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사항
제일 후미에 가는 사람이 곰넘이재로 탈출하였다. 산행 대장이 후미를 찾으러 떠났고, 마지막 일행은 산행 대장을 기다리느라 후미 기록이 늦어진다.
산행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를 읽고 있다. 3차 포에니 전쟁을 이기고, BC220년경 지중해의 패권을 이룬 로마 이야기다. 과일을 수북히 쌓아놓고 토요일, 일요일 로마의 세계로 빠지려는 게획이였다. 저번 주에 산행을 같이 하였던 김기하씨로부터 산행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눈속 산행을 염려해서 안가려고 하는 맘이 눈 산행이기 때문에 가보려고 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산악회의 산행은 대간의 들머리에 차가 들어가고, 산행의 안내, 지도 등을 산행대장이 준비해준다. 또 산을 타는 일행이 있다. 혼자서 산행을 할 때 보다, 열 배는 쉽다.
화방재에 차가 도착할 때쯤 싸리눈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다. 각반을 차고 방풍 겉옷을 입는다. 눈이 발등 높이까지 쌓여 있다. 태백산을 오르는 길은 임도로 된 길을 따라 걸었다. 임도가 끝날 때쯤 산신각이 나타난다. 단종대왕을 모시는 산신각인데, 만들어진 재료가 컨테이너이다. 짱이다. 태백산 가까이에 오니 산신각이 자주 나타난다. 이번 산행에서도 산신각과 천제단등 무속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다.
대간길은 유일사 절을 끼고 간다. 갑자기 산 중간에 전등불이 환한 곳이 나타난다. 유일사이다. 그런데 스키장 리프트 같은 기구가 있다. 등산로 입구가 흙이 소실되니, 아래에서 조금씩 흙을 퍼날라서 등산로에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앞 사람을 쫓아 위로 태백산에 오른다. 눈발이 조금씩 커지고 온도가 많이 내려갔는지 눈바람이 매섭다. 태백산 주목 군락지는 어린 주목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바람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산 정상에 오르니 돌로 만들어진 제단이 둘 있다. 앞으로의 무사고 산행을 빌어본다. “한배검”이라고 써져 있는 단은 규모가 더 크다. 평소에는 향불도 피우는가 보다.( ** 한배검은 환인의 아들 환웅이 3천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신단수 밑에 내려와 '신시'를 이루었다는 단군 신화에 의한 '천제'를 개천절에 봉행하는 제단)
등산로를 알리는 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매서운 바람에 얼굴을 할퀴는 것으로 태백산을 기억해둔다. 태백산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은 나의 키의 2배쯤 될 정도로 크다. 주위의 잔목들은 눈으로 덮혀서 덩어리들을 이루고 있다. 가지는 눈 바람이 쌓여서 바람방향으로 자라고 있는 중이다.
대간길은 부소봉에서 우회전이다. 부소봉이라고 써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선두가 문수봉 쪽으로 향해버렸다. 알바 시작이다. 앞으로 계속 전진해서 선두를 쫓는다. 한 1Km정도의 알바를 하였다. 부소봉에서 다시 대간길을 고쳐 잡았다.
눈이 조금 더 쌓여 발등을 조금 더 덮는다. 대간 길은 외길로 깃대배기봉까지 이어진다. 눈덮힌 산길은 처음이다. 리본은 눈에 묻혀 찾아보길 힘들다. 그렇지만, 길은 확연히 길이라고 느낄 정도로 앞으로 뚫려있다. 가끔 토끼 발자국이 보인다.
부소봉에서 깃대배기봉 까지는 거의 평원이라고 할 정도로 오르내림도 없는 평평한 곳이다. 깃대배기봉이라는 푯말이 적혀있지 않으면 봉오리라고 하지 않을 정도이다. 태백산에서 매섭게 몰아쳤던 눈보라도 그쳤다. 산죽과 얇게 덮혀 있는 눈길이 대간 길이다.
