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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와 삶
사단법인 해반문화사랑회
이사장 이흥우
1. 인천의 문화적 특성
문화라 하면 어원적으로 agriculture(경작하다)에서 나왔는데, 自然에 反한 人爲的인 것을 뜻하기도 하고, 인간의 정신이 녹아난 총체적인 생활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튼 근래에는 문화 예술을 말하는 좁은 의미의 문화보다는 인간의 총체적인 생활방식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가 대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달리 말해,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에 인간의 도전과 응전이 어우러져 만든 균형추를 문화라 할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받아들인 사회적인 공기인 셈이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고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회에서 문화를 형성하므로, 자연 지리적 요소와 사회 내의 여러 가지 사건이나 일 같은 사회적인 요소들이 역사적 배경을 갖고 문화에 작용한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에는 풍습이나 전통에서부터 종교나 사상까지도 포함되니 넓은 의미의 문화에 속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특히 인천의 문화적 특질을 야기하는 요소를 손꼽아보라면, 문화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아마 첫째로 바다라는 자연 요소와 여기서 비롯된 항구라는 사람이 만든 요소와 도시가 갑자기 커진 최근 100년의 역사적 배경 등이 될 것이다.
한 도시의 문화란 한 도시의 정신이며 힘이다. 도시의 문화는 밖으로 건축물이나 도로 등의 도시 외관을 통해 전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또 안으로는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정신으로 녹아있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 100년 전 일본인에 의한 도시계획조차 현재 우리 인천 시민에게 알게 모르게 깊숙이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일본 나가사키의 글로버 공원을 걷는다면, 우리는 마치 인천 자유공원아래를 걷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자유공원 돌담길을 돌아 인천항을 내려다보며 걸을 때와 똑같은 정취를 느끼며 우리는 깜짝 놀란다. 일본인이 인천에 와서 그들의 건축양식과 삶의 양식을 뿌리고 갔으며 그 문화 속에 우리가 모르는 새 젖어 지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문화는 이런 것이다. 똑같은 정취에 빠지게 만드는 그 모든 것. 구획된 골목과 창문, 돌담길뿐만이 아니라 과거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체취들이 포함되어 있다.
도시문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는 무엇보다 자연 지리적 여건을 들 수 있다. 도시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 지리적 여건은 여러 사회적 사건과 엮이면서 역사적 배경을 구성한다.
인천의 자연 지리적인 환경의 특성인 바다와 갯벌이 있는 작은 포구에 사람들이 어업을 위주로 하며 모여 살았고, 19세기말에는 서울이 가깝다는 이유로 밀려드는 서구열강들의 요구에 의해 인천에는 보다 큰 항구가 축조되었다. 항구로 각지의 사람들이 근로자로 일하러 모여들었고, 이러한 인구분포상의 사회적인 특성은 개방성과 포용성 등과 같은 현재 인천의 긍정적인 특성을 만들어냈다.
조선시대 말 서구 열강들이 인천에 들어오면서, 인천은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개화의 땅이 된다. 물론 이 개화가 우리 민족사에서 긍정적인 역할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마치 과거 100년 전의 근대 개화기와 같은 역사가 또 다시 되풀이되는 듯,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부정적인 역사든 긍정적인 역사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세계화가 진행되는 한 쪽에서는 전통적인 지역공동체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고유한 정체성의 좌표를 잃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구식 의료1)와 서구식 교육제도2)와 기독교, 전화3)와 우편제도, 전기와 철도4)가 인천에 먼저 들어왔고, 이에 따른 갖가지 흔적들이 영화학교, 답동성당, 성공회 건물, 내리교회, 인천우체국, 일본제일은행, 18은행, 58은행 등으로 인천에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5)에서 연극이 시작되었고, 영화(최초의 활동사진 영화관은 표관6))와 야구 등도 인천사람들 생활 속에 자리잡았다. 경인기차통학생 운동부를 기반으로 한 한용단7)이란 야구팀과 일본팀과의 야구전은 이후 1950-60년대 인천고, 동산고의 전국 고등학교 야구 제패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천을 야구도시로서 한 시대를 풍미케 하였던 것과 또 수많은 연극배우가 인천에서 배출된 것도 다 이러한 역사 문화적 토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각 분야가 인천을 통해 서울로 입성하였다.
