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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2] 18 - 이 땅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은
씬1. 교문 앞
흥수, 지민 등 명찰없는 애들 토끼뜀 뛰고 있다.
광도 지휘봉 들고 살벌하게 왔다갔다한다.
애들 : 용의복장불량 벌점 3점, 용의복장불량 벌점 3점..
유미 교문 밖에 숨어서서 안 넘겨다보며 입술만 깨물고 있다. 아이 참 어떡하지..
재하 : 뭐해?
유미 : 아 깜짝이야.. 선생님. 명찰을 깜빡했거든요. 그래서...
재하 : (안을 슬쩍 본다. 광도의 모습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 (잠깐 생각) 따라와.
재하, 유미를 뒤로 숨겨주며 들어간다.
재하 : 좋은 아침입니다.
광도 : (재하의 인사 받으며 뒤로 숨은 유미를 놓치지 않는다) 배유미, 이리와봐.
유미 : 히익- .. (포기하고 간다)
광도 : (명찰 없는 거 확인, 턱짓으로 옆으로 가라는 시늉)
유미 : (가서 토끼뜀 뛴다)
재하 : (광도와 눈 마주치면 머쓱..) 녀석, 잘 챙겨와야지 학생이 그런걸 빠뜨리면 돼?
광도 : 들어가 보세요.
재하 : ..예. (별수없다는듯 으쓱해보이고 간다)
씬2. 매점 앞
재하, 흥수 유미와 함께 빵과 우유 사 먹으며 나오고 있다.
재하 : 복장은 불량해도 좋으니까 밥은 꼭 챙겨먹고 다녀. 그래야 토끼뜀을 뛰더라도 기운이 나지.
유미 : 그러는 선생님은 왜 굶고 오셨어요?
재하 : 나? 나야 중요한게 없으니까 그렇지.
흥수 : 밥이요?
재하 : 밥 챙겨줄.. 아내.
유미 : 선생님, 우리 사촌언니 소개시켜 드릴까요?
재하 : 뭐 그럴것까지야- 예쁘냐?
광도 멀리서 그 모습 본다.
광도 : 하여간, 선생이나 애들이나.. (못마땅하게 보고 간다)
씬3. 교실
재하의 수업 중. 칠판에 '(영어로) 칭찬합시다'라고 적혀있다.
재하 : (영어) 자 오늘은 누가 칭찬할 차례지?
용구 : (영어) 접니다!
재하 : (영어) 좋아, 시작해봐.
용구 : (컨닝페이퍼 슬쩍슬쩍 보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저는 박흥수를 칭찬하려고 합니다.
애들 : (탄성) 우우..
흥수 : (브이자 그려보인다)
용구 : (콩글리쉬 수준의 우스꽝스런 영어) 그는 컴퓨터와 스케이트 보드를 잘합니다. 베리웰, 아주 잘 합니다.
그리고 흥수는 핸섬합니다. 번개머리야말로 그의 매력포인트입니다.
그리고 그의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는.. 말할수 없는 어떤 부위에 있는 까만 점입니다.
재하 : (영어) 호오, 그게 어떤 부윈데?
용구 : (영어) 그건.. 말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습니다. 엠티가서요.
애들 어떤 부윈지 밝혀라 궁금하다.. 항변하고 용구 말하려 하면 흥수 이게.. 하며 끌어잡아앉힌다.
여자애들 어우.. 하고 웃고 떠드는 분위기.
형주 그런애들 한심하다는 듯...
형주 : 오늘도 진도 나가긴 글렀군.
태훈 : (이미 다른 공부하고 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수업 듣고 공부하는거 아닌데.
재하 : 좋아. 그럼 다음 주자는 흥수야. 다음 시간에 기대하겠어.
저번에 얘기한대로 오늘은 영어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하자. 제목이 좀 거창한데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니들이 왜 영어공부를 하기 싫은지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그런 얘길 해보자는거야. 허심탄회하게.
흥수 : 영어!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나요.
유미 : 난 영어공부 왜 하는지 모르겠어.
애라 : 왜 하긴, 대학 갈려고 하지.
재하 : 대학 갈려고 한다.. 으흠, 그거부터 얘기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씬4. 교무실
선생들 얘기중. 명교감, 정희 없고.
민주 : 그래서 왜 영어공부를 하느냐, 원점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재하 : 왜 이 공부를 하는가, 다시 한번 짚어보자는거죠. 동기가 확실하면 의욕도 생기고 방법도 찾아질테구요.
복만 : 이선생 방학동안 연구 많이 하셨네.
재하 : 저 혼자 생각은 아니구요, (프린트물 보여준다) 방학동안 열린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에서 받아온 자료들입니다.
일평 : (제목 보며) 열린교육을 위한 방법론 연구?
재하 : 전 여기 워크숍 참가하면서 꽤 많이 배웠거든요. 다른 교과에도 도움이 되실겁니다. 한번씩들 보세요.
광도 : (자료 보지도 않고 심드렁한) 누가 방법 몰라서 못해? 할 여건이 되야하지. 학교현실 모르는 사람처럼 갑자기 왜 그래?
일평 : (농담조로) 이선생 정력도 넘쳐. 우린 당체 귀찮아서.
복만 : 노선생님은 고과점수 신경쓰시는것만큼만 신경쓰시면 될텐데요.
일평 : (발끈) 뭐야?
복만 : (찔끔) 아, 아닙니다.
민주 : (가볍게) 주의 환기 차원에서 한번씩 짚어보자는거죠. 그리구 애들 가르치는게 귀찮으시면 안되죠.
일평 : (거슬린다) 나 들으라구 하는 소립니까, 지금?
민주 : 네? 아, 그게 아니구요...
일평 : (끙, 자료 옆으로 밀어놓는다)
유란 : (하던 일에 바쁘다) 다른 과목들 얘기죠. 수학은 별 방법 없어요.
복만 : 맞습니다. 하던대로 하는거나 잘해야지. 그게 본전이라니까. (가고)
재하 : (반응이 썰렁하네..? 민주와 눈 마주친다)
민주 : (역시.. 하듯 어깨 으쓱해보이는)
명 : (들어오며 다짜고짜) 이선생, 나 좀 봅시다.
재하 얼떨결에 따라가면.
명 : 요즘 진도 안 나가셨습니까?
재하 : 네?
명 : 수업시간에 뭐 딴거 시키셨어요?
재하 :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어수업 했습니다.
명 : 진도는요?
재하 : ..수업은 교사의 고유권한 아닙니까.
명 : 교장실로 무슨 항의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하필 오늘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는데.. 하여간 다녀와서 내일 얘기합시다.
재하 : ..
일평 : (비꼬는 투) 거 진도라도 충실하게 나가지 그랬어?
재하 : ..
씬5. 교정일각
민주, 재하 수업들어가는 길이다.
민주 : 너무 욕심 내지 마세요. 우리야 워크샵 참가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그럴 기회가 없었잖아요.
재하 : 뭔가 좀 달라졌으면 하는데, 잘 안되네요. (진지한) 저번에 민정이 일로 느낀것도 많고,
사실 얼마 안됐지만 저도 그새 매너리즘에 빠진 느낌이거든요.
민주 : 그건 매너리즘이 아니구요, 선배님이 워~낙 의욕이 넘치다보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거에요.
재하 : (웃고) 그런가요?
씬6. 교실
광도의 수업.
흥수 : (쪽지시험지 내민다) .. (눈치 보며 긴장)
광도 : (무표정하게 싸늘한 얼굴로 틀린 갯수만큼 사정없이 내리친다) 짝-짝-짝-
30센티 플라스틱 대자가 손에 가 붙는 소리가 처절하다. 뒤에 선 애들 아으.. 얼굴 찡그리며 미리부터 괴롭다.
