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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하는 건데?” 차 안에는 벌써 일꾼들이 앉아 있었다. 집은 한옥으로 마당이 넓었다. 널찍한 대청을 사이로 방이 여러 개 있고, 마당 한쪽에는 창고처럼 지어진 커다란 건조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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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찌나 꼼꼼히 캐는지 어쩌다 잘린 다리가 하나씩 나올 뿐이었다.
동식이 아버지는 작은 소쿠리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빵빵한 배를 벌룩거리며 껄껄껄 웃었다. 늦게 온 선아가 마지막으로 타자 차는 곧 출발하였다.
세 시간쯤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어느 동네 앞이었다.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동네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동네 아이들이 차 주위로 몰려들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옷이 땀에 절어 꾀죄죄하였다. 코에서 누런 코가 들락날락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순해 보이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산골이라고 말로만 들었지 직접 산골 아이들을 보니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들처럼 여겨졌다.
“요즈음도 코를 흘리는 아이가 있네.”
선아도 뜻밖인 모양이었다. 선아는 차에서 내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생글거렸다. 아이들은 다가오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저만큼 물러나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동네에서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십여 분 걸어가자 널따란 인삼밭이 나왔다. 인삼밭에는 곧게 뻗은 긴 고랑마다 천막처럼 까만 인삼발이 둘러쳐져 있었다. 인삼밭 옆에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가에 커다란 밤나무가 시원스레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밤나무 아래에 짐을 부렸다. 일꾼 아저씨들이 밭고랑을 하나씩 맡아 인삼을 캐나가기 시작했다. 쇠고랑질을 할 때마다 땅 속 깊숙이 묻혀 있던 굵은 인삼들이 딸려 나왔다.
캐 놓은 인삼이 고랑마다 금세 무더기로 쌓였다. 아주머니들은 인삼을 밤나무 아래로 가져다가, 인삼 죽을 잘라내고 흙을 털어 포대 자루에 담는 일을 하였다. 힘찬이는 처음에는 머리가 벗겨져 밀짚모자를 쓴 아저씨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런데 코가 커서 코주부라 불리는 아저씨를 따라다니는 동식이는 간간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것은 다리가 아닌 온전한 인삼을 주운 것을 자랑하는 소리였다. 환호성이 자주 터지자 코주부 아저씨는 인상을 우그러뜨리더니 꼼꼼히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이삭이 잘 나오지 않는지 동식이의 표정이 우거지상이 되었다.
“야, 이제 인삼을 한 뿌리 통째로 주워도 소리지르지 마. 아저씨들이 인삼을 잘 못 캔다고 할까 봐 싫어하니까 우리만 살짝 알자.”
동식이가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 코치를 하였다. 그 때부터는 인삼 한 뿌리를 통째로 주우면 흙을 뿌려서 모두의 시선을 모은 다음 인삼을 불끈 들어 보이는 것으로 환호성을 대신하였다.
힘찬이는 두 고랑을 파헤치고는 지쳐서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괭이질을 하는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인삼발 사이로 따가운 햇살이 새어들었다.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지? 많이 주웠냐?”
바로 옆고랑을 파헤치고 있던 민규도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얼굴에는 흙과 땀이 범벅져 있었다. 힘찬이는 대답할 힘도 없어 이삭이 든 봉지를 들어 보였다.
부지런히 땅을 판다고 팠는데도 봉지는 홀쭉했다. 민규도 자기의 봉지를 들어 보이며 빙긋 웃었다. 봉지가 제법 불룩했다.
힘찬이는 누운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아가 보이지 않았다. 동식이는 민규의 옆 고랑에서 팔다리를 쩍 벌리고 누워 있었다. 코까지 고는 것으로 보아 잠이 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선아는 어디 간 거야?”
힘찬이가 일어나 앉으며 민규에게 물었다.
“글쎄, 그러고 보니 선아가 없잖아?”
민규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힘찬이는 괭이와 봉지를 그대로 두고 밭고랑 사이를 기어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따가운 햇살이 불덩이처럼 얼굴에 쏟아졌다.
밤나무 그늘에는 아주머니들이 일을 하며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선아는 밤나무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선아야, 어디 아프니?”
선아는 배를 움켜쥔 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배가 아픈 거야? 어쩌지, 약도 없을 텐데.”
힘찬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아를 바라보다가 흙 묻은 손을 툴툴 털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넓적한 잎사귀가 달린 인삼죽으로 부채질을 해 주었다.
“아까 차 안에서 먹은 빵이 얹혔나 봐. 동식이 엄마가 손을 따 주셨어. 소화제도 먹었고. 지금은 좀 가라앉는 것 같아.”