먼저 받아들여진 서구식 교육제도의 여진으로, 전국 최고의 도서관을 자랑하던 제물포고등학교의 개가식도서관은 전국에서 견문하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어느 도시보다도 먼저 상륙한 신교육의 도래는 길영희 교장의 무감독시험 등을 전국에 내세울만한 교육이념으로 꽃피우게 하였다.
잘 살아보자며 한국이 경제 부흥의 깃발을 올렸을 때, 인천에는 수많은 산업 공단들이 세워져서 전국 각지의 서민근로자들이 도약의 꿈을 품고 인천에 와 둥지를 틀었다. 비록 후에 공해와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되었지만 수출공단5․6지구, 남동공단, 부평4공단, 주물공단, 가구공장, 악기공장 등 여러 산업공단의 역군들이 인천에 뿌리를 내려 경제적 국가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며 산업화시대의 막을 열었다. 당시의 열악한 노동여건은 동일방직 사건 등을 빚어내기도 했지만, 이러한 노동운동의 정신은 추후 인천을 노동운동의 메카로서 자리잡게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지방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인구분포상의 사회적인 특성이 추후 인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최근 공항건설과 경제특구의 지정, 중국의 부상과 세계화 기류 등 국내외 제반 여건이 달라지면서 인천에는 새로운 입지가 마련되고 있다. 사실 도시 형성 100년이란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므로, 이제 인천은 문화적 축적을 위한 시작에 섰을 뿐이다. 그 동안의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이제 본격적인 지방자치체제로 변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점차 시민들도 주인의식을 찾아가고 있으므로, 이는 한결 지역문화의 정착과 심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2. 현 시대에서 지역의 의미
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천이란 땅과 그 안의 공동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인천의 행정구역상 안에는 농경지도 있어 작은 마을 공동체의 흔적이 남겨있는 곳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의 의식 구조는 이미 대도시의 양태로 바뀌어 있다.
과거 유교적 전통아래 어른들과 함께 살던 마을 공동체에서는 마을이 바로 확대된 내 자신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옛날의 작은 마을 공동체는 사라지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되면서, 옛 마을 공동체와 같은 소속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유목민이나 부초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이 도시인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농경시대에 경작 대상이었던 땅의 의미가 현대에선 아무 쓸모가 없다고 우리 삶에서 땅에 대한 의미를 빼버릴 수는 없다.
사람 스스로가 시각과 관심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개개 인권의 가치가 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에 대해 갖는 관심과 애정은 바로 우리 각자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잣대이다. 스스로 귀하게 여길 때만이 우리 삶과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확대된 우리 즉 지역사회가 귀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 의식이 전 세계와 내통이 된다하여도 우리 발이 이 땅에 머물러 있음은 인간적인 현실이다. 또 정보화시대가 도래하여 전 세계의 정보가 손안에 들어오고 전 세계가 하루 생활권으로 좁혀진다 할 지라도, 우리가 한 지역에 발을 붙이고 숨쉬며 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인간조건이다. 한 인간이 사는 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땅과 이웃들이 중요함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자연과 지역사회가 하나의 공동운명체임은 인간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한계이며 인간 본질인 것이다.
최근 하나의 표준 잣대를 강요하는 세계화로 말미암아 지역 문화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 한 지역의 고유한 자연 환경과 어우러져 수천 년 간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져 온 지역인들의 생활방식인 지역문화가 획일적으로 세계화된 표준 아래로 종속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그런데 미국화로 대표되는 세계문화를 마치 보편적인 것처럼 여기는 것에는 인간이라는 보편적인 관념과 구체적 개인을 동일한 것으로 잘못 대비할 때 생기는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다.
