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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산[무등산 ․ 봉화산]
◇무등산
일시 : 2005. 12. 03(토).
장소 : 무등산
○ 오전
정기 건강검진을 받은 지가 오래인 성 싶다.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목이 컬컬한 것이 불쾌하기도 하고, 갑상선도 점검해 볼 때가 아닌가 하여 오늘 토요일 광주 한일병원 배명 원장을 찾아간다. 이 녀석 건강을 보살펴 주는 배 원장의 정성은 한결같다. 직업정신이 투철한 것인지 의사로서 사명감이 투철한 것인지, 여하튼 훌륭한 의사이다.
오전에 검진이 끝나고, 저녁에 광주 상무지구 (신락원)에서 남풍(南風)회 모임이니 종일 광주에서 보내야 한다. 아내는 머리 파머를 해야 한다고 혼자서 산에 가란다.
그래, 좋다. 혼자서 간다.
혼자 가는 산행이 얼마나 좋은데…….
○무등산 산행
코스 : 증심사 입구 주차장 - 유교 - 무당골 - 바람재 - 토끼등 -봉황대-증심사 - 의제미술관 - 주차장
○바람재
14시 20분. 증심사 입구 주차장 출발, 휴일답지 않게 주차장이 한가하다. 오후 하산시간이라서 이겠지.
유교에서 무당골 쪽으로 방향을 잡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봉황대쪽으로 자주 다녔는데, 최근에는 ‘무당골 - 바람재’ 코스가 더 편한듯하여 자주 다니는 길이다.
12월이니 역수(曆數)상으로는 겨울임에도 날씨가 겨울답지 않다. 아직 가을의 기운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래서 만추(晩秋)인가 보다.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 쉬엄쉬엄, 우두커니 걷다 보니 쉼도 없이 바람재 턱밑 약수터에 도착한다. 15:30. 여느 때 같으면 땀깨나 흘리며 헐레벌떡 약수 물을 찾을 텐데 오늘은 땀도 없다. 약수 물도 없다. 가뭄에 약수는 병아리 눈물처럼 찔끔찔끔 이다.
약수터에서 바람재까지는 5분 거리 깔딱 계단 길. 계단 길은 항상 힘들다.
그래도 5분인데, 뭐. 등에선 속땀이 맺힌다. 바람재(470m), 이름 그대로 바람이 세다. 그동안 수없이 지났지만 오늘 제대로 이곳 안내지도를 본다.
470m. 유교-바람재 1.8km, 바람재-토끼등 0.8km이다.
바람재에서 토끼등으로 가는 오솔길은 오늘도 아름답다. 봄에는 철쭉 길로, 여름에는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눈길로 아름답더니, 오늘 만추에도 낙엽이 휘날리며 스잔한 초겨울을 부르고 있다.
혼자 걷는 산행 길은 그냥 한가롭다. 멍하니 가다보면 여기까지 와 버린다.
고향의 산은 혼자 감이 더 좋다. 혼자 감이 더 여유롭다.
고향의 산은 마음의 산이다. 향산 즉 심산(鄕山卽心山)이다.
너덜겅 약수는 가뭄이건 말건 용머리에서 약수를 콸콸 쏟아낸다. 정말 약수인가 보다.
토끼등을 지나 봉황대에 이르니(16:00), 봉황대 단풍군락지에는 아직껏 낙엽이 포근하게 뒹군다. 때 늦은 당단풍은 혼기 놓친 노처녀처럼 겸연쩍게 수줍어한다. 아- 아직은 가을인가 보구나―
봉황대에서 증심사로 하산이다. 혼자라서 빠르기도 하다. ‘無等山 證心寺’라고 쓰인 일주문까지는 20분도 채 안 걸린다. 일주문 길가 계곡의 당단풍은 늦가을을 아쉬워하듯 마지막 진홍색을 한껏 뽐낸다.