힘찬이는 물가로 가서 손수건을 물에 축여 왔다. 선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려다가 괜히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냥 건네 주었다.
선아는 생긋 웃으며 손수건을 받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톡톡 두드리듯이 닦았다.
“녀석들, 꼭 다정한 오누이 같네. 좀 닦아 주지 그러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놀리듯 말하며 웃었다. 다른 아주머니들도 바라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힘찬이는 털지 않아도 될 엉덩이를 공연히 탈탈 털며 얼른 인삼밭으로 들어갔다.
조금 가다가 뒤돌아보니 선아가 생긋 웃으며 보고 있었다. 점심은 차가 멈췄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해 왔다.
그 동네에 사는 인삼밭 주인이 미리 시킨 것이었다. 아주머니들이 이고 온 밥을 내려놓자마자 동식이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달려들었다. 밥을 보며 휘번득이는 눈빛이 마치 며칠 굶은 사람 같았다.
아주머니들은 돼지고기와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어서끓인 국과 밥을 퍼서 인삼죽을 깔아서 만든 자리에 놓아 주었다.
힘찬이는 밥을 국에 말아서 한 입 가득 퍼 넣었다. 씹을 것도 없이 밥은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민규도 볼이 미어지게 밥을 입에 퍼 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러다가 힘찬이와 눈길이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우그적 씹던 동식이의 얼굴이 뒤가 급한 사람처럼 우그러지는가 싶더니, 고추를 퉤퉤 뱉어 내고는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그래도 매운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혀를 쑥 빼물고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힘찬이는 배가 빵빵하도록 먹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렸다. 끄윽 하고 트림이 나왔다. 밥이 꿀맛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았다. 밥을 먹고 나니 슬그머니 졸음이 쏟아졌다.
바람 한 점 없는 푹푹 찌는 날씨였다. 밤나무 푸른 가지에서 우는 매미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동식이는 옷을 훌훌 벗어젖혔다. 층층이 늘어진 뱃살이 반바지 위로 흘러내릴 듯이 늘어졌다.
선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식이는 선아를 힐끗 보더니, 벗은 옷으로 얼른 배를 가리며 헤벌쭉 웃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옷을 훌떡 집어던지고 개울로 뛰어들어갔다. 힘찬이와 민규도 옷을 벗고 뒤따라 들어갔다. 동식이를 사이에 두고 힘찬이와 민규가 물장구를 쳤다.
“쟈들 좀 봐. 영락없이 고목나무에 매미 달라붙은 것 같네.”
밤나무 아래에서 아주머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아도 물가에 앉아 물살을 어루만지다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랑이 장가간다는 날씨가 이럴까. 인삼을 다 캘 때쯤, 해가 쨍쨍했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은데. 이거 큰일인걸.” 동식이 아버지는 하늘을 보며 걱정을 했다.
비가 오면 땅이 젖어 인삼을 제대로 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삼발 틈새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비는 이내 장대비로 변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졌다.
밭고랑 사이로 황토색 흙탕물이 콸콸콸 쏟아져 내려갔다. 힘찬이는 비를 피해 인삼발 아래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아예 밖으로 빠져 나왔다. 민규, 동식이도 뒤따라 나왔다.
힘찬이는 민규, 동식이와 함께 빗속에 몸을 내맡기고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이 굵은 빗방울에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비는 곧 그쳤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살이 석류 알처럼 부서지며 내리쬐었다. 인삼을 다 캐고 짐을 정리하는데, 호미와 괭이를 든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아까부터 아이들이 인삼밭을 기웃거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인삼을 다 캐기를 기다리느라 그랬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밭고랑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밭고랑이란 밭고랑은 모조리 파헤치고 이삭을 주웠는데도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땅이 욕하겠다. 좀 남겨 두지, 모조리 빼앗아 간다고.”
힘찬이는 아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삭을 먼저 다 주워 버려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걸. 땅은 흐뭇해하고 있을 거야. 열심히 가꾸어 주어서 고맙고, 열심히 수확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이야. 땅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힘찬이의 말을 들은 동식이 아버지가 힘찬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하였다. 집에 도착한 것은 밤이 늦어서였다.
힘찬이는 말할 힘도 없어서 민규에게 손짓으로 잘 가라는 인사를 대신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맞아 주었다.
“힘들었지?”
할아버지는 힘찬이가 내민 인삼이 가득 든 봉지를 받아들며 대견스러워하였다.
“아우,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어요.”
힘찬이는 으쓱한 마음에 일부러 더 몸을 비틀며 힘들다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게,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는 줄 알어.”
힘찬이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일할 때는 몰랐는데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특히 하루 종일 괭이질을 한 오른팔은 뻐근한 게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보람 있는 하루였다는 생각을 하며 정신 없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