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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큰 아이와 2007년 6월 10일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다음, 몇 번은 미답구간을 연결하려고 시도했었다. 그 중에서도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시간을 내어 완전히 매듭을 지으려고 계획까지 잡았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년을 넘기게 되자 대학입학 후에나 해야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들은 전년도 입시에서 일반대학(한양대 공대)을 가고자 했지만, 합격을 하고도 도저히 자기 뜻과 맞지를 않아 재수를 하여 육군사관학교 1차 시험을 상위 5%로 패스했고 2차 면접과 체력검정, 3차 수능시험을 보고나자 중상위권으로 합격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들은 육사에 합격하게 되면 정시든 수시든 다른 대학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었다. 합격자 발표가 나기도 전에 작은 고모가 사는 미국 샌디에고에 다녀 오겠다고 여권과 비자발급 신청에다 항공편을 알아보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들이 내년 1월 25일 육사 기초군사훈련에 입과하면 사실상 영원한 이별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아들은 싫든 좋든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와 버린 것이다. 결국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백두대간 미답구간을 시간내어 잇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 2011년 12월 10일과 11일, 4년하고도 4개월만에 아래의 미답구간 35.1km를 순차적으로 완주하기로 하고 미리 민박, 교통편(주로 택시)을 체크하며 예약해 뒀다. 그러는 사이 12월 8일 육사 합격자 발표가 났다.
1구간 : 성삼재-정령치, 7.4km(2004. 7. 11. 2차 대간 미답구간)
2구간 : 통안재-사치재, 7.3km(2004. 8. 8. 3차 대간 미답구간)
3구간 : 빼재-소사고개, 7.5km(2005. 2. 13. 7차 대간 미답구간)
4구간 : 우두령-궤방령, 12.9km(2005. 3. 13. 9차 대간 미답구간)
★ 산행개요
- 산행코스(산행일시)
· 1구간 : 성삼재-고리봉-만복대-정령치(12월 10일, 04:50~08:40)
· 2구간 : 통안재-유치재-매요리-사치재12월 10일, 10:00~12:10)
· 3구간 : 빼재-수정봉-삼봉산-소사고개(12월 10일, 14:40~18:05)
· 4구간 : 우두령-바람재-황악산-궤방령(12월 11일, 05:33~11:55)
- 산행거리 : 실제거리 35.1km, 서비스 6km
· 첫날 : 실제거리 22.2km, 하산(정령치) 5km, 지리산 휴게소 이동 1km
· 둘째날 : 실제거리 12.9km- 산행일행 : 큰 아들과 둘이서
★ 기록들
제1구간(성삼재-정령치)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 폭설에다 한파가 몰아친다고 한다. 무궁화호 마지막 열차가 구례에 다가갈 수록 과연 성상재에 택시가 올라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구례행 무궁화 열차안에는 평소 그 많던 등산객이 아예 보이질 않는다. 경방기간이라 통제하는 구간이 많기도 하려니와 주말 기상악화 예보 때문일 것이다. 산객들이 있었으면 합승을 해서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어졌다.
새벽녘 구례구역에서 호객을 하던 택시기사가 성삼재 간다고 하자 자신이 없다며 나이 지긋한 기사분께 양보를 한다. 76세의 기사분은 40여년을 자신의 고향 땅에서 운전을 했다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시시콜콜 풀어댄다.
가는 길에 기사분은 성삼재 가는 도로가 결빙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집에 들러 체인을 챙겨 나온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시암재를 지나고 나서야 결빙구간이 나타났고 노련하게 요리저리 피하면서 무사히 성삼재에 안착했다(04:40).
<성삼재 화장실>
온도계는 영하 10도를 가르키고 있지만, 체감온도는 영하 15도쯤 될 것 같다. 화장실에 들어가 산행채비를 한 후 굳게 닫힌 철문을 넘어 고리봉으로 향했다. 보름날이라 그런지 달이 무척 밝고 가깝게 보인다. 보름달에 하얀눈이 비추고 있어 굳이 랜턴이 없더라도 답사에 큰 지장은 없겠다. 옛날 가난한 선비는 이 정도의 눈빛(螢雪之功)으로도 책을 읽었다고 했다.
05시 15분, 고리봉 정상! 달빛만으로도 반야봉의 산 그리메가 또렷하다. 날씨 때문에 가느냐 마느냐를 걱정했던 것은 완전한 기우였다. 운이 좋다면 만복대에서 일출도 볼 수 있겠다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다.
