교 적 평탄하고 양지바른 마을이다.
[7] 갈산동-지석댕이 (帝釋堂)
성연, 지곡, 대산면에서 서산 시내로 들어오는 도보길의 유일한 통로중에 성연면 일람리와 갈산리와의 경계가 되는 고개에 있다.
1926년 발행된 「서산군지」에 의하면 “성황단(城隍壇)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서산면 동문동 향교 뒷산 밑 성연면과 인지면 면계에 부지 157평이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곳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城隍壇祭城隍神之所瑞山在瑞山面東門里鄕校後麓(今釋堂聖淵面 線仁旨面界敷地一百五拾七坪)」
현 은미목장이 있는 뒷편 양지바른 곳인데 성연, 지곡, 대산면 민들은 서산장을 오갈때 이곳에 쉬어다니던 곳이고 이곳을 “지석댕이”라고 했다.
[8] 갈산동-솔개재
갈산 3통은 큰말에서 성연면 일람리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옛날 솔개 솔개 : 매과의 새. 날개길이가 48cm가량이고 몸빛같은 암갈색이며 가슴에 검은세로무늬가 있음. 꽁지는 매 와 달리 서로 엇갈림. 공중에 높이 떠 맴돌면서 들쥐, 개구리, 물고기 따위의 먹이를 노리는 새임. 텃 새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음. 들이 이 곳에 많이 살았기로 생겨난 이름인가 생각되어지는 곳이
다. 솔개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잘 살았으므로 이런 곳이 아니었는가 생각되어지는 곳이다.
“갈티”(葛峙)라는 지명도 이 솔개재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 이 큰 곳이다. 옛날 이 산길을 이용케 되는 지역은 성연면 일람리 2구 마을, 성연면 고남리 1구 마을, 팔봉면 금학리 마을 주민들이 직통도로로 많이 사용하던 길이다.
[9] 서산 죽사
○ 소 재 지 : 서산시 인지면 성리
○ 유적현황 : 죽사는 인지면 성리에 있는 비룡산의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로 누가 창건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본면 풍전리 사람들이 마을의 태평을 빌기 위해 수백년전에 세운 것이라 한다. 죽사의 원통전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안치되어 있다.
인지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3.5km정도 가면 성리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서산시 갈산동과 인지면의 경계에 해당하는 비룡산의 남향사면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비룡산의 정상부 남향사면에 해당하며 ‘죽사’의 후면에는 비룡산 동쪽에 솟아있는 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죽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일설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때 도감국사가 수도하기 위해 창건한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죽사에는 원통전과 종각 그리가 요사체가 있다. 원통전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신축하였다.
<출처> 서산시 문화관광
2007 .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