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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청소년 문학상 운문부
장원 작품
단풍
/ 금산동중학교 1학년 김예림
해가 조금씩 조금씩 기울어진다
오후 내내 햇살을 머금던 단풍은
해가 지는 지도 모르고 붉게 타고 있다.
어둑어둑한 밤 놀다 지친 아이들이 길을 잃을 까봐
해가 지는 지도 모르고 붉게 타고 있다
어둑어둑한 밤 행여나 별들이
높고 높은 가을 하늘에서 숨바꼭질하고 있을까봐
해가 지는 지도 모르고 붉게 타고 있다
차상
새엄마
/복수중학교 2-1 길예진
어색하기만 했던 첫 만남
마주칠 때마다 하는 말은
‘안녕하세요?“
나에게 사사로운 이야기 거리로
말을 걸어 놀 때마다
어색한 미소로
어영부영
갑자기 닥친
낯 설은 다른 사람
나의 편견일까
나의 오해일까
아직도 마주치면 어색하고
그녀도 날 편하지 않은 듯
둘 사이의 벽을 허물 때까지
나의 마음을.....
차하
할머니 거친 손
진산중학교 3학년 권이슬
나무 껍질 같은 할머니의
거친 손은 차암 부드럽다
밭일을 해서 갈라지고
겨울이 돼서 더 튼
할머니의 거친 손이
아픈 내 배를 쓸어 내리면
까칠까칠한 할머니의 손길이
너무 좋아 차암 따뜻하다
아아, 겨울이 되면
더욱 그리워지는
흙물 든 할머니의 수세미 손
난 그런 할머니의 거친 손이 차암 좋다
차하
밤 길
/제원중학교 3학년 백한나
밤 길
홀로 걸어
더욱 쓸쓸한 길
산새도 산짐승도
사라져버린
정적이 흐르는 외로움
시작의; 아침 때문일까
소란스러운 낮 때문일까
더욱 고요한 슬픔
희미하게 비치는 달이
동무 될 길 없어
더욱 서러워진
사라져라, 사라져라,
울며 애원해도
사라지지 않을 달
어두워, 어두워,
서글프나
희미한 달 있어 더욱 쓸쓸한
그 밤 길
참방
색깔 물든 땅
복수중학교 1-1 박소연
개구쟁이 아이들
자기보다 훨씬 큰
키다리 나무를
열심히 잡고 흔드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잎, 은행잎
어느새 땅은
색깔 물든
땅이 되어 버렸네
아이들 머리위도
염색이 됐네
머리를 세차게
흔들 때마다 떨어지는 잎들
이 예쁘고 아름다운 땅을
만든 사람은
유명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닌
개구쟁이 아이들 이였네
참방
강물/ 금산고등학교 2-4 한 상일
바다를 모르는 강물은
자신이 바다인줄 알았습니다
깊은 지하 지하수로 웅크렸을 때부터
파랑새의 지저귐을 들을 때부터
물고기의 힘찬 떨림을 느낄 때부터
자신이 보석 담은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바다를 모르던 강물은 마침내 바다가 되었습니다
흐르고 흘러서 더러워진 후에
끝없이 넓고 깊은 바다를 본 후에
자신은 바다라는 아름다운 착각 후에
상처까지 보듬어 줄 바다가 되었습니다
참방
장미 없는 안개꽃 다발
/금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4반 김민희
당신에게 드릴 꽃다발에는
빨간 장미란 어울리지 않지요
저녁에 지는 붉은 태양 같은 빨간 장미보다
새벽녘 하늘에 떠오르는 분홍빛 장미가 더 어울리지요
하지만 당신께 드릴 꽃다발에는
분홍 장미는 없지요
오직 당신은 닮은 안개꽃만이 있지요
하늘하늘 가녀린 줄기에
보는 사람마저 순결해 지게 하는 하얀 꽃
하늘에서 내린 눈 같은 그 꽃만이 있지요
수줍게 내민 안개꽃 다발에
당신의 얼굴은 분홍빛으로 물들지요
그제야 완벽한 꽃다발이 완성되지요
당신에게 드릴 꽃다발에는 분홍 장미란 필요하지 않지요
내 마음을 담아 보여줄 분홍 장미는
한 송이 뿐이지요
참방
금산중학교 2학년 길도현
할머니 얼굴을 보면
내가 그려 놓은 주름살이 있다
할머니 머리를 보면
내가 색칠한 하얀 머리가 있다
그렇게 사랑해 주시고
그렇게 예뻐해 주셨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시간이 가기 전에 멍이든 할머니의
마음속을 달걀로 살살 문질러 드려야겠다.
