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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위로 자 예수님】
이 세상에는 고난이 많습니다.
얼마나 고난이 많은지 모릅니다.
욥기에 보면 [욥5:7]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여기도 고난 저기도 고난
고난천지입니다.
어린아이도 고난이
한승민(가명·51) 씨는 아들 규석(15)이가 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버지랍니다. 다만 아들에게 미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엄마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씨의 아내는 어려운 살림을 견디다 못해 떠났습니다. 그 때부터 한 씨 부자의 힘든 생활이 시작됐지요. 그래도 한 씨는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아들을 돌봤습니다.
이혼 직후 한 씨의 어머니가 규석이를 챙겼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2년 뒤 치매에 걸렸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부터 10여 년, 한 씨는 규석이의 엄마 역할까지 해내고 있습니다.
한 씨는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했습니다. 행상이며 용달차 운전, 건설현장 막노동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아들이 커가는 걸 보면서 힘든 줄 몰랐습니다. 3년 전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3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규석이가 손을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입니다. 병상을 지키던 한 씨는 몸이 무겁고 뭔가 안 좋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떨어졌습니다.
대장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말기. 대장의 3분의 2를 떼어내야 한답니다. 한 씨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지금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되었습니다. 한 씨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와 투병 생활 속에서도 규석이를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안 되지. 규석이가 있는데…"라며.
그러던 한 씨는 또 하나의 슬픈 소식 앞에 절망했습니다. 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아들 얼굴이었습니다.
현재 한 씨는 열흘에 한 번꼴로 항암치료를 받습니다. 갈 때마다 항암주사를 3대씩 맞는데, 효과가 좋은 주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그런 주사를 맞고 싶지만 몇 백만 원씩 드는 비용을 감당한다는 건 지금 형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병의 고통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지 모를 아들을 생각하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행여 아들이 밥을 굶을까,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나 않을까, 교통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온통 머릿속엔 아들 걱정뿐입니다. 한 씨는 제발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라도 살게 해 달라고 의사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어린 규석이도 아버지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먼저 떠나 버릴까 불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규석이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는 수영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무료로 수영을 가르쳐주고 싶답니다.
(2번째 이야기)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조기철(42·가명·부산 연제구 거제동) 씨 마음은 아직 한겨울입니다. 몇 주 전부터 골반에서 발바닥까지 심하게 당겨 걷기조차 힘듭니다. 딸과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 그 고통을 꾹 참았습니다.
결국 얼마 전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유를 잘 모르겠답니다. 정확히 알려면 CT를 찍어야 하는데 검사 비용이 두 달치 생활비와 맞먹습니다. 그래서 다시 참기로 합니다.
아내는 조울증에 자궁암 투병 병원비·약값 내면 생활비 바닥
조 씨네 가족은 조 씨가 신문배달을 하며 번 20만 원과,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삽니다.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조 씨는 가족이랑 행복하게 삽니다.
몇 년 전에 조 씨는 퀵서비스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조금씩 커가는 사업을 보면서 언젠가는 보란듯이 성공하리라는 다짐도 했죠.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요.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아내마저 조 씨와 어린 딸을 버려두고 떠나버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무너져 버린 거죠.
"여태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 한 번도 안 했는데…."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나니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과 딸 외에는.
그렇게 세상과 벽을 쌓고 있을 즈음, 지금의 아내(33)를 만났습니다. 아이 딸린 홀아비인데도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고 조 씨도 마음을 열었습니다. 결혼식도 못 올렸지만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지금 몸이 좋지 않습니다. 자궁암이 있고, 유방에도 이상한 게 있답니다.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않아 매달 난소 호르몬 주사를 맞습니다. 6개월마다 재검사를, 1년마다 CT촬영을 해야 합니다.
알고 보니 아내에게는 마음의 병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울증 약을 먹고 있습니다. 조 씨의 수입 중 상당 부분이 아내 병원비와 약값으로 들어갑니다.