쪽지시험 틀린 갯수대로 광도 손바닥 때리고 있는중이다.
흥수 : 아으.. (몹시 아픈듯 다리사이에 손 끼우고 쩔쩔맨다)
광도 단단히 기선 제압하려는듯 조금의 빈틈도 없이 냉랭하다. 살벌한 분위기.
지민의 차례.
광도 : 이건 반장이 되가지고.. (열대쯤 몰아쳐 때린다)
지민 : (아파서 죽으려는데)
광도 : 손 똑바로 펴! 손톱 맞아서 사고 나면 니 책임이야!
지민 : (손 펴면)
광도 : (마저 때리고)
지민 아프고 자존심 상해서 눈물까지 글썽글썽하다.
애들 모두 이미 맞은듯 손 부비고 있다. 침울하고 긴장된 교실 분위기.
광도 : 오늘 며칠이야?
애들 : ..
광도 : (언성 높힌다) 오늘 며칠이야?
흥수 : 5일인데요...
광도 : 5번, 일어나서 본문 해석해봐.
아이1 : (일어났는데 책 어딘지 몰라 헤맨다)
광도 : (쳐다보지도 않고) 15번.
아이2 : (역시 헤매고)
광도 : 25번.
준경 : (엉뚱한 곳 읽어내려간다)
애라 : (쿡 찌르며) 거기 아냐.
광도 : 35번.
형주 : (제대로 읽는다)
광도 : 나머지 놈들 뒤로 나가. 얼른!
못 읽은 애들 주눅들어 뒤로 나간다.
광도 : 니들 방학 끝나고 나사 풀렸어. 아직도 방학인줄 알고 니나노 헤헤거리는데 말야, 풀린 나사 내가 조여놓을거야. 각오해.
(재하 의식한듯) 이 시간은 다른 시간하고 달라. 농뗑이 부릴 생각 마. (날카롭게 애들 둘러보는)
씬7. 양호실 앞
양호실에서 나오는 지민과 정연. 지민 손바닥을 후후 불며 나온다.
정연 : 파스만 발라서 되겠어?
지민 : 괜찮아. 으휴, 반장을 집어치우던가 해야지, 이건 감투가 아니라 완전히 멍에다, 멍에.
씬8. 교실 - 쉬는 시간
지민과 정연 들어온다.
성제 : 괜찮은거야?
지민 : 응, 파스로 도배를 하고 왔다, 야.
유미 : (나름대로 노하우라고) 손 오므리니까 그래. 짝 피는게 덜 아퍼.
지민 : 체벌 없앤다고 말만 했지. 없어지긴 쥐뿔이 없어지냐.
애라 : 개학하니까 박광도 완전 물만난 고기 같애. 방학동안 우리 못잡아먹어서 얼마나 심심했을까.
유미 : 담임선생님이 영어 1,2 다 가르치면 안되나. 그랬으면 학주한테 이런 살벌한 수업 안 받아도 될텐데.
용구 : 진짜 비교되는 선생님 아니냐, 폭력교사와 민주교사.
흥수 : (발끈하지만 분위기상 누그러뜨려 말하는) 야, 그렇다구 뭐 그렇게까지 말하냐. 나두 맞았지만 가만 있잖아.
애라 : 그럼 가만 있지, 니가 가서 항의라두 할래?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릴걸.
용구 : (시조풍으로) 아, 참교육은 어디가고 박광도만 날뛰느냐. 오호라, 통재라.
애라 : 실력고사, 모의고사, 중간고사, 앞으로 줄줄이 시험인데 어쩌면 좋아.
애들 우울하다.
씬9. 교문 앞 - 다음 날
예외없이 토끼뜀을 하고 있는 아이들.
희진, 광도의 눈치보며 등교하는데...
광도 : 서희진!
희진 : !
광도 : (손가락으로 오라는 표시)
희진 : (인상쓰고 가면)
광도 : 아침부터 이런 소리 해서 안됐지만, 나랑 좀 긴히 볼 일 있는 거, 알지?
희진 : (죽겠다)
씬10. 교무실
광도 희진 데리고 들어온다. 희진, 재수없어 걸렸다는듯 귀찮은 표정이다.
재하 : (일부러 농담조로) 아니, 우리 희진이가 뭐 잘못했습니까?
광도 : 니가 얘기해봐.
희진 : ..
광도 : 락까페 가서 술 마시고 부킹해서 남자애들하고 어울리고 또 뭐했지?
희진 : 그거밖에 없어요.
광도 : 그거밖에? (쿡 쥐어박는) 이것들이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그게 그거 밖에야? 그거밖에?
너 어제 쪽지시험도 답 하나 제대로 못 썼지? 너같은 놈은 내가 때리고 싶지도 않아. 매두 아까워 임마.
재하 : (광도의 행동 못마땅하다) 저, 선생님.
광도 : (또 뭐냐는듯 보면)
재하 : 저 희진인 이런일 처음인데 한번 봐주시죠.
광도 : 그러니까 처음부터 바로잡아야한다는거 아냐? 이 놈 봐, 이게 반성하는 눈빛이야?
이런 놈들 열이면 아홉, 또 가요. 또 저지르고 더 크게 저지른다구. 인간적으로 대하느니 어쩌니 해서 애 망칠 생각 말라구.
재하 : (굳는) 학생 앞에 두고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광도 : (맞서는) 학생 앞에 두고 나 가르치는거야, 지금?
희진 : (어라? 사태 이상하네? 구경하듯 보는)
재하 : .. (차마 말 더 안하지만 지지 않는 눈빛)
씬11. 상담실
재하, 희진에게 친근하고 다정하게 얘기 건넨다.
재하 : 그러고보니 성적상담때 빼고는 희진이하고 얘기해 본적이 없구나. 미안하다, 선생님이 너무 무심했다.
희진 : (별로 개의치 않는 얼굴) 뭘요.
재하 : 락까페 재밌니?
희진 : 그냥 심심해서 가는거죠 뭐.
재하 :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우연히 갔다가 춤추는거 신나서 춤도 추고 남들 술 마시니까 술도 한잔 마시고
남자애들이 부킹하길래 호기심에 한번 합석해보고, 맞지?
희진 : 뭐, 그렇죠.
재하 : (다 이해한다는듯) 그래 나도 다 알아. 나도 옛날에 다 해봤거든.
희진 : (피식 웃는다)
재하 : 그 얘긴 그 정도로 해두고 우리 연애편지 한번 교환해볼까?
희진 : (무슨 소린가? 보는)
씬12. 교실
희진, 노트 툭 던지며 자리에 와 앉는다.
아영 : (잡지 뒤적이며) 기집애, 나 빼놓고 가더니 쌤통이다. 치사하게 날 따돌리냐?
희진 : 시끄러.
아영 : 광도한테 직싸게 혼날줄 알았는데 멀쩡하다? (노트 보고) 이건 뭐야?
희진 : 몰라. 에이 귀찮아.. 담임이 자기하고 연애편지 쓰잰다.
하영 : 그게 무슨 소리야?
희진 : (뿌루퉁) 락까페 간거 용서해주는 대신 맨날 맨날 자기 발전 노트, 이거 한장씩 써서 내래.
아영 : 푸하하.. 그러니까 때리는 학주보다 말리는 담임이 더 독종이래니까.
희진 : 에이 씨, 그냥 벌점 받고 몇대 맞는게 나은데.
