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의 변천과 현대적 의미
1. 서론
5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주역
周易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바는 伏犧씨가 8卦를 시획하고, 商나라 서백 문왕이 卦辭를, 주공이 爻辭를, 孔子가 十翼을 주석하였다는 것이다. 종교가 없었던 고대국가 당시 天帝에 올리는 祭祀, 外敵의 侵入과 정벌시 王의 出征, 사냥, 疾病 등에 天帝 즉 하나님에게 신의를 묻는 것이 占이었다.
繫辭傳上輕 第2章 ‘聖人說卦하야 觀象繫辭焉하야 面明吉凶하며~ 是故로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勤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祐之 吉无不利니라’
象․變․辭․占을 說明하고 있으며 君子가 행동하려면 自然을 觀察하여 占으로 吉凶을 判斷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上輕 제4장에서도 성상지위건이요 효법지위곤이요 극수지래지위점이요 통변지위사요 음양불측지위신라라 하여 수자를 궁극하여 미래를 알아내는 것을 점이라 하였다.
21C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오늘날의 주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중국고대 伏羲시대의 八卦를 占筮로의 모습과 그 안에 담겨진 중국 최초라 할 수 있는 당시의 종교사상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현대의 주역에 의미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그런 다음으로 전국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음양사상의 절정으로서의 역의 도학적 배경을 이해한 다음 역의 儒敎化를 試圖한 戰國時代 말에서 한 대 사이의 孔子의 解說文인 十翼을 道學的 宗敎的 考察을 거쳐 科學時代요 多宗敎 文化인 現代의 易의 가치와 의미를 조명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점서로서의 역
[부대인자 여천지합기덕 여 일월합기명 여 사시합기서 여귀신합기길흉!~ 이황어귀신호]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을 같이 하기 때문에 천지운행의 모든 일과 성인의 행동에 어긋남이 있을 수 없으며 주역 점은 성인의 말씀을 따라 자연에 순응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보다는 자기 욕심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이용하여는 경향이 많은 것이 문제일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처럼 점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초기주역 점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은왕조 후기(BC 1200~1040) 은나라 수도였던 安陽에서 20C에 출토된 왕실의 점을 기록한 갑골문이다. 은 시대 당시는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주역에서의 시초점은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고 여러 기록을 보면 거북 등 껍질이나 물소의 어깨뼈에 점치고자 하는 내용을 긍정적인 답과 부정적인 답을 각각 양쪽(좌우)에 나란이 써서 가부로써 신탁을 물었을 것이다.
당시는 인간사가 상제와 그의 사방신 내지는 조상신들의 호의나 악감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은나라 사람들은 수도의 건설이나 전쟁 사냥 등 왕의 치통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신의 뜻을 물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대표적인 신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 |
⃞ |
⃞ | |
時日 |
卜젏 점친다는 뜻 |
貞人의 이름 |
貞자로 문의한다는 뜻 |
본론 |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본론 바로 앞에 나오는 貞자는 갑골문에서 나타날 때 그 이후가 점의 내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정인의 이름은 개인 이름이라기 보다는 씨족의 이름으로 왕을 위하여 갑골문을 해설하여 주는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최고신으로는 비․바람․번개 등 자연현상을 통제하고 추수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지만 상제에게 문의한 내용을 살펴보면,
己亥 卜 丙 貞 今-月 帝令雨
己亥 卜 丙 貞 今-月 帝不己令雨
위 갑골점의 내용을 풀이하면 을해는 갑자로부터 36번째이므로 36일째 되는 날 점을 쳐서 병이라는 정인이 상제께 문의하였다. [이번 1월에 비를 내려주시겠습니까? 비를 내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와 같이 최고신인 상제에게 드린 예를 든 것은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주역에 조상신은 별로 중요시 되지 않고 시경, 서경에서 제와 일치된 천에 대한 신앙만이 중요하게 되어 모든 길흉은 천우를 받들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역의 단사나 효사는 주역의 성격이 점서임을 보여주는데, 갑골문에 亭, 吉, 凶, 리와 같은 자가 점의 고유언어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乾 元 亨 利 貞, 坤 元 亨 利 牝馬之貞]이라 하여 元 亨 利는 같으나 亭의 解釋이 다르다.
건괘 문언전에 보면 원자는 선지장야요 현자는 가희회야요, 리자는 의지화야요, 정자는 사지간야니, 정고 족이간사니라 하여 정을 固 곧 곧음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건 곤을 제외한 수지비, 지산경, 지택림, 천뢰무망, 택산함, 뇌풍항, 천산둔, 뇌천대장 등이 효사와 상전에서는 貞을 正으로 해석하였다.
그런가하면 곤괘에서 원형리는 건괘와 같으나 정은 빈마지정이라 하여 암말의 곧음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암말의 곧음이란 과연 무엇을 뜻한 것인지는 분명한 설명이 없다. 또한 건괘 문언전에서 利를 의지화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공자는 논어에서 이를 거의 논하지 않고 맹자는 利를 義와 대립관계로 인의를 가르침으로 주장하였다. 이는 본래 점서에서 보면 利, 小利, 不利 등으로 해석되었으나, 위의 설명한 정과 마찬가지로 공자의 십익부분에서 유교적으로 해석되어 의지화라 설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은 유교적 해석에서는 正 또는 固로 설명되지만 점서적 측면에서 보면 갑골문자에서와 같이 신탁의 기호로 이애되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57번째괘인 중풍손괘 구오효에 [정길희망무불리~ ]라 하였고 상구에서는 [손재상하상기자부정휴]이라 했다.
