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보존학회-KJV
-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것…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 주장 -
지난 7월호(통권255호)에 말씀보존학회(이하 말보회)에서 발행된 책자들을 이단서적으로 분류해 놓으므로 말미암아 본사에 확인 문의전화가 매일 쇄도하는 한편 그 즉시 말보회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들어 왔다. 그래서 이번 9월호에 특집으로 「개역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오로지 말보회에서 「영어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을 100%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1994년 발행)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독선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상세히 다루어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이에 현혹되지 않고 올바른 성경을 읽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알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편집자 주)
말씀보존학회(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 목사)는 지난 92년 4월에 창립되어 「한글개역성경을 사단의 변개한 것」이라고 지금껏 주장해 오고 있는 단체이다. 또한 이들은 영어성경인 NIV, NASB, RSV, NEB, GNB, JB, LB, NRSV등 10여 종의 것들도 한글개역성경과 같이 취급하고 있다. 특히 말보회는 NIV성경은 '배교의 결정판'이라고까지 혹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 동안 한글개역성경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온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근본을 송두리째 뽑아 흔들어 버리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도전임 셈이므로 성서학계나 신학자, 그리고 교계의 올바른 대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말보회는 자체 홍보지인「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이란 것을 통해 자체 출판물인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말보회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란 홍보지 창간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또 이들은 홍보지에서 「교회들은 많은데 교회는 없다. 찬양과 경배는 강조하면서 정작 복음은 없다. 복음 비슷한 것은 있는데 양육은 없다. 50년 된 성도도 늙은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 와중에 이색종파들이 표면에 나와 횡행하므로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홍보지 제3호에서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130여 년 동안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지내왔기에 사단의 무법천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30여년 동안에 성도들의 영적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단 한 권의 책도 쓴 사람이 없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
말보회에서는 한글개역성경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또한 신학적인 논쟁이나 교리적인 연구는 물론 잘못된 이단교회와도 논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글킹제임스성경」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말보회는 우리나라에 있는 신학교에 대해서 말하기를 「장신대나 총신대 그리고 합동신학교, 한신대 등 기존의 한국교회를 이끌어 온 신학교는 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의 학문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라면서 오로지 펜사콜라 신학원만이 가장 올바른 신학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올바른 교회도 성경침례교회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송오 목사가 말씀보존학회를 창립할 때 성경침례교회도 동시에 세워졌다.
현재 130여명이 이 교회의 성도들이며 대부분이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보회에서 발행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부실하기가 그지없다는 게 성서번역 학자들의 주장이다. 문체에 있어서도 개역성경의 흉내만 냈을 뿐 매우 조잡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은 TR(헬라어표준본문)을 사용했다. TR은 헬라어 본문에 대한 이해가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성경에 「하데스」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송오 목사는 신약에서 모두 「음부」라고 번역을 해놓았다. 이것은 KJV성경에도 그리고 원문에도 없는 이 목사만의 창작품인 것이다.
한글개역성경에 잘못 번역된 것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번역자가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서 번역했으며 또 어떤 사본을 근거로 해서 번역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없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지지 않은 것을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이송오 목사의 주장대로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 만든 성경책은 옳고 나머지 성경책은 사단의 변개한 책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각 신학대학의 성서학자들이 밝히는 대로라면 이송오 목사의 인격적인 결함과 번역에 대한 실력이 탁월하지 않다는 지적이 다분하다.
자기자신의 독선적인 그리고 배타적인 시각을 이젠 과감히 벗어나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강조할 것은 강조하는 것」이 진정 옳을진대 계속해서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그 외 출판물들이 성서연구에,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억지이며 개운하지가 않다는 느낌이다.