획일적인 세계문화를 빙자해서 다양한 지역문화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개인 각자의 존엄성과 인권을 파괴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것은 절대 관념이 아닌 구체적 개인이며,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고귀함은 보편화시킨 관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명, 개성, 인간성 그 하나 하나에 있다. 보편적인 세계문화에 대비하여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함도 바로 이와 똑같은 맥락에 서 있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호지는 서구문화와 작은 티베트(라다크)의 문화를 비교하며 경쟁심이 인간 본성에 절대적으로 기인하기보다 서구인들의 문화에 기인한다고 밝히면서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3. 왜 이제 지역문화가 중요한가
서구 열강들의 동양 진출에 따른 일제의 한반도 강점, 그리고 해방과 6.25 동란을 거쳐, 근대화와 산업화의 와중에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그 후 2-3번의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점차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 한국 근․현대 사회 변화의 개략이다.
이제까지의 시대 흐름으로 보면 앞으로의 시대적 화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나 ‘민주화를 위하여’란 구호보다는 아마 지역발전이나 지역문화활성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세계화 시대에 왜 하필이면 지역이 중요하고 더군다나 지역문화가 중요할까?
지구가 하루 생활권이 되고 또 인터넷을 통하여 전 세계 정보가 순식간에 우리 앞에서 처리되는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에도, 한편에선 여전히 고등학교 동창회와 운동회가 열리고 김씨네 아들이 면 서기로 가게 된 것까지 동네의 얘기 거리가 되는 것이 우리 삶의 실상이다. 다시 말해 한편에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표준대로 인터넷 정보화가 이루어지고 달러로 무역거래가 이루어지며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삶이 펼쳐지는 것에 반하여, 또 한편에서는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태생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매일 매일 지역이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며 지역적 삶을 펼치게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지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세워진 국가에 더 심화해야 할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이 중요하다. 좀 더 발전적인 국가를 위하여 시민 사회가 우리의 화두가 되었듯이, 마찬가지로 이미 마련된 기본적인 민주주의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 이제 지역이 화두가 된 것이다.
우주를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우주에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생각과 삶은 다른 것이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지역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역과 문화는 중요한 것이다. 인간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영원한 숙명이기도 한 지역적 삶의 총화가 바로 지역 문화이기 때문에, 지구촌에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우리에게는 세계 교회와 같은 종교적 강령보다 오히려 민초들의 삶의 양식인 지역 문화가 더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각 지역이나 민족의 다양한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놓칠 수 없었던 보편적 가치였듯이, 마찬가지로 한 국가 내에서도 중앙에 의한 문화적 획일화가 아니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고유한 문화의 정초가 놓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자긍심이나 개성 같은 인간적 가치는 항상 지역 문화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는 제각기 특성이 있다. 인천 하면 항만과 공단과 자유공원이 떠오르고, 광주 하면 예향과 민주화운동이 떠오른다. 대구는 분지와 사과와 정치적 메카라는 이미지를, 속초는 오징어와 동해 바다라는 이미지를 산출한다. 이렇게 각 지역은 나름대로 자연․지리적 특성과 역사․문화적 특성을 가지며, 게다가 지역민들이 이것을 자랑하며 자신감을 가질 때 지역 사람들은 살맛이 나게 되는 것이다.
강남에 가면 사업하기가 좋고 학군이 좋다고 하여, 모두 다 강남으로 가서 살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강남의 문화만을 모두의 잣대로 삼아서야 국가가 제대로 되겠는가.
국가의 총체적인 발전이란 당연히 지역의 특성화된 발전에서 비롯되며, 이것이 바로 지역의 균형적 발전이다. 그렇다면 대도시로의 집중이 가져오는 교통과 환경과 교육문제 등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특성화는 바로 지역민들의 개성과 지역 사회의 분위기로 이어져서, 결국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지역문화의 활성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문화적 활성화는 한 국가의 총체적인 발전으로 수렴될 것이다.
다행히 새 정부에서도 이제 지역분권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분권의 궁극적 목표는 지역문화활성화, 즉 지역적 삶의 고양에 있다. 지역적인 삶의 존중, 바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최고의 지향 목표인데, 그것은 바로 지역문화가 활짝 꽃필 때에 이루어진다.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은 풍요로운 지역문화의 토대 아래에서만 가능하며, 우리가 지역분권을 통해 바라는 진정한 지역자치의 궁극적 목표도 바로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안정된 사회에 있는 것이다.
