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근곡전통예절연구원
 
 
 
카페 게시글
*祭禮(제례) 스크랩 삭망일
근곡김홍엽 추천 0 조회 423 16.05.03 02: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명륜골선비 (2008-07-31 19:01:42) X
성균관 홈페이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로 메일로 답변하지 않음을 혜량바랍니다.

※ 첫번째 : 왜 삭망일에 분향례를 행해야 합니까?. 다른 편리한 날을 정하여 분향례를 행할 수는 없습니까? 예를 들면 매월 첫째주 일요일과 셋째주 일요일 이런거 말입니다.

답: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양력화 하거나 요일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는 아직도 유림의 정서상 반발이 심합니다.

유교의 현대화에 발맞춰 춘추로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모시던 제사는 양력화하여 5월 11일과 9월 28일로 바꿔 3년의 유예기간을 갖고 시행중입니다만 이 또한 전국 향교 중 70% 정도만 호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종묘제례 등등은 양력과 주말 등을 고려하여 실시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삭망일에 제사를 모셨던 근거를 나름대로 찾아서 하단에 준비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 두번째 : 왜 前日에 入齋하여 未明(해 뜨기전)에 분향례를 행해야 합니까?. 다른 당일에 입재하여 편리한 시간에 분향례를 행할 수는 없습니까? 예를 든다면 분향 당일 오전 또는 오후 적당한 시간 말입니다.

답: 입재란 재계입니다.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오직 제사만을 생각하고 근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시간에 대해서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제사를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사람들을 만나고 연회를 하고 기타 등등을 하고 난 후에 예를 갖춘다면 귀신께 미안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참고로 이 제사는 중국 고대의 주나라의 제도를 이은 것입니다.
(하나라와 은나라와 주나라의 제사시간은 달랐습니다.)

위는 의례에 준한 답변이고 실상 분향례는 성균관의 경우 아침 11시, 명절에는 12시에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위의 예절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분향하는 향교도 다수 있습니다.

재계와 제사 시간 등에 대해서는 검색 키를 이용하여 더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자료를 하단에 첨부하지는 않겠습니다.

=========================================

제사를 자주 지내는 것은 모독하는 것이고 불경한 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삭망 즉, 보름의 간격이란 조상을 잊지 않고 효도를 지극히 하면서도 모독하거나 불경하지 않은 알맞은 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삭(朔)의 의미는 본래 계승하여 잇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최초로 시작하는 것이 초(初)라면 다시 계승하여 시작하는 것을 삭(朔)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천자가 항상 계동(季冬)에 제후들에게 다음해 12개월의 달력을 배포하면 제후는 그것을 받아서 조상의 사당에 감추어 두었다가 매월 초하루에 특양(特羊)을 가지고 사당에 고유하고, 청하여 시행하는 곡삭(告朔)의 예가 있었습니다.