또 목사라면 최소한 인격적인 발언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지 기자에게 전화 상으로 욕설을 퍼붓고 인신공격을 하는 상황 등을 뒤돌아볼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송오 목사는 「성경의 유래」라는 번역책자에서 신약성경을 4가지로 분류해 놓았는데 복음서는 복음서신으로, 바울서신은 바울서신으로, 일반서신(공동서신, 보통서신-catholic epistle)은 「천주교 서신」으로, 계시록은 계시록으로 번역해 놓았다. 이것만으로도 그 실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는 또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와(The Holy catholic church)를 「천주교회」로 번역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진정 믿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 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성경만을 쓰셨다」를 통해 삭제됐다 하면서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성구들이 많이 빠져있으므로 덧붙이는데 더욱 일조를 했던 사람이다. 성경이 잘못 번역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2천여 곳 이상이 빠져있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저명한 성서학자나 성서 발행관련 기관에서 제기하지 않으므로 인해 입증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90년 4월 12일자 국민일보 인터뷰 기사에서 「신약전서 개역한글판」(1956)에 2천여 개의 헬라어가 빠져있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 신학대학에 원문비평학을 연구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이렇게 지적한 사람이 한 분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억지 주장이 아닌가 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기사 내용에서 이송오 목사는 원문비평학을 공부하고 헬라어 표준본문(TR)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글 신약성서에 무려 2천단어 이상이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것이 바로 국내성서에는 「없음」으로 표시된 사도행전 8장 37절이 원문에는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 37절이 개역한글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난외주에, 권위 있는 헬라어사본에는 37절이 빠져 있지만 어떤 사본에 본문에는 다만 「37절이 없음」이라고 괄호 안에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37절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대로 번역하여 실었다는 점이다. 신약전서 201쪽 난외주 4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37절은 번역자들이 실수하여 빠뜨린 것이 아니라 원본에 가까운 권위 있는 사본들이 이 구절이 없으니까 빼놓은 것이다. 그러나 후대의 어떤 사본에는 37절의 내용이 나오니까 우리말 번역은 그것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이것은 우리말 번역뿐 아니라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번역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나온 「개혁표준성서(RSV)」「복음성서(GNB)」「새국제성서(NIV)」영국에서 나온 「새영어성서(NEB)」 등이다.
이런 번역들 역시 우리말 번역처럼 본문에는 37절이 없다는 것을 밝혔고, 난외주에는 후대의 사본에 37절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내용을 난외주에 번역해서 실었다. 「새 미국표준성서(NASB)」는 37절을 본문 안에 넣되 괄호 속에 묶어서 넣어 37절이 원래 원문에는 없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다.
신약성서의 중요한 사본들로서 대문자사본들인 4세기의 시내사본,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사본(A), 4세기의 바디칸사본(B), 5세기의 에브라임사본(C), 5-6세기의 것인 베자(Beza)사본(D) 등에는 행8:37이 없다. 다만 6세기 후반 7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E사본과 소문자사본 가운데서 12세기경의 36사본, 323사본, 14세기경의 453사본, 945사본, 323사본, 10세기의 1891사본, 이 밖에 옛 번역들인 이탈리아역(it), 빌케이트역 중에서도 16세기의 클레멘트판(Vgel), 시리아어역(Syh)에서만 나온다. 이레니우스와 칼타고의 씨프리안과 같은 교부들이 인용한 성구에도 행8:37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8:37은 원문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후대의 삽입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공회역판들이 이런 첨가구절을 본문에 넣지 않고 난외주에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목사는 눅2:33에 기록된 「그 부모가」는「요셉과 그의 모친이」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개역 본문에서는 「그 부모가 아기에게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원문자체가 문제 있다. 네슬-알란트판 「히랍어 신약전서(Nestle-Aland. Novum Testamentum Graece)」(1970sus 검판 )의 본문을 여기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카이엔「호 파테르 아우투」카이 헤 메테르 타우마존테스에피 토아스 랄루에 누이스 페리 아우투.
이것을 영어로 직역해보면 위의 희랍어 원문의 문제가 무엇인가 잘 드러난다.
And his father and mother was(단수) marvelling(복수) at the things which were spoken concerning him. 단수동사(엔: was)와 복수분사(타우마존테스: marvelling)와 함께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본문 전달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사본에 단수 「엔(was)」이 있다.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시내사본, 바티칸 사본(B), 베자사본(D), 레기우스사본(L)과 많은 소문자사본에는 「엔」다음에 주어진 「호 파테르 아우투(그의 아버지)」가 나온다. 이것은 단수동사인 「엔(was)」과 호응을 이룬다. 그러나 주어 「그의 아버지」다음에 「그리고 그 어머니(카이 헤 메테르)」가 나온다. 그렇다면 동사는 복수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한글개역성경에는 단수이다.