12번째 괘인 천지비괘 괘사 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니라
13번째 괘 천화동인괘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 이군자정] 군자의 마음 곧은 것이 이롭지 않다라고 번역될 수 있으나, 군자에게 불리한 점 혹은 군자에게 이로운 점으로 보는 것이 본래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33번째 괘인 天山屯卦 卦辭에 屯亨 小利貞하니라.를 조금 곧은 것이 이롭다. 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사실인즉 小利之貞으로서 조그만 이익이 있는 점상을 말한 것이라 생각된다.
27번째 괘인 山雷頤괘 육오효 佛經居貞吉, 不可涉大川.] 상도에서 어긋나나 곧은데 있으면 길할 것이다. 라 번역된다.
31번째 괘인 澤山咸괘 六二爻 咸其腓면 凶하니 居하면 吉하리라 하여 다리의 장단지에 느끼면 흉하니 그대로 있으면 길할 것이다라 번역한다.
위의 履卦와 咸卦의 爻辭의 居貞吉과 居貞은 실제는 같은 것으로 49번째 卦인 澤火革卦 上六爻에 君子豹變 小人革面 征凶, 居貞吉]에서 征凶, 居貞吉은 정벌하면 흉할 것이요 그대로 있으면 길하다는 占이라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貞과 더불어 占書에 자주 나오는 利見大人이 있다. 占辭 속의 大人이라 함은 儒敎的인 君子로서의 大人이라기 보다는 詩經에 나오는 貞人으로서의 大人으로 占을 잘 치는 무당(巫)을 가리켰을 것이다.
주나라 시대에 와서 비용이 많이 들던 갑골점이 줄어들고 간편하면서도 체계화된 筮占이 널리 一般化되었으나 거북점을 더 중히 여겼다.
27번째 卦 山雷頤卦 初九爻에 舍爾靈龜하고 觀我朶頤凶하리라 하여 靈龜를 언급했고,
41번째 卦 山雷損괘 六五爻에 [或益之면 十朋之龜도 弗克違나, 永貞吉하니 王用享于帝라도 吉하리라.] 의 十朋之龜라 하여도 10종의 거북점이 다 길하다고 說明하였다.
갑골문에서와 같이 인간의 삶이 인간을 초월하는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상과 인간사가 천지의 자연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믿음을 주역에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현상 속에서 어떤 징조를 찾으려 했고 길을 떠나거나 대천을 건널 때, 전쟁에 나가고 형벌을 시행할 때 모든 일에 길함과 흉함을 알고자 하였다. 길도 여러 종류로 분류하였으나 大吉, 中吉, 下吉, 元吉, 終吉로 나누었다.
57번째 괘인 重風巽卦 구이효에 보면 巽在牀下니 用史巫紛若하면 吉无咎리라. 하여 祠堂의 점과 무당의 굿을 씀이 많으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十翼 중 가장 체계화된 繫辭傳에서 吉凶을 陰陽으로 解釋하여 吉한 것은 天祐를 받는 것이라 하여 크게 원하고 凶한 것은 피하려 했다.
繫辭傳 上經 12章과 14번째 卦인 火天大有卦 上九爻에 ‘自天祐之 吉无不利라 하여 하늘로부터 돕는 것이다.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 하였고, 25번째 卦 天雷无妄卦 彖曰 ‘无妄剛... 大亨以貞 天地命也... 天命不祐行矣哉’라 하여 天命과 天祐를 올바름과 亨通함의 基礎로 보고 있다.
天祐思想이 周易의 基本思想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周易에서의 天의 槪念을 考察해 보면 다음과 같다. 周易에서 天은 두가지 意味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地에 대응하는 하늘이라는 뜻의 天이며, 地에는 地道가 있듯 天에도 天道가 있으며 인간은 만물을 키우는 천지의 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또 하나는 고대 중국의 전통적 종교적 의미를 지닌 최고신 또는 절대자로서 천으로 順天命을 강조하여 吉하고 利로운 것은 모두 천명에 순응하기 때문으로 여겨왔다. 45번째 괘인 火天大有卦 象傳에 [火在天上이 大有니 君子이하야 退惡楊善하야 順天休命하니니라]라 하여 군자는 악을 막고 선을 찬양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라고 하였으며 이렇듯 천명에 따르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시경이나 서경과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주역에서는 천에 순응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바 坤卦 文言傳 에 보면 ‘[承天而時行] 때에 알맞게 행한다’라 하였다.
이와 같이 周易의 天은 천지로서의 現象界의 代表요 또 그 안의 原理를 말했고, 전통적 天으로서의 인간이 그 命을 따라야 하는 모든 것의 源泉임을 指稱했다. 周易에 天이라는 用語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乾 大有 大畜 明夷 睽 睽 中孚卦 爻辭에서 7회 뿐이고 대부분 孔子의 十翼에서 쓰였다.
結論的으로 周易이 人間의 힘을 超越하는 天의 命과 그 도우심을 심각하게 생각하여 時行을 吉凶의 基礎로 보았다는 意味에서 周易은 儒敎傳統 중에서 宗敎的인 冊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58번째 괘인 重澤兌괘 彖傳에 ‘是以順乎天而應乎人라 하여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응하는 것이다’라 하여 점에는 없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儒敎的 解釋으로 보아야 하겠다.
