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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배꽃 흐드러진 양주 웰빙투어!!! 김 명 숙 부슬부슬 비가 오는 4월 27일 일요일 아침, 평소 학교 가는 시각! 호평동 라인아파트 엄마들은 부산했다. 불과 4일전에 갑자기 결성된 42명 (학부모 13명, 호평초 학생 29명)은 양주시 웰빙시티투어를 시작했다. 꽃의 향연 속에 우리도 상춘객이 되어보자는 마음들이었을까? 양주시청에서 합류한 홍명숙 문화해설사의“어젯밤 정성스런 기도”로 더욱 알찬 여행이 되고 화려한 꽃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양주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군사적으로 충돌이 잦았던 곳으로 고려말에 회암사를 중심으로 조선왕조를 개창하는데 산실역할을 했단다. 경기도 동북내륙권에 위치하며 동쪽은 포천, 남쪽은 의정부, 북쪽은 동두천과 연천군 서쪽은 고양․ 파주시와 접하고 있으며 서울과 인접한 지역에 속하며 공간적으로는 서울에서 28km 거리에 있다. 특히 우리 남양주와는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의 남양주시가 일제시대에 양주군의 땅이었으니 우리는 오늘 큰집을 방문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정원 같은 양주시를 한참 돌아“무호정(武虎亭)”에 도착했다. 이 곳은 양주시 남면 신산리에 소재하며 우리를 기다리신 인근 중학교 교장 선생님, 김효권 사원님의 강의 끝에 아이들이 직접 활을 가지고 화살을 쏘는 체험을 했다. 물론 엄마들도 연습하여 과녁을 향해 힘껏 쏘아보았지만 성적은 아이들보다 신통치 않았다. 왼쪽 팔꿈치는 활(각궁)을 잡고 쭉 편다. 오른손은 바닥을 향하게 활을 쥐는데 엄지손가락위에 검지와 중지를 덮고 힘을 더해 힘껏 당긴다. 결코 쉽지 않았다. 왼쪽 팔꿈치에 시위가 세게 스친 자국으로 제법 멍이 들고 말았다. 무호정측의 배려로 정해진 4번에서 8번 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여기서 국궁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무기는 활이었으며 백성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진 무예도 궁술이었다. 삼국시대부터 궁술을 백성 교육의 일환으로 혹은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으로 삼는 등 적극적이었다. 고대 한국인이 활을 잘 쏘았다는 것은 여러 기록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동이족(東夷族)의“夷”를 중국인들은 大弓人 곧 활 잘 쏘는 민족이라고 불렀다. 역사적으로 국궁은 국난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호국무예의 근간이 되어 왔고 평시에는 궁도 9계훈(正心正己,仁愛德行,誠實謙遜,自重節操,廉直果敢,禮儀嚴守,習射無言,不怨勝者,莫灣他弓)에 따른 생활신조와 인, 애, 덕을 실천 제일로 삼는 선비정신이 깃들여 있다고 하니, 그저 무심히 보아온 국궁 활쏘기가 주는 교훈이란 끝이 없어보였다. 처음 겨눠본 활과 화살은 마음을 수양하고 인내하는 데 제격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재잘재잘!!!! 우선 허기를 달래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찾은 곳은“야단법석”이라는 식당이었다. 빨간 투어버스를 쉬게 한 곳으로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그배나무와 여타 철쭉과 4월에 피는 꽃들은 벌써 5월을 준비하고 있었다. 42명에게 잠시 행복을 준 된장찌개와 순두부찌개는 친절한 양주를 기억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정원과 엄마들은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부지런히 쑥을 캐기도 했기 때문이다. 담장 옆을 지킨 진돗개와 시베리안 허스키는 아이들을 더욱 흥미롭게 했다. 이제 넉넉하게 먹었으니 출발!!! 구불구불하게 좁은 길을 따라 버스는 그린아일랜드에 내려준다. 이 곳은 20여년에 걸쳐 직접 조성한 친환경적인 조경과 원예가 눈에 띄는 은현면의 도락산에 펼쳐진 자연 식물원이다. 각종 꽃과 나무들이 정원과 산책로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잣나무 삼림욕장, 사슴농원 및 어린이농원 테라리움(유리정원)등도 마련되어있다. 아이들은 수준 높은 갤러리에서의 전시가 무색할 정도로 정원내에 설치된 놀이기구 뻉뺑이와 그네에 매달려 놀이터에서처럼 신이 났다. 오전에 비가 살짝 내리고 예정되었던 이고을이 빠지면서 문화해설사는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추천해준 것이 굿이다. 마침 오늘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인“양주소놀이굿”을 정기 공연하는 날이어서 다행이다. 양주소놀이굿 전수회관 놀이마당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둘러져 있었다. “제25회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양주 소놀이굿정기공연” 전국에서 올라온 구경꾼들 속에 우리 일행들은 흩어져서 관람을 했다. 길놀이 양주소놀이굿 공연, 두레풍물단 사물놀이 공연, 서도소리, 풀피리,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공연, 양주들노래, 품바, 뒷풀이 순으로 공연은 이미 흥미도가니속이다. 그중에서 풀피리와 안성남사당 바우덕이를 소개해보겠다.
