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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교회의 마라나타(Maranatha) 원문보기 글쓴이: 박노아
[한국교회 필독!] [윤석전 목사-특강글]
부제: 제사, 장례*추도예배등의 우상숭배 하면서 천국 들어갈 자신 있습니까? 그러면, 자신의 영혼을 담보해서 행하세요!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0:20~22)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 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에베소서 6:10~13)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소속하고 있는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에서 큰 목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가 있었는데, 옆에 있는 목사가 흰국화꽃 한송이를 딱 들고 있다가 다가 오더니, "목사님! 흰국화꽃 한송이를 영전에 바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속으로, "저 목사가 정신없는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장례식장에서 상주만 만나 보고 그냥 돌아왔습니다만, 그 목사가 제게 이렇게 말했던 말이 또 생각납니다. "아니, 왜? 흰국화꽃을 영전에 안 바칩니까?".....한국교회가 우상숭배에 찌들려서 저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이 국화꽃을 받습니까? 안받습니까? (목사 부부들: 안받는다고 한꺼번에 답변하기를.. '안받아요!') 그렇다면, 왜? 받는다고 우매하게 우상화 교육을 시키느냐? 입니다. 또, 우리 목사들이 조전을 보냅니다. "명복을 빕니다".....죽은 사람에게 무슨 복이 있습니까?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모르게 한국교회에 들어 온 <의식>을 철저하게 뽑아 내야만 합니다.
우상숭배는 절대로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전에서 상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조문을 갔는데, 장례식장 빈소에 영정 주변으로 국화꽃을 둘러 싸서 장식해 놓고, 그것도 부족하여 흰국화꽃들을 바치며 영정 앞에서 굽신거리더라고요. 나중에 관이 나갈 때에도 "마지막 가는 길에 관 위에다 흰국화꽃을 더 넣을 분들은 더 올려 놓으세요! 가는 분을 기리기 위해서 흰국화꽃 한송이 더 놓을 분은 안 계십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울면서 흰국화꽃을 관 위에 올려놓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숨이 끊어지자 마자, 그 영혼이 떠나 갔는데도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죽은 자를 기리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다음의 시체는 흙입니다. 따라서 해 보세요! "죽으면 흙이다." 제가 오늘 아랍 사람과 이스라엘 목사에게 "그 나라에서는 장례를 어떻게 치룹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한줄 아십니까? 죽으면 곧 바로 묻어 버린다고 합니다. 관도 없이 들것에다 실어서 묻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아비> 목사에게 물어보니까, 죽자마자 묻어 버린다고 합니다. 시체를 놔둘 필요가 없어 당일에 갖다 묻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3일장을 지켜 가면서 의식도 많습니다. 유교*불교*카톨릭이 행하는 장례방식이 기독교회로 슬며시 들어 왔습니다. 교회로 들어 온 전통과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고정관념화 (토착화)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목사 부부 여러분! 고정관념을 버리십시오! 우리가 태어나 보니까, 기독교회 선배들도 장례예배를 그렇게 행하고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전통에 끌려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끌려 가야만 합니다.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하십시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으로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속상합니다. 제가 실천목회에서 여러번 언급한 내용입니다만, 흰국화꽃을 영정 방향으로 놓으면 죽은 자가 향기를 맡는다고 하면서 헌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벌써 가 버렸는데도, 그런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장례예배 인도하는 목사가 "이 분이 좋은데 가게끔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 좋은 곳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천국 못갈 사람이 천국에 갑니까? 이미 심판이 끝났는데 말입니다. 흰국화꽃 줄기를 영정 방향으로 놓으면 죽은 자가 꽃을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죽은 자는 흙덩어리 이므로 의식이 없어서 꽃을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미 죽은 자는 끝난 것입니다. 은근히 스며 들어 온 한국교회 우상숭배를 타파할 능력이 목사들에게 있어야만 합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써서 모셔 놓은 <위패>를 보십시오! 