그런데 분사「타우마존테스(놀라다, 기이하게 여기다)」는 복수분사이다. 「기이하게 여긴」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본문의 전달과정에서 어떤 분류상의 변화가 있었던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희랍어 본문의 「호 파테르 아우투 카이 헤 메테르(그의 아버지와 그 어머니)」를 「요셉과 그의 어머니」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데 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과 코이네 본문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호 파테르 아우투) 대신에 요셉이 나온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을 사본 복사자가 일부러 고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의 처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를 육신의 아버지는 없고 육신의 어머니만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본문을 변경시켰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시내사본을 포함한 적지 않은 수의 사본들이 「헤 메테르(그 어머니)」다음에 「아우투(그의)」를 집어넣어 「그의 어머니」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눅2:33의 본문은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라 하여 예수님의 처녀탄생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성서한국. 제36권 1호. 1990.6)
영어킹제임스성경은 번역상에 있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대단히 높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의 경우, 히브리어「bei」「qeber」「shachath」 등을 모두「grave」로 번역하였고 「sheol」중 31단어는 「grave」로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원칙을 따르지 않고 「sheol」중에서 「grave」에 해당하는 31번을 모두 「무덤」이 아닌 「음부」로 번역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신약의 경우 킹제임스성경은 「mnema」 혹은 「grave」로 번역하였고 「hades」중에서는 단 한 번 고전 15:33만 「grave」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모두 「hell」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경우에도 고린도전서 15장 33절을 「무덤」대신 「음부」로 번역해 놓았다는 점이다. 참고로 새성경 초판에서 3판까지「hades」는「음부」로 「tatarrus」와 「gehinna」는 「지옥」으로 번역했다가 새성경 4판에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만 「음부」로 남겨놓고 나머지는 고쳤다가 한글킹제임스성경에 와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까지 「지옥」으로 고친 사실이 밝혀졌다.
위와 같은 상황을 살펴볼 때 말씀보존학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번역의 일관된 원칙이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고전6:9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자들 중에 영어킹제임스성경은 「effeminate(여성화된 자들)」을 들고 있는데, 말보회의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부분을 「여성동성애자」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송오 목사가 사용한 스테판 TR 의 헬라어 「말라코이(malakoi)」는 분명 주격 남성 복수대명사이고, 영어킹제임스성경의 「effeminate」역시 여성화된 남자를 의미하는데 무슨 근거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어 「여성동성연애자」라고 번역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목사가 번역할 때 사용한 「Interliner Greek English New Testament by George Ricker Berry(Baker Book House, 1982)」 444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말라코이」란 단어 밑에 리커 베리가 영어로 풀이해 놓은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이 눈에 띄었고, 그 옆의 「아르세노코이타이(arsenokoitai)」란 단어 밑에는 「abusers of themselves with men」으로 풀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두 단어를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여성동성연애자」와 「남성동성연애자」로 번역을 했다. 그렇지만 「여성동성연애자」에 해당하는 「abusers of themselves as women」은 「자신들을 여자들과(with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 아니고 「자신들을 여자인 것처럼(as women) 남용하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조그마한 부주의가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놓은 결과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헬라어를 바로 알았더라면 사실 이런 실수를 범치 않았을 것이다.
또 벧후1:20의 「성경기록의 어떤 것도 사적 해석으로 된 것이 아니니(no prophecy of the scripture is of any private interpretation)」를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이 되어서는 안되나니」로 오역하였다. 즉 「성경에는 사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씀을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된다」로 오역하여 개인적 성경해석을 금지하는 로마카톨릭에게 근거를 제공해주는 꼴(?)을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 16장 1절에서 「교회의 섬기는 자(a servant of the church)」인 뵈뵈자매를「교회의 일꾼」이라 번역하여 여자 직제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으며 「양시장(sheep market, 요5:2)」를 「양문」으로 오역하고, 「아이(child)」를 「아들(son, 행4:27)」로 오역하고, 「장로(elders, 히11:2)」를 「원로」로 오역하고 「세대(generation), 창2:4)」를 「내력」으로 오역하고, 「혼인만찬(marriage supper, 계19:9)」를 「혼인잔치」로 오역하고, 이사야 52장 14절에서는 2인칭(thee, 너)을 3인칭(him, 그)으로 바꿔 번역했으며 욥기 22장 14절에서는 「궤도(circuit)」를 「길(way)」로 오역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신약성서의 그리스어 본문
근래에 그리스어 성경본문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란 후대에 첨가하거나 손질한 곳이 많은 본문이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본문을 가치 있는 본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요즈음에 성경을 번역할 때에 번역의 대본으로 삼는 그리스어신약성경은 네슬레와 알란트가 편집한 「신약성경 그리스어」나 세계연합성서공회판 「그리스어신약성경」으로서, 최초의 본문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받은 본문이다.
서로 다른 그리스어 신약 본문들 우리에게 전승되어 보존되어 온 신약성경 본문은 단편사본까지 합쳐서 약 5,000여 개의 그리스어 사본들이 있고, 이 사본들 가운데서 본문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둘도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의 원어와 본문전승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오래 전부터 최초의 원본에 가까운 그리스어 신약전서를 편집해 보고자 한다.
사본들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실수를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이 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본을 베끼는 사람들이 일부러 어떤 단어를 넣거나 빼거나 고치거나 하여 본문이 달라져서 전승된 경우이다.