4. 주인의식이 적고, 지역정주성이 낮은 인천
-왜 사람들은 인천을 떠나려하는가
지역정주성(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경주 엑스포에 갔을 때 축제 진행 요원들이 하는 말은, 동네가 좁아 서로 집안이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에 경주 공무원들은 공무를 함부로 집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은 이웃들의 이목이 두려워서도 함부로 큰 비행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디든 이사를 가고 올 수가 있지만, 그래도 한 도시를 지키는 것은 주인의식을 가진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다.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도시를 지킬 수는 없다.
99년 문화시민단체인 사단법인 해반문화사랑회에서는 “인천에는 주인의식이 없다, 서울에 종속적이다, 지도층인사들은 인천에서 돈을 벌어 서울 가서 살고 서울서 쓴다, 교육을 위해 애들을 서울로 보낸다” 등 말로만 듣던 항간의 사실들을 확실하게 자료 수치로 내보이고 확인하기 위하여 인천연감의 인명록의 대상인사 4400명 정도를 분석하고, 또 직접 1100명의 인사를 직접 설문조사하여 그 결과를 <열려있는 땅 인천>이란 정주성연구보고서로 발표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인천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소개한다.
5. 지역정주성이란 지표를 통해 나타난 인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열악한 교육과 문화 여건 때문에 사람들은 인천을 떠나려한다
인천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산다. 개항 이후 여러 지방에서 인천으로 유입된 사람들과 동란의 피난민을 포함하여 산업화시대에 공단으로 유입된 전국각지의 사람들이다. 개항 당시 채 인구 만 명이 안되었던 인천이 현재 260만 이상의 인구를 가졌으니, 현재 사는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토착민보다는 거의 외지에서 신천지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다.
해반문화사랑회에서 발간한 <열려있는 땅 인천>이란 지역정주성보고서에서 인용한 97, 98년도의 인하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의 1, 2차 시민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출신별 인구분포는 인천,충청,서울,경기,전라,경상,강원,이북,제주의 순으로 각기 대략 28%, 16%, 14%, 12%, 11%, 11%, 5%, 2%, 1%로 되어있다. 이는 인천이 여러 곳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개방적인 땅임을 알려주고 있다.
같은 책의 인명록분석에서는 고위공무원, 초중고 교감과 교장, 언론인, 교수, 기업체 경영진, 지방의원 단체장 국회의원, 시민사회단체장, 판검사 변호사 세무사 관세사, 문화예술인 건축사, 의사 약사 한의사, 기타전문직으로 나누어 모집단 4432명을 분석하였고, 엘리트설문조사에서는 주요인사 917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였다.
주요인사들의 인명록분석에서 본인출생지는 인천, 경기, 충청, 서울, 경상, 전라, 이북, 강원, 제주의 순으로 각기 39%, 13%, 12%, 11%, 10%, 6%, 6%, 2%, 1%였고, 설문조사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게 35%, 10%, 14%, 16%, 8%, 10%, 2%, 3%, 1% 였다.
설문조사의 결과 인천지역 지도층인사의 약 2/3 (63.5%)정도가 부모와 자신이 인천에 아무런 연고가 없으며, 1/3정도만이 인천이 부모나 자신의 출생지로 되어있다. 이 자료도 인천에는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사회적 특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정주의식 조사 지표를 통해 우리는 왜 그들이 인천을 떠나고 싶어하는지 또 그러한 그들을 인천에 머물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인명록분석에서 본인이 인천에 거주하는 비율은 63%정도였다. 97년 9월 인하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가 시민 약 2000명을 대상으로 했던 시민설문조사에서 80%의 시민이 인천에 직장을 갖고 나머지가 인천 외 지역에 직장을 가졌다는 결과와 비교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시민과는 반대로 지도층인사들은 업무가 끝나면 1/3정도가 서울이나 경기도로 가버린 셈이다..