위를 모시는 것이 <위패> 라는데, 죽은 사람은 모시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죽은 자가 천국 갔으면 천국에서 주님이 데리고 계실 것이고, 지옥갔으면 마귀가 온갖 고통을 줄 것이니 둘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장례를 치룬 후 위패를 집으로 가져가 3년 동안 모십니다. 옛날에 유교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끝까지, 사단이 우리를 무릎꿇게 하여 사단화*지옥화*마귀화*우상화 시키려고 하는 악한 영의 궤계임을 알면서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되시면 아멘 합시다!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우리가 장례식장이나 상가집에 가 보면, 젯상에다 국화꽃을 장식하고 영정사진을 놔둡니다. 부자집이나 큰 목사일수록, 국화꽃으로 어마어마하게 장식을 하지요. 사진 주변으로 국화꽃을 거창하게 장식하여 위하는 마음이 무엇일까요? 늘 기도하며 사는 영적인 목사는 알 수 있잖습니까? 제가 답답해서 사전을 찾아 봤습니다. 유교*불교*천주교는 영정 주변에다가 국화꽃을 장식하는데, 기독교는 너무 밋밋해서 한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이렇게 은근히 끌고 들어오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국화꽃만 장식합니까? "하나님이여! 천국가게 해 주옵소서. 천국에서 편히 쉬게 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와 상관없이 죽은 자가 이미 천국에서 쉬던지..지옥에서 고통받던지 간에, 기도의 효력은 죽은 사람이 이땅에 있을 때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화꽃을 갖다 놓으면서 목례하며 죽은 자를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말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기독교 장례식>이라고 해야 할지, <유교와 불교 장례식>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기 까지 합니다. "무슨 형상이든지 섬기지 말라." 죽은 사람들의 제사를 지내는 젯상(다른 유족들이 떡과 과일을 올려 놓았던 젯상으로, 악한 영이 득실대던 젯상)에다가 별짓을 한국교회가 행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끝이며 악한 영들의 놀이터인 젯상에서 장례제사를 지내고 온 다음에, 그날 죽은 사람도 있고요. 다음날 죽는 경우가 있어요..이것이 저주인데도 이 젯상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목사들이 명복을 빈다고 하면서, 화한을 배달시켜 여기저기에다 갖다 놓게 합니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상숭배라고 생각이 된다면 당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김일성 동상 앞에 가서 "김정일이 예수 믿게 해 주십시오. 저는 북한의 억압에 의해서 고개 숙일 뿐입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우상숭배가 아니라면, 일제 때의 신사참배도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그런데, 한경직 목사의 경우, 신사참배가 너무 좋아서 했을까요.
아니면, 신사참배는 괜찮다고 하면서 했을까요. 억압받아서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 본인은 신사참배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그렇다면 장례식장의 영정 앞에서 고개 숙인 것은 뭡니까? 영정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상관있지, 죽으면 끝입니다. 기독교는 전통이 아니라, 창세기 부터 흘러가고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독교회가 유교*불교*로마 카톨릭 사상을 차츰차츰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장례식장에서 젯상을 차립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상이냐? 이런 말씀입니다. 장례식장 마다 차린 젯상은 무엇을 위한 상일까요. 안타깝습니다. 젯상을 차린 이유는, 우리가 빌어줄테니 저승에 잘 가라고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벌써 죽은 자는 갔습니다. 우리가 가라고 안해도 예수 안믿고 죽은 사람은 악한 영이 끌고 가서 지옥에다 집어 넣었을 것이고, 예수 믿은 사람은 천사의 손에 받들려 천국에 갔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이 종료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좀 된다고 하십시오! 그래도 유교사상에 찌들려 살다가 목사된 사람들은 "그거, 이상하다." 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 사상을 빨리 내버려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유교에 찌들려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에서 아니라고 말씀하면 "아니라."고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조전이나 화환을 보내면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합니다. 왜? 이러는 것일까요. 유교*불교*카톨릭이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하니까 기독교회도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명복이란? 어두울 <명>자와 복<복>자 인데, 어두운 곳에서 무슨 복입니까? 살아있을 때에 예수 믿어야 복인 것입니다. 최고의 성공자는 천국에 들어간 자만 해당됩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성공했던..