양씨가 말하기를 “곡삭은 제후가 천자와 조상에게 명을 아뢰는 것이니 예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대부 이상은 월 2회, 즉 삭(朔)과 망(望)에 제사를 모셨으나 사(士)는 삭에만 제사를 모셨다 합니다.
주자께서도 삭망에 모두 제사를 모시는 것이 지금의 풍습이라면 굳이 폐지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예기󰡕�� 소에 말하기를, ‘사(士)는 매월 보름에는 성대하게 차리지 않고 오직 초하루에만 차릴 뿐이다.’”라고 하였다. -사계가 말하기를, “󰡔��가례󰡕��를 살펴보면 사와 대부를 막론하고 모두 월반전(月半奠)이 없다. 대개 주자가 시속의 마땅함을 참작하여 간략한 도리를 따른 것이다. 우리 나라의 풍속은 비록 한미한 선비의 집안이라도 또한 월반전(月半奠)을 지내니 󰡔��가례󰡕��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갑작스럽게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2.
퇴계가 사람에게 답하여 말하기를, “ ........ 사는 오직 삭전(朔奠)만 올린다는 것은 선왕이 예를 만들 때는 등급에 따라 줄이는 것이 있고 또한 그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궁핍하여 마련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지 않는다면 아울러 망전(望奠)을 올려도 또한 참람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3.
【예기․제의(祭義)】에 말하기를 “군자는 옛으로 돌아가고 처음으로 복귀하여 태어난 근원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경을 다하고 그 뜻을 밝히며 힘을 다하여 제사에 임하고 그 어버이에게 보답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천자가 적전(籍田) 천묘(千畝)를 만들어 면류관을 쓰고 붉은 끈으로 매고 몸소 쟁기를 잡고 제후는 적전 백묘를 만들어 면류관을 쓰고 푸른 끈으로 매고 몸소 쟁기를 잡아 천지 산천 사직 선고(先古)에 제사하여 예(醴)․락(酪)과 재성(齊盛)을 갖추고 여기에 취하니 공경이 지극한 것이다. -선고(先古)는 선조(先祖)이다.- 옛날에 천자와 제후는 반드시 짐승을 기르는 관원을 두었다. 세시(歲時)에 이르면 목욕재계하고 몸소 희전(犧牷 : 犧牲)을 찾으며 제물은 반드시 여기서 취하니 공경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군주가 소를 불러 들여 살펴 그 털 색에 따라 선택하고 점을 쳐서 길한 후에 봉양한다. 군주가 피변(皮弁)을 쓰고 소적(素積)을 입고 매달 초하루[삭월(朔月) : 월삭(月朔)]와 월반(月半 : 일 개월의 반 즉 15일)으로 군주가 희생을 순시하니 힘을 다하는 까닭은 효도를 지극히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4.
사계절의 제사. - 󰡔��공양전󰡕��에 말하기를 “제사를 자주 지내면 모독하는 것이고 모독하는 것은 불경스런 것이니 군자는 제사를 행함에 공경하여 모독하지 않는다. 소원하면 태만해지고 태만하면 잊는다. 사(士)가 이 사시제에 미치지 못하면 겨울에도 가죽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갈옷을 입지 않는다.”고 한 「주」에 “예는 본래 사(士)를 위하여 제정한 것이다.

5.
<禮運第九>
後聖이 有作하셔 然後에 修火之利하여 范金, 合土하여 以爲臺榭宮室牖戶하며, 以炮, 以燔하며, 以亨, 以炙하며, 以爲醴酪하며, 治其麻絲하여 以爲布帛하여 以養生送死하며, 以事鬼神上帝하니, 皆從其朔이니라.
(후세에 성왕이 나타나신 연후에 불을 이용하여 틀을 만들고 흙을 합하여 대역과 궁실과 창과 문을 만들며, 포炮하고 번燔하고 팽亨하고 자炙하며, 단술을 만들고 마사를 다스려서 포백을 만들어 양생송사하고 귀신과 상제를 섬겼으니 모두 그 삭(朔)을 따른 것이다. )

세주:
長樂陳氏曰, 夫開端之始 謂之初 繼終而有始 謂之朔 故天地之始 亦可以言初 一月之始 則特謂之朔 是以言禮之初 則繼之 以皆從其初 言後世有作 則繼之 以皆從其朔也
(장락진씨가 말하기를 대저 단서를 여는 시작을 일러 初라하고, 마침을 이어서 시작이 있는 것을 일러 朔이라 한다. 고로 천지의 시작을 또한 初라 말할 수 있고, 한 달의 시작을 특별히 삭이라 한다. 이런 까닭에 禮之初란 그것을 계승하여 모두 그 初를 따름을 말하고, 後世有作이란 곧 그것을 계승하여 모두 그 朔을 좆음을 말한 것이다.)

6.
논어(論語)
子貢이 欲去告朔之餼羊한대,
子曰 賜也아 爾愛其羊가 我愛其禮하노라.

자공이 초하루에 고유하면서 바치는 희생양을 없애고자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라고 하셨다.

○ 告朔之禮는 古者에 天子常以季冬에 頒來歲十二月之朔于諸侯어든 諸侯受而藏之祖廟라가 月朔則以特羊告廟하여 請而行之라.

