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일본리포트] 야인시대 그리고 야쿠자와 한국여자들
2002-11-18 11:23
"야쿠자 대부분이 한국여자 애인으로 둬"
요즘 일본에 살고 있는 한인사회에서도 서너명이 모이기만 하면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야인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런가하면
일부 사람들은 '야인시대'는 일방적으로 한 사람을 미화시킨 '만화
같은' 드라마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또한 양식 있는 어떤 식자층은
요즘 돌아가는 국제 정세의 시류와 연결시키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본은 현재 북한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고, 그 북한과
같은 동족인 한국에서는 '야인시대'를 통해 일본을 마구 때리는
삼각구도의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일본인들은 입만 벙긋하면 북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일방적인 북한에 대한 비난일색이다. 게다가 귀국 초기, 과거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 다소 북한에 대해 옹호하는 발언을
하던 납치 피해자들이, 지난주부터 심경변화를 일으켜 북한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뒤부터는 상황이 180도 확 달라져 버렸다.
물론 이 같은 심경변화는,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끈질긴 설득과
일본정부의 납치피해자들을 이용한 북일 국교 정상회담의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외교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그동안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은 것이었다.
현재 일본국민들은 그 누구도 북한에 대한 옹호하는 발언을 할
수가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일본인들로부터 비난의 집중 포화를
맞는 것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의식조차도 없는 '천하의 죽일 놈'
으로 손가락질을 받기가 십상이다.
바로 이 같은 일본의 분위기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사실이건
미화이든 간에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통쾌하게 주먹을
날리는 한국인 건달 김두한의 활약(?)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드라마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들으며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은 본국인 들처럼 마냥 통쾌하지 만은 않다. 아니
통쾌해질 수가 없다. 일본의 현실이 그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 야쿠자 오야붕 밑에서 중견 오야붕 노릇을 하고
있는 한 재일 동포가 가소롭다는 듯이 울분을 토했다.
"아이구 저도 한국 아이들로부터 그 드라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겠지요. 그랬으면 하는 염원 같은 거. 하지만
나중에 김두한과 겨루게 되는 일본인 야쿠자 하야시도 사실은 조선
사람 아니었습니까? 드라마에서는 현재까지 모르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김두한이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거래까지 했었다고 해요.
언젠가 한국에서 건너온 형님한테 들은 적이 있지요. 그래서 그
하야시 오야붕은 일본 정통 야쿠자들로부터 이지메를 많이 당했고,
가끔 김 두한에게 그 울분을 토해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인 운운하며 일본인 악인을 상대로 김두한이 통쾌하게
때려눕히는 것 같이 그려 가는 것은 너무하지 비열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예요. 현재 일본 야쿠자
오야붕이나 그 조직원 중에 한국인 애인을 안 가진 사람이 드뭅니다.
얼굴은 일본 여자애들 비교도 안되게 예쁜 한국 아이들이 일본 야쿠자들
에게 오빠, 오빠,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어요.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옛날처럼 먹고살게 없어서 일본까지 와서
그런 짓 하는 겁니까?
아니예요. 순전히 쉽게 돈 벌어 호화롭게 살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 중에는 연예인 출신도 있고,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 애인도 가끔은
있습니다.
전 일본에서 태어나 공부가 하기 싫어 결국 일본인 야쿠자 밑에서
20년 넘게 일해 왔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이라고 코리언 클럽에서
일하는 한국 여자아이들만 보면 혈압이 끓어올라요. 그래서 틈만
나면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야단을 치지만 한국보다 일본이 더 좋다는
데는 정말 할말을 잃고 말지요."
코리안 클럽 우후죽순...日남자들에 온갖 교태 서글퍼
1984년 나는 어느 야쿠자 오야붕의 안내로 한달 동안 도쿄의
아카사카와 신주쿠 일대의 코리안 클럽 르포를 한 적이 있었다.
거의 매일 밤 코리안 클럽을 순회하며 취재를 했고, 낮에는 클럽에서
일하는 한국 아가씨들 집에 가서 그들의 적나라한 생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일본 야쿠자 오야붕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협박전화로부터 시작됐다.
나는 83년부터 서울 시내 모 지하 아케이트를 1년 넘게 취재하고
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영어로 사원모집 광고가 난 신문을 보고
찾아갔던 곳이 모 호텔과 인접한 지하 아케이트 상가 보석가게였다.
그런데 이상하더란다. 처음에는 외국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영어회화가 가능한 자신을 뽑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상점 주인이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시내 어느
호텔에 좀 다녀오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가서 만나보니 아랍에서 온 바이어였는데 자신을 콜걸로 불렀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그 친구는 기가 막혀 바이어에게 자세한
설명을 한 후 주인에게 따졌다고 한다. 그랬더니 주인 왈, 외국인
상대인데 누가 알겠느냐고 한 술 더 뜨더라는 것. 그래서 시작된
나의 취재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1년 넘게 잠복취재를 했다.
놀랍게도 그곳은 외국인만을 상대하는 콜걸 조직이 만들어져 있었다.
문제는 그 같은 콜걸 조직의 뒤에 일본 야쿠자가 깊숙하게 관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나서 알게 되었다.
"너 지금 취재하고 있는 거 당장에 그만 둬. 만약 계속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맷돌에 갈아 죽일거야."
이 같은 전화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걸려 왔다. 그래서
협박전화를 하는 남자에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튿날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서린 호텔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날 보자마자 가소롭다는 듯이 언니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내가 르포를 한다니까 건장한 체격에 외모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이런 계기로 우린 친해졌고, 얼마 후 일본 수상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니까 오야붕이 밥을 한번 산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예기치 않게 코리안 클럽을 한달 동안 취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놀란 것은 코리안 클럽의 실상.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당시 코리안 클럽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
여자들이 일본남자들을 상대로 술을 따르고 있었다. 문제는 일본인들의
한국 여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코리안 클럽이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한복을
입지 않는다. 대신 코리안 클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지금도
일본이 10여년 넘게 불경기인 관계로 아카사카나 신주쿠 일대의
빌딩에 빈자리가 생기면 어느 사이 그곳은 코리안 클럽으로 변할
만큼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코리안 클럽의 특징은 술값이 비싸다는 것. 보통 10여명에서 50명이상
한국여자들이 서비스를 하고 있는 코리안 클럽은, 1인당 2,3만엔의
입장료를 받고 한 달에 5회씩 무조건 손님을 동반하고 출근을 해야
한다. 일본어로 도항(동반)이라고 하는데 만약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월급에서 이를 제한다.
소위 매춘이라고 불리는 2차는 손님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라고 하는데, 경기가 나쁘다보니 코리안 클럽의
호스티스들이 2차에 매달린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행태를
보고 재일동포 야쿠자가 개탄을 한 것이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제 아무리 일본인들을 통쾌하게 때려 눕힌다해도, 정작 현실은
일본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여성들이 온갖 교태를 다 부리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금도 한복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면 코리안 클럽의 호스티스로
곧잘 오해를 받고 현대판 위안부로 비아냥을 듣는 한국여성들의 위상.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야인시대'를 바라보는 재일 한국인들의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yoo jae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