실패했던 간에, 죽은 자의 영혼의 결말은 정해졌으니, 명복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또, 명복은 죽은 뒤에 받는 복을 말합니다. 여러분! 죽은 뒤에 받는 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목사들은 상가집에 가서 "죽은 뒤에 명복을 받았으면 합니다." 하면서 설교강론을 폅니다. 왜 그럴까요? 목사가 그렇게 설교해도 되는줄 알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이 사전에서 해석 내려놓기를,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가 밋밋해서 장례예식을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기독교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의미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까다롭게 예수 믿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편에 서야만 합니다. 기독교 <장례예배>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아비>목사에게 물어 보니까,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의식> 행함도 없이 곧바로 당일에 묻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랍비들은 <의식>을 잠깐 행하고 당일에 묻는다고 합니다. 유교의 입관식*발인식*하관식이 있지 않습니까? <입관식>이란? 죽은 자가 관에서 편히 쉴 수있도록 놓아준다는 의식입니다. 입관할 때 보면, 시신을 잘 놓으라고 하면서 야단법석들을 하는데,
흙덩어리를 똑바로 놓는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집니까? 그렇다고 시신을 함부로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그냥 잘 싸고 묶어서 묻으면 된다는 점을 말씀 드리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향한 어떤 섬김의 의식을 행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자를 위한 존중의 의식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목사들이 <입관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죽은 자를 향해서 무슨 예배입니까? 아무 의미도 없는데, 전통이라는 구실로 밋밋함을 해소해 보려고 은근히 조장하면서 기독교가 행하는 것이지요. 장례식장에 가 보면..불교는 어려운 불경을 외우고, 천주교는 종을 흔들면서 의식을 행하고 있고, 유교는 상 차리고 절을 하는데, 기독교회도 무엇을 해보자! 하다 보니까 똑같은 사고방식을 적용해서, <예배>라는 것으로 포장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더이상 속지 맙시다. 또, <발인예배>는 어떻습니까? 젯상 차려놓고 이제 마지막 떠납니다! 라고 하는 의미로 유교의 <발인식>이 <발인예배>로 바뀐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벌써 떠났는데 말이지요. 목사들의 장례 설교는 심판을 피할 수없는 일입니다. <예배>라고 모두 <예배> 입니까? 아닙니다. 죽은 자를 향한 언어나 존칭도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납골당에 한번 가 보세요.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 납골당에 가 보면, 칸막이 된 공간에 꽃*사진*시계*팔지*각종 유물 외에도 성경책 펴 놓은 것을 봅니다. 죽은 자를 위한 것 아닙니까? 이것이 <우상숭배> 입니다. 묘지에 가서 꽃도 꽂아 놓습니다. 죽은 자 흙덩어리가 받으라고 죽은 자를 인격화하여 하는 행위이므로 <우상숭배>가 됩니다. 우리 교회 권사 두분에게 물었습니다. "두분의 가족 납골당에는 어떻게 해 놓았습니까?" 하니까, 잘 몰라서 꽃을 갖다 놓았다고 하길래, 그것이 우상숭배이니 당장 치워야 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죽은 자가 꽃을 받습니까? 자신의 유물을 기억합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는 부분의 성경귀절 부분을 펼쳐서 펴 놓았는데, 우습지 않습니까? 납골당에 가서 보고도 발견을 못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목사들이 그것을 보고도 알지 못하게 속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서 하는 것이니까!" 라고만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통에 끌려가지 맙시다. 그러므로, 회개는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수없는 핍박이 있을 것입니다. 사단은 자신을 섬기게 하려고 귀신들을 동원하여 멸망으로 끌고 가도록 하면서, "남들이 하는 일을 너는 안하냐?" 라고 하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할 것입니다. 별의별 미움이나 핍박이 있다고 해도, 주님께서 동행하지 않는 장례식을 <우상숭배>로 알고 거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장례예배>가 있어야 기독교식이라고 하겠지만, 성경에도 없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내버려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이 확실하니 폐기처분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이 도중에 생겨난 것이 확실하쟎습니까? 그리고, 언제 <추석명절>을 만들었나요. 신라시대에 7.15~8.15까지 베 짜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어느 편이 베를 잘 짜는지 투표합니다.
