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나 할머니 증발 사건
“신부님, 저 신수산나 언니 신안나인데요, 오늘 아침 신수산나 미사에 왔어요?”
사계절 변함없이 월요일 새벽미사는 6시인데, 겨울에는 성당에서 하지 않고 사제관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보통 새벽미사에는 6-8명 정도 참석하는데 성당에서 미사드리기에는 형광등, 온풍기 등 허비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5명이 참석했습니다.
새벽미사를 마치고 한참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성당에서 꽤 떨어진 광주-목포간 큰 길을 건너 지석강 너머 마을에 사는 80세를 넘으신 신안나 할머니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이른 아침 할머니로부터 온 전화여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가까운 분이 돌아가셨거나 사고가 나지 않고서는 이렇게 일찍 전화가 올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서도 마음 속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신부님, 저 신수산나 언니 신안나인데요, 오늘 아침 신수산나 미사에 왔어요?”
“ 예, 오셨지요. 그런데요? ”
“ 수산나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직 집에 안들어 왔다고 하네요.”
“ 예, 그게 무슨 소리다요?”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24분이었습니다.
신수산나 할머니는 79세로 84세이신 돈보스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시어 성당에 나오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한달에 한 번 병자영성체를 하십니다. 그러나 수산나 할머니는 거의 매일 새벽이나 저녁이나 비가 오는 날을 빼고는 빠짐없이 미사에 참석하십니다. 그런데 80을 바라보는 연세이신데도 자전거를 타고 오십니다. 할머니 집에서 성당까지 할머니 걸음으로는 30여분, 자전거로는 10분 정도의 거리입니다. 언니 신안나 할머니 집하고는 한 참 떨어져 있습니다.
수산나 할머니는 오늘도 아침 6시 미사에 자전거를 타고 오셨습니다. 미사는 6시 30분경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언니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8시 24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동안 할머니 혼자 일찍 일어나 미사에 오셨는데, 할아버지가 잠을 깨서 보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고, 시계를 보니 이미 돌아와 있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여나 할머니에게 사고가 났는가 싶어 언니되는 신안나 할머니에게 연락을 했고, 다시 안나 할머니가 저에게 확인 전화를 하신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저는 전화를 끊고, 오늘 아침 미사에 나오신 분 중에서 신수산나 할머니집 부근에 사는 자매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자기가 먼저 성당에서 출발해 나왔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남의 집에 갔을 리 없고, 거의 매일 동네 노인당에 가시지만 역시 지금 시간에 가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거기도 아닐 것입니다. 언뜻 그분이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끼고 있는데,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소리를 못듣고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랴부랴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를 타고 성당에서 그분 집으로 갔을 만한 길을 찾아 큰길에서부터 골목길 등 여기저기를 찾아다녔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는데, 방금 전에 제 전화를 받았던 자매님이 어느새 걸어 나와 큰 길에서 할머니를 찾고 있었습니다.
점점 할머니 집 쪽으로 가는데 아무런 흔적이 없었습니다. 사고가 났다면 자전거 조각이던지 자동차 부스러기 등 사고의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남평읍 외곽 사거리는 사고가 자주 나는 곳으로 특히 아침에는 큰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여 혹시 사고를 내고 깨끗이 치운 다음 뺑소니를 친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할머니 집 가까이 왔으니 먼저 할머니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에게 다시한번 자초지종을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옛날 집이어서 대문은 안에서 빗장걸어 잠겨 있었고, 가운데 틈새로 보니 밖에서 밀지 못하도록 송판으로 대문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대문에서 방까지는 마당을 지나 꽤 거리가 있어 대문 밖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방안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여 자세히 대문을 살펴보니 대문의 양쪽 문이 가운데는 빗장걸려 있었지만 왼쪽 문짝이 왼쪽 벽에서 떼어져 있었습니다. 하여 왼쪽 문짝의 끝을 여러번 밀어서 벌어진 작은 틈새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당을 들어서니 어디에도 할머니가 타고다니는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걱정을 하면서 할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어 마루끝에 설치된 유리문을 두드렸습니다. 여전히 대답이 없다가 잠시 후 인기척이 나고, 할아버지가 나오셨습니다. 굉장히 쑥스러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 옆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모르고 연락했네요.”
안도와 함께 웃음이 나왔으나 행여나 할아버지가 죄송스러워하실까 하여 웃음을 참으며 얼른 마당을 건너 다시 그 좁은 대문 구석을 지나 나왔습니다.
대림 시기부터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아침 운동하라고 하신 것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한편,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이 들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저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의지하며 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옆방에 계시는 줄 몰랐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있어야 할 시간에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아 혹시나 무슨 사고가 났을까 불안해하시면서 급하게 연락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리고 할머니가 옆방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평화롭게 잠을 청하신 할아버지의 마음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돈보스코 할아버지와 수산나 할머니, 어느 분이 먼저 눈을 감을지 모르나 그 날까지 행복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아침부터 웃음을 주시고 좋은 생각을 하고 아침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12월 29일 월요일 행복한 저녁에.
첫댓글 하느님께서 운동 시키시는 방법도 여러가지 이군요. ㅋㅋ
드들강변 풍경 속에 신부님과 어르신들의 사시는 모습이 그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