참방
시골냄새
/금산중학교 2학년 양현진
가을에
벼 타작하러
할머니댁 가면
할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냄새
밭에서 힘들게
일하시다 돌아온
가족들 옷에서 풍기는
지독한 땀냄새
할아버지 따라
외양간 갔다가
맡게된 코를 찌르는
거름냄새
하지만
시골 냄새 가득한
할머니 댁엔
그만큼
인정도 넘쳐
제11회 금산청소년문학상 작품
장원
외팔이 인형
/금산동중학교 2학년 2반 이예종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내 생일은 맞아 온 가족이 대전으로 외식을 하러 나갔다. 잔뜩 기대에 부푼 나에게 엄마는 식당에 가기 전에 내 선물을 사려고 하셨는지 어디에 가고
싶으시냐고 물어 보셨다. 어린 나에게 그 당신 선물 가게는 지하상가 천원 상점이면 더 부러울 것이 없는 곳이었다.
엄마는 자주 아린 내 손을 잡고 그 곳에 데려가 주곤 하셨다. 인형 공책 유리 공예품 등 어렸을 적엔 사는 것보다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예쁜 물건들이 많은 그 곳이 좋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고를까 한참을 고민하고 서 있는데 옆에서 유리 인형을 조그만 손으로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던 동생이 그만 실수로 그것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당황한 나는 얼른 깨진 인형의 팔을 주워들고 원래대로 팔을 붙여 놓았다. 어찌나 떨리던지.... 다행히 처음처럼 붙여놓을 수 있었고 건들지만 않으면 아무도 모를 만큼 감쪽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저것 둘러보는 철없는 동생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고는 동생을 번쩍 한고 아무것도 아닌 척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게시던 아저씨께서 나를 휙 쳐다보셨다. ‘ 다 봤을까?’, 내가 나쁜 짓을 해서 나를 잡아가지는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났다.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우선 들키기 않고 이 곳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애써 떨리는 발걸음을 옮겨 엄마에게로 갔다. 내 생일 선물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로....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섭고 떨려서 무엇을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음이 나는 일이다. 천원이 얼마나 된다고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다면 당장이라도 물어주었을 텐데, 어린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양심의 가책이었다. 떨어져 나간 인형 팔이 내 양심으로 느껴졌다.
얼마 뒤 다시 간 그 곳에는 팔이 떨어진 인형은 없었다. 뒤늦게 깨진 것을 알고 주인이 버린 걸가? 아니면 누가 사 간 걸까? 하지만 팔이 떨어진 인형을 살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그 가게에 갈 때마다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곤 했다.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한 행동을 아실 거야’ 하는 생각에 얼른 자리를 떴다 천원 상점은 지금 없어지고 그 뒤에 옷가게가 생겼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난 예전의 천원 상점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는 내가 자신의 양심에 졌지만 이제는 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 때문에 빙그레 웃음이 피어난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도 지금 와서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비록 직접 말씀드리진 못하겠지만 어린 날의 실수를 용서해주셨으면 한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은 한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반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양심을 속이는 비겁한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것이 나쁜 습관으로 지속될뿐더러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빠지게 할 것이다. 거짓은 언젠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앞으로는 어린 날처럼 자신을 버리는 행동을 하지말고 진실을 말하는 용감한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가끔 그 인형이 궁굼 해 진다. 그 인형은 내가 미웠을 것이다. 그 인형도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존재였는데 깨지는 동시에 행복한 삶은 사라진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떨어진 팔 한 쪽을 보며 울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인형아 미안해.
산문부 차상
복잡한 이 지구가 재밌는 이유
/금산여자중학교 1학년 1반 조상은
“이상으로 종례를 마치겠어요. 건강한 모습으로 개학날 보도록 해요.‘ 내 생애 잊지 못할 14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두 손 가득 넘치는 과제 유인물 이미 머릿속에서 삭제된 지 오래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서울 이모네 집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벌써 친척들과 놀 생각을 하니 웃음이 새 나온다. 이 세상 모두가 내 소유라면 이런 기분일까?
“엄마 나 다녀올게, 이제 가.”
“가면 꼭 전화해, 그리고 터미널로 이모랑 나래 나온다니까 대전쯤 가서 이모께 전화 드리고.‘엄마는 나 혼자서 보내는 게 마음에 쓰이신 지 자꾸 쳐다보신다. 버스에 앉았는데 이제 한달 동안 엄마를 못 본다는 생각에 갑자기 슬퍼져서 엄마가 점이 돼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 잠이 들었다.
“나래야 나 다 왔는데 너 어디야?