베를 적게 짜는 쪽에서 많이 짜는 쪽으로, 떡을 만들어 수고했다는 의미로 대접했다고 합니다. 베짜는 일을 장려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런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이 발전하다 보니까, "이것을 그냥할 것이 아니라, 어느 편이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제사 지내 보자!" 한 것이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전통의 끝은 반드시 우상숭배가 되고 맙니다. 전세계 모든 전통의 시작이 순수했겠지만, 결국은 우상숭배로 끝나게 됩니다. 기독교가 언제부터 전통이 되었습니까? 기독교는 전통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하관식>을 보실까요? 죽은 자가 무덤에서 잘 지내라고 하는 의식이 <하관식>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흙덩어리가 잘 지내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하늘나라 가서 잘 지내고 있던지, 지옥가서 고통스럽게 지내던지, 둘중의 하나 입니다. 이미 다 끝난 일입니다. 목숨 끊어지자 마자, 흙만 남아있는 것이니 상황끝 입니다. 아멘입니까? 이미 흙인데, 거기에다 무엇을 더 할 것이 있단 말입니까.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거듭나려면 <전통>이 없어져야 합니다. 성경 밖의 모든 교리(사상)가 없어져야 합니다. 성경 밖의 모든 신학이 없어져야 합니다. 성경 밖의 사람의 의견이 없어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통제만 받고 하나님만 경배해야 합니다. 왜? 죽은 흙덩어리를 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만큼 중요하게 여깁니까? 하나님께서 죽은 시체를 놓고 예배할 만큼, 그 죽은 흙덩어리가 중요하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답변하시겠는지요. 기독교의 어떤 전통도 없어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인정해야 합니다. 아멘 합시다. 그런데, 우리는 장례식 앞에서 어찌 무릎을 꿇는 일이 많을까요. 습관적인 전통 앞에 얼마나 무릎꿇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무릎끓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무엇이라고 했던가요? "무릎꿇지 않는 사람이 저 혼자 밖에 없습니다."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무릎꿇지 않는 자들이 7천명이나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에게 무릎꿇지 않은 자가 되십시다. 그런 것들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자에게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은 전통에 무릎 꿇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면서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합니다. 저한테 대안을 내 놓으라고 하신줄 압니다. 사실, 장례예배를 안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유대인 처럼 사람이 죽으면 그냥 묻으면 돼요. 그런데, 아직 목사들 가슴속이 밋밋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대안을 찾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은 <추도예배> 입니다. 저는 옛날부터 우리 교회에서 <추도예배>를 금지 시켰습니다. 한국교회는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추도예배>를 장려합니다. 그래서 전통을 막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배이기 때문에 괜찮은줄 아십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김일성 동상 앞에서 김일성 동상을 놓고 예배하는데, 동상을 위해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안 받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를 위해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추도예배>가 무엇입니까? 쫒을 <추>자와 슬퍼할 <도>자 인데, 무엇 하려고 죽은 자를 쫒아가면서 슬퍼합니까? 또, 쫒을 <추>자와 사모할 <모>자 인데, 무엇 때문에 죽은 자를 좆아가면서 사모합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 피>만 사모하십시다. <천국>을 사모합시다. <멸망하는 영혼 살리는 일>을 사모합시다. <추도식> <추모식>은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행하는 의식입니다. 죽은 자를 위해서 무슨 일 할 것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죽은 자를 위해 무엇을 하라고 하는 말씀이 계시던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자, 그냥 묻어 버렸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자, 들것에 들고 그냥 출발했습니다.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유교식 제사 전통에 붙잡힌 사람들이 예수님 믿고 난 후에, 부모가 죽자, 밋밋해서..만들어진 전통에 속아서.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위해서는 상황 끝입니다. 결심하시면 아멘 하십시오! 예배라고 해서 모든 예배가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런 미신적인 역사가 일어날까요. 여러분! 돌잡이가 장래 점치는 일을 합니다. 마이크 잡으면, 연예인이 된다고 합니다. 청진기를 잡으면 의사가 되고, 칫솔을 잡으면 치과의사가 된다고 말합니다. 마우스를 잡으면 컴퓨터 기술자가 된답니다.