돈벌이가 되는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우울증을 앓는 아내 때문에 조 씨는 오래 집을 비울 수 없습니다. 자기 몸도 아프지만 아내 앞에서 내색조차 하지 않습니다.
조 씨가 지금 바라는 것은 아내가 건강을 되찾아 온 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조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할 때 여기저기서 지게 된 빚과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3번 째 이야기)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못 쓰는 40대 딸이 치매로 병상에 누운 70대 어머니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가 우정사업본부 주최 전국편지쓰기대회에서 대상에 선정됐다.
8만 4,000여개의 사연 가운데 대상에 뽑힌 임영자(46)씨의 편지를 소개한다.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글도 모르시는 당신에게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 어머니, 어머니란 이름만 입속으로 되 내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홀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슬픔이 나의 생활이 되어버린 요즘 이 딸이 한 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감사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이승을 떠나는 그 날까지 아니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걷어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조금 전 당신은 귀저기 갈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며 아직 조금 남아있는 한 쪽 발의 힘으로 마구 발길질을 하시며 발버둥을 치셨지요.
그런 당신을 소아마비로 양쪽다리를 못 쓰는 저의 몸으로 한참을 실랑이 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치시던 당신이 이 딸과 실랑이하기도 지치셨는지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벽에 기대앉아 주름으로 거북이 등처럼 되어 버린 당신이 너무도 작아져 버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주르르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습니다. 저의 서러움 토해내는 소리에 주무시는 줄 알았던 당신이 휑하니 깊게 패인 눈을 뜨시며 깜짝 놀라 물으셨죠?
"아가, 왜 울어? 걷고 싶어서 우는 거니? 아가 울지 마라 내 다리 빌려 줄 테니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이 할미 가슴이 너무 아파 죽겠어."
하시며 연신 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감춰뒀던 것인지 침대 매트 밑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어 제 입속에 넣어주셨지요.
가엾은 당신, 이 세상 어느 부모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은 분 없겠지만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이 딸의 가슴이 더욱 아프고 서럽습니다. 12년을 중풍으로 누워있던 남편과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딸을 키우며 당신은 열 손가락을 몇 번을 꼽았다 펴야할 정도로 안 해본 장사가 없으셨지요. 그 세월 동안 당신이 겪어온 삶의 힘겨움을 어찌 제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저는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힘겹게 살아오신 불쌍한 당신께 정말 효도 많이 하자고요.
그러나 당신의 고생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낳은 딸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수 없이 드나들었고, 오랜 세월 병원에서 지내야했기에 그 세월동안 당신은 걷지 못하는 딸 대신 잠시도 바닥에 누워 있지 않는 손녀를 등에 업고 허리뼈가 물러나는 줄도 모르고 지내셨습니다.
회생이 힘들겠다는 의사 말에 어머니 당신은 내 목숨 거둬가고 우리 손녀 살려달라고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셨습니다. 그날의 당신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런 당신의 눈물겨운 간병 덕으로 저의 딸은 그 무서운 병마에게 이겨 지금은 건강한 대학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 귀에 입을 대고 "할머니 사랑 한다" 라고 속삭이는데 야속한 당신은 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시는지요?
저를 20년을 업어 키우셨고 당신 몸보다 더욱 커버린 이 딸을 업고 세상구경 시켜 주신다고 남산이며 장충단공원도 수없이 가셨습니다.
어머니, 생각나세요? 당신과 제가 40년을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 매봉 산 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 것, 과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인데 봄이면 유난히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곤했지요. 살을 에는 추운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벌거숭이산은 노란 개나리꽃으로 옷을 입고, 군데군데 진달래와 벚꽃이 어우러지면 이 세상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그 풍경과 같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제 나이 예닐곱 살 때부터라 생각됩니다. 어느 봄날 외출했다 돌아오신 당신이 다짜고짜 저에게 등을 업히라고 하셨습니다. 푸른 산이 아닌 노란 산을 구경시켜주신다며, 온 산이 노란 개나리꽃으로 덥혀있는 것을 당신 혼자만 보고, 걷지 못해 늘 방에서 세월 보내는 딸이 당신은 안타까우셨던 거지요.