엘리트설문조사의 인천 거주율은 83.6%였다. 인명록에서 초중고교감 및 교장의 인천거주율은 89.4%로 전체 엘리트의 평균63.1%를 훨씬 상회하였으나, 대학교수의 경우는 30.4%로 가장 낮았다. 지역대학이란 초중등학교와는 달리 당장 인천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들을 키우는 곳이고 지역대학의 교수들이 지역의 중요한 정책자문위원으로 많이 일하는 현실을 생각해 볼 때, 혹 지역에 대한 정보와 애정이 적은 이들이 지역의 중요정책을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인천에는 종합대학이 두 곳, 그나마 4년제 대학이 입학정원이 100명 미만인 가천의과대학 카톨릭대학과 인천교대뿐이며 전문대학이 다섯 곳 있다. 게다가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대학의 증원이나 증설이 원천 봉쇄된 인천의 현 상황 속에서 더욱더 지역사회에 대한 역할이 요구되는 대학의 역할을 감안하면, 대학교수의 낮은 인천 정주율이 말해주는 의미는 사뭇 심각하다. 이렇게 시민들과 엘리트들이 인천을 가차없이 떠나고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건이 허락되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의사가 있느냐를 묻는 설문조사에, 일반시민조사(97년9월)의 경우가 48.1%, 엘리트설문조사가 38.9% 이주하겠다고 대답했고 그 희망지역으로 서울(41.9%),경기(16.9%) 및 기타지역을 들고 있다. 또 엘리트설문조사의 경우에는 환경공해, 여가문화시설 열악, 직장여건, 교육여건을 각기 26%, 24%, 8.8%, 6.8% 이주 이유로 들고 있다. 시민 조사의 경우 이주 희망지역이 서울(29.8%),경기(22.2%)인 것과 비교해 보면 인천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비율이 시민보다 엘리트들이 조금 작지만 서울로 가려는 서울지향성은 엘리트들이 더 강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시민들이 떠나고 싶어하는 인천에서 그들을 머물게 할 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삶의 질적 향상의 바로미터인 교육과 문화 여건의 향상이다. 그래서 문화와 교육이 중요하다. 다음은 이러한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인천의 객관적인 여건에 대한 평가에서 나쁘다는 평가가 여가문화여건(57.9%), 자연환경(59.2%), 사회간접시설여건(47.6%), 교육여건(41.5%) 주택 및 편의시설(26.5%) 등으로 설문조사분석이 나왔고, 인천의 부끄러운 면으로 빈약한 문화․교육(26.3%), 지도자부재(26.3%), 환경오염(21.1%) 등을 꼽았으니 이 또한 교육분야의 문제점 해결과 그 대안 모색이 시급함을 말해 주고 있다.
문화적 여건의 열악성과 더불어 특히 교육 여건의 열악성은 대학진학율의 전국 최하위라는 지표로도 일부 나타난다. 즉 중등교육의 질적 향상이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1997년 6대도시 대학진학율 중 전국평균 0.42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 0.37이란 지표도 이를 말해주고 있다. 1998년 <교육통계연보>등에 따르면 인천인구가 전국대비 5%인데, 대학입학정원은 전국대비 2.13%로 6대도시중 최하위이고 게다가 인천 고교의 일반대학진학률이 36.6%로 6대도시중 최하위이며 전문대, 교육대, 기타학교를 포함한 총진학률도 56.3%로 최하위이니 아무리 전인교육이 중요하고 대학입학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고 좋은 말을 하더라도 인천의 중등교육 현실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6. 한국 근대사에서 인천의 역할
1883년 개항당시 행정구역상 인천부의 인구는 채 만 명이 되지 않았다8). 서구열강들이 앞다투어 동양으로 진출하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재빨리 서구의 물결을 근대화의 옷으로 갈아입었던 일본에 의해 인천은 강제로 개항이 된다. 인천부에서도 몇 십 가구가 있던 제물포란 조그만 포구에 항구가 축조되고, 청국인, 일본인, 양인들이 그들만이 자치권을 갖는 각국지계를 설치하여 외국인들이 들어 와 살았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세가 점차 인천에는 강해지고 결국 조선은 1910년에 한일합방을 당한다. 한 때는 일본인들과 한국인의 인구수가 비슷할 정도로 일본세가 강했으며, 한국인중에는 결국 각국지계의 외국인에게 더부살이하는 사람들과 하역작업에 하는 부두노무자, 막일꾼, 일본헌병에 쫓기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천에서는 주인 없는 종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었다고 신태범 박사는 <개항후의 인천풍경>에 적고있다.