이런 미신적 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신앙양심에 상관없이 좋다고 웃으면서..실 잡았으니 "오래 살겠네." 라며 '짝짝' 합니다. 이것이 귀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붓을 잡으면 학자가 된다고 다들 믿습니다. 아이가 잡은대로만 된다면, 실이나 돈만 놓고 붙잡게 해서 오래 살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니, 장래를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을 구해야 됩니다. 또, <케익>을 생각해 봅시다. 케익은 돌떡에서 유래된 것인데, <돌떡>은 아이를 지켜주는 삼신 할머니에게 바치는 것으로서, 이를 이웃과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수수팥 떡으로 만든 돌떡은 악귀를 쫒는다고 합니다. 언제든지 귀신에게 바치는 떡은 팥으로 만들지요. 시루 팥떡으로 돌케익을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눈 부릅뜨고 이런 것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 촛불도 켭니다. 아이 앞날을 밝혀주고 지켜주는 신이 온다고 그러는데, 우리 앞날은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줍니다.
생일 케익을 볼까요. 중세 독일에서 <킨테베스테>라는 아이 생일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아이 나이보다 하나를 더 켜서 아이가 보게 한다고 하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를 더 켜는 것은 1년을 더 잘 살고 더 복을 받으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을 촛불이 지켜줍니까? 한번에 켜서 한번에 꺼야 복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들 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에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의 전통*이삭의 전통*야곱의 전통을 내세우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전통*바울의 전통*폴리갑의 전통*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죽었던 순교의 전통을 성경말씀으로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의 전통 같은 것은 없고, 이런 해괴한 전통들이 생겨난 것일까요. 이렇게 되니 기독교에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귀신들이 집안*교회*장례를 지배하니 기독교에 능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 연세중앙교회가 저절로 능력있는 교회가 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답답해서 자세하게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결혼식장에 가 보세요. "신랑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화촉을 밝히겠습니다!" 전깃불 밑에서 무슨 화촉이 필요합니까? 목사들이 결혼식장에서 촛불을 켜놓고 예식을 해도 될까요. 신랑신부 앞날을 촛불이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일을 가지고 왜? 신랑신부 앞날을 귀신에게 맡기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터질 일입니다. <벨리알>과 <예수님>이 함께 할 수없고, <성전>과 <우상>이 함게 할 수없다고 했는데도, 그런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올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또, 결혼식장에서 <폐백>이 있습니다. 신부가 시부모에게 효도와 후손 번성을 약속함과 동시에, 부모가 자식의 복을 내리기 위해서 차리는 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복을 내리시지, 시부모가 복을 내립니까? 또, 신부를 조상에게 인사시키기 위해서 <폐백>을 한다고 하는데요. <폐백>에 따라 나오는 음식 중에는 복을 상징한다고 하는 '닭'이 있습니다.
