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의 역사는 대략 기원전 6천 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인류의 역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더불어 세계 최초로 경질자기를 만들어 냈을 만큼, 우리의 도자문화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죠. 음식을 담는데 처음에는 나무그릇이나 바구니 등을 썼지만, 흙으로 그릇을 빚어 구워내는 방법을 알고 나서는 토기를 제작하여 사용
하였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수준 높은 토기는 부장용이 아닌 일상생활용일 것으로 추정되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기와나 와당에서 인용된 수많은 문양들은 현대에 와서 의상, 제품, 산업디자인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도깨비문양, 연화문, 인동당초 문양 등이 있죠.
옛 도자기의 우수성
<옹기에 버선을 거꾸로 붙여 놓았다. 이는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바람과 사람이나 귀신, 벌레의 접근을 막는다는 의미도 있다>
옹기는 진흙만으로 만든 질그릇과 유약(잿물)을 입혀서 구운 오지그릇으로 나누어집니다. BC 4,000년경 신석기시대부터 빗살무늬 토기를 시작으로 음식물, 곡식 등을 담아두는 저장용기로 발전하여삼국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우리민족 만이 사용한 아주 독특한 그릇이에요. 옹기의 단면을 확대해 보면 숨구멍이 뚫려있어 물은 스며들지도 빠져나가지도 않지만, 바람이 통하고 숨을 쉬게 하여 미생물이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여 발효식품의 변질과 부패를 막아줍니다. “옹기가 숨을 쉰다.”라고 하는 이유는 작은 흙의 알갱이가 섞여 있어, 굽는 과정에서 옹기의 벽에 구멍이 생기기 때문인데요. 옹기의 배가 부른 것은 한곳에 집중되는 햇볕의 열을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함이고, 내부온도를 균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한때 온 집안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당당한 모습의 옹기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김치냉장고와 정수기가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발달된 현대 물질문명의 산물도 천연재료를 사용한 옹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죠. 옹기의 보급을 위하여 이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사업자를 지원하고, 옹기생산업체와 함께 옹기의 우수성을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입증해야합니다. 그리하여 친환경적이고 정다운 옹기를 우리 주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고려 12c중반 세계최초의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매병으로, 구름과 학이 정교하게 상감 되어있다>
고려는 융성한 불교를 바탕으로 하여 최고의 청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초기의 우수한 청자가 강진을 중심으로 만들어질 때 조질(?)의 청자가 인천과 해남 등지에서 만들어져 일반 서민들이 즐겨 써왔는데 이를 ‘녹청자’라고 하죠. 서민의 필수용기인 토기에 자기유약을 입혀 굽는 혁신적인 녹청자 생산이 동시대에 이루어지고 토기에서 자기문화로 옮아가는 과도기적인 과정을 보여줍니다. 녹청자의 색깔은 녹색, 황갈색, 황록색 등 다양하며, 출토유물은 대접, 완, 접시, 자배기, 반구장경병, 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상류층을 위한 청자가 생산되기 이전에 녹청자는 지방수요를 위하여 오랫동안 생산되었다가 양질의 청자에 흡수되면서 자연소멸 되었어요. 1,000년 세월을 지하에서 잠들어있던 녹청자는 40여년전 발굴되면서 처음으로 녹청자의 이름을 얻게 됩니다. 명품으로서의 청자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나 고려인의 생활사를 폭넓게 이해하는데 녹청자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죠. 최근에 와서 녹청자의 우수성이 재조명되면서 일반인들에게 급속히 알려지고 있는데요. 녹청자는 도기질이며 옹기와 비슷한 특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청자의 가장 중요한 수요계층은 왕실과 관청, 그리고 대형사찰이었습니다. 중국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고려시대의 청자는 우리 나름대로의 것으로 자리 잡아 중국의 도자기와는 또 다른 색상(비취색)과 형태를 보이는 정교한 도자기입니다. 특히 상감청자는 금속에 사용되는 중국의 은입사 기술을 도입하여, 세계적이고 획기적인 기법을 만들어 내었죠. 필자도 상감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정교한 형태와 비취색 바탕위에 떠있는 흰색의 구름과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고고한 학의 모습은 천상의 낙원을 꿈꾸었던 고려인의 염원은 아니었을까요?
<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 조선16c 납작하게 두드린 병으로 물고기가 활달하게 그려져 있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준말로 청자와 같은 회흑색 또는 회색의 흙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하고, 회청색의 유약을 칠한 도자기를 일컫습니다. 거칠지만 서민적이고 대담한 필치로 그리거나 조각된 문양들은 우리민족의 자유분방한 생각을 담고 있죠. 무심코 칠한 흔적의 붓자욱이 선명한 귀얄분청은 우리의 소박함과 꾸밈없는 민족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분청사기는 조선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고 백자만 만들어지게 됩니다.
<백자달항아리. 조선18c. 조선의 달항아리 중 가장 잘 생겼다는 달항아리>
조선시대의 백자는 중국 경덕진 백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며 투명한 유약을 발라서 구운 최고의 자기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통하여 유능한 사기장을 많이 잃었는데요. 이를 도자기전쟁 이라 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일 것입니다. 일본은 16세기까지 미개한 토기문화권이었으나 이들 사기장을 중심으로 17세기나 되어서야 본격적인 자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찻잔은 우리민
족이 쓰던 막사발에서 비롯되었어요. 조선도공의 손으로 무심하게 만들어진 막사발을 일본인들이 탈취해가, 그곳에서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찻잔으로 쓰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네요. 이렇게 만든 이도다완은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화려하고 큰 도자기나, 그림이 복잡한 일본의 도자기와는 다르게 비취색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가진 고려청자와 풀 한포기와 매화 한 송이, 물고기 한 마리가 그려진 여백의 미가 있는 조선의 백자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백자 달항아리를 “너그럽고 넉넉한 천연스러움의 미학(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이라 하였습니다. 17~18세기에 경기도 광주의 분원에서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풍기는 도자기입니다. 크기가 커서 아래 윗부분을 따로 만들어 접합시켰으며, 만들고 굽기가 매우 어려운데요. 순백의 미와 균형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며, 높이가 40Cm이상 대형이고, 둥글고 유백색 형태가 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하죠. 서양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가장 많이 쓰는 것 중의 하나가 달항아리입니다.
세계적인 도자기의 메카라 불리는 한국
대한민국 도자기의 우수성은 현대에 와서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이천,여주, 광주를 세계적인 도자의 메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예가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전시회와 워크샵을 통하여 현대도예 문화의 질적 향상과 다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행남사나 한국도자기제품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각광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며, 울산에 외고산 옹기 엑스포가 열려 옹기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것도 반가운 일이죠.
강진은 고려청자의 메카로 자리 잡았으며, 정서진 인천에서는 녹청자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대한민국 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함이 아닐까요? 눈부시게 발전하는 한국의 도자기 산업 덕분에 이제 우리의 웬만한 가정의 식탁엔 최고급 식기인 국산 도자기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신토불이- 우리의 것이 최고라 했던가요? 이제 대한민국의 도자기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습니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좋은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의 욕구와 수준이 높아져 더 좋은 디자인의 제품과, 작품을 요구하게 된 것인데요. 사라진 장독대의 부활과 정화수 떠놓고 손 모아 기도하는 우리네 어머님의 모습은 보기 어렵더라도, 우리의 식탁에서 옹기 뚝배기와 녹청자 그릇에 밥을 담아먹는 소박한 꿈을 갖는 것이 과욕은 아닐 것입니다. 그 화려한 역사만큼이나 아름답고 우수한 대한민국 도자기의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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