풀피리는 도무형문화재 38호로써 보유자 오세철 선생님의 멋진 가락이 공연장 모두를 적신다. 악기 이전에 우리 동족끼리 신호의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다라는 설명을 곁들이고 몇 곡을 선사해주신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는 초청공연인데 과거 영화“왕과나”에 출연한 팀의 전수자로서 버나와 어름타기를 보여주었다. 본래 남사당놀이(男寺黨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꼭두쇠(우두머리)를 비롯해 최소 40명에 이르는 남자들로 구성된 유랑연예인인 남사당패가 농· 어촌을 돌며, 주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조선 후기부터 1920년대까지 행했던 놀이이다. 남사당패는 꼭두쇠를 정점으로 공연을 기획하는 화주, 놀이를 관장하는 뜬쇠, 연희자인 가열, 새내기인 삐리, 나이든 저승패와 등짐꾼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사당놀이는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이루어진다. 풍물은 일종의 농악놀이로 공연 시작을 알리면서 구경꾼을 유도하기 위한 놀이라 볼 수 있다. 버나는 중국의 접시 돌리기와 비슷하게 쳇바퀴나 대접 등을 막대기나 담뱃대 등으로 돌리는 묘기이다. 살판은 오늘날의 덤블링(재주넘기)과 같은 땅재주로,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름은 줄타기 곡예를 이르는 말로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것만큼 어렵다 하여 남사당패내에서만 쓰여지던 말이었으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덧뵈기는 탈을 쓰고 하는 일종의 탈놀이이다. 인형극을 이르는 덜미는 인형극에 나오는 중요등장인물에 따라 꼭두각시놀음, 박첨지놀음, 홍동지놀음이라고 부른다. 특히 꼭두각시놀음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통인형극이 남사당놀이밖에 없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처럼 남사당놀이는 서민층에서 발생하여 서민들을 위해 공연된 놀이로,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한과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서 비판하며 풀고,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익살스런 얘기들을 아이들이 들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흥을 더욱 돋구니 어쩔 수가 없다. 버나(대접돌리기)를 하는 두 남정네의 배꼽 빠지는 넉살에 한바탕 웃고, 어름타기(줄타기)는 어름산, 여고생의 아슬아슬한 연기에 가슴을 졸이고......., 아이구!!! 양쪽에 나무를 세워 3미터 가량의 줄을 세우고 여러 가지 잔재주를 부린다. 장단에 맞추어 재주를 부리는데 장단을 치는 매호씨와 재담을 주고받으며 줄을 잘도 탄다. 어름산의 잔재주로는 외홍잽이, 거미줄늘이기, 황새두렁넘기, 거중들기 등이 있다. 상춘객들의 감사는 한 가지 재주가 끝날 때마다 푸른 종이돈을 건네어 성의를 보여준다. 6학년 2학기 국어(읽기)교과서에 이동렬 작가의 “마지막 줄타기”는 어름산의 설운 일생을 묘사한 작품이 있다. 오늘 여기 온 어름산, 예쁘장하고 가녀린 줄을 타는 여고생과 교과서에서의 슬픈 어름산 얼굴이 오버랩되어진다. 오늘 남사당의 한마당을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 하였다. 센스 있는 우리 문화해설사님의 기지로 한마당에 어울렸을 떡과 머릿고기와 김밥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또 한번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모습이라하여 붙여진 불곡산 앞으로 투어버스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로 관아지로 우리를 데리고 열심히도 달린다.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라고 앞에서 양주를 소개했다. 