자손을 번영하는데 닭이 등장한 셈입니다. 죽은 닭 자신도..죽었는데, 무슨 복을 자손에게 줄 수있을까요. 돼지머리 앞에 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돼지머리를 잘라서 삶아 놓으면, 돼지가 웃습니다. 돼지는 살았을 때 보다도 돼지머리를 잘라서 삶으면 환하게 많이 웃습니다. 돼지한테 "내게 복을 주시오!" 하면, 돼지가 말을 한다면 "나 죽었다. 네가 목 잘라놓고서 복달라고 하느냐?" 이렇게 답변할 것만 같습니다. <구절판>은 삶이 충만하고 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9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원만한 가정을 이루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음식 먹어서 원만한 가정을 이룬다면, 날 때 부터 젖먹이지 말고 음식을 먹여야겠지요. 우리가 왜? 이런 미신적인 것을 따라 가야 합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육포>는 부모공경과 형제우애를 위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형제우애를 육포가지고 할 수있을까요. 말도 안되는 것을 믿는 것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성령>을 받아야 화목하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이 와야만 화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추>를 집어 던져 줍니다. '대추씨' 처럼 자손을 번성케 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태초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대추씨> 가지고 번성합니까? <밤>을 던지는 이유는 좌의정*우의정*영의정 같은 삼정승이 되라고 하는 것이며, 밤처럼 미끈한 예쁜 딸을 낳으라고 하는 것이라 합니다. 모든 것이 미신적 행위인데도, 우리는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회 속으로 슬며시 이런 것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인데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뿌리 뽑아서 내어 버려야만 합니다. 우리 집*우리 교회에서 뽑아 내 버리십시오! 제가 초등학교 때, 목사님께서 "우상에게 절하지 마라." 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우상은 초등학교 때의 의식인 '국민의례'중 <국기에 대한 경례> 입니다. 저는 나라를 사랑하지만, 인격이 없는 국기에게는 경례하지 않았습니다. 상관에 대한 존경심으로 경례를 하는 것인데, 국기에는 인격이 없쟎습니까? 전세계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한국 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실시하다가 폐지해 버렸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위하여, 각 학교마다 일장기(일본 국기)를 향한 경례를 지시하면서 부터 유래했습니다. 악한 영들이 어떤 방법이라도 써서 우상숭배를 하도록 슬며시 들어오게끔 역사한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만들어서 인간 역사 속에다 심어놓은 것입니다. 군대생활 할 때에도,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서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엉덩이를 몽둥이로 팬다 해도, 하지 않기로 결단하고 실천했습니다. 왜? 새삼스럽게,,지나치게 <국기에 대한 경례>가지고 논하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만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다니까요. 1930년대의 일본이 조선(한국)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리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따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안해야 할까요? 하나님께만 굴복해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일제시대에는 기독교가 투쟁했었는데, 지금 목사들은 투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 법을 폐지하자는 목사들이 아무도 없어요. 옛날부터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없애자고 했었는데, 요즘엔 그런 목사들이 없단 말입니다. 이젠 전통으로 굳어져서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선배 기독교인들은 나라를 상대하여 악착같이 투쟁하면서 법을 폐지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투쟁한 선배들은 쓸데없이 투쟁한답시고 장난질 했던 것이고,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잘하는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의 기독교인들이 그런 투쟁으로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되었는데,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국기에 대한 경례>로도 말할 수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1968년 충청도에서 자발적으로 국기를 향하여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행했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충청도에서 그리했다는 점에 대해서 대단히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1972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법으로 제정하여 전국적으로 시행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통이 된 것입니다.