아영 : 대충 썰 풀어. (술술 얘기하는) 나는 공부가 싫다, 왜 우리의 가치가 숫자 몇자리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회의가 들어 방황했다, 내 잘못이 아니다 이 사회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희진 : 너 갑자기 왜 그렇게 말 잘하냐?
아영 : (잡지 들어보이며) 정신과 의사가 어떤 문제아 상담해놨더라구. 그럴듯하지 않냐?
희진 : (잠시 생각) ..! (반가운) 야 그거 보여줘봐.
씬13. 도서실
민주 책 들춰가며 교재준비하고 있다. '국어과 교과지도안' 정도의 제목 보이고. OHP 필름까지 준비하는 열성적인 모습.
민주 : 다했다! (두손 깍지껴 기지개켜며 뿌듯한 얼굴)
책 챙겨 일어난다.
씬14. 체육관 앞
민주 교재 안은채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걸어가는데 음악실 안에서 경쾌한 춤곡 들린다.
민주 : (문틈으로 보고) 어머!
정희의 2학년 5반 음악수업중. 애들 체육관에서 사물놀이 수업중이다. 네명씩 짝을 이뤄 한가지씩 악기를 다루는 5반 아이들.
한, 유미, 용구, 애라가 한 팀. 흥수, 준경, 지민, 태훈이 한팀, 혜원, 신화, 성제, 정연이 한팀 등을 이루고 있다.
유미, 자기도 못하면서 한이를 열심히 코치하고, 용구도 애라에게 장난을 친다.
지민은 썩 내켜하지 않는 태훈을 타박하고, 준경과 흥수는 박자를 맞춰보고 있다.
정희, 이 팀 저 팀 돌아다니며 지도하고 있다.
씬15. 복도
정희와 민주 걸어온다.
민주 : 전 체육관에서 무슨 난리라도 난 줄 알았어요.
정희 : 맨날 애들 앉혀놓고 사물놀이는 무슨 악기로 구성돼있구, 악기의 특징은 뭐구 읊어봐야 애들 모르거든.
직접 북채 들고 두들겨보게 하니까 애들도 재밌어하고 이해도 빠르더라구.
민주 : 정말 몸으로 하는 산 음악교육이네요.
정희 : 처음엔 그야말로 난쟁이더니만, 요즘은 곧잘들 따라해.
민주 : 선생님, 저도 좀 배워볼까요?
정희 : 그러든지. 근데 수강료가 만만치 않을걸? (웃고)
씬16. 교무실
여학생 둘 들어와서 재하의 자리에 꽃 꽂아놓는다. 일평이 보면 인사만 꾸벅하고 지나간다.
일평 : 웬 연애편지야? (꽃병앞에 놓인 쪽지 펴본다) 선생님 수업 너무너무 재밌어요, 이재하 선생님 짱?
허, 선생이 무슨 연예인이야. 짱은 무슨. 에휴, 그저 썰렁한건 여기 세사람 뿐이구만.
복만 : 저요? 제가 왜요?
일평 : 봐, 책상위 허전한건 우리 셋뿐이지.
재하와 민주의 책상위에 두개씩 놓여있는 꽃병, 초코렛, 선물 등등 보인다.
그러고보니 광도, 일평, 복만의 책상은 썰렁하다.
일평 : 이젠 애들이 우릴 왕따시킨다니까. 나 참, 서러워서..
광도 : 선생이 선물 못받는다고 투정하는겁니까, 지금?
일평 : 솔직히 기분 문제지. 똑같이 땀흘리고 가르치는데 누군 짱이고 누군 왕재수면, 선생도 사람인데 그게 좋냐구.
광도 : 그렇다고 애들 비위 맞출겁니까? 소신대로 살아야지.
일평 : 요즘 이선생, 나선생, 수업 좀 특이하게 한다고 애들한테 인기폭발인데 사실 소외감 느끼는건 사실이지 뭐.
복만 : 요즘 좀 그렇죠?
일평 : 워크숍인지 뭔지 갔다온 다음부턴 나정희선생까지 (턱짓으로 재하, 민주 자리 가리키며)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니고
교무실 분위기가 아주 이상해요.
복만 : 가만 보니까, 나민주선생이 희한하게 분위기를 그렇게 몰아가더라구요. 나정희선생님도 괜히 거기 넘어가서..
그때 재하, 민주, 정희 웃으며 들어온다. 일평 광도 복만 얼른 표정관리한다.
민주 : 왜요?
복만 : (시치미) 뭘요?
재하 : ..?
씬17. 교장실
명교감 나온다.
씬18. 교무실
선생들 모두 있다.
명 : (들어오며) 이재하선생님하고 나정희선생님, 저 좀 보시죠.
정희 : (나두? 긴장해서 오면)
명 : 두 분 연구수업 좀 준비해주셔야겠습니다. 두 분 수업이 운영위원회에서 모범사례로 추천이 됐습니다.
복만 : (얼른 끼어드는) 모범사례요?
다들 놀란다. 재하, 정희도 뜻밖이다.
명 : 수업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학습효과를 높이는 새롭고 효율적인 교수법이란 평가에요.
(선생들 보며) 앞으로 우리 학교도 교육개혁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교수법, 대안교육, 다양한 시도,
이런걸 적극 수용할 생각이니까다른 선생님들도 노력들 좀 해주세요.
(광도, 일평 쓱 보며) 맨날 하던대로 타성에 젖지 마시구요. (나가면)
민주 : (반가운) 잘됐어요, 이선생님, 나선생님. 정말 축하해요.
뜻밖의 상황전개에 재하, 정희 얼떨떨하다. 광도, 일평, 떨떠름한 얼굴.
복만 : 야 이거 완전 극적인 반전인데요? 갑자기 운영위원회가 참교육의 선봉에 서기로 했나?
유란 : 나선생 축하해.
정희 : 글쎄, 난 얼떨떨하네..
유란 : 근데 교감선생님 갑자기 저러시니까 이상하네.
복만 :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아침에 뭘 어떻게 바꾸라는건지,
공연히 가만 있는 사람들까지 닥달하는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거.
유란 : 그래봐야 수학 가르치는건 거기서 거기지, 달라질게 뭐 있나요.
민주 : (입바른 소리) 학생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라는 거겠죠.
유란 : (민정이 일 떠올려 거슬린다) 무슨 뜻이야? 내가 학생 대하는 자세에 문제 있단 뜻이야?
민주 : 그게 아니라..
유란 : 걱정마, 이젠 학생들한테 손톱만큼도 모진 소리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나가고)
민주 : (당황) 윤선생님,
복만 : 안그래도 김민정이 일로 예민하신데 왜 그랬어요?
근데 이러다 노선생님 제치고 나선생님이 주임 먼저 되시는거 아닙니까? 고과에도 유리하겠는데요.
일평 : 박선생은 왜 뻑하면 고과 얘기야?
복만 : 아니 워낙 신경을 쓰시니까.. (얼버무린다)
일평 : 음악, 체육 이런 수업이야 그게 가능하지. 다른 과목들은 힘들다구.
재하 : (좋게 말하는) 제 생각엔 사회야말로 적당한 과목 같은데요.
일평 : 무슨 얘기야? 그럼 내가 무능해서 안한다는거야? 말이 이상하네.
재하 :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광도 : 됐어요, 됐어. 교수법이야 교사 각자의 고유한 권한인데 남의 수업방식까지 왈가왈부하면 돼?
이선생도 공연히 교무실 분위기 흐리지 말고 조심해.
재하 : (마음에 있던 말 하는) 전 선배님들께 다른 뜻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한번씩 교사로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서-
광도 : 이선생, 내가 얘기 끝내자고 했는데 자꾸 중언부언할거야? 이선생 말대로 우리 다 이선생 선배야.
