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명산 금강산에서 우리가족 일행은 동해바다가 보이는 망양대를 뒤로하고 하산하던 도중에 길섶에서 약간 말라보이면서도 어수룩한 다람쥐 한 녀석을 만났다.
“아빠, 다람쥐가 도망가지 않고 자꾸 날 쳐다보고 있어요.”
“그럼 그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어 보렴.
아빠는 미리 알고 계셨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셨다. 아빠의 말씀대로 먹다 남은 쿠키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더니 내 앞에서 먹을 것을 받아먹고, 그래도 허기가 졌는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또 빤히 쳐다보았다.
“언니, 금강산 다람쥐는 북한 사람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굶는가 봐. 불쌍해 보여. 그렇지?”
맑은 눈을 가진 그 녀석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낀 내 동생은 배낭에 들어 있는 오징어를 꺼내 불우이웃을 돕는 심정으로 길바닥에 오징어 다리 두 개를 줄 세워 놓았다. 그런데 어디에서 왔는지 몸집이 좋은 녀석 한 마리가 또 나타났다.
“저 녀석들 제법인데. 우리가 조금만 예뻐해 주면 미국다람쥐를 능가하겠구나.”
“아빠, 미국 다람쥐는 뭐가 대단해요?”
“미국 다람쥐는 말이다. 사람들하고 너무 친해서 야단이야.
그리고 환경보호가 어찌나 잘되었는지 사람들이 먹이를 갖고 있으면 사람의 몸을 타고 올라와 손바닥 위에 놓여진 먹이를 먹고 나서 감사윙크도 한단다.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엄청나 말이 제대로 안나올 정도야.”
그 말씀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고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너! 오소리란 동물 본 적이 있니?”
재작년에 큰 고모와 함께 서울랜드에서 오소리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기억이 나요. 보면 알 것 같아요.”
“그래? 오소리 녀석 말이다. 먹을 것을 달라고 아빠 뒤를 자꾸 따라와 혼났어.”
“아빠도 두려워할 때가 있어요?”
“음… 있고말고. 그런데 말이야. 그 녀석이 자꾸 나를 따라와 쫓아 보낼 구실이 없어 혼났단다.”
“아빠가 그 놈에게 겁을 주던가 때려 주면 도망가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대꾸에 아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의 잘못된 생각을 은근히 바로잡아 주려고 애쓰고 계셨다.
“사실은 말이야. 그 녀석에게 줄 먹이가 없어 너무 미안했단다. 만약 너의 생각처럼 그 놈에게 돌을 던지거나 때리면 동물학대죄로 현장에서 체포를 당한단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그런 사람은 볼 수 없어.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단다.”
사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미국에 연수를 다녀오셨다. 그 당시 자연보호가 잘된 미국 어느 공원에서 겪었던 경험을 상세히 들려주셨다.
“그 공원은 자연보호가 너무 잘 되어 있어. 사람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면서 살아가고 있더구나. 그건 그렇고 근아! 우리나라는 어떠니?”
그 질문에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남한의 다람쥐는 사람들을 만나면 숨거나 도망가며 항상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 동네 다람쥐는 더욱 불쌍하다. 부주의한 사람들의 실수로 발생한 산불이 그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를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또한 수십?수백 년 동안 애써 가꾼 나무들이 삽시간에 산불로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헐벗은 산과 붉은 산등성이의 메마른 살집이 그냥 드러났다. 아름다워야 할 산이 보기 흉하고 무섭게 보였다. 장마가 오면 산사태가 걱정된다는 뉴스가 연일 방송되고 있다. 산 속에 철사로 감은 토사 방지용 돌무더기가 이 계곡 저 계곡에서 쉽게 눈에 띈다.
우리가족이 자주 찾던 초록봉도 예외는 아니다. 산행을 하다가 산바람을 쐬기 위해 쉴 수 있는 공간이나 예전에 있었던 고마운 그늘이 사라져버렸다. 숨바꼭질하면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준 위풍당당한 소나무들이 숯 덩어리로 변해있어 몹시 안타까웠다. 마치 탄광촌에서나 볼 수 있는 시커먼 산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속에서 어찌 배부른 다람쥐인들 또 동물인들 살수가 있겠는가?
문득 은유의 말이 떠올랐다.