점서인 주역의 경만을 보면 이러한 사회성 내지 인간수양을 통해 천을 섬긴다는 유교의 톡특한 종교성은 찾을 수 없다. 천과의 관계를 안에서 찾기보다는 오리혀 인간사의 길흉은 인간외부에 있는 운명적인 믿음을 전제로 자연현상을 통해 어떤 징후를 보려했다. 주역에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의 감응사상은 오늘날까지도 민간 신앙 속에 계속 보존되어 오고 있다.
3. 음양사상으로서의 주역
음양은 낮에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진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자연 진리에서 출발하였다. 음과 양이라는 말은 언덕에 생긴 응달과 양달이라는 말이다. 즉, 山南을 양, 山北을 음, 수남을 음, 수북을 양이라 하여 옛 지명에 많이 사용하였다. 한강 북쪽에 위치한 서울을 한양이라 한 것이 아마 대표적일 것이다. 천지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無極의 상태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응달과 양달이 생기고 그 음과 양은 시간에 따라 음양은 그 세력의 변화를 만드니 살아있는 것이요 이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그러면 음양과 태극에 대한 문헌적 배경을 살펴보자.
첫 번째 周濂溪 선생의 太極圖說이다. 끝 닿는 데 없이 廣大無邊하면서도 宇宙萬物의 根源이 되는 큰 하나가 있으니 이것이 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여 양을 생성하고 움직임이 지극해지면 고요해져서 음을 생성한다1)고 음양을 설명하고 있어 그 기원과 탄생을 추론할 수 있다.
두 번째, 황제내경에 [陰陽者 天地之道也 萬物之綱紀 變化之父母 生殺之本始 神命之府也 治病必求於本] 음양이란 천지의 길이고 삼라만상을 통제한느 강기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로서 살리고 죽이는 것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신명이 깃들인 집으로서 인간과 삼라만상의 병은 반드시 음양의 조절을 통해 고친다라 하였다.
셋째는 서양의 구약성서 창세기 1장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나느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느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 하고 어둠을 밤이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라 하여 하느님이 천지창조 첫째날 태극과 음양을 만들 것을 볼 수 있다.
계사전 상경 11장에 음양이 주역에 처음 소개된 글로서, 是故로 易有太極하니 是生兩儀하고 兩儀 生四象하고 四象이 生八卦하니 八卦定吉凶하고 吉凶이 生大業하니라.
실제로 주역과 음양오행이 주역의 본면목인줄 알지만, 주역에는 의외로 앞서 소개한 繫辭傳에 음양이란 글자가 있지만 오행이란 단어는 없다. 그러나 음양의 개념성립으로 동양학적 이론전개에 있어서 보편적 기조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易學의 완성은 바로 음양개념의 입체적 정립이라 할 수 있다. 음양개념은 어떤 상황, 어떤 경우, 어떤 이론에도 소통되지 않는 곳이 없다. 주역은 물론 술수역에까지도 두루 적용되는 보편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일반적으로 주역하면 음양오행으로 풀어가는 것이라 알고 그것을 배우면 축지법도 하고 기문둔갑도 하고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는 등의 신통한 능력을 갖게 해 주는 신비스런 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天書니 鬼書란 이름을 붙였다.
周易에서의 陰陽思想은 陰은 小人을 나타내기 때문에 小人이 행세하는 어두운 시기며 따라서 凶한 徵兆가 되고(剝, 否, 遯卦) 반면에 양은 군자를 나타내고 군자가 성하는 시기이며 따라서 길한 괘(泰, 復卦)로 나타난다. 점의 吉凶 槪念이 儒敎의 君子나 小人에 직접 適用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周易 안에는 天道와 맞는 길과 어긋나는 凶으로 보는 占書에서 시작한 相反的 陰陽思想과 陰陽을 天道의 兩面으로 보려는 계사전의 調和的 陰陽思想이 共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역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국시대 음양설의 전파와 노장사상의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戰國時代 陰陽家로 유명했던 鄒衍(BC 350-270)은 실제로는 陰陽說에 대하여 언급하기 보다는 五行說의 主唱者였는데 漢代에 와서 陰陽說이 五行說과 融合하면서 陰陽五行家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남아 잇는 유일한 記錄인 史記에 의하면 그의 五行說은 宇宙의 運行을 류형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하여 토목금화수가 상승하는 순환적 우주관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주적 순환은 인간 역사에도 적용되어 王朝의 변천을 五德으로 설명하였는데 秦과 漢 시대에는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대의 유학자들에 의하여 오행설이 공식적으로 유교전통에 받아들여지기 이전에도 이미 맹자 안에서 볼 수 있는 500년마다 시기적으로 성인이 일어난다는 사상과 仁義禮智誠의 五德思想은 모두 五行說의 영향이다. 荀子는 非二十子編에서 子思와 孟子를 酷評하기를 五行說을 받아들여 儒敎의 本來 思想을 흐리게 하고 孔子의 가르침을 잘못 전하는 죄를 짓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五行說을 이렇게 신랄히 비판한 순자가 陰陽說은 아무런 抵抗感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陰陽思想은 戰國時代 말에는 이미 모든 學派에서 認定하는 宇宙變化의 原理로 간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주역에는 오행설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그 哲學的 背景은 陰陽說에 있다. 고대 중국에서 陰陽說의 기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갑골문에서 神託의 問議가 肯定․不定의 兩面性을 띠고 있다는 데서 무언가 연결이 되지 않을까?