꽉 막히고 답답해보여도 다 오랜 세월 애들 가르치면서 얻은 노하우가 쌓인거라구.
선배 가르칠 생각말고 본인이나 잘해. 열린교육이니 대안학습이니 유행처럼 번진다구 무조건 좋은게 아냐.
광도 얘기하는 사이 교무실에 들어온 애라, 분위기 때문에 볼일도 못보고 어정쩡하게 서있다.
재하 : (정색하는) 유행이라뇨. 그럼 제가 아무 생각없이 유행 때문에 그런다는겁니까.
광도 : 뭐야, 지금 나한테 따지는거야?
재하 : 동참은 안하셔도 좋지만 제 노력을 폄하하시는건 좀 그렇습니다.
광도 : (벌떡 일어서는) 뭐야!
복만 : (얼른 무마하는) 이거 왜들 이러십니까, 진정하고 대화로 푸세요.
정희 : 그래요, 그만들 하세요.
애라 : ...
씬19. 식당
재하, 민주, 정희 들어온다. 광도, 복만, 일평 먼저 와 있다.
광도 : (눈 마주치는데 외면)
재하 : (외면하고 다른 자리로 간다)
민주 정희 마지못해 재하 따라가고.
복만 : 이거 어째 분위기가 워크숍파와 비워크숍파로 나뉘는거 같네..?
근데 운영위원회는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노선을 돌변한 겁니까?
일평 : 무슨 생각은 무슨 생각이야. 저번일 무마하려는거지. 김민정이껀으로 학교 평판 바닥에 떨어졌잖아.
광도 : 열린교육이니 어쩌니 해서 애 자살시킨 학교란 오명 벗고 교육부에도 잘 보여보자, 그런 계산이지.
말하자면 이용당하는 거라구.
재하 민주 정희 밥 먹는 쪽.
재하 : 이용당하는 거라도 좋습니다. 우리도 그 기회를 이용하면 되죠. 우리 시도가 옳은거라면 받아들여질 겁니다.
정희 : 난 좀 그러네. 그냥 친목도모 차원에서 워크샵 따라간건데 갑자기 민주교사라도 된 것처럼 보이니까 영 부담스러워 죽겠어.
딴 선생님들하고도 이상해진거 같고.
민주 :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 뜻 좋은건 이해하실 거에요.
정희 : .. (광도 쪽 보면서 영 불편하고)
씬20. 교실 - 점심시간
아이들 모여서 점심먹고 있다.
유미 : 그래서? 담임이랑 학주랑 또 붙었단 말이야?
애라 : 그렇다니까! 아휴, 생각같아서는 나라도 도와드리고 싶더라구.
흥수 : 야, 그런 데 니가 왜 끼냐? 그리구, 앞뒤사정도 모르고 아무나 편드는거 아냐, 임마.
애라 : 야, 앞 뒤 사정을 왜 몰라? (광도 흉내내며) 열린 교육이니 대안학습이니 유행처럼 번진다구 무조건 좋은게 아냐.
이게 무슨 뜻이겠냐? 피끓는 젊은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 참교육을 펼쳐보겠다는데, 무조건 쌍수들고 반대하겠다, 이거잖아!
이래도 내가 아무나 막 편드는거냐?
용구 : (흥수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니 편들어줄 사람은 없는거 같은데?
흥수 : 밥이나 먹어, 임마!
씬21. 교무실
일평 이쑤시다가 문득 재하의 책상에 놓인 자료 들춰본다. '모둠조 수업에 관한 제안'이라는 제목 보인다.
복만 : (들어오며) 뭐하세요?
일평 : (딴청) 응, 아무것도 아냐.
씬22. 교실
애들, 모둠조 형태로 책상 옮기고 있다.
애라 : (끙, 책상 들어나르며) 사회가 웬일이냐, 모둠조수업을 다하고. 장학사 오나?
정연 : 지구가 멸망해도 그 수면제수업은 안변할줄 알았는데 정말 웬일이지?
지민 : 사회 교재 봤어? 십년도 더 된거래.
용구 : '교과서는 바뀌어도 노일평의 만고불변이다'. 몰라?
흥수 : 도도한 교육개혁의 물결앞에 무릎을 꿇은거지. 활발한 토론과 열띤 논쟁, 뜨거운 수업의 열기를 느껴보자,
대오각성한거 아니겠어?
애들 : (미덥지 않은) 그럴까? (하면서도 일견 기대하는)
씬23. 교실
앞씬에서 기대에 찼던 표정의 애들, 턱 고이고 나른하게 하품하며 졸린거 억지로 참고 있다.
일평 예전과 다름없이 교탁에 나른하게 기대서서 졸린 목소리로 교과서 읽으며 일방적인 설명하고 있다.
일평 : (*교과서 내용 읽는)
흥수 : (일평에게 등돌리고 앉은채로 끄적끄적 낙서하고 있다)
일평 : .. (읽다가 흥수 보고) 거기 집중 안하고 딴청하는 놈 누구야!
흥수 : (불만스런) 목 아파요.
일평 : 뭐?
흥수 : 토론 안할거면 차라리 옛날처럼 앉히세요. 이렇게 앉으니까 선생님 돌아볼려면 목만 아프단 말예요.
애라 : 맞아요. 필기하기도 나빠요.
유미 : 무늬만 모둠조지 이게 무슨 모둠조야.
지민 : 그냥 하던대로 해요, 선생님.
애들 볼멘소리에 일평 당황스럽다.
씬24. 복도
일평 수업마치고 기분상한 채 걸어온다.
일평 : (중얼중얼) 나 참, 뭐? 무늬만 모둠조?
씬25. 교무실
일평 들어서는데.
광도 : 모둠조 수업하니까 애들이 좋아합니까?
일평 : (무안, 헛기침) 봤어요?
광도 : 하던대로 하세요, 하던대로. 괜히 남 따라서 뭐하는 겁니까.
애들한테 휘둘려봐야 줏대없는 선생이란 소리밖에 못 듣는다구요.
일평 : (팩) 아, 그냥 한번 해본거지 뭘.
씬26. 영화반
재하와 영화반 모여있다.
재하 : 특별활동시간을 늘려달라?
신화 : 예. 방과후까지 활동을 계속할 수 있으면 특활시간을 이용해서 영화를 보는것도 가능할거 같애요.
지금은 한시간이라 영화반 활동엔 지장이 많아요.
재하 : 음, 일리있는 얘긴데?
지민 : 저희들의 숙원이에요, 선생님.
재하 : 좋아, 건의해보지.
애들 : 우와.. (좋아한다)
흥수 : 역시 선생님 짱!
재하 : 자식들.. 니들 말 들어줄때만 짱이고 수 틀리면 꽝 되는거 아냐?
지민 : 에이 선생님은 우리 의리를 뭘로 보시고..
재하 : 알았어, 얘기해볼게.
애들 : 고맙습니다.
씬 27. 교무실
재하, 명교감 앞에 서있다.
명 : 특활시간을요?
재하 : 예. 영화반 같은 경우는 반의 특성상 영화라도 한편 감상하려면 적어도 두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교사 책임하에 방과후에도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교사에게 재량권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명 : (선선히) 한번 생각해봅시다.
재하 : 감사합니다!
명 : (일어서서 나가려다가) 아, 근데 말이죠, 지난번에 본 실력고사, 내일 발표나는 거 알죠?
재하 : 네? 아, 네.
명 : 그거 보고 확답드려도 되죠?
재하 : 그럼요! 이번엔 믿으셔도 됩니다!
명 : 큰소리치는 거 보니까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한번 두고봅시다.
