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녹색갈증 (biophilia)이란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녹색갈증이란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사람들이 녹색의 자연을 좋아하고, 화분을 가꾸고,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것은 바로 그런 녹색갈증에 의한 동물행동학적 현상이다. 주위환경이 열악해지면 열악해질수록 인간의 녹색갈증은 간절해진다. 오늘날 우리 나라 메스미디어에서 증가되는 자연다큐멘터리 (이하 자연다큐)의 작품 수는 우리의 주변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환경에 대한 생명의 본질적 감성을 이해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접근하는 최초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LAW"로 요약되는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와도 같이 교육 (Lesson), 훈계 (Admonition), 경고 (Warning)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뉴스나 오락물과 달리 인간의 본질적 감성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고급 과학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효과적인 이해를 추구하기 위하여 "영상으로 본 과학", "영상으로 본 생태학"이라는 강좌를 시도하고 있다. 강좌 주제에 부합한 영화와 자연다큐멘터리를 재료로 하여 그 영상물의 배경 및 내용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분석, 그에 따른 과학의 장점과 단점, 영상물의 진실과 허구 등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준비된 수업 자료 및 핵심단어의 이해와 영상물의 감상, 그리고 종합토론으로 구성된다. 21세기는 영상의 시대, 21세기는 생명환경의 시대, 이러한 시대적 환경 변화는 생명의 본질을 다루는 강좌, 생태학의 역동적 기능을 요구한다. 따라서 생명의 삶의 얼개를 다루는 생태학에 대한 기초지식은 사회 전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며, 현대인의 녹색갈증은 생태학의 사회적 니-드가 크게 증폭하는 시너지 효과를 촉매하고 있다. 본 글은 자연다큐물을 이용한 대학강좌를 통하여 획득된 우리 나라 자연다큐멘터리 영상물의 교육적 목표 성취와 그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선생님과 감독님의 공통점
사람을 만든다는 교육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과정으로 구분하여 전략을 개발한다. 교육 내용 그 자체를 개발하는 일과 개발된 내용에 대한 이해와 전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내용의 가공이 그것이다. 교육 재료의 발굴과 진리탐구는 과학자의 몫이지만, 그 내용의 정확한 이해와 전달은 선생님들의 몫이다. 대체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선생님은 과학적 정보와 지식을 암기식 전달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피교육자는 선생님이 그 내용을 아는 지도 모르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선생님이 정확히 어떤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때, 피교육자에게 그 사실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다. 유능한 선생님은 정확한 사실 전달을 위한 수단과 방법의 개발에 관심을 가지며, 그런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학습의 효과를 높이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수단과 방법의 개발에 매우 게으른 편이다. 생태선진국 서방유럽 국가의 자연보호가 우리의 '자연보호'와 다를 바가 없는 진리이지만, 허리띠 두르고 쓰레기 줍기 식의 자연보호 캠페인을 통해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우리 식의 자연보호 교육을 시도하고 있는 OECD 회원국은 없다. 이런 현실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정황의 차이에서도 기인하지만,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에 매달리면서 보여주고 때우기 식의 그릇된 한탕주의와 결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제도 교육권 속의 선생님의 역할이 메스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작품감독과 다를 바가 없다. 선생님의 학습지도안 (syllabus)은 감독들의 콘티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학습지도안은 지식과 정보에 대한 내용 수록보다는 그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전달해야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전략전술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야 한다. 상세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선생님의 머리 속에는 그려져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다. 특히 다큐멘터리 (documentary)를 다루는 메스미디어의 감독들은 주제 전달을 위한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암기하려 하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암기식 또는 캠페인식 내용 전달을 시도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시간과 자금의 낭비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띠 두르고서 자연보호를 외치고 있는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연다큐 소재의 다양성
