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로 밭 갈아줘~!!"
"여길?? 어떻게 갈어? 이 더위에 못해 관두자"
"못하는게 어딧어? 안돼는게 어딧구? 저 산을 봐봐 저 곳에 저 밭들은 언제부터 저 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지도 몰라
그 때도 처음부터 밭은 아니였을거쟌어 누군가가 나무를 자르고 뿌리를 캐내고 돌을 고르고 이랑을 만들고 밭을 꾸몄을텐데 지금 이 곳 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누군가도 저렇게 많은 밭들을 만들어 놓았쟌어
그런데 겨우 이 정도도 못해? 안돼 해~!! 할 수 있어? 안돼는게 어딧어~!!"
승용차 안에 있던 고구마순을 무작정 꺼내어 밭에 있는 나무 그늘에 옮기기 시작했다.
"밭 안갈아 주면 내가 호미로 파서 심고 갈테니깐 집에 가서 애들하고 잘 먹고 잘 살어 나 기다리지 말어 난 이고구마 다 심기 전까지는 집에 안갈거니깐"
협박이 통했는지 아이들 아빠는 일단 집에 가서 밥을 먹고 갈아 주겠다고 나를 달랬다.
아침밥을 먹고 무작정 나간 사람이 전화를 걸어 왔다. 경운기를 빌렸다고...
그래 그래야지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 분명 그 밭에서 호미로 밭갈다 죽으면 죽었지 집에 올 사람이 아니란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협박에 못이기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밭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더니 어두워져도 들어오지 않아서 밭을 가 보니 왠걸...
생로터리만 치고 있었다.
"일단 깊게 갈아 엎은다음에 로터리를 쳐야지~!!"
내일부터 바쁘단다. 속 타는 건 내 속뿐
다음날 6시면 밥만 해 놓고 알아서 학교를 가든말든 난 고구마 밭으로 향했다.
밭은 어찌나 길고 긴지 한고랑 만들면 3시간이 훌쩍 넘어 갔다.
고구마 줄기를 묻어주고 물을 주면 또 3시간 겨우겨우 하루 2고랑을 심는 것 같았다.
밭은 어찌나 딱딱하던지 경운기가 눈만 흘기고 지나간 자리를 호미로 다시 찍어서 두둑 만들 흙을 모으려니
손에는 물집이 잡히도 터지고 장난이 아니다.
호미질을 하다 보면 뽀얀몸에 설이 숭개숭개 난 굼뱅이가 불쑥불쑥 나온다.
'야 이넘들아 내 호미에 찍혔음 우짤라꼬 여기 그냥 누워있냐? 니들은 구르는 재주도 없냐? 멀리가서 잘 숨어 있어~!!"
굼뱅이와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눈다.
아 그 때가 후회스럽다. 내 고구마의 천적인 줄을 꿈에도 몰랐다.
해가 중천에 떠 오르면 배가 고픈데다 더위에 견디질 못할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골 한적한 도로에서 20여분 걸리는 거리를 매일 그렇게 오며가며 4번을 했다.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4시가 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집안일 대충 해 놓고 다시 밭으로 간다.
9시가 되면 도저히 호랑이가 나올지 늑대가 나올지 분간이 가지 않도록 숯같은 밤이 내려 앉는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친정 아버지가 안타까와 하루 도와 주시고 하지 말자고 말리신다
오지 마세요 저 혼자 할래요
어느 날은 가까이에 사는 여동생이 와서 도와준다
언니가 밭을 구했다길래 좋아 했는데 밭이 언니 덕을 본다며 포기 하라 한다
이젠 너도 오지마 오늘 심은 곳은 네가 캐다 먹어
어느 날은 동네 아주머니께서 따라 오셨다.
우리 그만 하자 사람 잡겠다.
그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오지 못하게했다.
그렇게 6월 초순에 시작한 고구마 심기는 칠월칠석이 왔다
중간에 비가 여러날 오는 날이면 비가 그치고도 이틀 정도는 밭에 들어가지 않는 거라 해서 심질 못했다.
어느 날은 큰비가 와서 고랑의 일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시 비가 내려도 흘러갈 길을 내 주고 고랑을 다시 꾸미고 새로 심었다.
이미 처음 사온 고구마 순은 더위에 지쳐서 죄다 녹아 사라져 버렸다.
고집 피우는 딸을 위해서 친정아버지께서는 고구마 순을 모으러 다니셨다.
고구마 심는 시기가 지나자 고구마순을 가져다 주는대로 모아보니 산더미 같다.
세차우가 내렸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려고 마차를 닦아서 내리는 비라한다.
다음 날 영락없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 내리고
이튼날 내린비는 이별의 슬픈 눈물인 쇄루우가 내렸다.