명교감 나간다.
복만 : 이야, 이재하선생 발언권 쎄졌는데? 교감선생님 많이 부드러워지셨어?
재하 : (광도에게 간다) 주임선생님,
광도 : (뭐냐는듯 보면)
재하 : 특별활동 시간 조정 문제요,
광도 : 방금 건의했잖습니까.
재하 : 아무래도 부장선생님께서 지지해주셔야 통과될거 같애서요. (나름대로 화해의 제스추어인데)
광도 : (사무적인) 교감선생님이 잘 알아서 해주실겁니다. (나간다)
재하 : ..
씬28. 교실
종례중이다.
재하 : 9월이다. 괜히 가을입네 어쩌네 해서들 들뜨지 말고, 환절기 시작되니까 건강들 조심해. 알겠나?
아이들 : 네!
재하 : 그래! 이상! (하다가) 아, 참, 서희진!
희진 : 네?
재하 : 연애편지 잘 받았다. 그리구, 미술학원은 잘 다니고 있지?
희진 : 네? 아, (천연덕스런) 네.
재하 : 나중에 선생님한테 그림 꼭 주는거다?
희진 : (방긋 웃으며) 그럼요.
재하 : 좋았어, 이상!
씬29. 교정일각
희진, 아영 하교중이다. 재밌어 죽겠다는듯 깔깔거리고 있다.
희진 : 글쎄 속더라구. 기가 막혀서. 내가 무슨 미술이냐. 담임도 순진해.
아영 : 너 근데 너무했다.
희진 : 그럼 어떡하냐. 저녁마다 집으로 확인전화한다길래 얼떨결에 둘러댄건데 아니라고 할수도 없잖아.
근데 잘됐어. 학원 간다니까 꽉 믿고 안심하더라구.
아영 : (깔깔대며) 그러다 진짜 그림 달래면 어쩔거야.
희진 : 아무거나 하나 갖다주지 뭐.
지민 뒤에서 들으며 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한데..?
씬30. 교문앞 - 다른 날 아침
재하 출근길. 지민과 유미 뛰어온다.
유미 : 선생님,
재하 : 왜? 오늘도 도와줘?
유미 : 아뇨. (명찰 꺼내서 달며) 오늘은 가져왔어요.
지민 : 참, 특활시간 연장 제안 하셨어요?
재하 : 응,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니까 기다려. 오늘 중으로 대답해주신댔어.
지민 : 신난다. 힘센 선생님 밑에 있으니까 좋구나.
재하 : 뭐?
지민 : 사실 그동안 선생님 재야였잖아요. 그런데 이젠 주류로 편입 되신거 같애서 좋아요.
재하 : 뭐야? 주류?
지민 : 권력에 빌붙어야 저희도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죠.
재하 : 이 녀석들이!
씬31. 교무실앞 복도
재하, 오는데 명교감과 마주친다.
재하 : (기분좋게 들어서며) 일찍 나오셨네요?
하는데, 명교감 썰렁하게 교무실로 들어간다.
재하, ?해서 따라들어간다.
씬32. 교무실
회의테이블에 탁 놓이는 실력고사 성적표 뭉치.
명 : (버럭) 도대체 이게 뭡니까? 방학내 보충수업하면서 다들 애들 데리고 놀았습니까? 성적관리를 어떻게 한겁니까 대체!
교사들 : (긴장하는)
씬33. 교실
동일 애들한테 얘기하고 있다.
동일 : 서울시에서 우리 학교가 꼴찌래.
애들 : (일그러지는) 꼴지?
흥수 : 아휴, 꼴지에서 2등만 했어도 되는건데.
지민 : 이러다 특활연장 날라가는거 아냐?
용구 : 근데 소식통은 난데 니가 웬일이냐? 어째 내 존재를 위협받는 거 같다?
동일 :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한테 들었어. 어제 독서실에서 만났는데 그러더라구.
성제 : 어째 학교에서 가만 안있을거 같은데?
씬34. 교무실
명 : 다음주부터 아침에 한시간, 방과후 한시간, 보충수업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들 알고 준비해주세요.
재하 : 교감 선생님, 그건-
명 : 딴 얘기 마세요. 아 그리고 특활이니 뭐니 쓸데없는 시간, 당분간 자습으로 대처할 생각입니다.
재하 : 하지만 보충수업은 다들 없애는 추세인데,
명 : (별렀다는듯) 이선생 반이 그중에서도 또 꼴찐거 알고 그래요? 이번 모의고사도 엉망이면 이선생이 책임지실겁니까?
재하 : ..
명 : 새로운 교수법도 좋고 열린 교육도 좋은데 성적관리를 해야할 거 아닙니까.
그건 기본 전젭니다. 그걸 전제로 다른 시도를 하자는거지, 학교가 다 포기하고 무조건 새바람에 찬성인줄 아십니까?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재하 : ..
씬35. 교실
광도, 아이들에게 복사된 실력고사 성적분포표를 돌려주고 있다.
광도 : 이번 실력고사의 전체 성적분포표다. 성적을 모의고사로 환산 했을때 지원 가능한 대학을 표시해놨다.
한태훈, 김정연, 이성제, 유신화, 김형주, 여기까지가 4년제 대학 안정권이다. 나머지? 나머진 너희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애들 : (고개 푹 떨구고..)
광도 : 내가 담임도 아니면서 왜 너희들한테 이런 수골 자청하는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다른 반은 그래도 10등까진 대학을 간다. 느이반은 도대체-, (말하기도 싫다는듯)
담임이 영어선생인데 영어도 꼴찌하는 비법은 뭐냐?
애들 : (자존심 상하고) ..
그때 조용한 교실에 울리는 삐삐음.
광도 : 뭐야?
애라, 당황해서 얼른 가방에서 삐삐를 꺼내 끈다.
애라 : (찔끔)
광도 : 정애라. 수업시간에 삐삐까지 받을만큼 대단히 여유가 있나본데, (성적표 펼쳐보며) 어디 얼마나 되나 한번 볼까?
애라 : (아후..)
광도 : (성적표와 애라 얼굴 번갈아보며 혀차는) 너 이래가지구 원서라도 살 마음이 생기겠냐? 엉? 원서값은 해야될거 아냐, 임마!
애라 : (죽을 맛이고..)
광도 : 다음 시험은 전국규모 모의고사다. 오늘부터 바짝 당겨서 진도 나가고 수업 끝날때마다 예상문제 짚어줄거야.
전국규모 모의고사라는게 무슨 의민지 알지? 전국의 학교가 다같이 본단 말야.
수업의 의미가 어떻고 새로운 방법론이 어떻고 하다간 다른 학교하고 게임이 안돼.
남들은 진도 다 끝내고 문제집 서너권씩 떼고 있어. 진도 늦으면 니들만 손해니까 알아서들 해.
애들 : .. (교실 분위기 살벌해지고)
광도 : 책 펴. (여유주지 않고 책 읽으며 수업진행하는)
씬36. 교정 적당한 곳
정희 난처한 표정이다.
재하 : 워크샵 참가자들 애프턴데 왜 안가세요? 같이 가세요, 재밌을 거에요.
정희 : 글쎄 집에 일이 있다니까요. 미안해요, 다음에 갈게. (도망치듯 간다)
재하 : ? 아침까지만해도 같이 간다고 하시더니.
민주 : 교장실에 불려갔다 오신거 같애요.
재하 : (보면)
민주 : 이재하, 나민주하고 어울리지 말아라, 뭐 그런거겠죠. (씁쓸한 미소)
재하 : ..
씬37. 교실
재하의 수업.
