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 돼지국밥
돼지국밥 ‘밀양유래설’…부산 대표 음식
고구려-조선 시대 돼지고기 흔해
돼지국밥 유래, 명가들 밀양과 밀접
“한국전쟁 때 부산에 전래” 알려져
밀양 ‘단골집’, 부산 ‘할매국밥’ 등 유명
입력시간 : 2015/04/24 07:02:12 / 수정시간 : 2015.04.24 20:39:37
“여름철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었다. 돼지고기는 잘 상한다. 따뜻한 곳에 조금만 두면 쉽게 상한다. 이젠 이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냉장, 냉동기술이 발달했다.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다. 돼지고기가 상할 이유가 없다.
예전에도 돼지는 이래저래 찬밥신세였다.
인조 15년(1637년) 8월28일(음력) <승정원일기>의 기록이다. 지금으로서는 짐작키 어렵지만 국왕 인조와 영접도감(迎接都監) 사이에 “중국사신의 밥상에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로 대체한 일”로 약간은 심각한 이야기가 오간다.
“왜 (중국 사신 접대에 있어 전례에 어긋나게)돼지고기(豬肉, 저육, 제육) 대신 쇠고기[牛肉, 우육]를 마련했는가?”라고 묻는다. 대답이 이어진다. “청나라 사람들이 우육 먹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이번 칙사의 행차가 추운 계절을 당하였으므로 생선 따위의 물종을 구해 올 길이 없습니다. 매일 연향에 저육을 쓰는 곳이 매우 많아 부족할까 걱정되어 전날 반선에 우육을 마련하였는데 저육 두 근이 너무 소략한 것 같아서 우육을 한 근 더 마련한 것입니다. (중략) 혹 저육을 먹자고 청하거든 저육으로 바꾸어 주겠습니다.”
국왕 인조의 지시다. “이러한 때에 기르는 소를 허다하게 도살하는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고, 음식물을 더 주는 것도 타당하지 못한 듯하다. 한결같이 전일 천사(天使)의 예대로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우리나 중국 모두 쇠고기는 귀한 금육(禁肉)이었다. 소는 농사의 주요한 도구였다. 소의 도축은 엄히 금했다. 남는 것은 돼지, 양, 개, 닭 등인데 제사상 등에는 개를 사용하지 않았다. 양은 한반도에서는 귀했다. 그나마 만만한 것은 돼지, 닭 등이었다.
철종 9년(1858년) 11월에 중국인 21명이 풍랑을 만나 표류, 충남 태안군 의항에 입항했다. 비변사 조사 내용이 남아 있다. 조선 관리들과 선원들의 문답 중에 돼지고기가 나온다. 이들은 강남성 송강부 상해현 사람들로 봉천에서 곡물을 실어 강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풍랑을 만났다. 배에는 황두(黃豆, 노란콩=대두), 소미(小米=좁쌀)와 더불어 저육(豬肉) 등이 있었으며 가격은 은으로 수천 냥에 달한다고 했다. 중국의 경우도 돼지고기는 비교적 흔했다.
조선 영, 정조 이후 실학파들은 중국을 왕래하면서 많은 기록을 남긴다. 여기에도 식사 중에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내용이 자주 나타난다. 중국이나 조선 모두 “쇠고기는 금육이니 드물다. 그래서 비교적 흔한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식이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소 대신 돼지’인 셈이다.
중국 <북사(北史)> ‘고구려(高句麗)’ 편에는 좀 더 애틋한 이야기가 나온다. “혼인에 있어서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 바로 결혼시킨다. 남자 집에서는 돼지고기와 술만 보낼 뿐이지 재물을 보내 주는 예는 없다. 만일 여자 집에서 재물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수치스럽게 여기며 ‘딸을 계집종으로 팔아먹었다’고 한다.”
오늘날 같은 개량종은 아니지만 고구려 시절부터 돼지고기는 비교적 흔하게 사용했다. 애틋하다고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면 돼지고기와 술 정도만 보내고 결혼시킨다”는 글귀다. 결혼을 하면서 호화 혼수 때문에 말썽이 일어나는 우리 시대가 부끄럽다.
돼지고기는 비교적 쉽게 사용했지만 그래도 귀했다. 제사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사용 희생(犧牲)에는 생 돼지고기도 사용되었다. 제사는 관청 혹은 궁궐에서 잦았다. 국가기관 등에 고기를 공급하는 이들이 희생용 생고기를 납품하면 머리, 내장, 발, 껍질. 뼈 등 허드레부분은 남는다. 도축하는 곳 인근에서 허드레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나온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전래되었다”고 전해지는 돼지국밥은 진주와 밀양 등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진주는 비빔밥, 진주냉면이 시작된 곳이다. 밀양의 돼지국밥 명가들은 ‘밀양 돼지국밥 기원설’을 뒷받침한다. 대구나 부산의 돼지국밥집들 주인 중에는 밀양 출신들이 많고 가게 이름도 ‘밀양’ ‘밀양할매’ ‘밀양 아지매’를 붙인 곳이 많다. 영남지방에서는 어디나 흔하게 있었던 돼지국밥이지만 영남루가 있고 고기를 먹던 관청, 반가가 있었던 밀양이 비교적 돼지국밥을 깊고 널리 계승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밀양에는 ‘단골집’이 있다. 시장 통에 있어서 네비게이션도 길을 찾기 힘들다. 물어물어 찾아가서 만나는 작고 허름한 음식점. 밀양사람들이 인정하는 오래된 돼지국밥집이다. 가격이 싸고 분위기에 비하면 음식이 정갈하다. 정식을 주문하면 돼지수육과 국물을 같이 받는다. 상당히 깔끔한 음식이다.
밀양 무안면에는 ‘동부식육식당’이 있다. 역시 전통을 잇는 오래된 맛집이다. 100년의 역사, 돼지국밥의 원조로 손꼽힌다. 돼지고기와 쇠고기 뼈를 동시에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국물이 비교적 맑은 곰탕 느낌도 든다. 인근에 3형제가 운영하는 돼지국밥집이 몰려 있다.
부산에서는 60년 전통의 ‘할매국밥’과 초량의 ‘대건명가돼지국밥’을 추천할 만하다. ‘할매국밥’은 수육도 수준급. 어슷하게 썬 정갈한 수육이다. 국물도 툽툽하고 좋다. 고기 양도 많은 편.
‘대건명가돼지국밥’은 조미료와 첨가물이 절제되어 있다. 맑으면서도 뽀얀 색깔의 돼지국밥이다. 뼈를 오래 곤 경우나 머리뼈를 사용하면 국물색깔이 뽀얗게 된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출처 : 인터넷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