빨간 간판 분식집...보인다 나래야!“
우리는 50년 만에 상봉한 이산가족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호들갑을 떨어댔을 때 이모가 저 뒤에서 걸어오셨다.
“이모 안녕하세요? 이번 여름방학에는 제가 왔어요. 보고싶었어요.”
이모께 인사를 드리고 정신 없이 수다를 떨다 나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가 다닐 수영장에 나래의 친구인 은혜도 보고 첫 수영 수업이기 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졌다. 서울에 놀로 왔을 때 자주 드나들던 건물인데 왜 이렇게 입구가 웅장해 보이는지.... 그렇게 느낀 건 나만이 아닌가 보다.
“오늘따라 입구가 무척 커 보이지 않아? 왠지 기죽는 느낌이 들어.”
“나도 내가 수영을 배을 수 있을지 걱정이 돼.“
여기서 나까지 이러면 수영장에 앞으로 못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나래와 은혜의 등을 떠밀었다. 접수번호를 말하자 우리는 초급반에 배정이 되었다.
초급반에는 나까지 13명이었다. 잠시 후 나타난 선생님은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 소개할 시간을 주었다.
“다들 친하게 지내도록 해요.”
코치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드디어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입구에서 못 들어간다고 주저앉았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래는 활달한 얼굴이었고 은혜는 자꾸 어느 쪽을 힐끔거렸다. 어딜 그렇게 쳐다보나 은혜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니 키가 크고 잘생긴 오빠였다.
나도 모르게 그 오빠를 자꾸 쳐다보았나 보다.
“상은. 저 오빠 잘 생겼지? 나 저 오빠 알아. 좀 친한데 우리 이번 주 토요일에 수영 알려달라 그럴래?”
“진짜? 빨리 가서 말하고 와.”
내 말에 한걸음에 달려간 나래는 오빠와 몇 마디를 나누고 웃으며 우리에게 사인을 보냈다. 드디어 내 인생에도 꽃이 피는구나.
드디어 토요일. 아침부터 우리 둘이 흥얼거리며 수영 가방을 챙기자 이모께서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우리는 애써 웃음으로 대답했다. 오빠는 두시가 조금 지나서 나타냈다.
‘오빠, 지각했잖아요. 약속시간은 두신데, 늦었으니까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래, 근데 조건이 있어. 너네 셋 다 열심히 연습해서 이번 진급시험을 치르도록 해.”
오빠의 한마디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우린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빠가 열심히 가르쳐 준다고 하니 무조건 한다고 했다. 억지로 했다해도 어쨌거나 오빠의 수영지도는 매우 즐거웠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진급시험도 문제없이 여겨졌다.
“너희 정말 진급 시험 신청했더라? 자신 있니?‘
“네 , 있는 건 자신감 밖에 없는 걸요?‘
“좋아. 열심히 해라. 그 날 심사위원에 나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 날 셋은 모처럼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연습이 마칠 무렵 갑자기 오빠가 나타났다.
“너희들 열심히 연습하던데? 아까부터 보고 있었어.”
“오빠, 오빠는 저희 셋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은혜였다.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나 당황도 했지만 오빠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너희 셋. 난 다 좋아. 누가 덜 좋고 더 좋고 그런 거 없어. 하나같이 다 귀여운 동생인걸.“
난 말없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탈의실에 와서 옷을 갈아입으려는 나래가 입을 열었다.
“오빠. 너희 다 좋아하고 있지” 누굴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넌 알아? 혹시 너야?”
“아니 나도 아니야.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코치선생님이야.”
코치 선생님이라니 도무지 나와는 라이벌이 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럼 답장 같은 건 안 하겠네. 오늘쯤 답장 올 거라 생각했는데.”
“오빠한테 관심한번 받아 보려고 편지까지 쓰다니 박은혜 엉큼해.‘
“그래도 나 이제 오빠 잊을래. 코치 선생님에 비하면 난 상대도 안되잖아.”
“나도 사실 난 오빠 좋아하면서도 우리 우정에 금가는 거 싫었어. 가금이지만 너희들이 원수같이 여겨지기도 했는걸.”
은혜에 이어 나래까지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도 다 그랬다니 나도 고백할게. 오빠가 나만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도 너희랑 멀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
“그래, 그럼 우리 셋 다 오빠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한사람을 같이 좋아하지 말자. 우리 우정만큼 소중한 건 없으니까.”