재하 : (언제나처럼 밝게, 영어로) 자, 지난번에 흥수가 누구 칭찬했더라?
아! 애라! 자, 애라가 칭찬할 사람이 누굴지 되게 궁금한데?
애라 : 선생님.
재하 : 왜?
애라 : 저기... 시험때까진 칭찬하기 안하면 안돼요?
재하 : 뭐?
애라 : 영어2는 진도 다 나갔는데... 딴 학교들은 책 다 끝내고 문제집 푼대요...
재하 : 뭐야? (그런데 애들 조용한게 이상하다) 니들도.. 그래?
태훈 : 진도는 일단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나머지는 대답은 안하지만 동조하는 분위기.
재하 : (당황스럽다) ..
씬38. 복도
재하, '애들이 왜 저러나?'싶은 표정으로 걸어온다.
씬39. 교실 - 쉬는 시간
지민 애들한테 보충수업신청서 나눠준다.
지민 : 이번 보충수업은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신청하는거래. 선생님 이름 아래다가 동그라미 쳐서 제출해.
지민 자기 자리에 앉아 신청서 본다. 영어 과목에 이재하, 박광도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다.
지민 : (순간 고민스럽다) .. (어떡하지..? 다른 애들 보면)
성제 : (역시 고민중)
애라, 유미, 흥수는 이미 이름 적고 있다.
정연도 힐끔 눈치 본다. 다들 같은 맘이다.. (신화 빼고 광도의 수업 선택하는 영화반 애들)
지민 : (다시 신청서 보는)
씬40. 교무실
재하, 지민이 가져온 보충수업신청서 보고 있다.
재하 : ..? (들춰보는데 애들 거의 다 박광도의 보충수업에 동그라미를 쳤다) ..!
정연, 성제 등등 영화반 애들의 이름 나오자 더욱 실망스럽다. 이럴수가..
씬41. 영화반
영화반 아이들 얘기하고 있다.
신화 : (뜻밖) 그럼 다들 학주 수업을 신청했단 말야?
흥수 : 어, 난 아무도 신청안할까봐 했는데.. (하다가 말 얼버무린다)
애라 : 담임한테 배우다간 날 새게 생겼잖아. 예상문제도 안해주고 진도도 안나가는데 모의고사 또 죽쑤면 어떡해.
난 이번에 성적 올려야된단말야.
유미 : (끄덕이는) 맞어.
신화 : (지민 보면)
지민 : (켕기는) 그게.. 다음 시험도 망치면 난 진짜 엄마한테 죽어.
성제 : 나도 박선생님 수업 신청했어. 난 학원도 못다니고 학교공부 뿐인데 그 수업이 더 효과있을거 같애.
신화 : 나 혼자만 달랑 앉아있으면 선생님이 서운하시겠다.
유미 : 도리지키는건 너처럼 여유있는 사람 얘기지. 우리처럼 간신히 등수 지켜가는 사람들은 그럴 여유없어.
신화 : .. (애들 반응 뜻밖이고)
씬42. 영화반 앞
들어오려던 재하, 애들 얘기 듣고 맥 탁 풀린다.
재하 : ..
씬43. 교실 - 다른날
재하의 수업시간. 굳은 표정으로 수업하고 있다.
재하 : 다음, 영자신문 기사 조사해오기로 한 사람 누구지?
정연 : (일어나 발표하는데)
유미 : (엎드려 뭔가 딴짓하고 있다)
재하 : (다가가보면)
유미 : 서, 선생님..
재하 : (노트 확 빼서 본다. 다른 영어숙제하고 있다) .. (화 누르는) 난 이런 숙제 내준적 없는거 같은데?
유미 : (고개 푹 떨구고)
재하 : (그답지 않게 노트 휙 던져준다) .. (배신+실망)
씬44. 교정 적당한 곳
재하 담배 피우고 있다. 민주 샌드위치 내민다.
민주 : 좀 드실래요?
재하 : 아뇨, 생각없습니다.
민주 : 보충수업하려면 배고플텐데. (재하의 기색 심상치 않다) 무슨 일 있어요?
재하 : .. 난 내가 좀 괜찮은 선생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 애들이 날 좀 따라주지 않는다고 애들이 그렇게 미울수가 없습니다.
민주 : (웃으며) 선생도 사람인데요.
재하 : 근데.. 애들이 너무 간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애들을 그렇게 간사하게 만든게 뭐죠?
민주 : ..
씬45. 공중전화
희진, 삐삐 메시지 확인하고 있다.
희진 : 기집애, 또 무슨 일이야. (들어보고 좋은 일인지 입 함박 벌어진다)
씬46. 교문 앞
희진 수위아저씨 눈 피해 몰래 나가려다 광도에게 걸린다.
광도 : 어디 가?
씬47. 교무실
희진 광도앞에 불려와있다. 민주 등 다른 선생들 있다.
희진 : 학원 간다니까요.
광도 : 무슨 학원?
재하 : (들어오며) 무슨 일입니까?
광도 : 보충수업 빼먹고 도망가다 걸렸어.
희진 : (구원군 만난듯 변명) 학원 가려구요, 선생님.
재하 : 보내주시죠.
광도 : (보면)
재하 : 학원 가는거 맞습니다.
광도 : 학원 전화번호 대봐.
희진 : (당황하는데)
재하 : 주임선생님, 적당히 해두시죠. 그렇게 애들을 못 믿고 닥달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광도 : 믿게 행동을 해야 믿지. 이렇게 한 놈 빠져나가면 딴애들은 가만 있을거 같아?
재하 : 애들을 그렇게 잡으시니까 애들이 꼼짝 못하고 알아서 기기에 바쁜거 아닙니까.
광도 : 무슨 얘기야?
재하 : ..
광도 : 가봐.
희진, 엉겹결에 풀려나고.
광도 : 나한테 할 말이 많은거 같네?
재하 : .. 아닙니다.
광도 : 애들 휘어잡아서 대학 보내주면 나중엔 다 고마워해. 애들 풀어줘서 좋은 꼴 본 적 있어?
재하 : 대학 간 학생이 몇명이고 탈선이 몇명이고 그런 숫자가 교육의 성과를 말해주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고)
광도 : (보는)
씬48. 거리 - 밤
학교 앞 버스 정류장. 재하 서 있다. 마악 버스 타려는데 핸드폰 울린다.
재하 : 여보세요. .. 제가 서희진 담임인데요.
씬49. 경찰서 - 밤
재하 들어온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머리 올려빗은 희진, 핸드폰 통화 하고 있다.
희진 : 몰라, 담탱이는 잘 속였는데 잡혀오는 바람에 뽀록나게 생겼어. 아우, 왜 이렇게 재수가 없니.
재하 : (듣고 얼굴 확 굳는) ..
경찰 : 담임선생님이세요?
희진 : (돌아앉다 재하 본다) 서, 선생님..
경찰 : 며칠전에도 단속에 걸려서 학교에 연락드렸는데, 이녀석, 아주 상습범인거 같아서 좀 오시라고 했습니다.
희진 : (당황해서 어쩔줄 모른다) 선생님 그게 아니라..
재하 : .. (오만정 다 떨어지는 기분, 배신감 느낀다)
씬50. 포장마차 - 밤
재하, 혼자 소주잔 기울이고 있다. 애들에 대한 신뢰 무너지고.. 괴롭다.
씬51. 교무실 앞 복도 - 다음날
재하 오는데 민주가 기다리고 있다.
민주 : 저, 선배님.
재하 : ..왜 나와계십니까?
민주 : 저기..
하는데, 왁자지껄한 소리 들리며 교무실에서 나오는 희진모와 광도.