아무런 족적이 없는 산길에는 드믄드믄 보이는 고라니 발자욱이 산중에 우리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묘봉치를 지나(05:57) 만복대가 가까워질수록 반야봉 뒤로 붉은 기운이 뻗쳐 오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이 얼어 붙으며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온다. 입김만으로 얼어버린 손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어서 한참동안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풀리기를 반복했다.
만복대가 지척에 있지만 해가 뜰 때까지 정상에서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기에 바람막이 되는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일출을 감상하기로 했다. 오리고기와 따뜻한 미역국으로 이른 식사를 마치고 주변의 풍광을 사진에 담으며 천천히 만복대로 향했다.
<일출의 향연>
<노고단과 종석대>
반야봉 오른쪽 능선에서 수줍은 듯 올라오는 태양은 운무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이런 행운도 없을 것이다. 둘째놈과 그렇게 새벽녘 산행을 해도 제대로 된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아들에게 “넌 참 운 좋은 놈이다.”이라는 말을 건냈다. 아들도 “정말 환상적이다.”라는 말로 화답한다.
춤을 추는 운무와 눈덮힌 숲위로 붉은 여명이 깔리는 모습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새로 구입한 카메라도 한 몫을 했다. 아직 익숙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출의 감동을 담아냈으니 말이다.
<정령치 가는 길>
황홀한 산그리메와 시시각각 변하는 반야봉의 모습을 눈에 꼭꼭 담으며 정령치에 내려섰다(08:40). 정령치는 택시가 올라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빙판길이나 다름 없는 길이 계속하여 이어졌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마루금을 따라 내려서는 것이 나을 뻔 했다. 고기리 삼거리까지는 3km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거리표시를 보고 총거리를 추정해 보니 5km가 되었다. 잰걸음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계속하여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눈이 내렸다. 권포리에서 자칫 눈 때문에 통안재에 택시가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기댐을 지나자 국립공원 입구 안내소에는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었고 그 앞에 예약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령치에서 고기리 삼거리까지는 정확하게 1시간이 소요되었다. 눈이 그쳐 잠깐이나마 햇살이 비추기도 했다.
<정령치 직전 산불감시소>
<정령치 휴게소>
<고기저수지>
제2구간(통안재-사치재)
고기리 삼거리에서 권포리까지는 20분이 걸렸다. 다행히 통안재까지 택시가 올라 갈 수 있어 2km정도 서비스해야 하는 수고는 덜게 되었다(18,000원). 하늘도 조금은 우리 부자를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통안재에서 매요리까지는 고도가 낮아서인지 눈이 거의 쌓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행하기 무척 수월했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유치재를 지나 매요리 마을 입구에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1년이 조금 지난 시간(둘째 아들과 구간종주 후)이지만 매요리의 풍경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숲길 입구에 위치해 있었던 목공소가 깜쪽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88고속도로가 지나는 사치재에 안착하기까지 전체적으로 2시간밖에는 소요되지 않았고, 점심식사하기에도 아주 적당한 시간에 2구간을 마칠 수 있었다. 88고속도로 지하통로에 자리를 펴고 라면을 끓였다(12:14).
<들머리 왼쪽으로는 예전에 목공소가 있었다>
<88고속도로의 사치재>
이제 3구간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빼재로 넘어가야 하는데,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 보더라도 80km 정도 되어 택시를 이용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어쩔 수없이 회사직원(남원검사소)에게 픽업을 부탁해뒀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13시경 10분에 직원과 만났다.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20km를 더 우회하는 바람에 빼재에 도착한 시간은 14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제3구간(빼재-소사고개)
다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빼재 들머리에서 삼봉산 가는 길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이 많이 쌓여있다. 빼재에서 소사고개까지는 앞의 각 구간별 거리와 큰 차이가 없지만 삼봉산에서 소사고개 내리막이 암릉구간으로 이어지고, 암릉구간이 끝남과 동시에 경사가 급한 내리막이어서 이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날이 밝아 있는 동안에는 충분히 소사고개에 내려설 것으로 예측하였다.
삼봉산에 도착했다(16:20). 계속하여 눈이 내리고 있어 사위는 마치 해가 진 것처럼 어둡다. 암릉구간을 지나는 동안 아이젠을 하려고 했지만 아들의 아이젠은 자꾸 풀리고, 아비의 아이젠은 발등을 아프게 짓누르고 있어 위험하긴 해도 그냥 진행키로 했다.