그런데 평소에는 저를 잘 업으셨던 당신이 그 날은 어찌 된 일인지 대문 밖에서 몇 발자국 걷더니 무엇엔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이마를 다쳐 많은 피를 흘렸고, 당신은 피를 흘리는 저를 부둥켜안고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우셨습니다. 저는 상처의 아픔보다 어린나이에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서럽게 울었지요. 어머니와 저는 그렇게 길바닥에 주저앉아 얼마를 많이 울었던가요?
그 다음 날부터 당신은 혼자 산에 올라가 노란 개나리 한 움큼에다 진달래 몇 송이를 섞어 꺾어 와서는 꽃병대신 우리 집 마당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항아리에다가 꽂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길 산에 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꽃을 따와서는 먹어보라고 성화도 하셨고, 봉숭아꽃이 피면 그 꽃을 따다 아주까리 잎으로 손톱을 감싸 물도 들여 주셨지요. 첫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조그마한 계집아이에게 첫서리가 내릴 때 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해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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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가 피었던 산에 나무들이 빨갛게 고운 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그 나무 잎을 주워와 고이고이 책갈피에 끼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 당신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유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 삶의 이정표이자 수호천사였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저를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대신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다고.
산은 그렇게, 어머니 당신이 이 딸을 사랑하는 표현의 산이었습니다. 당신의 눈물과 기쁨이 묻어 있는 산, 꽃을 꺾으러 산에 오르실 때 당신이 느꼈을 그 슬픔의 깊이를 천금 만금보다 더 귀한 저의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꽃을 꺾어 산자락을 내려오시며 이 딸이 꽃을 보고 즐거워 할 것을 상상하며 당신이 맛보았을 기쁨 또한 크셨을 겁니다.
어머니, 당신의 기쁨과 한이 서려있는 매봉산을 저는 영원히 제 가슴속 사진첩에 보물처럼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그런 당신이 늘 태산처럼 느껴졌고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제 삶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리라 믿고 또 믿었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것 다 주고도 더 못주어 늘 가슴 아려하셨던 당신, 내 어머니, 그랬던 당신이 너무도 힘겨웠던 지난 세월을 잊고 싶으셨는지 지금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아직 한참 사실 연세에 치매라는 병마 앞에 젖먹이 어린 아이보다 더욱 나약한 모습으로 이 딸의 억장이 무너져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하십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은 당신을 모시고 사위가 벌써 7년째 이 병원 저 병원 쫒아 다니지만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아 저를 너무도 슬프게 합니다. 몇 개월 전에는 당신 다니시는 병원에서 다시 한 번 정밀 검사를 받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입원해 여러 검사를 받았지요.
입원해 계시는 중에 당신의 일흔일곱 번째 맞으시는 생신이었습니다. 생신 날 미역국도 못 드시고 병원에 계시는 당신을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쇠고기 조금 넣고 미역국을 끓여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당신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그날은 당신이 받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엄마 저 왔어요.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딸 저요."
"뭐라고? 우리 딸이 왔다고, 내 딸은 하늘나라에 있는데 그 먼데서 뭐를 타고 왔어?" 하시며 연신 딴소리만 하셨지요. 당신은 이 딸에게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시고,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시더니 나중에는 어머니라고까지 호칭을 하셨죠. 당신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밀려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당신은 링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시며 당신의 한 많고 서러웠던 일생을 필름처럼 되감았다 풀었다 하셨습니다.
의사가 저희 부부를 잠깐 보자고 해, 왠지 모를 불한을 느끼며 담당 의사 방으로 갔습니다. 의사가 너무도 가볍게 하는 말이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가 아니라 오른쪽 뇌에 종양으로 인한 치매십니다.”
