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태종 이방원의 스승-불사이군(不事二君)의 다인)
반가운 서울 소식이 숲집에 전해 오니
가는 풀 끈에다 새로 봉한 작설차라
식사 뒤의 한잔은 유달리 맛이 있고
취한 나머지 세 사발은 자랑 할 만도 하네
마른 창자를 축이어 속이 시원하고
병든 눈이 열리어 앞이 환하고나
이 물건의 신기한 공, 측량하기 어려워
시 생각이 떠오르고 잠을 청하기도 하네
*고려말 조선초의 유학자로 호는 운곡이다.
종부시 정을 지낸 원윤적의 아들이며, 원주원씨의 중시조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고려말 정치의 문란함을 보고
더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진사가 된 것을 부끄러워 하여
치악산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를 봉양하는 한편,
당대의 거유들인 이색 이숭인 길재 등과 사귀면서 학문에 힘썼다.
일찍이 왕자시절의 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지만, 태종이 즉위한 후
그를 기용하려고 불렀으나 따르지 않았으며, 태종이 직접 찾아 왔어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 뒤 상왕이 된 태종의 특명으로 마지못해 입궐한
그는 도와 달라는 태종의 청을 또 다시 거절하였다.
작품으로는 고려를 회고한 시조 1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여말선초의 정사 5권을 저술하여 상자에 넣어 후손에게 전하였는데,
국사에 저촉되는 것이 많아 증손대에 이르러 전부 소각하였다고 한다.
운곡 원천석의 절의는 후세에 귀감이 되어, 원주지방 유림들이
칠봉서원을 건립하여 사표로 봉안하고 제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