“언니, 금강산 다람쥐는 북한 사람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 굶는가 봐. 너무 불쌍해 보여.”
“은유야, 사람이 살기엔 우리 남한이 북한보다 분명히 좋아. 윤택하게 잘살고 있으니깐 말이야. 그런데 동물들은 정반대야. 특히 남한 다람쥐는 너무 불쌍해. 우리 남한 다람쥐가 너무 가여워 죽겠어.”
지금까지 무심코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강산의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에게 접근했다는 은유의 말은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오염이 안 된 북한 금강산 다람쥐가 오히려 행복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젠 알겠어요. 북한 다람쥐가 어수룩하고 말라 보이는지 말예요.”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상식을 끌어들여 가족들에게 자연사랑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제가 연구한 북한 다람쥐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사이 우리와 함께 하신 할머니께서 나를 치켜 세워주셨다.
“여러분! 이근 박사님께서 ‘자연사랑?환경사랑’에 대한 특별강연을 해주시겠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그만 아빠 엄마도 꼼짝 않고 경청해 주셨다. 나는 더욱 신명이 났다.
“북한 다람쥐는 세계 제일 명산인 금강산에서 맑은 공기와 때 묻지 않은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요. 아름다운 금강산 경치를 살아생전에 구경하느라 일만 이천 개의 봉우리를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단련된 맵시 있는 몸매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 가족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마치 세계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 소속의 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우리 동네 다람쥐는 지난번 산불로 다 죽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가 무서워 살기 좋은 명산으로 이사를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가뭄에 콩 나듯이 볼 수 있었던 우리 동네 초록봉 다람쥐는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북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탈북을 하고 있다면, 남한의 동물들은 올무가 무서워서 아니면 총을 가진 포수나 산불이 두려워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의 터전을 버리고 월북한 것은 아닐까?
“아빠, 언니의 말을 들으니 불쌍해 보이는 쪽은 분명히 남한의 다람쥐네요. 자연사랑?동물사랑은 이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어요.”
우리가족 모두의 결론을 은유가 대변하자 아빠는 막내딸이 대견해 보였는지 기분이 좋을 때 늘 하셨던 것처럼 은유를 아빠의 두 팔에 안아 주위를 빙빙 돌면서 ‘신?신?신난다!’를 연달아 외치셨다.
그러자 조용하셨던 엄마는 침묵을 깨고 내편을 거들었다.
“자연사랑에 대한 우리 집 일등 공신은 큰딸 근이 예요.”
나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빠 엄마가 있으니 우리 집 큰딸이 있고 큰딸이 있으니 작은 딸이 있잖아. 우리 집 큰따님! 그렇지 않습니까?”
엄마의 말씀에서 부모님은 가족 모두의 사랑과 평화를 늘 염원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었다. 평소처럼 엄마는 당부의 말씀도 잊질 않고 해주셨다.
“지난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대한민국의 하나 된 힘을 이제부턴 자연사랑?환경사랑에 쏟아 또 한번「필승! 코리아」를 전 세계에 과시했으면 한다.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위대한 국민이야. 우리 가족부터 시도해보자꾸나.”
그러자 아빠는 엄마의 말씀에 힘입어 가족 모두의 대화를 쉬운 표현으로 결론을 맺어 주셨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가 자식을 아낄 때 그 가문은 번성한단다. 자연의 이치도 똑같단다.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고 아낄 때 자연도 우리를 보호해 준단다. 그러할 때 하나뿐인 지구를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물려 줄 수 있질 않겠니? 산불이나 올무가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을 쫓아버린다면 자연은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갈 거야.”
“아빠! 그러면『자연사랑 = 인간사랑』이란 환경보호공식이 성립하네요.”
“그래. 그래. 제대로 맞추었다. 근이가 정말 대단하구나. 방금 근이가 말한 공식을 우리 모두의 진리로 받아들이자꾸나.”
아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내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셨다. 무게가 실린 아빠의 말씀과 입맞춤에 갑자기 애국심이 불쑥 솟아났다.
금강산처럼 자연보호가 잘된 환경 만들기에 앞장을 서겠다고 다시 한번 굳게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저를 태어나게 해주신 엄마 아빠와 내가 숨쉬고 있는 자연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