의사의 조금은 무책임하게 들리는 그 말에 저는 "아니에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선생님 다시 한 번만 더 검사해 주세요. 정말 우리 어머니가 뇌종양이라면 어서 수술해 주세요" 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저에게 의사는 "할머님은 연세도 계시고, 이미 왼쪽 뇌도 많이 상해 수술이 어렵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아도 6개월 이상은 견디기 힘드실 것 같네요."
저는 두 손을 모으고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저 이대로 우리 어머니 떠나시게 하면 안돼요. 도저히 그럴 수는 없어요. 신장도 이식하고, 눈도 이식하고, 간도 이식하는데 왜 뇌는 안 돼 나요? 저의 뇌 우리 어머니께 이식해 주세요. 사람이 달나라도 가고, 동물도 복제하며 인간까지도 복제한다고 떠드는 이 시대에 어떻게 우리 어머니 머릿속에 있는 조그마한 혹 하나 떼어내지 못 한단 말에요? 말도 안 되잖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부모의 도리가 있다면 자식 또한 자식의 도리가 있잖아요. 저 우리 어머니께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아요. 이대로는 정말 안돼요" 하며 울부짖었지요.
의사는 저의 이런 절규에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저었습니다. 저는 의사의 방을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 모르게 나와서는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병실 복도에서 엉엉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서러움을 토해낸 뒤 어머니 당신 계시는 병실로 갔습니다.
붉게 충혈 된 저의 눈을 보신 당신은 음료 캔 하나를 건네시며 "이모, 걷고 싶어 또 울어? 이모가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제발 울지마, 울지마"하시며 저의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당신 입으신 환자옷소매 끝으로 연신 닦아주셨지요.
그런 당신 앞에서 복받치는 서러움을 목구멍이 아프도록 꾸역꾸역 삼키는 저에게 간병하시는 아주머니 위로 하며 하시는 말씀이,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 그래도 어머님 정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세요. 의사만 보시면 손을 붙들고 우리 딸 다리 고쳐달라고 때를 쓰기도 하시고, 병원에서 휠체어 탄 사람을 보면 우리 딸 휠체어니까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서 타라고 어찌나 당부를 하시는지 몰라요." 아주머니의 그 말에 저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참고 있던 서러움을 결국 터뜨리며 오열하고 말았지요.
저의 그런 통곡에 너무 당황스러워하는 당신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몸속에 있는 눈물을 모두 다 쏟아버리려는 듯 말입니다. 저는 가슴속에서 간절히 두 손을 모았습니다. 자리에다 대소변을 보아도 좋고, 저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해도 좋으니 제발 어머니가 제 곁에 살아만 계셔달라고, 어머니 당신이 제게 주신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사고.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게 없다고 해 당신은 퇴원 하셨지요. 그리고 당신을 병원에 그대로 계시게 하고는 저의 마음이 도저히 편치가 않아 힘들어도 제가 당신 곁을 지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오신 당신은 40년을 살아온 이 집을 너무도 낯설어하시며 집에 가자시며 막무가내로 조르십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제 삶 자체를 장애를 갖고 살았거나 제 삶이 힘겹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가장 축복의 선물이 저의 생명이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몹쓸 병을 앓으신 뒤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만 나가자 시는 당신을 밖에 모시고 갈 수 없어 저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장애가 너무 서럽고 자꾸자꾸 원망스럽습니다. 어쩌다 휠체어를 타고 당신과 밖에 나가면 우리 모녀를 보며 주위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연민의 눈빛과 끌끌 혀 차는 소리는 저의 귀에 참을 수 없는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자신조차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의 장애인 처지에 치매와 중풍까지 앓으시는 당신을 간병하기가 너무도 힘에 겨워 문득문득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제가 요즘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줄 모르시지요? 자꾸자꾸 망가져 가는 당신을 보면 슬프고 몸은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마음은 하염없이 평화롭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시니까요.