신약성경의 경우에는 초대교회들이 퍼져있던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신약 본문들이 서로 조금씩 달라져서 전승되어 왔다. 곧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콘스탄티노플, 칼타고, 로마 이런 곳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본문이 읽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 서방본문, 가아샤라본문(동방본문), 비잔틴본문 등을 들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지방본문은 가장 보수적으로 유일한 것이며 4세기 중엽에 필사된 바티칸사본(B)과 시내사본이 여기에 속하는 서방본문은 단어나 절이나 심지어는 문장까지도 자유롭게 첨가되거나 생략되면서 변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이사랴 지방본문은 동방본문으로서 일찍이 3세기부터 읽혀지고 있으며 그 특징은 서방본문과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혼합시킨 것이다. 비잔틴본문은 본문자체의 명확성과 완정성이 특징이다. 알렉산드리아사본(A), 후기 대문자사본, 수많은 소문자사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예전의「표준본문(Textus Receptus)」-(수용본문)
최초로 발행된 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에라스무스가 편집한 신약성경으로서, 1516년에 바젤에서 나왔다. 그러나 에라스무스의「그리스어 신약성경」은 전승되어 오던 어느 한 본문을 반영하지 않고 12세기 경의 서로 다른 세 사본(복음서사본, 사도행전과 서간사본, 요한계시록사본)을 편집하여서 합친 것이다. 특히 계시록의 경우에는 가지고 있던 사본의 마지막 장이 떨어져 나가서 에라스무스가 마지막 여섯 절을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되번역하여 넣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재구성한 그리스어본문은 사실 어느 그리스어사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새로 만든 본문이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을 포함하고 있는 본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표준본문'(Textus Receptus)이라 하여 전승되고 있다. 마르틴루터의 독일어역 신약(1522)과 틴테일의 영어역신약(1525)은 둘 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제2판(1519)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에 이어 나온 주목할만한 편집은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이다. 1550년에 나온 그의 그리스어 신약성경 제3판은 본문비평장치를 갖춘 최초의 비평적 편집이다. 그 이듬해에 나온 스테파누스의 그리스어 신약 제4판은 최초로 숫자로 절 구분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테오드르 베자도 1565년부터 1604년까지 무려 아홉판 이상의 그리스어신약을 출판했고 1611년에 나온 제10판은 사후의 편집이다. 베자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서는 「표준본문」을 대중화하고 정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1611년의 「영어 흠정역」의 신약번역의 대본이 바로 베자가 1588-1589, 1598년에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다.
신약의 표준본문(TR)이란 전승과정에 손질하고 첨가한 곳이 많은 본문, 곧 본문비평 이전시대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 표준본문은 이미 19세기 말의 신약성서학계에서 가장 빈약한 신약본문으로 판정을 받고 있었다.
새로운 표준본문
네슬레의「신약성경 그리스어」는 19세기 신약본문 연구의 결과들인 팃셴도르프, 웨이트콧-호르트, 웨이머트 등의 본문을 기본 본문으로 삼아서 다수결 본문을 만든 것이다. 네슬레판 그리스어 신약은 「네슬레와 알란트」판으로 불리면서 비평적으로 편집된 그리스어 본문자체와 본문비평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신약성서 학계에서 새로운「표준본문」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미국 성서공회에서 나이다(E. A. Nida)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UBS)에 가입한 110여 개국의 각국 성서공회에 있는 수백 개의 성서번역위원회 위원들과 번역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이 사용할「번역가를 위한 그리스어 신약성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1966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 초판을 내놓았다. 그리스어 신약본문에 관해서 알란트 자신이 네슬레와 알란트의「신약성경 그리스어」25판을 수정하려던 계획을「그리스어 신약성경」에 그대로 반영하였으므로「그리스어 신약성경」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 사이에 그리스어 본문이 많이 같아졌으며 드디어「그리스어 신약성경」(1975-1983) 3판과「신약성경 그리스어」26판은 단락구분과 철자법과 구두정 일부를 제외하고는 본문이 거의 일치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1990년 7월 13일 홍콩에서는「그리스어 신약성경」4판과 「신약성경 그리스어」27판을 준비하는 위원회가 열려 그 즉시 출판을 했다.
현재 성경번역에 있어서는 구약으로는 Biblia Hebraica Kittel(BHK)과 Biblica Hebraica Stuttgartensia(BHS)가 있고 신약으로는 네슬레·알란트의 Novum Testamentum Graece(NTG)와 세계성서공회연합회(The united Bible societies)의 The Greek New Testament(GNT)가 있다.
아무튼 이젠 성경번역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말보회와같이 엉터리 번역으로 인해 한국교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참고 : <조찬구 차장>월간 현대종교 95년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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