단지, 한가지 확실한 것은 周易의 占書부분에 있는 吉凶의 宗敎的 陰陽思想이 十翼에 와서는 哲學化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變化는 道家思想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음양사상을 도학적으로 비교해 보면 앞 부분에서 설명한 바 있으나 우선 老子 42장에 [道가 一을 낳고, 一은 陰陽 二를 낳았다]는 말은 周易 繫辭傳의 易에 太極이 있어서 太極이 陰陽 兩儀를 낳았다는 宇宙 基源論과 構造上으로 共通된다. 어찌보면 주역의 음양사상은 노자보다도 장자의 영향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장자는 도라는 절대적 위치에서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모든 구별 곧 아름다움과 추함, 用과 不用, 선과 악, 생과 사 등을 상대화시켰다. 따라서 변하는 현상계 속에서 이 상대화된 모든 반대 개념들이 결국 陰陽之氣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道의 造化의 두 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文學的 天才性으로 表現했던 것이다. 장자의 이 계속되는 현상계의 조화사상은 주역 계사전의 음양사상과 근본적 性格을 같이하고 있다.
道家의 道는 萬物之母로서의 道요, 周易의 道는 一陰一陽之道요 음양의 변화의 도라 하였다. 주역의 도는 천도와 지도로서 자연계의 변화의 원리이며 또한 인도로서 인간이 걸어가야 되는 원리인 군도 신도 처도 가도 등으로 세분하고 있다. 주역의 道思想은 노자의 유명적인 면과 장자의 현상계를 주관하는 조화의 면만을 가지고 있고 만물의 근원을 나타낼 때는 太極이라는 용어를 썼다. 역의 思想的 골자는 음양의 계속되는 連行이며 變化로서 세상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過程 속에 있다는 것이다. 계사전 상경 3장에 爻者는 言乎變者也라 했듯이 爻變에 의하면 각 괘 안에서도 사정이 한결같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계속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각 효로서 나타내고 있다. 곧 우주와 인생사는 상관되는 과정으로 보고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몇가지 爻辭를 들어보면, 12번째 괘인 否卦는 비지비인 불리군자정 대왕소래라 하여 소인도는 흉하고 군자도가 이롭지 못한 군자에게 불리한 괘이지만, 上九爻에 가면 ‘傾否니 先否코 後善이로다’ 하여 처음은 막히지만 뒤에는 기쁠 것이며 어려움이 길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18번째 괘인 蠱卦에서도 初爻에 幹父之蠱有子考无咎厲終吉 이라 하여 위태롭지만 마침내 길한 것이다 다소 사정의 변화를 예고한다. 27번째 괘인 頤괘와 52번째 괘인 艮괘에서도 같은 사정을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25번째 괘인 无妄卦 마지막 上九爻에 ‘无妄行有眚 无攸利라’ 하여 ‘무망한 행동도 지나치면 재앙이 있고 이로움이 없을 것이다’라 경고하고 있다. 63번째 괘인 旣濟卦에서도 旣濟는 ‘亨이 小니 初吉코 終亂하리라’ 하여 ‘처음에는 길하지만 마침내는 어지러우리라’ 하여 인간사의 계속적인 변화를 강조한다. 이런 우주와 인간의 계속적 변화가 건과 곤이라는 상으로 표현될 때 본래의 점서에서 가지던 길흉과 개념이 계사에서는 명백히 건곤으로 해석되고 결과적으로 음약은 소인을 나타내는 흉한 징조와 군자를 나타내는 길한 징조의 의미를 넘어서의 우주 전체의 계속적인 운행의 원리로 해석되었다. 또한 점에서 상반되던 吉凶의 槪念은 陰陽 哲學의 체계 속에서는 보충적이고 보완적인 변화를 두면서 변형되어 유교적 시중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時中 槪念을 中心으로 周易의 複合的인 聖人像 내지 君子像이 형성되었다.
4, 유교경전으로서의 주역
孔子는 BC 551년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出生하였으며, 父는 武人 孔訖(字 淑梁)으로 孔子 나이 3세에 死亡하였고, 모 안징재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공자를 낳았으나 공자나이 24세에 사망한다.
19세 BC 533년때 견관씨의 딸과 혼인하여 다음해 아들을 얻으니 그 이름이 鯉이다. 노나라에서 계씨의 창고 관리인으로, 21세가 되어서는 가축 관리자로 벼슬하였다. 유가는 공자에 의해 개창되어 한자 문화권에서 수천년 동안 주류를 이루었던 종교 도학사상이다.
중용에 보면 공자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을 으뜸으로 계송하시고 문왕을 본받아서 그 법도를 밝히셨다.’ 라고 전하고 있듯이 전대의 문화를 집대성하고 체계화시켜 유교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공자의 중심사상으로 인을 창조해 사랑을 강조하고, 문화현상으로 예를 일으켜 사회질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덕을 베풀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덕치주의를 강조하였다.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원은 각자에게 이름과 분수를 지켜야 안정과 연합하여 발전을 기약하는 정명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교육을 받아야 평등을 누릴 수 있고 정의를 분별할 수 있으며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견지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제자를 가르치는 데는 육예 ‘예 악 사 어 서 수’를 과목으로 삼았으니, 이 육예에 통달한 72인의 제자 중에서도 顔回, 閔損, 言偃언언, 卜商, 宰予, 端木賜, 冉求, 仲由, 曾參 등이 뛰어났는데 증삼에 의해 子思에게 그 도가 전해졌다. 이렇듯 공자에 의해 개창된 유교의 근본사상은 인이다.