○의제미술관
의제미술관에 ‘수묵대전’을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을 때부터 미술관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마음 상해했지만, 이미 지워진 집. 기념관 건물로 의제(毅濟) 선생을 평가하진 않을 것이므로 안도는 되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해인사 경내에 있는 성철(性徹) 스님의 묘소를 보면서도 똑 같은 아쉬움이 있었는데, 못난 이 사람만 속 좁은 생각일런지-
‘수묵대전’의 작품보다는 의제선생의 유작들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볼수록 고상하고 품격 있음은 이 사람의 엄살만은 아니리라. 전지에 그려진 독수리는 당장이라도 창공을 차고 나를 듯하다.
솔거의 참새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16:50. 주차장에 쓰여 있는 이정표를 보니 주차장- 바람재 2.5km이다.
○남풍(南風)
매달 모여오던 남풍회가 한 사람 두 사람 광주를 떠나더니 금년부터는 두 달에 한 번씩으로 모임도 축소되다. 여름에 최오주 국장 아들 윤상이 결혼식에 만나고 그 뒤 한번 모임에 불참하고 보니 꽤 오랜만에 만나는가 보다.
박명식 교수야 원래부터 전주에 살았고, 장경호 원장이 치과 의원을 수년전 갑자기 대전으로 옮기더니, 금년에는 우리가 서울로 이사했다. 전남도청이 금년 10월에 무안군 삼향면으로 옮겨가니 최오주 국장도 목포로 이사했다. 강성수 사장 왈, 자기도 화순 수만리 산다면서 박하영 사장만 광주 사람이란다. 그래, 나이가 드니 모두가 또 떠나는가 보다.
◇ 봉화산
일시 : 2005. 12. 4(일)
장소 : 순천 봉화산
○ 봉화산(烽火山)
순천 봉화산은 순천의 구도심과 신도심의 중심부, 즉 순천 시가지 내에 있는 시내의 산이다. 시내 어디에서도 가까이 보이고, 산에 오르면 순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내에 있는 산이라서 접근로도 여러 방향이지만 난 뉴코아 백화점 쪽 대림 아파트 뒤편을 이용한다. 등산로 초입은 순천 숙소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이다.
정상의 높이는 355m, 초입에서 정상까지 왕복 8-90분 정도의 거리이다.
2000년도 초여름, 이곳을 처음 오를 땐 가파른 오르막에 밀려 서너 번 쉬면서 겨우 올랐던 곳이다. 지금은 단숨에 오르는 곳이지만, 처음 20여 분간의 오르막은 짧은 산행 코스로는 적격이다.
20여분 숨을 몰아치고 오르다 보면 능선에 이르고 완만한 능선 길 5분정도면 차밭(茶園)과 운동시설이 된 공원 같은 휴식공간이 나온다. 2-3년 전에 신축한 매점도 있다. 약수터도 있고, 지명이 뭔지 아직도 모른다(무심한 녀석-). 편의상 ‘쉼터’라고 부른다(나 혼자서).
○마음의 산
퇴근 후 석양 산행시, 해가 짧을 때에는 ‘쉼터’까지만 다녀간다(왕복 1시간 거리). 봄이 익어 해가 길어지면 정상까지 다녀온다(왕복 1시간 반 거리).
산행시간은 퇴근 후이니 항상 석양일 수밖에 없다. 이른 봄부터 초가을까지 등산이 가능하다.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는 낮이 길어 퇴근 후에도 정상까지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 좋다. 3월부터 9월 중순까지 겨우 다닐 수 있으니 년 중 겨우 절반만 산행이 가능한 셈이다.
2000년 여름 이후 산행 철(3-9월)에는 매주 빠짐없이 주중에 1회 이상 산행 했으니 지금까지 아마 100회 이상은 올랐지 않을까 어림된다. 100회 이상을 주중에 퇴근 후 혼자서 땀을 훔치며 오르내렸으니 이제는 눈을 감아도 지형이 눈 속에 훤하고, 오르내릴 때 그야말로 무념(無念)으로 산행에만 집중했던 생활의 한 터가 되었다. 무념의 터, 무념(無念)이 바로 마음(心 )이라- , 이곳이 바로 마음의 산이다. 향산(鄕山)이요, 심산(心山)이다.