그래 이건 연습이었어. 생각해보니 정말로 오빠를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아. 좀더 자라면 더 멋진 사람을 만날 거고 그땐 진짜로 좋아하게 되겠지 그래서 더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게 될 거야. 아픈 만큼 더 단단해지겠지. 이렇게 복잡한 지구가 재밌은 이유는 바로 친구들과 함께이기 때문 아닐까? 나래야, 은혜야, 언제나 함께 하자. 나의 에너지는 너희들이니까.
차하
성장통
/금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5반 신보경
“친구라는 건 그런 거야 너의 마음에 조용한 타이름과 다독임을 주는 것. 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너를 외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친구가 아니란다.”
이 말을 듣게 됐던 그 일이 있은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조금은 내 신분에 어긋난 행동과 모습. 다른 이들의 눈으로 나를 본다면 그것은 불량 학생이었다. 내가 만나는 친구들의 모습도 나와 다를 건 없었다.
서로 닮은 아이들이 한 명, 두명 모이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같은 모습을 한 채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가지 모두 다른 우리들 하나씩 떨어뜨려 놓으면 보잘 것 없고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일 뿐이지만 모여서 ‘우리’ 라는 이름으로 묶여지면 소위‘ 집단 ’이 되어 버렸다.
다른 학생들에게 집단의 일부인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또 어떻게 위협이 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 일 것이다.
물론 똘똘 뭉쳐진 그 속에서도 왕따라는 게 존재하고 분열이란 게 존재했다.
강해 보이고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우리’라는 집단은 갈등으로 무너져 가는 겉만 화려한 빈 껍데기였다.
‘개 요새 짜증나지 않냐?“
“응? 응...그런 것 같아”
“말하는 것도 짜증나고 그냥 개보고 있으면 답답해”
‘어?... 나도 그래“
우리 집단 사이에서 어김없이 누군가의 욕이 시작되었다.
“우리 그냥 걔랑 놀지 말까?‘
“근데 그건 좀....”
“뭐, 불만 있어?‘
“아, 아니!”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 아이와 친구인데, 분명 우린 웃으면서 같이 밥도 먹고 서로 챙겨주면서 늘 즐거웠는데, 왜 나는 그 친구를 지켜주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다른 아이의 말을 따라 내 친구를 싫어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 같은 친구인데...하지만 마음속의 외침과 달리 내 입에서는 이미 다음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근데 니 말처럼 요새 좀 건방져지기는 했어”
‘미안해 이렇게 약한 내가 미안해.’
그 대화가 오간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 아이는 이미 우리의 친구가 아니었다. 함께 했던 시간이 어쩌면 그렇게 금방 허물어지는 건지 난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왜 함께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후속타로 정해진 내 처지가 시작된 것도 그쯤이 아니었을까.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 내 기분은 이렇게 초조한 걸까? 나를 빼놓고 수군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어딜 가든 날 불러주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갑자기 내 말에 반응해 주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난 지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불안한 걸까?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내가 예민한 탓이겠지, 혹시 내 욕을 하고 있는 걸까? 나도 왕따가 되려나?’
갖가지 생각들은 내 머릿속을 마음껏 휘저었고 난 그 생각들을 막을 수도 막을 기력도 없었다. 내 신경은 온통 수군거리는 말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우울해지고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나는 아이들과 멀어졌고 더 이상 ‘집단’의 멤버가 아니었다. ‘왜’인지 ‘어째서’ 인지도 몰랐다. 그냥 내가 외톨이가 되었다는 것만 알 뿐..... 돌이켜보면 그저 어린아이들의 장난처럼 느껴질 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끔찍하고 또 무서운 일이었다.
흔히 학창시절 친구가 제일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몇 년 전의 내 집단 친구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나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나에게 진짜 친구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을까? 여태 나는 뭘 하면서 지낸 걸까? 밥을 혼자 먹게될 때면 서러워지고 가방을 챙겨들고 교문을 나설 때 옆에서 재잘거리는 친구가 없어 슬퍼지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왔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아침이 오길 거부하다 해가 뜨는 아침을 고스란히 지며보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어느 비 오던 날 .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는 진짜 믿을 수 있고 아끼는 친구가 있어?’
“응? 갑자기 무슨 말이야?”
“모든 걸 함께 나누고 싶은 친구가 있냐구?‘
‘솔직히 말해서 엄마는 없는 것 같아“
‘에이, 여태 뭐했어!’