지금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잊고 젖먹이 어린 아기 모습으로 당신 분신이었던 이 딸마저 못 알아보시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막힌 현실이지만, 당신의 병명이 뇌종양에서 혈관성 치매로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어머니, 저의 지금 소망은 제 인생에서 5년 아니 10년쯤 깎아서 당신에게 드릴 수만 있다면 하는 소망입니다. 어머니.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앓고 계시는 치매라는 병은 단란한 가정을 파괴시킬 정도로 무서운 병이라고요. 그래요 치매 정말 무섭고 힘겨운 병임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몇 개월에 한번쯤 가족을 알아보시고 누구 아니냐고 당신이 물으시면 우리가족 모두는 이 세상에서 천금만금을 얻은 것 보다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답니다.
어머니, 저녁에 귀가한 사위가 당신 귀에다 입을 대고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 하며 수없이 속삭이고, 핸드폰 바탕화면에 장모님의 무표정한 모습을 사진 찍어 담아 넣고 다니는 사위에 눈물겨운 사랑과 전국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 뽑혀 상금 200만원을 받아와서는 그 돈을 몽땅 할머니 맛난 것 사드린다고 말하는 저의 아들, 호세아의 효도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니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주세요.
어머니, 먼 훗날 제 삶 끝자락에 섰을 때 저 스스로에게 어머니께 못해드린 효도 후회 없도록 저 정말 어머니께 잘해드리리 다시 한 번 약속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처음 드리는 이 딸의 편지 비록 눈으로는 읽지 못하셔도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어머니,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 딸임을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고통에 처한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위로자 예수님】
오늘 본문은 위로 자 예수님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위로 만큼 힘이 드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통은 참아야 되느니라】
예전에 소 학교때 스승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고명한 스님이 계셨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도를 통한 스님으로 성불하신 부처로 추앙을 하였답니다.
이 분이 이 고향을 지난다는 소리를 듣고 독자가 죽은 과부가 통곡을 하며 찾아왔습니다.
...... 돌아다니며 조상적부터 사람이 한번 도 죽지 않은 집에 쌀을 공양하여 오너라.....
.........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 회자정리(會者定離).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된 위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몇마디의 따뜻한 말
함께 울어주는 것도 위로가 되겠지만 참다운 위로는 실제적이어야 됩니다.
경제적으로 빚쟁이들이 빨강딱지를 붙힌 집에 대신 빚을 탕감하여 주는 것이 정말 위로가 됩니다.
불치의 질병에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허준같은 실력으로 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경험하셨기에 ...】
예수님은 고난을 경험하셨기에 위로자가 되십니다.
비비제잭사 안차장이야기......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하시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친히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얼마나 가난하셨든지 여관이 아닌 주막집 마굿간에서 첫 날을 보내셨고 말구유를 요람삼아 오셨습니다.
일생을 적빈하게 사셨습니다.
한 서시관이 예수님 제자가 되어 따르겠다고 말할 때
마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그럼으로 가난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성도를 이해하시고 능히 도와주십니다.