성경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 슬쩍 동승하고,,또 슬쩍 동승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다원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거, 일본 국기에 경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선배 그리스도인들이 매맞고 죽은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은 아무런 신앙양심도 없이 <국민의례>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고요. 태어나 보니까 전통으로 되어 있더라식 입니다. 어느 시대에 태어나도, 성경과 틀린 것은 빼 내어 버려야 합니다. 또, <추석>과 같은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우상숭배를 하러 고향에 가든지, 집에서 지내면서 <추도예배>를 드리던지, 이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사모하면서 예배드린다고 하는데, 이미 상황끝인데도 왜? 죽은 자를 앞세워 하나님께 <추도예배>를 드린다고 하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왜? 하나님께 죽은 자의 명복을 위해서 예배를 드리느냐? 라고 반문해서 묻고 싶습니다. 목사님들! 지금 이시대에 죽을 각오하지 않고는 성경으로 못 돌아갑니다. 못 돌아가면, 목사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가 아닙니다. <다신주의>가 아닙니다. <벨리알>과 <예수님>은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과 <성전>은 함께 못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가 멍에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만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장례예배>를 안 드린다고 이웃교회들이 쑥덕거린다고 합니다. 오늘까지 전통이라는 구실을 붙여 성도의 영혼을 사단이 도적질 해 왔으나..이를 알지 못하고 좋게 받아들였던 것을, 우리 교회가 <장례예배>를 폐지하므로서, 기독교계에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입니다. 이웃교회들은 잠잠하고, 우리 교회가 <우상숭배>를 선포하니까 그러겠지요. 이렇게 하니까, 악한 영들이 얼마나 시샘하겠습니까? 하던, 말던..상관 없습니다. 우리가 용감하게 다부지게 대응하여 전통으로 쳐 들어 온 악한 영들이 물러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기독교회를 전통으로 지배해 왔기 때문에,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니 강하고 담대해야만 합니다.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들은 어둠의 주관자들이기에 슬며시 모르게 들어 옵니다. 속이는 것을 숨기면서 모르게 들어온 것이니, 이것을 이겨야만 악한 날에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구약에도 보면, "죽은 자를 향해서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경험이고 간증입니다만.. 예를들어, 죽은 자가 암병으로 사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부모의 암병이 자녀들에게 유전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누구한테 먼저 유전되느냐? 하면요. 죽은 자를 향해서 애통해 하며, 죽은 자를 잊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단이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이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장례예배를 안하고 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장례를 치룰 때 우리 교회를 그대로 따라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교회 여건에 맞게 하시면 됩니다.
- 전체사진 (좌측 안내판, 중앙 휘장막, 우측 안내판) -
우리 교회는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릴테니 참고만 하십시오! <장례예배>의 대안은 아니고 <소안>입니다. 안내판 2개와 중앙 휘장막을 장례식장 젯상 앞에 설치하는 형태입니다. 제사를 못 지내게 교회가 가장 먼저 젯상 앞에다 갖다 놔 버리면 됩니다. 좌측 안내판에는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라고 썼고요. 그리고, 우측 안내판에는 "고인의 뜻에 따라 절을 받지 않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지 않나요. 중앙 휘장막은 직사각형으로 길쭉한데, 상단에는 부활소망의 성경귀절을 적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괜찮지요? 하단에는 영혼전도의 성경말씀을 적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독교한국침례회 연세중앙교회-"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안내판 2개와 중앙 휘장막 뒤에 젯상은 무용지물이 되어 아무 쓸모가 없어지게 되고,
상주는 옆에 서 있다가 방문자들과 인사 나눈 다음에 그냥 보내드리면 됩니다. 이젠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휘장막 하단의 성경귀절은 이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천국 갔으니, 이 말씀을 보는 사람들마다 예수님 잘 믿고 천국 가십시오!" 라는 전도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듯 하지 않습니까? 휘장막 색상은 귀신들이 좋아하는 검은 천으로 하지 않고, 흰색으로 가득찬 천국처럼 흰색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를 놓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세탁이 편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젯상 앞을 차단해 버리니까, 문상객들이 어디 와서 절을 할 수있겠습니까? 영정도 없으니 죽은 자의 얼굴도 모릅니다. 죽은 자에게 어떠한 의식도 못하며, 살아있는 상주에게 인사만 하고 가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정신에 입각한 장례에 가까운 것입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이렇게 되어야 성경을 위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장례예배의 <중안>이나 <대안>이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저도 배우겠습니다. 