이곳 관아지는 양주가 양주목으로 승격(1466년 세조 12년)된 후,1506년(중종 1년)부터 1922년까지 417년간 양주목사가 머물렀던 양주 행정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말끔한 동헌(東軒,1997년 복원)과 마당 입구쪽에 세워진 17개의 양주목사 송덕비와, 정자인 금화정(1996년 복원)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 정조가 3일 동안 머물면서 사냥연습을 했다고 기록되어진 어사대비 등이 남아있었다. 특히 원래는 마당 한가운데에 있던 곤장틀이 동헌 모서리로 자리를 옮겨져 있다. 뭔가 죄를 짓고 죄인이 곤장으로 매를 맞는 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현재 관아지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한 발굴이 진행중이었다. 관아지? 어휘가 다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가터!라고 명명했으면 더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양주별산대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전수관을 들렀다. 공연 일정과 우리의 일정상 놀이 한마당은 볼 수 없었으나 연습하는 전수자들의 땀을 볼 수 있었다.‘산대(山臺)’란 일종의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벌이는 놀이를‘산대놀이’라 한다.‘별산대’라는 이름은 200여 년 전 양주사람 이을축이 애오개(서울 아현동), 녹번, 구파발, 퇴계원, 사직골 등의‘본산대(本山臺)’와 별도로 양주에 산대놀이를 조직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늘 제대로 공부했다. 정기공연은 매년 5월초라 하니 다음주면 가능하겠다. 바로 옆에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2호인 향교가 있었다. 향교문이 3개가 있는데 문 가운데에 태극무늬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고 가운데문은 특히 신이 다니는 문이라 한다. 2개의 문은 동입서출,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서서쪽(왼쪽)으로 나와야하는 원칙이 있단다. 이는 중국의 유교영향중에 하나다.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교유기관이었다.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고 싶은 양민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학창시절 국사교과서를 열심히 외운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도 내고향 향교로 갔고 귀하게 여길 줄도 모르고 우리들의 놀이터였었지......, 그렇게 알고 찾은 향교는 유림들의 완강한 반대로 개방을 거부해서 외관만 보았지만 향교를 지키는 450년 된 12m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다보니 외과수술도 했다는 팻말은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담장너머 명륜당이 보인다.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웬지 향교와 어울린다는 (나)이준 엄마는 유교경전을 열심히 외우는 저기 저 꼬마가 아니였을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42명이라는 대식구를 인솔해준 3학년/1학년 (이)현규/슬비 엄마, 옆에서 보조를 잘 해준 3학년 (김)강진 엄마, 항상 예리하게 지적을 잘하시는 4학년/2학년 (김)지훈/성훈 엄마, 멋진 썬그라스의 미즈 4학년 (김)민주/선률 엄마, 미시엄마-학이엄마, 하늘색 코트가 어울린 2학년 (김)호진엄마, 학교일에 적극적(녹색어머니 총무)인 3학년/1학년 찬희/준희엄마, 마음이 넉넉하신 3학년 (백)은희 엄마, 조용하신 2학년 은서엄마, 공부를 많이 하고 오신 현근 엄마, 너그러우신 4학년 근하 엄마, 전학 온 3학년 해빈엄마 그리고 우리집 고성효....모두가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
첫댓글 홍명숙샘 좋은띰과 참 열심히 투워 했군요 덕분에 양주를 알리은 글 잘 읽었읍니다
제가 투어팀을 잘~ 만난덕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