“친구라는 건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응?‘
“친구 관계라는 건 정말 예민해. 조금 신경 써주지 않으면 무너지고 사소한 오해에도 쓰러지지 . 말장난 하나에도 틀어지는 게 친구 사이야 알아듣겠니?‘
“아니....잘 모르겠어”
‘니가 울 때 요란하게 달려와서 위로해주고 겉으로만 ’친구‘란 이름을 달고 다니는 건 친구가 아니야.“
“친구라는 건 그런 거야. 너의 마음에 조용한 타이름과 다독임을 주는 것 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너를 외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친구가 아니란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그때까지 갖고 있던 생각과 나의 마음을 따갑게만 만들던 추억과 상처들이 한꺼번에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나는 몰랐을까. 나는 친구들에게 버려진 것이 아니라 그저 무리에서 벗어난 것뿐이었다. 그 뿐이지 더 아파할 이유도 슬퍼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츰 내 마음은 안정되어갔다. 그러면서 예전처럼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나와 다른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더 배워가고, 알아가고 깨달아가며 우리는 지난 시간을 잊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자라고 성숙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서로를 헐뜯고 비웃고 상처를 주던 우리는 더 이상 없었다.
누군가의 뒷 담화가 아닌 평범한 수다로 서로를 배려하고 한 걸음씩 물러서는 우리가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우리에겐 믿음이라는 게 생겨났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무척 행복해졌다.
모두가 겪을 수도 있는, 아니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난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언제나 많은 걸 생각하게 된 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웃어주자. 받는 걸 바라기보다 주는걸 좋아하자 그럼 진정한 친구는 생긴다.’는 믿음 말이다.
인생에서 두 가지를 얻으면 성공한 삶이라고들 한다. 첫째는 진정한 사람이고 , 둘째는 진정한 친구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내게는 진정한 친구가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하
쭈글이감
/금산중학교 2학년 박준세
올해에는 여름더위가 왜 늦은 지금이야 극성을 피우는지 새벽잠을 설치다 결국 이른 아침 강아지와 산책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기한테 물려 부은 얼굴을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지만 밖에 나가보니 자욱한 안개가 내 얼굴에 스며드는 상쾌함에 푹 빠져버렸다. 옆에 있는 우리 집 강아지도 시원한 듯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잠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아이고 이 녀석 너도 시원하냐?’ 하며 헛웃음을 치며 어디를 갈지 곰곰이 생각을 했다. 마땅히 가 볼 곳도 없었지만 문뜩 얼마 전 친구들과 매미를 잡은 나무가 생각나 한번 가보기로 했다. 맴맴 울던 매미 소리도 언제부턴가 사라져가고 안개 속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나무 매미가 울던 자리에는 매미 대신 노란 갑주백목이 보였다. ‘어 감나무였잖아? 근데 저감.. 나중에 홍시가 되면 내가 먹어야지.. 생각하던 중 내 머리에 스치는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다. 금산 작은 시골마을 부리면에 사시는 우리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생 때 생을 마감하셨지만 나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도 나와 함께 9월 추석이 다가오면 자동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친척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쁨과 기대로 할머니 댁에 찾아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을정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게신 노인 분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 나는 자동차 창문 사이로 혼을 흔들며 ‘안녕하세요!“ 소리쳤다. 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히히 역시 내가 1등이야, 친척들이 오면 놀래켜 줘야지‘ 하며 숨을 곳을 찾아 눈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차에 내려 할머니 얼굴만 보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나와’할머니!”하고 소리쳤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아이고 내 새끼 왔어?‘하며 나를 꼭 끌어안아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셨다. ’할머니 숨이 막혀요‘ 하며 옆을 바라 볼 때면 대문 옆에서 오뚝이 마당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 감나무는 나뭇잎을 쉬아쉬야 흔들며 나를 맞이해 줬다.
그러다가도 할머니께서 친척들과 장난으로 하신 고스톱에서 이기시며 그 돈으로 가서 눈깔사탕을 사먹으라며 주신 100원을 가지고 그저 기뻐 뛰어다니던 철없는 내가 배고프다고 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리면 할머니는 어디선가 긴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는 감나무에 수많이 열린 감 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홍시 하나를 선택해 툭툭 치셔서 내게 주면 나는 “할머니! 이거 쭈글쭈글해 히히 꼭 할머니 같아, 그럼 이건 쭈글이감이네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할머니의 주름진 손은 쭈글쭈글한 손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스한 손이었다.
또 내가 감을 따본다고 하면 할머니는 대나무를 건네주시고 나를 지켜보셨다.
내가 대나무를 들어 하늘을 봤을 때 정말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 아래 감나무에 잎은 없었지만 햇빛이 감을 더 탐스럽고 빨갛게 만들어 주었다. 그 아름다움에 빠진 나도 모르게 감을 떨어뜨려 얼떨결에 할머니 얼굴을 보면 주름 속 그윽한 웃음으로 나를 다시 웃게 해 주었다.
