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로사리오 디 세그니(Lothario di Segni).
이탈리아의 부유한 백작 가문 출신으로 신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35세 때 교황에 선출되었다.(주: 고려에서도 국사, 왕사 신분에 해당하는 승려들은 에누리 없이 전부 귀족 출신입니다. 동-서양이 이러한 경향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헨리 4세(하인리히 4세)가 죽은 뒤 독일의 복잡한 정정을 기화로, 로마냐·마르크안코나 등지의 황제령(皇帝領)을 교황령(敎皇領)에 합병하였다.
1208년에 브라운슈바이크의 오토 4세가 황제로 즉위하자, 사제(司祭) 즉 성직 임명권을 둘러싸고 그와 다투어, 시칠리아 왕 프리드리히 2세를 독일 왕으로 옹립함으로써 오토 4세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영국 왕 존과도 캔터베리 대주교(大主敎)의 임명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되자, 파문을 선고하여 그를 굴복시켰다.
1209년에는 수도회 프란체스코회의 창설을 인가하고, 1215년에는 라테라노공의회(公議會)를 열어 신부의 규율과 교의(敎義)에 관한 제반 사항을 결정하였다.
제4회 십자군(1202∼1204)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것도 재임 중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