저니들은 그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사랑이 식을 줄 모르는구나 사랑할려면 저니들 처럼...
비 오는 동안은 한없이 잠을 잤다.
다시 해가 나오면 고구마 밭을 향했다.
보다못한 친정엄마는 화를 내셨다. 이젠 심어도 밑도 안들고 그만 포기하라고 새벽부터 난리를 치신다.
에잇 무서울게 없는데 울엄마 잔소리는 젤루 싫어
남은 자리는 들깨를 심을까 하니 모종을 미리 부어 놓지 않아서 바쁘다.
차라리 들깨는 직파를 하자
들깨 한 되를 사다 뿌렸다.
그 많은 들깨를 누가 다 베어서 털려고...??
눈오면 눈 맞으면서라도 할라고여...
가을이 되도록 들깨잎은 한 장도 구경하지 못했다.
기술 딥다 좋다.
고구마를 더이상 심을 수가 없게되자 그 밭에선 철수를 했다.
지난 이른 봄에 강원도로 석물 입석을 다녀 오면서 어느 주유소에서 얻어왔다며
강원도 찰옥수수 신품종을 아이들 아빠가 모판에 모종을 부어 놓았다.
심는건 내 차지다
집 근처에 친정 사촌오빠댁 모래밭 300평이 있었다.
소똥을 얻어다 부어 놓았는데 일단 그걸 펼쳐놓을려니 똥파리가 어찌나 따라 다니던지 똥은 참겠는데 파리는 견딜 수가 없었다.
100m 정도 되는 고랑 6고랑을 옥수수를 심었다.
시장에가서 보라색 찰옥수수 모종을 더 사다가 1고랑을 더 심었다.
결론을 미리 말 하자면 믹스 찰옥수수가 나왔다. 승질나랏
순수혈통 강원도 신품종 찰옥수수는 구경도 못해보았다.
늦께서야 몸을 푼 고구마 모종에서 순을 따서 옥수수밭에 고구마 3고랑을 더 심었다.
냇가에 있는 밭이였는데 가장 가장자리엔 맷돌호박 한 덩이를 빠샤~ 깨쳐서 한 톨도 안남기고 이른봄에 모종을 부었다가 모두 옮겨주고 소똥을 수시로 퍼다 근처에 던져 주었다.
여전히 떵파리들은 좋다고 달려든다.
여름내내 밭 두 곳을 달려나닐려니 이만 저만 바쁜게 아니였다.
옥수수 따는 날은 쌀포대 40kg 에 하나 가득 따다 두 번은 쪄 내야 했다.
여기저기 나눠 먹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호박잎은 우리 둘째 딸애가 가장 좋아 하는 쌈반찬이다.
호박이 메달리기 시작했다.
호박들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상이 있다.
호박을 따다 말고 아이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호박 모종 부을 때 여기에 먼 짖을 했어? 사실대로 고백혀~!!"
난 분명 맷돌호박을 깨서 씨앗을 주었는데 호박은 100% 길다란 호박이다.
늙으면 납짝해 질려나?
서리가 내리도록 납짝한 호박은 한 놈도 못 봤다.
그렇게 여름은 지나고 가을이 익어갔다.
"애미야 서리 내렸다. 고구마 캘 준비해라"
아파트 생활을 하니 서리가 내리는 건 사실 무감각해서 친정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고구마를 캐야 하니 서리가 내리면 알려달라고...
이른 새벽 잠을 깨우는 첫 서리 소식에 가슴이 설래여 콩딱콩딱 뛰어오른다.
첫 데이트를 떠나는 아가씨의 심정도 이랬을 것이다.
첫댓글 언니의 글을 읽고있으면 참 즐거워지네요 호박이 아쉽기는 하네요^^*~~~~ 고구마 수확이 좋기를 바랄게요 ^^*~~~~~~ 화이팅!!!!!
일은 요령것 해야지 억척을 부리면 몸살이 기다리고 있다오 무거운짐 드는거 짐지는거 모두가 여자는 요령껏 해야 옴길수도 일어 설수도 있기에 말입니다 여하튼 좋은 경험 했네요 건강 하시요
"애들하고 잘 먹고 잘 살어 나 기다리지 말어 난 이고구마 다 심기 전까지는 집에 안갈거니깐" "친정 아버지가" "여동생이" "동네 아주머니께서" 그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도 오지 못하게했다 너무 재밌다... 4탄도 있는거에요
연재소설?? 자연스럽게 4탄으로 이어질듯...^^
이제야 글을 살펴볼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열람함니다 영순위님 너무 감동적인 글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그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최선을 다하는 영순위님 찬사를 보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