곡삭(告朔)의 예는 옛날에 천자가 항상 계동(季冬)에 제후들에게 다음해 12개월의 달력을 배포하면 제후는 그것을 받아서 조상의 사당에 감추어 두었다가 매월 초하루에 특양(特羊)을 가지고 사당에 고유하고, 청하여 시행하는 것이었다.

○ 양씨가 말하기를 “곡삭은 제후가 천자와 조상에게 명을 아뢰는 것이니 예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노 나라가 곡삭의 예를 살피지 않았지만 양이라도 존재한다면 곡삭의 명칭이 없어지지 않게 되어 실상이 이로 인해서 거행될 수 있으니, 이것이 부자께서 아까워하신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 楊氏曰 告朔은 諸侯所以禀命於君親이니 禮之大者라. 魯不視朔矣나 然이나 羊存則告朔之名未泯하여 而其實因可擧니 此夫子所以惜之也시니라.
명륜골선비 (2008-07-31 20:23:32) X
재계와 제사시간에 대해 하기합니다.

1. 산재와 치재와 재계에 대하여
(제일 하단에 중사의 재계에대하여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정리함)

1. 재계 齋戒
제사(祭祀)를 올리기 전에 심신을 깨끗이 하고 금기(禁忌)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일. 재(齋)는 청정(淸淨), 계(戒)는 청정을 초래하기 위한 규범이란 뜻으로 결재(潔齋)라고도 한다. <중용 中庸>에서는 재계의 뜻으로 ‘재명(齊明)’을 썼다. <예기 禮記> [제통 祭統]에서는 재계하는 의의(意義)를 설명하여 “군자가 재계하는 것은 오직 그 정명(精明)한 덕(德)을 이루려는 것이다. …재는 정명의 지극한 것이니 그런 뒤라야 신명(神明)과 접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재계에는 산재(散齊)와 치재(致齊)의 구분이 있다. 산재는 치재의 약식(略式)으로서 그 행동 등을 근신(謹愼)하는 것이고, 치재는 그 마음의 생각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의 祭義]에서는 “안에서 치재하고 밖에서 산재한다.”라고 하였다.

산재는 목욕재계하고 여색(女色)을 멀리하며 조상(弔喪)하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는 것이다. 치재는 제사 받는 이가 거처(居處)하던 곳과 웃는 말, 뜻, 즐기던 일, 좋아하던 음식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제통]에 의하면 왕실에서의 제사에는 궁재(宮宰)가 부인(夫人:왕의 부인)에게 기일(期日)보다 11일 앞서 고계(告戒)하면 부인도 산재 7일, 치재 3일을 하는데, 국군(國君)은 외침(外寢)에서 부인은 내침(內寢)에서 행한다고 하였으며, 그런 후에야 태묘(太廟)에 모인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종묘(宗廟), 사직(社稷)의 오향대제(五享大祭)에는 산재 4일, 치재 3일을 하며 이를 상사(上祀)라 하고, 문묘(文廟)등의 제사에는 산재 3일, 치재 2일을 행하며 이를 중사(中祀)라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增補文獻備考> [禮考四] 宗廟, 祭享), 이를 보면 산재 치재의 기간은 제사의 종류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조고(祖考)를 존중하고자 행하는 의식으로 제례(祭禮)에 있어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논어 論語> [술이 述而]에 “공자(孔子)께서 신중히 여긴 것은 재계와 전쟁과 질병이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2. 산재 散齊
이이(栗谷 李珥)는 <격몽요결 擊蒙要訣>의 제례장(祭禮章)에서 “시제(時祭)에는 산재(散齊)를 4일간 하고 치재(致齊)를 3일간 하며, 기제(忌祭)에는 산재를 2일간 하고 치재를 1일간 하며, 참례(參禮)에는 재계(齋戒)하기를 1일간 한다. 이른바 산재라는 것은 초상에 조문하지 않고, 질병을 문병하지 않으며, 파나 마늘 같은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고, 술을 마시되 취하는 데 이르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라 하였다.