감을 다 따고 친척들과 함께 감을 먹을 때면 친척 동생과 나는 서로 자기가 땄다며 자랑을 해댔고 아까 할머니가 딴 쭈글이감이 할머니와 닮았다고 내가 말하자 모두들 똑같다며 포복
절도했다.
그렇게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성묘 갈 시간이 되면 사촌들과 나는 누가 더 빨리 산소까지 가는지 내기를 했다.
10분쯤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에서 할머니 집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 뒤를 돌아봐 할머니 집을 보면 작은 집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감나무의 감은 빨간 점으로 뚜렷하게 보였다.
조금 더 가다 증조 할머니 산소에 도착해서 절을 하는데 또래 친척들 얼굴만 봐도 왜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키득키득 거리다 가 결국 큰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은 기억이 난다. 절을 다 끝나면 나는 꼭 가시넝쿨 있는 방향으로 갔다. 그 곳에도 한 그루의 멋있는 감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시넝쿨 때문에 힘들었다만 겨우 겨우 딴 감을 보면 가시에 찔린 고통이 사라지고 웃음이 피어났다.
누가 먹을세라 나는 감을 아버지 차에 꽁꽁 숨겨두어 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감을 지켰다. 할머니에게 ‘ 이 감 내가 손으로 딴 감이에요“라고 자랑하면 할머니는 잘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이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지만 잠시동안 잊혀진 감나무에 얽힌 할머니와 나의 추억을 이 글로 씀에 따라 더 이상 이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또 다른 추억 하나 하나를 생각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저 천방지축 애교와 장난만 심해 할머니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지금까지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다면 자주 찾아가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맛있는 감도 따 드렸을 텐데.....
지금은 할머니께 다하지 못한 효도를 하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양로원이나 노인정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다. 이번 주말엔 붉은 홍시 몇 개 사들고 가야겠다.
참방
포근하고 따뜻한 나의 보금자리
/금산동중학교 2학년 심규성
가족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우리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공간, 가장 처음으로 인간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최초의 학교라고 한다. 그만큼 가족의 가치는 매우 크고 귀하다. 그런데 난 솔직히 가족의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매일 가족과 같이 생활하고 같이 있다. 보니까 그런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와~~ ’
6학년 수련회를 간다는 얘기를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수련회 출발당일, 비록 가족과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마냥 기대되오 즐거웠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련회장에 도착했다 수련회는 비록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마음은 재밌고 즐거웠다. 1박 2일의 수련회였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밤에는 수련회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를 했다. 수련회 운동장 가운데에 장작을 멋지게 모아놓고 불을 지피니 불이 활활 타올라 멀리 있는 나에게까지 따스함이 전해졌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나눠주시는 종이컵으로 촛대를 만들어 불을 붙인 촛불을 들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있었다. 곧 앞에 계신 교관님께서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해 보라 하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재들은 왜 우는 거야? 수련회 오면 무조건 울어야 하나?’ 하고 비웃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르익고 교관은 한 부모님께서 쓰신 편지를 읽어 주셨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를 위해 한 몸을 희생하고 피땀 흘려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나에게 ‘오빠, 오빠“하고 언제나 따라주는 착한 동생, 건강 하지 않은 몸으로 우리를 귀여워 해주시고 온갖 일을 다 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굴과 눈이 빨개 지도록 울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아프도록 울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난 나도 모르게 창피해서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방울 두 방울 볼을 타고 흘러 내렷다. 멈출 수가 없었다. 캠프파이어가 끝난 이후에도 내 눈물이 그치지 않아서 결국 친구들이 나를 끌고 숙소에 들어가야만 했다. 난 숙소에서도 한참을 울었다. 이 날은 내가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가족의 중요함을 깨달았던 아주 소중한 날이었다.
가족의 소중함을 가진 사람이 행복함을 모르듯이 가족은 매일 곁에 있으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그 날 우리 가족에 대해 생각했듯이 가족은 나도 모르게 나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가족이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1의 보물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내 삶의 터전이자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나의 보금자리이다. 나는 소중한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참방
내가 원하는 삶의 꽃이 필 때까지
/진산중학교 2학년 1반 김희진
2학년 3차 고사를 보고 난 어느 날 나는 시험 기간 내내 치우지 않아 어지러운 책상 위를 치우다가 그 동안 엄마가 모으고 계셨던 오빠와 나의 ‘ 성적 표 상자’를 보게 되었다.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성적표들 중에서 나는 내 것들만 가려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성적표들을 보노라니 여러 장면이 번개처럼 스치며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저조한 성적표를 보고 있으려니 시험 기간에만 벼락치기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열이 올라오면서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영어 수업 시간의‘나’를 떠올리자 죽을 맛으로 앉아 있던 한 여자아이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였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에게서‘ police office'라는 단어가 들어간 예문을 보여주자 옹알이 하는 아기처럼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리고 ’wonderful'을 beautiful이라 해석해 교실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갑자기 나는 변했다. 학생이 전부 4명이었다가 20명으로 늘어난 탓이라 경쟁심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남에게 지고싶지 않아 하는 숨어 있던 어떤 근성이 살아난 것일까? 공부에 흥미를 느끼면서 열심히 노력을 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차 타는 시간이 긴 나는 버스에서도 책을 보고 단어를 외는 아이가 되었다. 안 외워지는 것은 보고 또 보고 해가면서 말이다. 그 덕분인지 어느덧 사회와 과학이 초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성적이 나왔다.
