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시조, 오사달(烏斯達)
서기전2137년 갑신년(甲申年)에 천왕의 아우 오사달 (烏斯達) 을 몽고리한(蒙古里汗)으로 봉하였다.
몽고족이 그 후손이라고 한다.
천왕의 아우는 천왕격(天王格) 또는 천군(天君)이 되는데,
몽고리한의 한(汗)은 일반적으로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제후에 해당하나, 지방(地方)의 왕(王)으로 봉해지는 군(君)도 통칭 한(汗)이라 한 것이 된다. 지방은 중앙조정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천하(天下)가 되므로, 지방의 왕에 봉해지는 군(君), 공, 후, 백, 자, 남은 모두 천하왕(天下王)으로서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고대 중국의 왕을 천자(天子)라 부른다.
몽고리는 단군조선 시대에 부여(扶餘)의 서북쪽이자 구려(句麗)와 선비(鮮卑)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몽고리(蒙古里)라는 글자를 뜻글자가 아닌 소리글자로 본다면, “몸골”이 되어 “몸통이 되는 고을”이라는 뜻을 가지는 이두식 표기가 될 것인데, 이는 천산(天山) 동쪽으로 황하(黃河) 이북의 대황원(大荒原)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단군조선의 특산물, 인삼(人蔘)
서기전2137년 겨울 10월에 북쪽을 순시하고 돌아와 태백산(太白山)에 이르러 삼신(三神)께 제(祭)를 올리고 영초(靈草)를 얻었는데 이를 인삼(人蔘) 또는 선약(仙藥)이라고 한다. 이후로 신선불사(神仙不死)의 설은 인삼을 캐어 보정(保精)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간혹 인삼을 얻은 자가 전하는 말에, 신이(神異)하고 영험(靈驗)스러워 기적(奇蹟)같은 경험이 매우 많다라고 한다.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을 가리키며, 단군조선 시대에 영역(領域)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제천단(祭天壇)인 천부단(天符壇)을 둔 곳이다.
인삼(人蔘)은 단군조선의 3대 특산물(特産物) 중의 하나로 기록된다. 단군조선의 3대 특산물은 인삼, 잣(柏子), 옥(玉)이다.
인삼(人蔘)을 영주해삼(瀛州海蔘)이라고도 하며 삼영근(三靈根), 영초(靈草), 삼근영초(三根靈草), 방삭초(方朔草), 불사약(不死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잣나무(柏)는 봉래해송(蓬萊海松)이라고도 하는데, 그 열매인 잣을 오엽서실(五葉瑞實)이라고 한다. 특히 잣나무는 학명(學名)으로도 한국의 소나무(Korean Pine Tree)라 하여, 한국이 원산지이다. 잣나무나 잣방울의 특유의 강한 방향성(芳香性)으로 인하여 잣나무 밑에는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아니하게 된다.
또, 단군조선의 특산물인 옥(玉)을 칠색보옥(七色寶玉)이라 하는데, 방장산(方丈山)의 방호굴(方壺堀)에서 칠색의 옥을 채굴하여 천부(天符)를 새겨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하였다. 이 방장해인은 부인(符印)으로서 칠란(七難)을 없앤다고 기록되고 있다. 천부(天符)는 천지인(天地人)의 이치와 관련된 도형(圖形)이나 글이 될 것이다.
원공패전(圓孔貝錢)이라는 주조화폐(鑄造貨幣)를 만들다.
서기전2133년 무자년(戊子年)에 둥근 구멍이 뚫린 조개모양의 돈 즉 원공패전(圓孔貝錢)을 주조하였다.
여기 원공패전은 자연산 조개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이 아니라, 주조(鑄造)된 화폐이다. 즉 주물(鑄物)로 제작한 화폐로서 청동으로 만든 동전(銅錢)이 된다. 이 원공패전은 서기전1680년경에 주조된 자모전(子母錢) 이전에 출현한 것이다.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물물교환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며, 원공패전으로써 단군조선 초기에 이미 화폐로 교역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기전3897년경 배달나라 건국시에 이미 청동거울, 청동방울, 청동칼, 각종 무기 등을 주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되어, 약1,700년 후가 되는 단군조선 초기에 청동화페를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단군조선 시대에 주조된 화폐로는 서기전2133년의 원공패전(圓孔貝錢), 서기전1620년의 자모전(子母錢), 서기전1426년의 패엽전(貝葉錢), 서기전643년의 방공전(方孔錢)이 있다.
여기서 특히 자모전은 작은 돈, 큰 돈이 아니라 소리글자의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을 새긴 화폐인 것이며, 곧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가림토 글자와 같은 체계로 된 글자를 새긴 것이 된다.