秦始皇帝의 焚書에 易이 占書라는 이유로 그 목록에서 제외된 사실만 보아도 역은 아직 유가들의 책으로 채택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논어에서 공자는 仁의 實現으로 從心所慾不踰矩라는 知天命을 理想으로 두면서 鬼神이나 죽음에 대하여는 생도 모르는데 사를 어떻게 아느냐는 말씀으로 대신하였다. 이에 비하여 周易 繫辭傳 상경 4장에는 [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知鬼神之情狀] 사생의 설도 알며, 정과 기가 모여서 물이 되고, 혼이 유리하여 변하게 되는지라 그런 까닭에 귀신의 정상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라 하여 역이란 생사를 알게 하고 귀신의 상태를 이해하게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주역은 논어에 공자가 그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별로 언급하지 않은 命과 命의 일부를 이루는 時라는 인간의 힘을 능가하는 운명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죽음이나 귀신과 같이 일상사를 초월하는 사건까지를 유교적 해석에 포함하여 초기 유교전통에서 약했던 면을 보강했다고 볼 수 있다.
주역의 이러한 유교적 해석에 있어서 공자 등 초기 유가 전통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잇는 것이 시중 사상이었다. 논어에 나타난 孔子思想의 두 기둥은 德과 命이었다. 덕은 천에서 받은 인간 안의 도덕적 자질이며 가능성으로 이 德을 키우는 것이 인간의 최대 임무라고 보았고 이렇게 덕을 키우는 사람들을 君子라 불렀다. 命은 天命으로서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사명 내지 생사와 불치병과 같은 運命的 要素를 指稱했다. 인간의 한계인 이러한 命을 아는 것이 知命이라 하여 尙德과 더불어 君子가 되기 위해 必須的인 것이었지만 論語에서는 별로 언급치 않았으나 子思나 孟子대에 와서는 主要課題2)로 언급하고 있다. 四季節의 정중동의 현상과 정기적 변화 속에 인간적 교훈을 얻으면서도 공자는 정치적으로 인을 행할 수 있으면 조정에 나아가고 인을 버려야 할 때는 물러나는 君子의 時中 理想을 안회의 예를 들어 제자들을 격려했을 뿐 명과 인의 관계를 자세히는 다루지 못했다. 증삼에게서 배운 공자의 손자 자사의 제자에게 서 배운 맹자는 공자를 덕을 집대성한 성인으로 추앙하염서 공자의 특성을 [聖之時者]라 묘사하고 있다. 때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물러나기도 해서 각 시기에 인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하여 논어에서 공자가 자신을 평한 것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 시중이야말로 유교적 정치이상이요 주역의 유교적 해설부분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60번재 괘인 水澤節卦 彖傳에 보면 [天地節而四時成 節而制道不傷財不害民] 천지에 절조가 있어서 사시가 이루어진다. 절조를 가지고 제도를 다스리면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이 절조있게 모든 것을 다루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같은 괘의 初九爻는 [不出乎庭无咎] 문 밖에 나가지 않은 것은 허물이 없다. 라 하였고, 九二爻에서는 [不出門庭 凶]대문 밖을 나가지 아니함이 흉하다라 하였다. 이 두효의 상전해설을 보면 초구는 통하고 막히는 시기를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며, 구이효는 나아가 f시기를 잃은 극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점서에 첨가된 유교적 해석에 따르면 각 괘가 표상하는 인간사정 어느 것도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각 괘가 상징하는 때를 당해서 인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종국적 길흉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을 유교화한 입장에서 보면 점은 그 때를 파악하는데 쓰이는 것이고 십익이라 불리는 유가적 해석은 그 상태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바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공자의 十翼에 의하면 각 괘가 상징하는 때를 時用(重水坎卦 陰之時用, 火澤睽卦 睽之時用, 수산건괘 건지시오)이라 부르고 이때를 올바르게 판단하여 시기를 맞추어서 행동하는 것을 중정 또는 정중, 득중, 혹은 득중도 또는 가장 잘 알려진 時中이라 불렀다. 時中이란 때를 맞추어 적중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 與時行 對時育萬物이라 하여 계절과 시간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행하므로 천에 순응하는 것이어서 만사에 형통하다고 풀이한다.
52번째 괘 重山艮卦 단전에 이 이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彖曰 艮은 止也니 時止則止하고 時行則行하야 動靜不失其是其道光明이니 艮其止는 知其所也~ 中略.
時宣에 따라 정지하여야 할 때는 정지하고 時宣에 따라 행동해야 할 때는 행동하여 움직임과 멈춤이 그 時宣을 잃지 않는다. 때에 따른다함은 움직임과 멈춤이 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서의 時란 천도와 연결된 人道의 구체적 상황으로 역에서는 君子는 죽어도 올바름을 중하게 여겨 항구하고 겸손하며 지조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고로 군자의 도와 소인의 도가 구별되며, 군자의 도야말로 참된 人道라 단정하였다. 따라서 각 괘에 유교적 해석을 한 단전과 상전 또 각효의 소상에 나오는 사상은 언제나 마지막 결정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철저한 유교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때에는 점을 무리할 정도로 도덕화하려는 경향도 있어왔다. 예를 들어보면, 26번째 괘인 山川大畜卦 [大畜利貞 不家食吉 利涉大川] 집에서 먹지 않는 것이 길하다. 큰 냇물을 건너는데 이로울 것이다. 라는 점을 단전에서는 불가식길은 양현야오, 이섭대천은 응호천야라 하여 집에서 먹지 않는 것이 길하다는 것은 어진 이를 기르기 때문이요, 큰냇물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하늘이 응하기 때문이다라 하여 도덕성이 없는 점까지도 유교사상으로 해석했다.