광도 : 저랑 얘기하시자니까요. 제가 학생부장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희진모, 광도와 나오다가 재하를 발견한다.
희진모 : (나서며 도도한 말투) 저기, 희진이 담임선생님 맞죠? 나 희진이 엄마에요.
도대체 선생이란 사람이 뭐하는 거에요? 선생이면 선생답게 학생을 선도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재하 : 네?
씬52. 교실
용구 뛰어들며.
용구 : 야, 야, 지금 교무실앞에서 싸움났어! 싸움!
흥수 : 참 나, 세상 완전 막가파구만. 누가 교무실앞에서까지 싸움을 하냐?
용구 : 임마 지금 농담아냐. 담임이 희진이 엄마랑 한판 붙었다니까!
애들 : 뭐야? (우르르 나가는)
씬53. 교무실앞 복도
이미 구경하는 학생들이 쭉 둘러섰다. 들어서는 영화반 아이들.
희진모 : (다짜고짜 해붙이는) 자기발전노튼지 나부랑인지 쓰면서 뭐요, 자유가 그리우면 자유를 찾아가라구?
선생님도 학창시절엔 가출해본적이 있다구? 세상에 애한테 가출하라고 가르치는 선생이 어딨어요.
재하 : 희진이 어머님, 그건 그런뜻이 아니라,
희진모 : 아니긴 뭐가 아녜요! 그렇게 애를 부추기니까 애가 이꼴이 나죠!
재하 : (말 안 통해 답답) .. (지나가는 애들 힐끔거리는데 무안하고)
희진모 : 세상에 락까페에 경찰서라니, 우리 희진이 절대로 그런 애 아니에요.
도대체 학교에서 어떻게 선도를 했길래 이런데로 빠지냐구요!
재하 황당한 억지에 할말 잃고 섰는데 보다못한 광도 막아서며 나선다.
광도 : 그만하시죠.
희진모 : 뭐에요?
광도 : 집에선 뭐하셨습니까. 애가 그 지경이 되도록 그럼 어머닌 뭐하셨냐구요.
희진모 : 어머머..
광도 : (별렀던 말 하듯) 희진이가 잘했을때 선생님 고맙다고 감사해 본적 있으세요?
하나 잘못 가르쳐서 애가 비뚜로 나갔다면 그동안 열개 스무개 잘 가르쳐서 애 바로잡았던건 왜 얘기 안하십니까.
희진모 : (할말 없다) 세상에 기막혀..
재하 : ..
씬54. 교실
지민, 희진에게 따진다.
지민 : 너 치사했어. 선생님 속이는 것도 모자라서 엄마까지 동원하냐?
희진 : 허, 니가 뭔데 나서냐. 담임 대변인이라도 되냐?
지민 : 그런 식으로 뒤집어 씌우진 말아야지. 니가 빠져나갈려구 선생님한테 덤테길 씌워?
희진 : 되게 의리 있는척 하네. 야, 너나 잘해. 담임하고 죽고 못사는 영화반도 보충 수업은 다 광도한테 갔더라?
내 뒤에 앉아서 수업 들은거 너 아냐? 의리있는 사람이 왜 그래?
지민 : (발끈) 뭐야?
정연 : (말린다) 그만둬.
희진 : 흥! (가고)
지민 : (화나서 씩씩대는)
신화 : 뭐하러 참견은 해.
지민 : 맞는말 하니까 더 화나잖아.
애라 : 우리가 뭐 잘못 있냐. 공부 안하면 대학 못가는데 그럼 어떡해. 이런 현실이 문제지.
정연 : 근데 그건 핑계야. 사람이 하는 일인데 사람 아닌 제도에만 핑계대는 것도 잘못이야.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이번엔 이기적이고 비겁했어. 신화 빼고 우리 다.
애들 : (씁쓸한 동조의 표정)
흥수 : 에이 씨, 뭐가 이렇게 어렵냐.
씬55. 교무실 - 저녁
재하, 전화하고 있다.
재하 : 우선생님 그 다음에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 나도 오래돼서 연락 끊겼지... 글쎄, 갑자기 오늘 선생님 생각이 나네.
그래, 알게 되면 연락주라. 그래. (전화 끊고 앞에 놓인 종이 만지작 거린다. 사직서다) ..
광도와 복만 들어온다. 재하, 사직서 책으로 덮어놓는다.
복만 : 이선생, 오늘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잔 하러 가지.
재하 : 아뇨, 다음에 하겠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가면)
복만 : 사람 거 보기보다 소심하네. 별의별 놈들에 별의별 학부모가 다 있는데 아직 덜 겪었나봐요?
광도 : .. (재하 책상쪽 보는)
씬56. 호프집 - 밤
선생들의 술자리. 명교감과 재하는 없고. 울적한 분위기다.
광도 돌아가며 술 따라준다.
광도 : 우리 다 풉시다. (정희에게) 나선생 유감 없죠?
정희 : (웃으며 받고)
광도 : 나민주 선생두?
민주 : (부러 씩씩한) 네.
일평 : 혹시 나한테도 쌓인거 있으면 풀라구.
민주 : 그런거 없어요.
광도 : 힘든 사람들끼리 힘 모아 살아야지 분란 일어서야 되겠어. 밖에서 뭐라고 해도 우리끼리라도 서로 북돋워줘야지.
복만 : 맞습니다. 진작 이런 분위기가 됐어야 되는건데.
민주 : 이선생님도 저도 잘해보려고 하는 일인데 쉽지 않은거 같애요. 교사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구요.
유란 : 우리끼리 서로 대화가 필요한건 사실이에요. 우리끼리 너무 비판도 없고 토론도 없잖아요. 다들 자기 식만 고집하고.
남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가장 편협한 아집에 묶여있어요.
복만 : 윤선생님이 그런 말씀 하시다니 뜻밖인데요.
유란 : 요즘 생각이 많아요. 애들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비판이 활발해야 그 사회가 건강한건데 우린 너무 고여있는 물 같애요.
일동 : (동조의 느낌)
일평 : 근데 이럴때 제일 할 말 많은 사람 어디 간거야?
광도 : 좋은데 갔으니까 걱정들 말고 술이나 마십시다.
민주 : ?
씬57. 특별학교 - 밤
야간으로 운영하는 산업체 특별학교. 허름한 건물의 초라한 외경이다.
선생님 찾아온 재하, 건물앞의 학교 간판 보고 있다.
광도 : (E) 옛날 선생님 찾는다고 했다며? 그분 00학교에 계시대. 친구한테 전화받고 메시지 남기는 거니까 찾아가봐.
씬58. 특별학교 안 - 밤
부우연 형광등 불빛 아래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 창너머로 보인다.
협소한 교실, 몇명 안되는 학생들, 재하가 보기엔 초라하기만하다.
재하 : .. (이런데 계시나..)
어느 교실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 들려온다.
우선생 : (E) 이놈아, 이것두 몰라?
재하 : ..! (익숙한 목소리에 들여다본다)
머리 희끗희끗한 우선생, 머리 노랗게 물들이고 사고뭉치로 생긴 사내 녀석 하나 앉혀놓고 공부시키고 있다.
나이답지 않게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씩씩한 행동.
우선 : (혀차며) 밥이 아깝다, 밥이 아까워. 이거 못 풀면 내일 아침 굶어 임마.
우선생 연신 면박주고 있지만 애정섞인 투다. 재하 그 모습 보자 빙긋 웃음 나온다.
재하 : 선생님.
우선 : (보고 놀란) 아니, 너 이놈 이재하 아니냐?
씬59. 특별학교 교무실 - 밤
우선생, 가방 챙긴다.