순천에 숙박한지 6년이다. 허나 순천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지리도 모르니 대체 무얼 알겠는가? 굳이, 순천에서 아는 것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말하겠다, 봉화산이라고-
○ 대낮산행
대낮에 봉화산 오름은 오늘이 처음이다. 항상 퇴근 후 석양에만 오르다가 오늘 일요일 대낮에 오르자니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대낮이기에 12월의 산행이 가능하다. 일요일 날 처음으로 봉화산에 오름은 6년간 일요일 날 순천에 있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래, 일요일 순천에 있음은 오늘이 처음인가 보다. 그제 금요일 밤에 서울에서 내려온 아내와 어제 광주에 다녀오고(남풍 회 모임), 오늘은 준비된 일정이 없다. 한가하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일정 없는 날이 여유롭다. 아내는 홀아비 숙소를 쓸고 닦고 야단법석이다. 동판도 금은 아니지만 닦으면 광이 나는데, 이곳 묶은 때는 여간해선 벗겨내기 힘들 것이다.
혼자서 봉화산을 찾는다. 역시 봉화산은 혼자 가는 산인가 보다.
14:20 산행 시작.
어제 광주 무등산 다녀올 때만해도 가을인지 겨울인지 헷갈렸는데, 간밤에 눈이 오더니만 오늘은 호남지방에 폭설 주의보를 거쳐 폭설경보가 내렸다. ‘내 고향 함평’에도, ‘또 고향 광주’에도 폭설이 내린단다. 호남고속도로 일부구간의 통행이 마비되었단다. 첫눈이 폭설인 경우는 참 드문 일인데, 서설(瑞雪)이겠지.
산에 오르자 눈발이 날린다. 이곳도 호남은 맞는가 보다. 저 멀리 보이는 광양 백운산에는 능선이 백설로 잔잔하다. 매번 보이는 백운산이지만 백설로 치장하니 이제야 그 웅자(雄姿)를 뽐내는 듯하다. 백운산(白雲山)은 흰 구름에 덮인 산이란 뜻이니, 흰 눈에 덮인 산도 멀리서 보면 백운산일 터이니, 白雲이 白雪이요 白雪이 白雲이 아닐까?
오름 시작 40여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어디나 의젓하고 품격 있다. 봉화산이 시내에 있는 산이라고 해서 도시 때가 묻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록 그 높이는 낮지만, 頂上은 항상 頂上이다. [順天市 烽火山 355m]라고 쓰인 표시 석은 의젓하다. 오늘 이곳에도 서설(瑞雪)이 날린다. 오늘 마음먹고 사진기도 휴대했다. 정상 기념 촬영, 찰칵!
(봉화산 정상, 355m)
내리막.
휴게소를 지나 TV 송신탑에 이르면, 광양만 순천만이 발아래 손 잡힐 듯 펼쳐있다. 오늘은 서설 때문에 시야가 맑지 못하다. 봉화산에서 바라보는 제1의 전망은 이곳이 아닌가 싶다.
(정상에서 바라 본 송신탑 능선)
송신탑에서 뒤로 물러서 계곡 계단 길을 타고 하산이다. 여름철 여기저기 물소리 졸졸 들리는 곳인데, 오늘은 물소리도 간데없고 메마른 땅만 더 거칠어 보인다. 가뭄이다. 겨울 가뭄이 심한가 보다.
다 왔다. 오늘은 무슨 생각 하셨나?
마음의 산은 無念無想이요 無心의 山이라니까-
樂山樂水 (2005. 12, 4)
첫댓글 등산은 건강에도 좋고 마음에 여유와 상념을 주기도 하지.
댓글 달아 준 정선생 고맙네. "마음의 산"을 알아주니 더욱 반갑고 고맙네. 새 해에도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기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