소위 첨수도(尖首刀), 명도전(明刀錢)은 단군조선의 화폐로서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첨수도에 새겨진 문자는 상형문자와 동일한 서체이며,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앞면에 명(明)의 고체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모두 가림토 글자나 상형문자로 볼 수 있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모전은 청동으로 주조된 화폐가 된다.
패엽전은 소위 후대의 엽전(葉錢)이라는 말의 시원이 되고 청동으로 주조된 화폐가 되며, 방공전은 네모난 구멍을 가진 철(鐵)로 주조된 철전(鐵錢)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夏)나라로 건너간 신서(神書)
서기전2133년 무자년(戊子年) 가을 8월에 하(夏) 나라 사람이 특산물을 바치고 신서(神書)를 구해 갔다.
고대중국의 역사에서 하(夏) 나라는, 단군조선의 천자국(天子國)인 우(虞)나라 순(舜) 임금의 신하로서 서기전2267년에 단군조선 태자부루로부터 치수법의 가르침을 받아 요순시대 합22년의 대홍수를 다스린 우(禹)가, 서기전2224년에 단군조선을 반역하여 자칭 하왕(夏王)이라 칭하면서 세워진 나라이다.
서기전2267년에 사공(司空) 우(禹)가 태자부루(太子扶婁)로부터 전수(傳授)받은 치수법(治水法)을 담은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신서(神書)라고도 한다. 신서(神書)라 함은 신령(神靈)스런 내용이 담긴 신비(神秘)한 책이라는 뜻이 되는데, 서기전2133년에도 하나라가 신서를 구해갔다라는 기록에서 신선불사(神仙不死)의 나라인 단군조선이 상국(上國)으로서 신비한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된다.
당시 하나라의 특산물이 어떤 것인지는 불명인데, 하나라의 영역이 되는 지역에서 나온 것으로서, 특히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되고 있는 특산물의 일종이 될 것이다. 단군조선 초기는 하나라 초기이며, 당시 하나라 영역은 요순(堯舜) 시대의 땅이 될 것이며, 서쪽으로는 지금의 서안(西安) 부근에서, 북쪽으로는 태원(太原)의 남쪽, 동쪽으로는 태산(泰山)의 서쪽, 남쪽으로는 한수(漢水)가 합류하는 양자강(楊子江) 중류 지역 정도가 될 것이다.
서기전2267년 도산회의(塗山會議) 이후에 우(禹)가 치수를 하면서 물꼬를 텄다는 대부분의 산과 강의 중상류지역은 우(虞)나라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도산회의에서 태자부루로부터 명을 받아 공사(工事)를 하였던 것이 된다. 이때 우(禹)가 태자부루로부터 받았은 치산치수(治山治水)에 관한 권한(權限)의 징표(徵標)가 곧 천부왕인(天符王印)이다.
조야(朝野)의 구별을 글로 새긴 석문(石文)
서기전2133년 무자년(戊子年) 겨울 10월에 조정(朝廷)과 백성(野)의 구별을 돌에 새겨 백성들에게 널리 알렸다.
돌에 글을 새긴 역사는 이해에 가깝게는, 서기전2267년경부터 서기전2247년경에 사공(司空) 우(禹)가 요순시대 대홍수의 치수를 마치고 남악(南岳) 형산(衡山)의 구루봉에 세운 소위 치수기념부루공덕비(治水記念扶婁功德碑)가 있다.
또, 서기전2333년경 조선(朝鮮) 개국시조 단군왕검께서 삼사오가(三師五加)의 무리들에게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가르치실 때, 고시(高矢)가 동해(東海) 바닷가에서 캐어온 청석(靑石)에 새긴 삼일신고 청석본(靑石本)이 있다.
한편, 서기전1122년경 은(殷)나라 왕족 기자(箕子) 서여(胥餘)가 단군조선(檀君朝鮮)에 망명하면서 사사(師士)이던 왕수긍(王受兢)에게 명하여 단군조선의 삼일신고를 단목판(檀木板)에 새기게 하여 읽었다고 하는 삼일신고 단목본(檀木本)이 있다.
이후 서기전1833년 가을 8월에 제12대 아한(阿漢) 천왕이 순수(巡狩) 중에 요하(遼河)의 동쪽에 돌에 새겨 세운 순수관경비(巡狩管境碑)가 있으며, 서기전909년 제30대 내휴(奈休) 천왕이 청구를 둘러보고 돌에 새겨 세운 치우천왕 공덕비(治尤天王功德碑)가 있다.
한국기원 9218년 · 배달개천 5918년 · 단기4354년
글출처: (참한역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