해방이후 6.25동란에는 전국 각지의 피난민들이 인천에 몰려들어 삶의 둥지를 틀었고, 특히 1960년대에는 잘 살아보자는 조국근대화의 기치아래 공업 진흥을 외치면서 주안, 부평, 남동 공단 등이 생기고 전국의 서민근로자들이 인천의 공장으로 너도나도 몰려들게 된다. 국가 산업화를 위해 그 때 세워진 공단들이 아직도 공해의 대명사처럼 공해를 뿜으며 인천에 산재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인천에 되돌아 온 결과물은 정반대이다. 서구식 교육제도의 선입으로, 전국 최고의 지성인들로 배출되었던 인물들은 서울로 유출되어 중앙의 각 분야에서 활동이 수려함에도 불구하고 인천으로의 회귀는 막혀 있다. 강력한 수도권 중심의 중앙집권이라는 블랙홀은 인재이든 재산이든 강력하게 서울로 빨아들이고 있다.
지역적 배타성이 적은 고로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인천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자 흘러 들어오고 있다. 이런 지역적 포용성과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처에서 손쉽게 인천을 사업의 터전으로 자리 잡으러 온 변호사 의사 등 고위 전문직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비록 사업은 인천에서 하지만 집은 아이들의 교육 문제 등을 고려하여 아무런 지역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 채 손쉽게 강남과 목동으로 다시 옮겨가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천에는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7. 인천의 역사적 의미와 정체성을 새로운 긍지로 재해석하자.
이러한 부정적인 지역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대체 무엇일까? 우선 이러한 사실에 대한 시민들의 자각과 반성이 앞서야 한다. 인천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즉 결코 인천이 짠물의 도시가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희생과 포용의 역할을 당당히 받아내고 또 개화의 물꼬를 한국 내로 돌린 중핵의 도시였으며 또한 한국사의 중심에 우뚝 선 어머니와 같은 도시였음을 자각하고 마땅히 이를 긍지로서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앞서 우리는 개항이후 일제 수탈의 장소에서, 동란 중에는 피난민들의 거처로서, 산업화시대에는 공단 등의 건설을 통해 한국 개화와 조국 근대화의 정점에 서 있던 인천의 과거사를 보았고 바로 인천이 희생과 포용의 땅임을 보았다. 누구나 받아 들였던 포용성과 개방성을 가진 인천은 언제나 어머니 같은 땅이었다. 강화를 호국의 땅으로,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부르면서 왜 우리는 인천을 한국근대화와 개화를 일구어낸 땅으로 소리 높여 부르지 않는가. 인천의 역할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위대하였다.
지금 여기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이 몇%나 되는가. 여기는 누구나 와서 사는 신천지 개방의 땅이다. 인천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 인천에 살고있는 사람은 모두 인천사람이다. 110여 년 전 채 만 명도 살지 않던 인천의 인구가 현재 260만 이상이니 인천 시민의 거의 대부분은 외지에서 인천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새로운 고향으로 삼고자 온 사람들이다. 전국각지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땅, 인천. 그래서 지역색이 없고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도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던 땅, 인천. 그래서 우리가 들어와 고향처럼 살고 있는 인천. 과거 한국사에서 쓰레기매립장처럼 모든 걸 품었던 어머니처럼 포용과 관용의 땅인 인천. 우리가 어디 가서 새로이 주인 노릇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주인의식 없이 떠돌아 사는 종살이의 자세로 살 것인가.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의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8. 지역문화 진작을 위해 누가 먼저 구체적인 행동을 할 것인가
인천은 문화적으로 열악하다. 서울에 가깝다는 것이 중앙집권적인 사회구조와 맞물려서 오히려 부정적이고도 종속적으로 작용을 했고, 또 송도신도시나 공항, 경제자유구역 등 국가적 입장의 대형사업이나 개발 위주로 가다 보니 당장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또 지역주민들의 자치의식이나 주인의식이 적어 언제든지 떠돌이처럼 살다 목동이나 강남이나 좋은 곳으로 가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점점 더 악순환을 가져왔다.