각화산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아침을 먹는다. 산행 시각한지 5시간 정도 되었다. 오늘 산행 기점 절반쯤 되는 곳이다. 세명이서 선두로 왔는데 한 분은 보온 도시락을 준비하였다. 또 한 분은 떡을 싸왔다. 난 김밥이랑 샌드위치인데, 추워서 김밥은 엄두가 안 난다. 주스와 샌드위치를 먹는데 차다. 추운 산속에서 먹는 식사로는 떡을 준비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신선봉으로 가는 길에서 춘양에서 시작했다고 하는 산군 4명을 만났다. 저렇게 소규모로 가는 산행도 괜찮아 보인다.
같이 온 두분은 걸음이 무척 날래다. 난 조금씩 지쳐간다. 걸음도 지루하다. 급한 것도 없겠다. 천천히 더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주위의 것들이 시선에 들어온다.
신선봉 정상에 오르니 “처사 경주 손공 영호지묘”라는 비석을 갖고 있는 무덤이 있다. 정상 표지석은 없다. 다만 등산로를 알리는 간판에 신선봉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산 정상에 떡 차지하고 있는 묘지는 처음 보았다. 무덤이라하면 조금은 서늘한 느낌을 주거늘 죽어서 저런 위치에 세울 필요가 있을까? 이런 곳은 아니라고 본다.
신선봉에서 조금 내려오니 방화선으로 능선길의 폭이 넓어져있다. 10 여년 정도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구룡산까지 소나무로 이루어진 방화선이 늘어선 것이 훤히 보인다.
신선봉에서 30분정도 내려오니 곰넘이재이다. 1시간 정도 내려가면 차 길을 만날 수 있다라고 써 있다. 탈출로이다.
계속 방화선을 따라서 구룡산으로 간다. 언뜻 대간 리본이 주위에 많이 휘날린다 싶어 고래를 들어본다.. 고직령이라고 써있다. 우측길 100미터에 신령각이 있다라는 코팅된 종이 표지가 있다. 목원대 표언복이라고 써있다. 고직령 내려가는 길은 찾아보기 어렵다.
구룡산을 오르려하니 다리가 풀린다. 더 천천히 올라간다. 구룡산 정상에 오르니 다른 산행객이 라면과 소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있다. 구룡산은 운무가 일품이라고 하는데, 간간히 내리는 눈으로 가까운 곳만 보이고 멀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 오늘의 산행 마지막 도래기재로 향한다. 도래기재 가는 산속에 우람한 소나무들이 들어 차 있다. 위 부분이 빨갛게 된 소나무이다. 적송인가? 조금 크다 싶으면 한 아름 반 이상이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자라서 힘차기 그지없다. 잡목들에 솟아 오른 소나무는 햇빛을 받기 위해 키만 키워서 가느다랗다. 소나무들을 열심히 디카에 담아보지만, 이 웅잠함을 디카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무리지 싶다. 아니, 나의 앵글 잡는 솜씨가 없을 듯 하다.
소나무에 취하고, 경치에 취하고, 천천히 걸어서 뒤에 오는 일행들을 만난다.
도래기재 1.8Km를 남기고 임도가 또 나타난다. 지도를 보니, 임도만 덩그러니 있지만, 임도는 산을 허물어 어디론가 끊이 없이 연결되었다. 이제 걸어도 30분 안에 오늘의 산행이 끝난다. 더 아쉬워서인지 천천히 걷는다.
1시30분 도래기재에 도착했다. 저 아래 철길이 보인다. 지도를 보니, 철길은 나와 있지 않다. 철길은 꾸불꾸불 돌아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도래기재 대간 입구에는 유난히 리본이 많이 달려있다. 먼저 오신 분이 냄비에 김치와 두부,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은 찌게를 끓이고 있다. 국물과 함께 한 그릇 가득 퍼서 먹으니, 피로와 추위가 다 가신다.
곰넘이재에서 탈출하신 두 분이 와 계신다. 이 두 분을 찾으러 산행대장은 눈길에 난 발자국을 쫓고, 산행 대장을 기다리던 후미는 더 천천히 산행을 해서, 후미가 4시간 이상 처지는 사건이 생겼다. 일행을 다 헤아린 샤크-존은 대전으로 방향을 잡는다. 난 잠을 청한다.
대전바위산장의 백두4차 산행은 도래기재에서 박달령, 고치령이다. 산행거리 30Km이다.
jay
=====================================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