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금계중학교 시절
12회 김석진
초등학교 때 매일 앞 냇가(남원천) 뒷 냇가(기창낙?)로 고기잡이, 메뚜기잡이, 산과 들이 우리의 놀이터이고 하루 생활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노는 것이 일과였다. 그래도 어쩐 이유인지 성적은 중상 정도는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첫 시험을 쳤는데 53명 중에서 3등 이었다. 그것도 1,2등과는 점수 차이가 많은 3등이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공부 잘 하는 지에 대해 깜짝 놀랐고 3등으로 이름이 불려지리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공부 잘하는 것이 별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외워서 쓰면 점수가 잘 나오는 시절이었다. 그 날 공부한 것은 노트 정리해서 외우고, 매일 매일 예습과 복습을 계획대로 해나가니 공부한다는 것이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집에 오면 부모님과 이웃 사람들이 공부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고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꺼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 되면 집안일을 돕고, 동네의 등 굽은 긴 골목길을 쓸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칭찬도 받곤 했다. 밤에 늦도록 공부하면서도 학교에 가서 공부한 것을 발표할 생각을 하니 피곤한 줄 몰랐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계삼정 교장선생님께서는 미술을 가르치셨는데 동그랗고 통통한 내 얼굴을 보시고 “석진이는 복있게 생겼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명왈흥 담임선생님, 조영주선생님, 송지향선생님, 양화자 선생님, 이춘자선생님 모든 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자상하게 잘 지도해 주신 덕분에 3년 내내 장학생이 되었다.
그 후 안동 경안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상위급으로 청운의 꿈을 키우는 시절이 있었고, 안동교대를 졸업하여, 봉현남부에서 첫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풍기, 단산, 부석, 평은에서의 교사생활, 봉화에서 교감으로, 그 교직생활 중에 틈틈이 쓴 작품으로 문단에 등단도 하고 작품상도 받았으며 현재 영덕군 축산항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 주신 덕분으로 오늘에 내가 있지 않았나 생각되며, 살아가다 어려움이 생길 때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복이 있게 생겼어’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 금계중학교 12회 졸업 ■■교육평론 신인문학상 수상
■■ 안동경안고등학교 졸업 ■■ 문학사랑 작품상 수상
■■ 안동교육대학 졸업 ■■ 문학세계 작품상 수상
■■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졸업 ■■ 현 영덕군 축산항초등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