-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간 포글리오라는 가족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간증을 그집 아들이 책으로 지은 것이었습니다. 이집의 가장은 철도회사의 노무자라서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데다가 일곱식구라는 대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즐겨 먹는데 어느날 그 집의 식구들도 먹을수 없는 한명분의 스파게티밖에 없는데 그 남편이 친구들을 네명이나 데리고 왔습니다. “어~ 여보! 내 친한 친구들 네명 데리고 왔으니 오늘 스파게티를 잔뜩 주세요. 하루종일 너무나 중노동을 했더니 배가 출출합니다.” 큰일났습니다. 집안에는 한사람 먹을 스파게티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성격이 고약합니다. 만일 스파게티가 안나오면 야단법석이 나고 집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그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부인은 아주 독실한 신앙인이고 성령충만이 받은 분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그 어머니가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만 성경책을 들고 나와요. 그러더니 성경을 머리에 얹고 성경위에서 조그만한 스파게티를 얹어 놓고서 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한사람먹기도 부족한 스파게티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편이 네사람의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식구들하고 네사람하고 합쳐서 어떻게 이 스파게티를 먹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께 순종했고 십일조 드리고 교회 열심히 나갔었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 주님은 나와같이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이시여, 하나님 말씀과 스파게티를 가지고서 나는 주님께 기도합니다.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그러더니만 그 아들이 보는 앞에서 솥에 물을 부글부글 끓여서 스파게티 조그마한 것을 집었는데 그 아들이 들여다 보니까 어디가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하도 적어서. 그런데 어머니는 찬송을 부르면서 그릇을 열한개를 내놓아요. 가족 식구에다가 남편친구들까지 다먹을 큼직한 그릇을 내놓고 찬송을 부르면서 막 솥을 휘젖더니만 폭 떠서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고 푹 뜨는데 아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 보는 것은 떠서 담는데 또 한그릇 가득한데 또 스파게티가 있고 또 떠서 담는데 또 한가득있고 그 그릇에 스파게티가 다담아 그날 저녁에 모두다 배부르게 먹고 남아서 그 이튿날 아침까지도 식구들이 다 먹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고후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물질적 부유만 말하겠습니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저 천국에서 영원히 부요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셧습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집 앞에 서 있는 맘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는 창업주 '샌더스'는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12살에 어머니마저 재혼하며 그들을 떠나 이후에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65세 때 그는 그동안 어렵게 모았던 모든 재산을 잃고 파산해서 아내도 떠나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죽어서 너무나 슬퍼서 정신병이 걸렸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있을 동안에 하루는 정신병 병원 교회에서 찬송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찬송을 따라서 교회에 가서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구원도 받고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았습니다.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아서 길거리 나왔는데 집이 있습니까? 아내가 있습니까? 자식이 있습니까? 나이가 젊습니까? 65살이 된 노인이 무엇을 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있을 곳도 없고 나이고 이제 65살인데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닭고기를 굽는 기술을 주셨습니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시험을 해본 결과에 11가지 양념으로써 닭튀김을 개발해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창시하고 너무나 이 닭고기가 잘 팔려 대기업이 되어 65세에 창업을 해서 80세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전 미국에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면 젊은 나이에만 하나님이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65살에 파산해서 정신병원이 걸렸어도 재기하여 80에 억만장자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어요. 예수 믿으면 젊은 나이나 늙은 나이나 주님께서 함께 해서 복을 주시면 들에 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생활은 복 받는 생활인 것입니다.
【마귀에게 공격을 당하는 자】
마귀에게 공격을 당한 사람은 이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압니다.
파리처럼 쉬지 않고 생각 속에 더러움과 불경스러움을 뿌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의심의 불화살을 쉴 사이 없이 집어 던집니다.
친한 친구들을 충동시켜 공연히 미움을 받게 하기도합니다.
그 누구도 위로 자가 될 수 없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 자가 되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성령님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연전연패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마귀가 사람을 공격할 빌미인 죄 문제를 청산하심으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겨 버렸습니다.
오늘 말 악마가 공격을 합니까?
예수님은 이악한 악마에게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하와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간증입니다.