33번째 괘인 天山遯卦 六二爻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이것을 잡으려면 누런 소의 가죽을 쓰는 것이다. 이겨서 말하지 못한다’라는 점을 象傳에서는 ‘象曰 執之黃牛 固志也 이것을 잡으려면 누런 소의 가죽을 쓴다는 것은 뜻을 굳게 한다’는 것이라고 큰 관련이 없는 유교적 해석을 가미했다.
이렇듯 유교적 해석에 무리한 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으나 37번째 괘인 가인괘의 경우 점과 점서가 말해 주려는 사상을 조화있게 유교화한 경우도 있다. 家人卦는 여자에게 이로운 괘로서 爻辭에 보면 집안에는 뉘우침이 없고, 식구들 사이에 사사로움이 없어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가인은 준엄하고 집은 부하게 된다는 끝까지 길한 점이다.k 그런 집안이 화목하고 잘 되어 가는 상태를 단전은 正이라는 유교이상으로 설명하였다.
[가인여정위호내 남정위호외 남녀정 천지지대의야 가인유엄군언 부모지위야, 부부자자형형제제부붑부아가도정 정가이천하정야] 가인은 여자가 안에서 위를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위를 바르게 하니 남녀의 위가 바른 것은 천지의 큰 의리다. 가인에 엄군이 있으니 부모를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노릇을 아들은 아들노릇을 형은 형답게 아우는 아우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주부는 주부다운 노릇을 다하여 가도가 바르게 되리니, 집안을 바르게하여야 천하가 안정될 것이다라늠 랄은 논어에서 공자가 제경공에게 정치이상으로 전해준 말로서 유가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호 책임성과 忠恕를 통한 인의 완성을 구체적으로 예시한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서의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맹자가 부자의 관계를 모든 인륜의 기초로 본 것이다. 序卦傳에 이런 사상이 가장 잘 표현하였는데, [서괘전 하편 유천지연후유만물, 유만물연후유남여 유남여연후 유부부 유부부연후유부자 유부자연후유군신 유군신연후유상하 유상하연후예의유소錯] 부부가 잇은 연후에 부자가 있다. 부자가 있은 연후에 군신이 있다라고 해서 제사로 이어지는 정통적 부자관계의 유형과 다른것ㅇ르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건과 곤이라는 두 원리를 역의 두 기둥으로 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부자 중심적인 유교 가족제도 안에서도 혼사를 중요시했던 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화천대유괘 단전에서 보듯이 중정으로 천도의 뜻을 통하는 역의 군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초기유교 전통에는 없던 도가적 성인의 성격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자는 택산함괘 상전에서 ‘[象曰 山上有澤咸 君子以虛受人] 자신을 비워서 남을 받아들이라’고 하였으며, 지산겸괘 상전에서 ‘[~다 益寡 稱物平施] 많은 것은 줄이고 적은 것은 더하게 하며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푸는 것을 고르게 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같은 괘 구삼효를 계사전 상경 8장에서 ‘[노경군자유종길 자왈 노이불벌유공이부덕 후지지야]노고를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있고서도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지극히 후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자신을 비우는 것은 노자와 장자의 성인적 이상이었고 특히 노자는 ‘천지도는 남은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라 했고, ‘인지도는 부족한 자의 것을 덜어서 남음이 있는 자에게 바친다’고 비판하였으며 성인은 모든 것을 이루면서도 공에 집착하지 않고 무사무위의 특성을 지니는데 주역의 군자 역시 같은 표현으로 묘사된다. 또한 천인 즉 하늘과 사람관계를 유가와 도가로 비교하여 보면, 유가는 천을 아는 길을 천에서 주어진 덕의 수양을 통한 것이라 하고, 도가에서는 인간은 항상 천지도를 따라야 하고 자연을 통해 천도를 배워야 함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주역 계사전 상경 7장을 보면 [知崇禮卑하니 崇效天하고 卑法地하니라]라 하여 ‘역을 숭상하고 모범으로 하라’고 하여 노자가 인간은 천지를 보고 도를 따르는 길을 배워야 한다는 사상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것이다.
주역에서 성인은 천지의 도를 통달하여 괘를 만들고 길흉을 알아서 때에 알맞게 형벌을 시행하고 천하의 일을 완성하는 왕으로 나타난다.3) 즉, 주역에서 성인이란 음양의 도를 알아 시중을 채득한 왕으로서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고 성현을 키웠으며4) 때에 맞게 형벌을 밝게 하여 백성이 복종하였고5), 인심이 감동하여 천하를 화평하게6) 한 옛 선왕들을 지칭한다.