그리고 제일 놀라운 것은 영어였다. 1학년 때 선생님을 아주 잘 만나서일까? 영어 선생님은 늘 단어 시험을 봐서 우리를 힘들게 했고 그래서 아이들의 원성도 샀지만 영어 선생님 교육에 따르며 외우는 데에 집중을 다했던
나는 아는 단어가 늘어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 도달 기준은 넘어 ‘잘함’이라는 부분까지 오긴 했으나 ‘분수의 크기 비교를 모른다. 문자의 식을 잘 할 줄 모르니 적극적인 지도가 필요하다.’며 충격을 주었던 수학 과목은 5학년 때 선생님의 지적을 무색하게 만들며 나를 수학 영재로 바꾸어 놓았다. 노력하는 생활이 나를 다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노력에 대한 또 다른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습관이다. 나는 초등학교 몇 학년 때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운데 손가락을 이용해 글을 써야 되는 것을 나는 네 번째 손가락을 이용해 글을 썼었다. 그래서 나의 손가락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은 늘 굳은살로 박혀 있었다. 결국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가운데에 계속 연필을 끼워가면서 글을 쓰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연필 끼워 쓰는 노력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있던 굳은살을 없애고 가운데 손가락에 새로운 굳은살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직도 네 번째 손가락이 익숙해서인지 젓가락질을 할 때는 네 번째 손가락을 이용하게된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젓가락질을 밉게 하면 시집 잘 못 간다고 그랬으니 이것도 꼭 고치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노력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노력을 하면 다 되는 것을 때려치운 적도 있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일 것이다.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두 손으로 건반을 칠 때 쯤에 힘들다고 그만 두었으니 말이다. 우동도 마찬가지이다. 운동은 이 때 하고 저 때하고 이렇게 정해 놓고 하다가 하루 이틀을 넘기면 한 번 두 번 빼먹게 되고 한 번을 빼먹으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계속 피아노를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주 잘 쳤을 듯 싶다. 그 때가 저학년 때였으니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셈이 되니까 말이다. 또 우동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0m몇 초 뛰었다고 헉헉거리는 수준은 벗어났을 것 같다.
이렇게 예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다시 할 수 있다면 노력을 해서 다 해낼 수 있을 듯 싶다. 게으른 성격만 제거가 되면 말이다. 아! 일단은 이 게으른 성격부터 죽여 놓아야겠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을 한다. 어렵다고 안 하려 하지말고 일단은 도전하자. 그리고 피땀 흘리는 노력을 하자. 잘되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지 말자 어려움이 기다리는 길일지라도 방향을 돌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 전진하자.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보자. 내가 원하는 삶의 꽃이 필 때까지.
참방
관심으로 여는 따뜻한 세상
/금산동중학교 3학년 5반 사누리
인터넷에 돌고 도는 많은 동영상들 중에 요즘 한창 이슈가 됐던 일면‘ 여중생 폭행 동영상’ 등 학생들의 폭력적인 동영상들이 있다. 이처럼 최근 들어서 학교 폭력 등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다. 1학년과 2학년을 학교에서 같은 친구들과 지내오면서 우리학교가 학교폭력이 심각하거나 흔하게 벌어지는 그런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 ‘빵셔틀’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학교 내에서 힘이 있는 학생이 힘이 없고 약한 학생을 시켜서 수업 중간 중간에 빵을 사오라거나 여러 가지 군것질 할 것을 사오라고 시키는 것이다. 이 빵셔틀이라는 것이 우리 학교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또,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한 아이에게 모든 화풀이를 하며 심지어는 숙제까지 시키는 아이들도 있다. 거기다 그렇게 시키는 아이들은 전혀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당당히 따들고 다닌 다.