하와이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하와이에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 부목사님이 차로써 나를 호텔에서 교회까지 왔다갔다 날라 주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목사님, 저는 이곳에 부목사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때부터 아편 중독자로써 아편을 팔고 아편을 맞고 대학에는 완전히 아편장사를 하면서 다녔었습니다. 대학을 졸업 맡고 아무 일도 한 것 없이 정부 몰래 아편을 팔고 아편을 맞는데 하루는 혼자서 길을 걸어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으라고 전도지를 주기에 제가 전도지를 구겨서 포켓트에 집어 넣었다가 집에 와서 방구석에 던져 버렸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날은 아편을 특별히 많이 맞아서 그만 아편으로 말미암아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 나올 것 같고 숨이 턱에 닿고 온 몸이 고통스럽고 조여들어오고 영 죽게 되어서 병원에도 갈수가 없는 것이 아편중독자로 잡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구석에 뛰어가서 내던진 전도지를 주어서 읽으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해서 하나님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내가 아편을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제 죽게 되었으니 날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니까 몸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처다 보니까 천장에 쳐다보니 천정에 마귀 세 놈이 새까만 눈을 깜박깜박 뛰면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더랍니다. 몸에서 마귀 세 놈이 터져 나와서 천정에 붙어서 자기를 보고 도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어찌나 겁이 나든지 예수여 나를 살려 주십시오.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살려 주십시오. 고함을 치니까 마귀가 휙 하고 떠나가 버리고 그 길로 하나님이 치료가 와서 다시는 아편을 맞지 아니하고 아편에서 해방이 되어서 너무나 감사해서 신학교 들어가서 주의 종이 되어 아편 환자들이 드글거리는 하와이에 전도하러 왔다가 그곳에 있는 여성을 전도해서 아편에서 놓여나게 하고 아내를 삼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제가 부흥회 하는 그 교회 부목사로써 일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목사님 아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수용소에 들어가도 안 되고 약을 아무리 먹어도 안되고 아무리 치료해도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치료받을 수 없는 아편 중독이 내가 그날 예수 이름을 진정으로 부르고 주님께 고함치니까 주님이 순식간에 나를 아편중독에서 고쳐 주었습니다. 전 고등학교 시절, 전 대학시절을 아편으로 폐인이 된 내가 예수 이름으로 순식간에 이렇게 나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참으로 좋은 예수님입니다.”
【심판을 두려워하는 ...】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도록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겁습니까?
이 세상에 그 죄를 짊어지시고 계실 분은 하나님 한 분외에는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당신의 몸으로 속죄제를 하나님에게 드림으로 우리 죄를 도말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 있든지 아니면 여러분에게 있든지 합니다.
동시에 두곳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십자가에 가지고 가 철저히 사라지게 만드셧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큰 불이 났어요. 화염이 충천하고 무서운 속도로 바람을 타고 불이 붙어 오는데 그 평온에 있던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칠 수가 없어요. 그 불길에 안타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가 포켓트에서 라이터를 끄집어 내어서 불을 켜서 자기 주변의 풀에 불을 붙였습니다. 맞불이 붙었습니다. 불은 저쪽에서 붙어 오는데 자기가 붙은 불이 또 붙어 나가니까 자기는 불이 타버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불이 바다처럼 불어왔으나 자기에게는 안오는 것은 자기 주위는 벌써 불이 타 버렸기 때문에 탈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못들어 왔어요. 죄는 큰 평온의 불같이 우리를 침범해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있으면 이미 그 죄가 다 멸하여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멸해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죄가 아무리 강하게 오더라도 십자가 밑에 와서는 꿈쩍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힘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하여 매를 맞으셨습니다.
- 십자가의 채찍-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011년 4월3일자 박순근 집사
3초에 한번씩 몸서리치는 통증-- 진통제만 맞을 수밖에 - 오랜기간 진통주사만 맞으면 해롭다 ... 이 병원 저 병원 전전 입원함 - 전도사님의 기도로 치유 ...
【외에 각종고통】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먼곳에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까?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 에 올라가실 때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위로 하십니다.
친구가 다 떠 나나고 배반을 당하였습니까?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어제까지 주님에게 은혜를 받던자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받은 상처도 하나님이 위로를 주십니다.
시간관계상 더 이상 말씀을 드릴 수 없음이 유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문제든 어떤 고통이든 주님에게 가지고 나오십시오 주님이 위로를 하십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능히 - 충분히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충분히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실력자이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들을 성결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상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들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천사들을 수호천사로 보내셨습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로 하시되 은밀하게 도와주십니다.
- 존 번연의 기름과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