<빼재 들머리>
800미터 거리의 암릉구간을 벗어나는 데에만 40분이 소요되었다. 며칠이 지나면 아들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 육사에 입교해야 한다. 남은 기간동안 다친 곳 없이 온전하게 훈련에 임할 수 있게 해야 되겠기에 부러 천천히 이동하도록 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밧줄에 의지하여 내려오는 과정에서 아비는 여러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물론 아들도 위태로운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17시를 넘기자 이미 사위는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랜턴을 다시 착용하고 숲을 빠져나오자 배추밭에 이르렀다. 다시 숲길에서 정확하게 마루금을 밟는다며 무작정 진행하다 숲속 덤불에 갇히기도 했다.
18시 5분, 예상보다 많이 늦어지기도 했지만 무사히 소사고개에 도착했다.
소사고개 탑선슈퍼에 들러 예약을 확인하고 주인아주머니에게 도시락 2개를 부탁했다. 하나는 저녁식사로 처리하고 다른 하나는 내일 아침식사로 사용할 요량이었다. 내일 새벽 택시비로 쓰면 돈이 바닥나서 귀경길이 여의치 않을 것 같다고 하자 주인장은 3만원만 받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 오랫만에 큰 아들과 한 이불을 덥고 일찍 수면에 들었다.
제4구간(우두령-궤방령)
새벽 4시 정각, 예약한 택시가 올라왔다. 도로 일부분이 결빙이 되어 있긴 해도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빼재에서 우두령까지는 무려 1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4만원). 그 시간동안 지나가는 차량을 한대도 보지 못할 정도로 세상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아들도 차안에서 한번도 깨지않고 수면을 취했다.
우두령에 도착했다(05:33). 스틱을 펴고 해드렌턴을 장착하여 마지막 남은 여정에 들어갔다. 여정봉을 넘어서자(07:17) 여명이 뻗치기 시작하며 황악산의 하늘금이 한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가시나무 같은 상고대>
<형제봉과 황악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바람재 일출>
바람재에서 바람막이가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07:35). 남아 있는 김치와 오리고기로 김치찌개를 만들어 넉넉한 아침식사를 즐겼다. 아무리 늦더라도 궤방령에는 13시 이전에 도착할 터 부러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어제 아침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그림이 괜찮은 일출도 감상할 수 있었다.
황악산과 직지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에는 눈이 제법 쌓여 있어 겨울산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황악산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09:20~25). 아들이 예전에 눈썰매 타는 것을 워낙 좋아하여 잊지 않고 비료포대를 챙기고 왔다. 내려가는 일만 남아서인지 한번 타보겠다고 했다.
세 번쯤 탔을까? 불과 몇백 미터를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적설량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더 이상 썰매 타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산객들이 하나둘씩 올라오며 형형색색의 단체산객들로 좁은 등로를 꽉 채우고 만다.
<비료포대 썰매>
직지사 갈림길에 내려서자 더 이상 눈은 보이지 않는다. 완전하게 가을산행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운수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10:30), 대구에서 오신 산객들이 우리부자의 얼굴이 비슷하여 바로 부자지간임을 알겠다면서 귤을 건넨다.
여시골산을 넘어 궤방령에 도착하고보니 채 12시가 되지 않았다. 마침 산행을 마치고 김천으로 향하는 승용차가 보이길래 손을 들자 차를 세워줬다.
<궤방령 산장>
대간종주하는 부산의 부부산객으로 김천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우리를 부려 놓고 터미널까지 태워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가던 길을 서두른다. 남아 있는 돈이 달랑 2천원뿐이라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보니 카드계산도 가능했다. 터미널 인근에서 가볍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14시 정각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 에필로그
백두대간 735km 중에 700km만 진행하고 팔지 못한 떨이처럼 미답구간 35km를 오랜시간 방치하고 있었다. 진작에 매듭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야 완전하게 마칠 수 있게 되어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어색한 느낌도 든다. 백두대간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고 5~6년전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백두대간을 향해 가졌던 감정과도 다를 것이다. 아들은 과연 끊어진 대간길을 연결한다는 느낌이나 들까?
그러나 이제 아비의 품을 영원히 떠나야 하는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인데다 아들에게 숙명처럼 남아있었던 인생의 큰 숙제를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의미있는 여정이 된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아들이 육군사관학교 입학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통하여 얻어진 인내력과 조국에 대한 조금 더 진전된 생각(애국심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알게 모르게 아비와의 긴 여정을 통해서 리더십과 의리와 같은 무형의 자산이 쌓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한 것들이 아들의 발길을 육사로 돌리게 한 모티브가 되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아비와 함께 걸었던 이 백두대간은 아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무관의 길로 계속하여 이어지며, 아들의 삶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