이러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노력뿐만 아니라 학교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어른들은 학교에서 급우간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을 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다. 학교폭력에 많이 있다 당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말하지 못한 다. 그리하여 어른들과 사회의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하는 아이는 계속 당하게 되고 하는 아이는 계속 학교폭력을 하는 그런 악순환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자각을 해야하며 잘못이라는 걸 알아야한다. 가해자의 자각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의 의식도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숨기려 하지말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보복이 두렵다고 숨기면 절대 안 된다. 가끔 학교에서 학교 폭력의 모습을 보게 되다. 그럴 때면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안쓰러워 보인다. 피해자는 폭력을 당하며 약하단 이유만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고 가해자는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러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학교폭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국가에서 학교폭력에 관심을 갖고 예방하자며 수많은 켐페인을 벌이며 운동을 할지라도 정작 우리의 관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으면 그 켐폐인도 무효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에 관심을 가지며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 학교의 문제, 그 지역의 문제 더 크게는 국가의 문제도 되는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인 청소년들이 폭력과 같은 악의 숲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가지 해온 각종 학교 폭력 대회 여러 가지 운동 등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예방과 퇴치에 대한 것에는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엄청남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자본과 물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또래의 주변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심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주변에 알게 모르게 학교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 곳을 바라보지 말고 옆을 뒤돌아보며 주변사람들을 돌봐 주고 챙겨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내가 한 행동이 어떤 아이에겐 상처가 되고 내가 무심코 한 한마디가 어떤 아이에겐 칼이 되어 박히는 줄 깨닫고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방
아직 피어나지 않은 꿈
/ 금산여자고등학교 1학년 5반 홍지혜
꿈이라하면 막연하게 꿈꾸는 직업이 아닌 가슴속에 품고 있는 열정 소망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라는 의미를 직업이라 인식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나 물으면 자격증 성적 등 고리타분한 수단을 말하곤 한다. 이러한 것들은 학교생활에서 나타나는 폐해일지도 모르고 교과목 중심의 교육정책의 폐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교육을 비판하기보다는 대학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생각할 따름 이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도 경제적 사회적인 것을 꿈꾸는 꿈의 일종이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중에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것도 끔이고 하다못해 이젯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꾸었던 환상들도 꿈이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잠간 꾸어본 나의 미래 모습도 꿈이다. 너무 거창한 꿈을 꿀 필요도 없고 꿈에 대해 너무나 큰 부담감도 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등학생을 경혐한 모든 경험자들이 하는 말 중 하나는 공부부터 하라는 것이다. 우선은 공부를 해야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말.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지만 가장 어리석게 들를 수 있는 말이다. 공부를 하며 그냥 흘러보내게 될 지도 모를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배제하고 학창시절에만 꾸어볼 수 있는 꿈조차 허용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이기심에 풀이 한 풀 한 풀 껶여 가듯 누군가의 순수한 꿈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기에 어리석다 여길 수 있는 말들이다. 꿈은 누구나 꿀 수 가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자기의 소유이기에 남이 통제 할 수 도 간섭 할 수도 없다 가장 힘들 때에 의지할 수 있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꿈이기에 꿈은 그토록 큰 뜻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꿈은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에 그 의미를 다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그대로의 마음가짐으로 소박하면서도 행복해지는 것이 내가 바라는 꾸이다. 또 다른 나의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최대한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0가지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주어진 그 시간 그 일생동안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만족할 줄 알며 행복의 참 맛을 느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꿈의 실현이 아닐까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조차도 즐겁게 느낄 수 있고 행복하게 보 낼서 있다면 이보다 좋은 꿈은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의 욕망은 끝도 없어서 바라고 또 바라게 되어 있다. 순수한 그 꿈이 때 묻고 얼룩져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적당히 만족할 줄 알고 적당히 자신에 맞는 소박한 꿈을 꿀줄 아는 게 현명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남을 신경T,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인데 꿈조차도 나을 의식하고 남에게 의지하며 꿈을 상실한 채 살아간다면 가장 헛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시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앞으로 다 가올 미래도 학생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라의 일군이기 이전에 꿈 많은 소년 소녀에 불과하다. 학생들에게도 로망은 있고 꿈도 있다. 꿈이라는 광범위하면서도 좁은 의미를 띄고 있는 단어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는 희망과 열정을 시어주고 바쁘게 살아온 어른들에게는 지난날을 돌아보고 느끼는 설레 임을 시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만 하다. 꽃들도 활짝 피기 바론 전 봉오리 일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듯 아직은 다 피지 않고 순수하고도 수줍은 꿈을 살포시 안고 있는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이렇게 있는 모습 그 자체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