자연다큐는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자연생태계에서 지독한 인간간섭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생태계에서도 그 소재를 찾을 수 있는 소재 발굴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또한 규모 큰 자연생태계 또는 자연지역으로부터 한 종의 생물종에 이르기까지 자연다큐 소재의 수준 다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자연다큐 영상물의 소재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자연다큐는 자연이 잘 보전된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에는 잘 보전된 원시적인 자연생태계도 있지만, 지구의 한 구성원인 인간간섭에 의하여 유지되는 도시 및 경작지와 같은 인공생태계도 있다. 생명의 삶의 본질은 자연생태계 속에서건 인공생태계 속에서건 같기 때문이다. 점봉산의 늠름한 참나무 숲의 원시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경쟁과 공존은 청량리 오팔팔 거리의 시멘트 블록 틈에 사는 개미자리-은이끼군락이라는 식물사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잘 보전된 자연지역에 대한 수많은 야생 생물종을 나열시켜 슈퍼마켓형 자연다큐물은 그 지역의 자연성 또는 특이성을 시청자들에게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교육성이 결여되어 있는 자연의 원시성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영상처리하고 배경음악을 삽입한 영상예술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뿐만 아니라 자연자원 도굴꾼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편, 생명의 얼개, 즉 생명체의 생명환 (life cycle)과 생활형 (life-form), 그리고 생태계의 얼개 (food web)를 영상화 (visualization) 하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물론 영상화를 위한 기술적 난이성에 의한 어려움이 아니라, 그러한 생명환, 생활형, 생태계의 얼개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제작자들의 게으름과 제작비 및 제작기간의 제한에 따른 속전속결의 제작 관행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자연다큐의 소재는 주로 희귀한 것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한 다큐는 소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야생생물종 또는 생태계를 새로이 발굴하고 소개함으로써 마치 시청자들에게 미지의 지구 원시생태계에 대한 유럽 열강의 자연자원 약탈을 위한 16∼17세기의 박물학적 보고서와 같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알려지지 않음으로써 잘 보전된 야생생물종과 생태계가 자연다큐에 의해 자연파괴의 동기유발이 지적된 바가 있다. 한편으로 인간의 본능적 희귀성에 대한 집착은 결과적으로 다큐작품에 대한 시청자의 집중 (시청률)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이 희귀성에 대하여 우리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결국 지구생태계 속에서 흔한 것은 매우 드물고 희귀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식물종 4500여종 가운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종은 10%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수적으로 희귀한 식물종들이다. 즉 상대적으로 아주 위험하게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한 것은 흔한 데로 희귀하고, 희귀한 것은 희귀한 데로 드물다는 의미이다. 희귀한 것이 사물 그 자체의 수가 희귀한 것은 물론이지만, 희귀생물종의 그 생태 또는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우리가 아주 드물다고 생각하는 산삼조차도 아직 산삼의 얼개에 대한 다큐가 없고, 우리가 아주 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 땅의 주인 나무, 참나무 생명의 얼개에 대한 다큐도 없고, 우리를 상징하는 국화 무궁화에 대한 다큐도 없으며, 그냥 나쁜 놈인 바퀴벌레에 대한 다큐도 없다. 맹목적으로 무궁화가 국화니까 사랑해야 하고, 맹목적으로 허리에 띠 두르고 쓰레기 줍듯이 자연보호를 해야 하는가?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무궁화와 자연생태계에 대하여 그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 자연다큐의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과 그들의 몫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다큐는 시청률을 고려해야 하는 연애오락물이나 드라마가 아니며, 단순히 기간 홍보물도 아니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명이야기를 다루는 국민 교육 영상물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한다.