계사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인상도 위에서 언급한 문언전이나 단전과 같아서 [계사전 상경 제2장 성인설괘관예계사언이명기휴] 성인이 괘를 베풀어 상을 관찰하고 말을 계속하여 길흉을 분명히 했다라 하여 성인의 역할을 괘의 설정과 해설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계사전에 의하면 성인이 괘를 만든 인물인데 비해 군자는 역의 안에서 안주하는 사람으로 묘사되는데 군자 역시 효사를 완비하고 점을 쳐서 천우를 받는다는 데에는 일치한다. 따라서 주역의 군자지도는 음양의 도로서 이것을 아는 것이 인 또는 지로 하여 초기 유가와는 다소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成人之道 역시 사변상 점이라 하여 음양지도를 알아 점을 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을 말했다. 따라서 주역의 성인은 보통 사람이 아닌 천하의 모든 일을 다할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를 말한다. 결국 역의 성인상이 유교와의 가장 구별되는 점은 성인이 보편적 인간상으로 제시되었다기 보다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천지의 숨어있는 도를 밝혀 괘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알려 문화를 일으키고 천하를 이롭게 했다는 聖王像 또는 점서의 대인과 같은 聖人像을 제시했다.
한편, 역의 군자상은 유교에 훨씬 가까운 것으로 군자와 성인의 구별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우 보편적 인간상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군자상 역시 도가 및 법가의 전통을 포함하고 있으며 주역의 상전에서 점서를 유교화 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十翼으로 말미암아 역은 儒敎化에 성공한 것이라 평한다.
5. 易의 現代的 意味
주역은 천지자연을 그대로 묘사한 학문이기 때문에 어떠한 학문과도 연결되고 어떤 상황과도 부합되지 않음이 없다. 현대인이 느끼는 주역은 아마 천지공간의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 중 철학을 하는 사람은 철학이라 할 것이고, 과학하는 사람은 과학이라 할 것이고, 의사가 보면 의학이고, 경제학자나 정치가는 경제학이요 정치학이라 할 것이다. 심리학자가 보면 심리학이요, 사주 명리 점치는 사람은 사주학이나 명리학이요 점학이라 할 것이므로 쓰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볼 것이나 그 모든 학문을 포함한 것이라는 정도는 서로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21C를 살아가는 우리가 역에서 배울 것이 무엇인가 시대별로 살펴보자.
첫째, 판단력이란 특수한 상황을 일반에 편입시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현대사회에서 점이란 하나의 판단이라고 본다. 자기 자신이 판단하든 남에게 물어보든 아니면 신에게 물어보는 모두가 점이라 생각한다. 많은 現代人들이 어려운 판단이 요구되는 時點에 이르렀을 때 占을 천시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점을 치고 그 점이 제시한 판단이 주어진 상황에 맞기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 판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다. 占書로서의 周易이 지금도 민속신앙의 일부로서 우리사회에 살아 있다. 이 사실이 오늘의 과학시대에도 민중의 종교적 욕구와 인간의 뿌리 깊은 종교심을 말해준다는 의미를 지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점의 현상적 연구 결과는 점을 치는 개개인의 안목이 좁고 이기적이어서 그 안에 사회성과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인간의 책임감을 마비시키기 쉽다는 문제점을 알려준다. 민간 사이에 종교현상으로서의 점이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나 인간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성의 저하를 가져왔다면 점서 안의 기본적 종교성은 받아들이되 그 형태는 변형되어야 하리라 본다. 점의 도덕화를 시도한 유교적 변형도 완전하게 보기는 어렵다. 점술은 낮은 단계의 실천으로 받아들이는 불교적 관용책도 민중불교 자체를 상당히 무속화시켰다.
구약성서 민수기에 나타난 기독교 전통에서 살펴 본 본래적 유대인의 종교사상은 천명에 의해 결정되며7),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성이 있다는 종교적 겸허 및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수동적 자세를 갖게 하는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는 陰陽思想으로서의 周易이 현대에서 갖는 의미는 道家의 모든 人爲的인 것에 대한 相對的 평가를 吉凶이라는 민중적 체험에 합한 것으로 지극히 긍정적인 면과 또 한편으로는 현세적 가치의 한계를 절감케 하는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易의 陰陽思想은 상반되는 두 가지를 꼭 알력으로 보기보다는 변화하는 現象界의 두 요소의 측면으로 보아 약함과 강함, 휴식과 활동, 침묵과 언어, 물러감과 나아감을 삶의 조화 속에 엮어가는 비전을 제공할 수 있다. 東洋社會에서 더 강조되어온 이런 調和는 특히 현대에 있어서 挑戰이 없는 妥協이나 沈滯에서가 아니라 挑戰을 통해서 오는 調和라야 할 것이다. 儒敎 傳統的 周易의 再解釋을 통해 陰陽思想을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었듯이 기독교 전통도 음양사상을 인격의 조화적 발전 원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서 易에서 陰陽의 원천인 太極 혹은 新儒學의 无極사상을 하느님에 대한 철학적 표현의 하나로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단, 陰陽思想의 太極 혹은 无極은 현상 속에서 직접 활동하지 않으나 基督敎의 하느님은 現象界인 人間의 歷史 속에서 계속 활동함으로 基督敎 전통 속에서의 陰陽은 獨自的 우주의 원리라고 이해되기보다는 하느님의 섭리가 인간과 자연을 包括하는 創造物 속에 일하는 하나의 표현으로 해석되어야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
셋째로 유교 경전으로서의 주역이 갖는 현대적 의미는 긍정적으로 민중의 종교성을 받아들여서 유가를 특징짓는 人格修養의 한 요소로 종합하여 주어진 時라는 運命과 그 안에서 인간 노력의 調和를 時中이라는 理想으로 提示하였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시중의 유교적 이상은 우리 현대인에게 태어난 시기와 장소는 물론 각 순간에 처하는 環境 속에서 어떻게 천도를 파악하고 그 에 따라 가장 적절한 것을 택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명으로서의 시를 인식하면서 길할 때나 흉할 때나 항구하게 도덕성을 키우며 인격완성을 지향해 나간다는 것은 오늘날도 변함없이 인간에게 주어진 귀중한 사명일 것이다.