사실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키는 주체는 결국 시민이다. 그리고 그 활력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정과 주인 의식에서 나온다. 자신의 삶을 존귀하게 여기므로 당연히 자기 주변을 아끼고 자기가 사는 땅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지역에 사는 주인으로서의 자존심이고 지역사랑이다.
게다가 사람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만들거나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든 문화가 풍성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역의 여러 가지 제반 특성들이 어우러진 지역문화를 꽃피우는 것이야말로 지역이 잘 사는 첩경이다. 그런 뜻에서 서로의 입지나 위치의 간극이 벌어지는 정치 경제 사회 분야보다도, 서로의 간극이 누그러져 좁혀지는 그런 문화 분야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지역의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앙종속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지역문화활성화를 시키는 근본 동력이 되고, 그 새로운 동력의 특성은 시민 자율성에 있다.
우리는 여러 자원 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의 외연을 넓히고 또 시각을 넓히게 된다.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에서의 자원 활동이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차원에 관련된 활동이라면 문화 관련 활동은 우리 인간 삶이 바라는 꿈이나 비전을 보여주는 활동이다.
그런데 민간기업이 공기업보다 더 경쟁력을 갖고 있듯이 문화 부문에 있어서도 민간이 훨씬 활력이 있다. 예를 들어 삶의 애환이나 의미가 배여 있는 보통 사람들의 골목거리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찾아내고 있는 대구 거리문화연대의 골목거리 지도제작이나 천년 고도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현재의 경주 주민의 자부심으로 다시 살려내고 있는 경주 신라문화원의 신라달빛기행 등은 지역문화활동의 모델이 될만한 사례들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시민단체인 해반문화사랑회에서도 지역사랑, 문화사랑, 인간사랑을 이념으로 지역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참고적으로 그 동안 진행해온 행사나 사업들을 말씀드리자면,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2년 간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공연으로 가졌던 월미도 토요문화마당, 인천의 중요한 향토사 책자인「인천석금」9)과 「개항과 양관역정」10) 같은 책의 영인본, 윤문본 발간작업, 지역을 바로 알아야 지역에 대한 애정도 생긴다고 지역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지역답사, 벌써 44차 8년째 진행하면서 지역의 문화적 현안이나 과제에 대해 토론하여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는 해반문화포럼 등이 있다.
여러분들이 펼치고 있는 인천사랑아카데미 같은 인천사랑운동협의회의 활동도 귀중하리라 생각된다. 출발할 적에는 다소 관 주도가 아닌가 하여 저 자신도 문제점을 제기한 바도 있지만, 결국 나라가 서려면 공무원과 관의 굳건해야 함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어떤 출발점이던 간에 그 출발선 상에 점차 새로운 시민의식이 가미되어 나름대로 발전적인 토대를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보다 나은 지역사회를 위해서는 지역문화운동이든 환경운동이든 경제정의실천운동이든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여러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과 격려가 필요하다.
9. 어떻게 지역문화를 살려야하나
-풀뿌리와 같은 지역문화의 저변 확대
몇 년 전부터 일년에 한 번씩 철쭉이 만개할 때 동네 사람들과 집 뜰에서 동네 가족 음악회를 하고 있는 어느 미술가 부부가 있다. 이것이 바로 풀뿌리 문화이고, 바로 문화가 꽃 핀 최상의 모습이다. 동네마다 또 이웃간에 이런 생활 속의 작은 음악회가 있을 때만이 진정 종합문화예술회관의 조수미 공연도 값이 있는 것이다. 만약 큰 공연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문화 저변의 진정한 뿌리를 망각한 모습이다. 문화의 뿌리가 민초들에게 깊숙이 내려앉을 때 진정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인천에서 더욱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문화시설보다도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산과 공원과 광장이며 작은 민간 문화공간이다. 인천에서는 작은 사설갤러리들도 생겼다 사라지고 또 소극장들도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배다리의 헌 책방 골목도 예전 같지 않은지 오래고, 음악 전용홀도 하나 없다. 지역대학이 적어 대학문화가 꽃피지 못하는 인천에서 문화적 수원을 채워주고 그 뿌리가 뻗을 길은 민간이 운영하는 작은 문화공간들이 활성화되는 길뿐이다.