3. 치재 致齋
제관이 입제하는 날부터 파제하는 날까지 마음으로 조심하는 일. 주인은 여러 장부들을 거느리고 밖에서 재계를 하고, 주부는 여러 부녀자들을 거느리고 안에서 재계를 한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며, 술을 마시되 어지러운 데까지 이르지 않으며, 고기를 먹되 냄새가 나는 채소를 먹지 않는다. 남의 상에 조문하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않고, 흉하고 더러운 일에는 모두 참여하지 않는다. 종묘 ․ 사직 등 대사(大祀)에는 4일간 산재(散齋)하고 3일간 치재(致齋)한다.

4.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에 나오는 중사(中祀)의 산재(散齋)- 국조오례의 권4, 41쪽

중사(中祀)- 선농과 문선왕에게는 임금이 친히 행하는 일이 있다.

제사 6일 전에 예조에서 아뢰어 재계하기를 청하면 전하께서 3일 동안 별전(別殿)에서 산재하고, 2일 동안 치재(致齋)하되 1일 동안은 정전에서하고, 1일 동안은 재궁(齋宮)에서 한다.
대체로 산재 때에는 조상(弔喪)하지 않고 문병(問病)하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않는다. 유사(有司)는 형살(刑殺)의 문서를 올리지 않는다. 치재(致齋)에는 다만 제향의 일만 아뢴다.

대체로 모든 향관 및 근시(近侍)하는 관원과 따라서 올라갈 사람들은 모두 3일 동안 산재하고 정침에서 유숙하며 2일동안 치재하되 1일은 본사(本司)에서 하고 1일은 향소(享所)에서 한다. 배향관(陪享官) -문선왕에는 학생(學生)이 있다. 섭사(攝事)일 때는 전하의 재계하는 의식 및 배향관이 없다.- 및 여러 위(衛)의 유문을 수위하는 사람들은 각각 본사에서 깨끗이 재계하고 하룻밤을 유숙한다.

공인(工人)과 이무(二舞)는 깨끗이 재계하며 예조에서 하루를 지낸다. 제사 하루 전의 날이 밝을 무렵에 모두 향소에 모여서 의식을 익힌다. - 왕세자의 석전도 이와 같다. 배향하는 궁관과 관관 학관도 모두 하룻밤을 깨끗이 재계한다.


2. 제사시간에 대하여

[하 기]
[진씨예서]의 <제의>편에 하후씨는 저녁 무렵에 제사지냈고 상나라 사람들은 한낮(陽)에 제사지냈으며, 주나라 사람들은 제삿날 아침에 시작해서 어두울 때까지 제사지냈다.

[예기] <단궁>편에 “하우씨는 제사를 어두울 때 지냈고 상나라 사람은 제사를 한낮에 지냈으며 주나라 사람은 제사를 해가 뜰 때 지냈다.” 하였다.
하나라는 흑색을 숭상하여 어두움을 써서 어두울 때 제사를 지냈고 상나라는 백색을 숭상하여 한낮을 써서 그 낮에 제사를 지냈으며 주나라는 적색을 숭상하여 해가 뜰 때를 써서 아침에 시작해서 어두울 때까지 제사를 지냈다. 대개 삼대에서 정월과 초하루를 숭상하는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정월을 하나라는 인월(寅月)로 기준을 세웠고, 상나라는 축월(丑月)로 기준을 세웠으며, 주나라는 자월(子月)로 기준을 세웠다. 초하루의 시작을 하나라는 이른 새벽으로 하였고, 상나라는 닭 우는 시간으로 하였으며, 주나라는 밤중으로 삼았다.
즉 하나라는 인시, 은나라는 축시, 주나라는 자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봄
이것은 모두 하나라는 말단에 근거했고 상과 주는 그 근본에 근거했으니 제사를 일찍 지내고 늦게 지내는 것도 이와 같다.
소뢰는 대부의 제사인데 종인(宗人)이 제사의 때를 청하면서 이르기를 ‘날이 밝으면 제사지낸다.’ 하였고, 자로가 계시의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이른 새벽(質明)에 비로소 행사를 시작하여 아침 늦게 물러났는데 공자가 이것을 취하였으니 그것은 주나라의 예이다.
그러나 예는 늦게 하여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일찍 하는 것이 좋으니 주나라가 비록 미명의 시각이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다. 하였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