재하 : 안외워지면 밥먹지마, 그 말씀 예전에도 하셨어요.
우선 : 안외워지면 먹지 말어야지 그럼. 공부 안되는데도 꾸역꾸역 밥먹으면 그건 돼지새끼야.
재하 : (여전하시네.. 웃고) .. 전 선생님께서 교단 지키실 줄 알았습니다.
우선 : 여기도 교단이야. 왜 초라해보여?
재하 : 솔직히 제 기대하곤 좀 다릅니다. 전 선생님이 복직하셔서 그래도 지금쯤은 교감쯤 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우선 : 나같은 반골이 그게 되냐?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나 그거 못해.
재하 : 선생님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농성하시던 모습 기억나요.
우선 : 니가 그때 지지한다고 찾아왔었지? 계란 삶아가지고. 단식농성하는데 먹을거 들고 오는 놈이 어딨냐.
재하 : (웃고) 선생님 그때 얼마나 멋져보였는지 아세요? 제가 그땐 좀 철이 없었거든요.
머리에 흰 띄 두른 선생님 모습이 진짜 투사같았습니다.
우선 : 나가서 소주나 한 잔 할까?
씬60. 호프집 - 밤
민주 : (걱정스런) 사표요? 정말 사표 쓰면 어떡하죠?
광도 : 걱정마, 그런 생각 한두번 안해본 사람이 어딨다구. 돌아올거야, 제자리로.
민주 : ..
씬61. 소주집 - 밤
재하, 우선생 술 마신다.
재하 : (술 좀 마신듯) 전 애들만큼은 믿었습니다. 아무리 사고치고 개판치는 놈들이라도 본질은 순수하다, 그렇게 믿었는데,
그런데 배신 당한 기분입니다. 앞으로 뭘 믿고 나아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 애들을 믿으면 어떡해.
재하 : (보면)
우선 : 니가 의지할만큼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들이라면 니가 가르칠 이유도 없잖아. 안그래?
재하 : ..
우선 : 아까 그 놈 봤지? 내가 그놈 잡아다놓은게 다섯번째야. 경찰서에서 말야. 절도 강도, 이력도 화려해.
니가 보기엔 인간망종같겠지만 그래두 녀석 갈데 없으면 나한테 와. 맘을 붙인게지.
내 생각엔 말야 애들 가르치는거 이건 싸움이야. 지리한, 끝을 모르는 싸움. 그렇게 생각하고 매달리는 수밖에 없어.
어떡해, 왕도가 없는데.
재하 : ..
우선 : 자신 있으면 달려들고 아님 말어. 근데 해볼만은 해. 이게 싸움은 싸움인데 아주 즐거운 싸움이거든. (빙긋 웃는)
재하 : ..
씬62. 버스안 - 밤
재하 : .. (생각에 잠긴)
씬63. 광도아파트 앞 공원 - 밤
재하, 앉아있는데 나타나는 광도.
광도 : (옆에 앉으며) 은사선생님 만났어?
재하 : (물러나 앉으며) 기척이라도 좀 하시죠.
광도 : 무슨 생각을 하길래 옆에 사람 온줄도 몰라? (냄새 맡으며) 한잔 하셨나보네.
재하 : 네. 한잔 했습니다. (잠시) 선생님.
광도 : ?
재하 : 선생님이 이기셨습니다.
광도 : ?
재하 : 이땅에서 교사로 산다는게, 제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더라구요. 오늘 옛스승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오만하고 방자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거지요...
광도 : 이선생.
재하 : 이젠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참교육이란게 뭔지... 열린 교육이니 대안학습이니 하는 것도,
갑자기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지네요... 오죽하면 옛스승님마저 싸움이라고 표현하시겠습니까?
광도 : 이선생. 내, 옛날얘기 하나 해줄까?
재하 : (보면)
광도 : 내가 교사생활 시작했을땐 군부정권 서슬 시퍼랬을 때였거든.
머리 굵은 애들 몇이 미국에 대해서 비판하는 글을 어디서 읽고 와서 학교에서 돌렸어. 난리가 났지.
그때, 애들의 언론자유를 탄압하면 되냐고 싸운 선생이 하나 있었어. 덕분에 선생들사이에서도 요새 말로 왕딸 당했지.
그게 나야.
재하 : (보면)
광도 : (웃음) 믿기지 않지? 나도 신임교사땐 파릇파릇했어. 근데 윗사람들한테 눌리고 학부형한테 몰리고 애들한테 실망하고,
그냥 이런건가보다, 안되는구나, 그렇게 주저앉은게 오늘 이꼴이야.
재하 : ..
광도 : 왜 그렇게 애들을 잡느냐고 했지? 난 지금도 대학 보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즘 같은 세상에 대학이라도 나와야 제 앞가림하고 살거 아니냐.
나하고 생각이 다른 젊은 친구들, 글쎄 그런 친구들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면더 좋겠지.
그런 친구들이 물갈이를 해주겠지. 우리같은 노땅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재하 : ..
광도 : 하나 고백할게 있는데 말이야.
재하 : (보면)
광도 : 나, 사실 이선생한테 많이 배우고 있어.
재하 : ?
광도 :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선생이나 나선생보고 있으면, '왜 난 진작에 저러지 못했나' 그런 생각이 들때가 가끔 있어.
정말이야. 흥수녀석이 내앞에서 이선생하고 날 비교할때가 많아. 뭐, 기분이 그리 좋을리는 없지만,
다음날 수업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말이 기억나곤 하거든. 그게 배우는거 아니겠어?
(잠시) 이선생. 이건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그런 게임이 아니야. 누군 애들 안되라고 분필가루 먹고 교단에 서있겠냐구?
다 잘되자고 하는건데 방법이 조금씩 틀린 것 뿐이잖아.
(주머니에서 재하의 사직서 꺼내들며) 그리고 이거. 내가 알아서 처리해도 되지?
재하 : 선생님...
광도 : 나도 숱하게 써봤어. 근데, 애들 쳐다보고 있으면 이거 쉽게 못던지겠더라구. 어차피 이선생도 그럴거잖아. 안그래?
재하 : (어색하게 웃는)
씬64. 우체통앞 - 다음날 아침
편지 한통이 우체통안으로 밀려들어간다.
말끔한 차림의 재하가 우선생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 위로.
재하 : (E) 선생님,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이 싸움을 계속해 보기로 했습니다.
즐거운 싸움을 말입니다. 늘 그 자리에 계신 선생님이 자랑스럽니다.
씬65. 교문앞
걸어오는 재하. 보면 흥수가 교문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재하 : (뒤에서 툭치며) 박흥수, 여기서 뭐해 임마.
흥수 : (놀라며) 어, 선생님!
재하 : 오늘은 또 뭐야?
흥수 : (명찰자리 가리키며) 분명히 집에서 나올때까지 매달려있었는데, 지하철에서 떨어졌나봐요.
재하 : (안을 슬쩍 본다. 광도의 모습보고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 (잠깐 생각) 따라와.
재하, 흥수를 뒤로 숨겨주며 들어간다.
재하 : 좋은 아침입니다.
광도 : (재하의 인사 받는데)
재하 : 박선생님. 보니까, 이 친구가 명찰을 안달고 왔네요?
흥수 : !
재하 : 제가 볼 때 상습범으로 추정이 되는데, 정신바짝 차리게 혼좀 내주십시요.
흥수 : 서, 선생님!
재하 : 녀석, 잘 챙겨와야지 학생이 그런걸 빠뜨리면 돼?
재하, 광도에게 씩 웃어보이고는 흥수의 엉덩이를 슬쩍 꼬집어주며 학교로 올라간다. 그 모습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