큰 오페라하우스가 인천에 생긴다고 갑자기 인천 문화가 꽃피지는 않는다. 저변이 확대되지 않고는 문화는 굳건하게 꽃피울 수 없다. 문화는 엄청나게 큰 것, 즉 헛되고 죽어있는 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우리 규모에 걸 맞는 것, 즉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것 속에 있다. 그리고 사랑은 추상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성에 있다. 그러므로 지역 사랑, 문화사랑, 인간 사랑을 외칠 때 그 대상은 바로 살아 있는 구체적 개인인 우리 이웃의 김씨와 박씨인 것이고, 먼 지구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관교동이 되는 것이며,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의 조수미 콘서트가 아니라 전동의 동네음악회가 되는 것이다.
9. 문화의 힘
전쟁 후 피페화된 이 땅에서 우리가 그나마 밥이라도 먹고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한 주된 힘은 무엇일까? 물론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 부모들이 자신은 먹고 입지 못하더라도 자식들을 교육시킨 엄청난 교육열의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자신의 희생도 감수하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기인한 바가 컸고, 그것은 유교와 불교와 도교와 무속적인 것 등이 섞인 과거 농경시대의 소공동체가 갖는 문화적인 힘이었다.
강원도에서 인천의 공장으로 온 누이가 동생을 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으로 동생을 인천에 데리고 왔기 때문에 인천에 현재 있게 된 사람도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고, 또 월남전에 파병된 오빠가 목숨의 대가로 보내 준 학비로 대학을 다녀 이 자리에 계신 분도 계실 것이다. 부평 미군부대 주변에는 5-60년대만 하더라도 양공주들이 많이 있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힘은 바로 그들의 피와 땀이다. 그것은 더불어 살고자하는 농경시대에서 비롯된 전통문화의 힘이었다.
그런데 이제 산업사회로 도시화가 진전된 지금, 우리의 미래 꿈은 경제적인 근대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근대화이다. 과거 우리의 꿈이 가난에서의 탈출이었다면, 이제 우리의 꿈은 복지사회의 구현이고, 복지의 확대이다. 공원이나 광장이나 녹지의 확충, 문화시설의 확충,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배려 등 보다 공동체적으로 새롭게 정립되는 문화가 바로 우리 미래를 이끌어 가는 추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공공시설이나 공공재원, 즉 공기처럼 아무나가 쓸 수 있는 것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이미 농경 시대는 지나갔으므로 이러한 미래를 이끌어 갈 문화적 힘은 농경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도시 문화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동체적인 특성을 자각한 도시 문화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옛 농경문화에 있던 상호의존적이고 협동적인 내용과 정신을 잃지 않는 그러한 지역문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통합적이고 화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의 성격으로 보아, 사회가 문화적 가치(많은 이들이 더불어 잘 사는 가치)를 지향할 때 지역사회는 보다 안정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시민으로서 또 주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십시오. 오늘 시민 여러분들 앞에 나와서 시간을 갖게 되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 중에서 혹시 나름대로 여러분들 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참조하실 것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은 제게 더 없이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치는 사회를 바꿀 수 없어도 문화는 사회를 바꿉니다.
참고문헌:
해반문화사랑회, 『열려있는 땅 인천』,도서출판 해반, 1999
신태범, 『개항후의 인천풍경』, 인천향토사연구회, 2000
신태범, 『인천 한세기』, 한송, 1996
인하대학교사회과학연구소, 『시민이 본 인천』, 1998
김양수, 『인천개화백경』,도서출판 화인제, 1998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오래된 미래』, 김종철․김태언 역, 녹색평론사, 2001
고일, 『인천석금』, 해반문화사랑회 윤문본, 도서출판 해반, 2001
최성연, 『개항과 양관역정』(읽기 쉬운 개항과 양관역정), 해반문화사랑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