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무등에세이- 박달재 시의 축제
입력시간 : 2014. 09.05. 00:00
허형만 ( 시인·목포대 명예교수 )
8월 마지막 주 토요일,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에 있는 '원서문학관' 마당은 '박달재 시의 축제'로 들떠 있었다. '원서문학관'은 오탁번, 김은자 시인 부부가 야생화처럼 숨어있는 교실 세 칸짜리 백운초등학교 옛 애련분교를 손질하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휴식처로 만든 곳이다. 이날 시의 축제 주관은 제천에서 활동하는 '시여울동인회'(회장 한인석 시인)였는데, 축제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함께한 자연치유 도시 제천의 이근규 시장도 시인으로서 아름다운 축제를 치루는 동안 얼굴 가득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문학관 마당에서 바라보니 저만치 천등산 박달재를 넘어오고 있는 가을의 머릿결이 바람에 출렁거리는 게 보였다. 연못에는 청개구리와 어리연과 잠자리가 한 몸으로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고, 박하사탕 촬영지 가는 쪽으로 메밀꽃이 하얗게 넘실거렸다.
한편, 문학관 바로 건너편에는 세수 350세가 되셨다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많은 사리들을 거느리시며 가부좌를 틀고 계셨다. 내가 보기엔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보이시지만 원래 사람이 매긴 나이란 게 허망하고 믿을 것이 못되는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그 넓으신 그늘에 쉰다. 생각해보라. '그늘'이란 말처럼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서 들은 귀 천년 다 내려놓고 조용히 그늘의 품에 안기노라면 이만한 평화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늘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삭막한가. 그늘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은 또 얼마나 야박한가. 그늘은 곧 넉넉함이요, 배풂인 것을. '미래사목연구소'에서 펴낸 대림 묵상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한 때 미국에서 최고의 부자라고 하던 록펠러는 그의 나이 48세에 큰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의사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시골에 가서 쉬는 길밖에 없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죽음의 선고를 받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나눌 줄 몰라서 '악덕 기업주'라느니 '구두쇠'라고 악평이 났던 사람이었다. 그는 의사의 지시대로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이웃 농부들과 어울리고 정원을 가꾸며 모처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생활 속에서 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고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그리고 회개하였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건강을 다시 찾고 일을 하게 되었다. 48세에 병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었는데 98세까지 살았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재단을 통해 지금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부자 중에 가장 돈을 잘 사용한 사람이라고 한다. 록펠러의 그늘이 오늘날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고 있는지에 대한 예화가 아닐 수 없다.
애련리에 오면 부드러움이 있다. 몸을 부드럽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생각을 부드럽게 하는 천등산의 그늘이 있다. 그 부드러움은 또한 '원서문학관'의 주인인 오탁번 시인의 마음처럼 어린애 같은 동심을 닮았다. 그래서 '박달재 시의 축제'에 모인 동네 농부들과 시인들이 박달재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키며 한 마음으로 시를 읊고 노래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래 전 이곳 '원서문학관'에 와서 '애련리'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시 한 편을 썼던 적이 있다.
애련리
하고, 혀로 알사탕 녹이듯 굴리면
솜병아리 얘리얘리한 주둥이 같아 애련타
박달재를 바름바름 넘어온
솔솔바람 소소소 다리품 쉬다가
소르르 잠이 들 것 같은,
설피해지면 천등산이 거느린 그늘들
바스스 일어나 어미 품으로 돌아갈 것 같은,
애련리
하고, 혀로 소롯이 또 한 번 굴리면
팔느락팔느락 저녁연기 같아 애련타.
무등일보 zmd@chol.com
첫댓글 애련리가 애련하네요
그날 시낭송이 새록새록입니다
감사합니다
애련하게 떠오르네요, 그날이.
참 즐거웠던 날인데.^^
글 올려 주시고 참석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또한 교수님이 참석해 주셔서 자리가 한층 더 빛났습니다
시 여울동인 모두 박수 보냅니다
시여울이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고 있네요.
무등산까지 갔으니
지리산, 한라산, 태백산, 금강산, 백두산, 에베레스트 까지...
아참! 광덕산을 빠뜨렸네요.
(광덕산은 제가 살고 있는 곳에 있는 조그마한 산입니다.ㅎ)
회장님! 다시 한번 크게 박수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