周易으로 보면 乾道 變化로 後天을 맞이하여 乾道乃革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적으로 종교가 융성하여 多宗敎 多文化 時代인 지금 周易은 丁亥年을 基準으로 後天時代를 맞이하였다. 宗敎的으로 보면 基督敎나 佛敎 등 많은 宗敎에서는 死後世界인 來世說을 주장하고 있으나 周易에서는 來世論에 대한 言及을 피하고 있다. 증자의 말씀 중에 군자의 죽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쉬는 것이다. 즉, 肉體는 죽어도 精神은 永遠하다는 뜻이리라. 계사전 상경 4장에 ‘[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故 知死生之說] 幽界와 명계의 진리를 알며, 처음을 근원으로 하고 마침을 돌이킨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알리라’하여 陰陽消息의 이치를 안다면 따로이 來世論을 운운할 것이 없음을 암시하였다. 佛敎에서는 輪回思想을 대표로 하는 因果의 法則으로 자신을 生하고 滅하는 모든 것이 業에 있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여 儒敎는 現實的으로 君子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輪回說과 다르고 다만 周易의 陰陽에 입각하여 自然의 循環法則을 개인의 輪回보다는 家門을 중히 여겨 現世의 慶事를 祖上의 陰德이라 생각하고 있다.
重地坤卦 文言傳에 [積善之家필유여경 적불선지가 필유여앙] 선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경사가 있고, 선을 쌓지 않는 집안은 반드시 재앙이 많다고 했듯이 개인이 아닌 가문을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基督敎는 唯一神主義이다. 내가 믿는 신 이외의 신은 모두가 악마요, 마귀라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周易에서는 神이 萬物을 生하고 死하지만 陰陽의 變化作用으로 그 妙用이 나타나기 때문에 神이 일정한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神의 妙用을 깨달으면 神과 더불어 吉凶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多宗敎 社會에서 다양한 文化나 삶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교적 어떤 이념보다는 澤山咸卦 九四爻 [憧憧往來 朋從爾思] ‘자주 자주 왕래하면 벗이 너의 뜻에 따르리라’ 했듯이 각 종교간 협력으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공자께서 계사전 상경 4장에 [與天地相似라 故不違하나니,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라 故不過하며, 旁行而不流하야 樂天知命이라. 故不憂安士하야 敦乎仁이라 故能愛하나니라] ‘易의 이치가 天地와 더불어 서로 같은지라 그러므로 어긋나지 아니하나니, 易理로써 萬物을 두루 알도록 하고 天下를 건져 줄 수 있는 道가 內包되어 있는지라 그러므로 지나치지 아니하며, 두루 행해도 한 곳으로 흐르지 아니하며, 하늘을 즐기고 명을 안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아니하며 흙 즉 자연에 편안히 해서 仁을 돈독하게 한다. 그러므로 능히 사랑하는 것이다.‘ 라 했으니 주역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이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나 혹은 어느 종교나 어느 이념을 신봉하고 이든 간에 2500 여년 동안 東洋思想의 地主를 이루고 있었던 周易 안에서 새로운 現代的 意味와 價値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제20회 아산학회 2008. 10.3. 장소 KT 부산본부 6층, 주최 아산학회, 주관 부산 지지회
http://www. kr
1. 송조육현의 이학사상과 해석학적 신유학 釜山至至會 서재홍
2. 의식주에 담긴 음양오행사상 安東止止회 이동수
3. 주역의 변환과 현대적 의미 제천 양정회 이창우
4. 형기론 부산 지지회 조계환
5. 주역류묘 고 제천 양정회 지성기
6. 무릉도원을 찾아서 안동지지회 김주태
7. 주역과 삼십육계 대구이택회 김진환
9/. 주역과 전부경과 대마도와 우산도에 대한 소고
10. 사통팔달의 원리 정전원 예천 상현회 이민령
11. 가정과 주역관계 고찰 역경연구원 원장 김진규
첫댓글 2009.01.12. 21:42 답글 수정|삭제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敬畏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신神이나 귀신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오만을 질타하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점을 치는 마음이 그런 겸손함으로 통하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점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경』 「홍범」洪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서경』 「홍범」洪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의난疑難이 있을 경우 임금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묻고, 그 다음 조정 대신에게 묻고 그 다음 백성들(庶人)에게 묻는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의난이 풀리지 않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에 비로소 복서卜筮에 묻는다, 즉 점을 친다고 하였습니다(汝則有大疑 謀及乃心 謀及卿士 謀及庶人 謀及卜筮). 임금 자신을 비롯하여 조정 대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다한 다음에 최후로 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와 백성들의 의견과 조정 대신 그리고 임금의 뜻이 일치하는 경우를 대동大同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汝則從 龜從筮從 卿士從 庶民從 是之謂大同). 대학의 축제인 대동제大同祭가 바로 여기서 연유하는 것이지요. 하나 되자는 것이 대동제의 목적이지요.
『주역』은 오랜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구성된 지혜이고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를 기초로 미래를 판단하는 준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은 귀납지歸納知이면서 동시에 연역지演繹知입니다.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경험의 누적으로부터 법칙을 이끌어내고 이 법칙으로써 다시 사안을 판단하는 판단 형식입
다시 사안을 판단하는 판단 형식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 형식이 관계론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