셋째로 동물공원 울타리에 갖혀 있는 코끼리와 사자를 보는 어린이는 신기한 동물을 보는 즐거움에 길들여지지만, 그 동물의 삶의 얼개를 이해할 수 있는 진한 감동은 받을 수 없다.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 노는 코끼리와 사자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어린이는 진한 감동을 받는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까치의 얼개를 이해하는 어린이는 자연을 사랑하지만, 매일같이 외국의 동물 다큐물을 시청하는 어린이는 동물을 재미의 대상으로 추구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집단은 결국 향락을 추구하다 멸망한 로마의 잔영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우리 나라의 자연다큐 방송물은 언제부터인가 외국 자연다큐물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비슷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된 오락이기도 하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생태계의 얼개, 생물들의 공존과 경쟁의 자연섭리 보다는 먹거리와 볼거리에 매달려 인간의 자연약탈 습성을 자극한다. 우리가 이 땅에 저절로 태어나 살고 있듯이, 저절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야생생물, 즉 신토불이 생물에 대한 자연다큐는 극히 드물며, 그것도 약탈의 대상으로 화면에 비추어지고 있다. 국민의 의식개혁을 위해서 백년대계를 위한 교육개혁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제도권 교육 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보다, 방송 자연다큐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났다. 진정한 국민의 교육개혁은 영어를 잘하고 천재, 영재 교육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지렁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지렁이의 몸부림을 설명할 수 있는 어린이 교육이 바로 교육개혁의 첫 단추이다. 뜨거운 손바닥의 체온으로 피부의 건조로 몸부림치는 지렁이를 관찰하고서 그 생명의 애처로움을 빗댈 수 있는 어린이,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된 사회는 진정으로 선진화 의식의 사회이오, 더 이상의 자연보호 띠를 두르는 캠페인이 필요하지 않는 사회이다. 일차원적 교육은 사람을 기계로 만든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황소개구리의 소문에 황소개구리는 바퀴벌레 처럼 막 잡아죽여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렁이를 만질 수 있는 어린이, 황소개구리를 생명체로 보는 어린이를 위한 진정한 국민 교육적 자연다큐의 제작이 아쉽다. 신토불이 자연생태계에 대한 우주성, 생명성, 환경성을 영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다큐 주제 및 내용의 전문성
자연다큐의 주제 및 내용은 당연히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제 및 내용의 일관성과 진실성은 자연다큐 제작자의 그 자연다큐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이해 수준에 크게 의존한다. 예를 들어, 조선 초기의 역사드라마의 화면 속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거나 시멘트 담장이나 전봇대가 나타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면 안된다. 코스모스는 1950년대에 우리 나라에 귀화한 외래식물이기 때문이며, 시멘트와 같은 도시 구조물은 최근의 건축재료이기 때문이다. 역사 드라마의 배경에 대한 고증으로 자연경관 및 환경에 대한 고증은 내용의 고증 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연다큐는 그러한 내용 및 배경에 대한 더욱 철두철미한 과학적 검증이 필수적인 영상물 분야이다. 따라서 자연다큐는 다른 영상물에 비하여 매우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둡고 촉촉한 곳을 좋아하는 생명체를 밝고 쾌적한 곳의 배경으로 촬영한 그림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진실을 왜곡하는 원인은 보통 무지에서 기인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다큐 제작의 전문성은 내셔널지오그래픽처럼 시간과 자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많은 시행착오와 전문가적 지식과 정보의 축적을 통해 보다 완벽한 자연다큐를 제작할 수 있다. 어찌보면 사회의 선진화에 비례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다큐를 제작하기에 매우 불리한 사회분위기에 놓여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긋이 기다려 주는 양반사회라고는 규정할 수 없는 자본주의 저잣거리 사회로 평가되지만, 이 틈바구니 속에서도 종종 작품성이 뛰어난 자연다큐물이 방송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창조성 또한 높이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닫는 글
자연다큐 영상물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너무 크다. 우리의 동물행동학적 녹색갈증 현상이 점점 더 증폭되기 때문이다. 또한 21세기는 제도권 틀 속에서의 교육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 정보통신의 시대로 도약할 것이다. 자연다큐 영상물은 그러한 영상 시대의 틀 속에 담을 최대의 교육적 자원이다. 한국의 자연다큐는 보다 훌륭한 교육적 자원으로써 기여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추구해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자연다큐의 주제 전달에 있어서 암기식으로부터 사고와 이해를 통한 주제전달을 위한 그 수단과 방법을 개발하여야 한다.
- 자연다큐 소재의 다양성을 위하여 소재발굴에 대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 자연다큐의 주제 및 내용은 일관성과 진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자연다큐는 시청률로부터 독립된 생명이야기를 다루는 국민 교육 영상물로 인식하여야 하며, 속전속결의 제작 관행을 탈피하여야 한다.
- 신토불이 자연생태계에 대한 우주성, 생명성, 환경성을 영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