오늘날 전통을 따라 기독교회에 슬며시 들어오는 이 악한 영의 역사요,,궤계임을 인정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여기 저기서 아멘!' 옷에 대해서는 성경에 따로 말씀이 없으니, 그냥 자유복을 입고 상주 표시만 하면 될 것입니다. 우측 안내판을 보십시오! "고인의 뜻에 따라 절을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죽은 자가 절을 안 받는다는데.....여기에 대해서도 아마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안내판을 세우고 휘장막을 두른 이런 공간에서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을 슬며시 잊어서는 안됩니다. 자꾸만 사단이 헷갈리게 속이려고 하니까, 목사 여러분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상주와 인사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과 인사 나누는 것이니 많이 해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목사 부부 여러분! 한국교회의 미신을 여러분들께서 먼저 타파해야 합니다. 밖에 있는 무당을 향해서 영적으로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말고, 교회에 들어 온 미신을 타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귀신타파 해야만 합니다. 밖에 있는 미신이 우리가 타파해야 할 첫번째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교회 안에 있는 미신들, 내 심령 속에 들어있는 전통들이 타파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 교회가 욕을 얻어 먹느냐?면 우상숭배를 버리고 전통 안 따라가니까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전통이 아닙니다. 기도는 전통이 아니라, 주께서 하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예배가 전통입니까? 회개가 전통입니까?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명령입니다. 기독교는 전통이 없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귀신들은 아마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목사들을 다 뺏겼네. 다 놓쳐 버렸네. 이렇게 많은 교회 교인들을 놓쳐 버렸네.".....아마, 전국 어디에서든 안내판과 휘장막을 똑같이 만들 수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장례식장에는 상주만 만나고 돌아가게 하면 우상숭배는 안하게 되는 것이니, 지금부터 그리 행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악한 귀신들이 상주 마음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상숭배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게 해 주십시오." 강력한 중보기도만 해 주고, 즉시 교회로 돌아가면 됩니다.
제사지낼 때 보면, 불효막심한 자녀들이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을 가지고 죽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유인하는 사단의 술책 임을 알아야 해요. 불효를 했기에 우상숭배를 철저히 해서라도 효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효도'라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는 귀신의 역사입니다. 성경에는, 조상 대대로 3~4대가 저주받는 것이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윤석전>이는 어떻게 초등학교 때 부터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할 수 있었을까요? 초등학교 때, 저에게 <우상숭배>를 금하라는 가르침을 준 목사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목사를 잘 만나야 합니다. 교인들이 목사를 잘 만났노라고 천국에서..이 세상에서 말할 수있게 해 보세요. 이시간, 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다 함께, <우상숭배>에 대한 회개기도를 드립시다. "주님! 미련한 제가 잘 모르고, 그동안에 전통적인 미신을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우상숭배를 행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자녀들이 교회 따라 우상숭배를 행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중략)...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위 자료는, 예장-통합 Baknoah 전도자가 음성설교를 한글로 옮겼습니다. 누구든지, 조상제사와 추도예배*명절예배를 단번에 끊어 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일평생 동안에 혈통 가문과 사회 각분야를 비롯하여, 우상숭배를 장려하며 권장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을 고집하다가..계시록 21:8에 우상숭배자가 심판받아 유황불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유황불 지옥은 화산이 분출하려고 끓고 있는 마그마 속과 같습니다. 고집하다가 그곳으로 들어 가겠습니까? 예수님 앞에 엎드린 다음, 회개하고 당장 끊겠습니까?
첫댓글 장례식에서 나오는 말들은 잘 못된 말들이 많습니다. 이런 오류들은 계속해서 바로 잡아가야 합니다. 제가 위의 글을 정독하지 못했는데 분명히 명복을 빈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천국가게 해주세요, 라는 말도 잘못입니다
국화 꽃 한 송이를 관위에 올려놓은들 안올려 놓은 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저 보는 사람의 마음만 조금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유가족들의 슬픔은 분명히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국민 의례,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 등은 그리스도인들은 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국가게 해주세요, 라는 말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천국가게 해달라고 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천국은 거듭났으면 누구나 갈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 거듭남의 확신은 없는데, 미안하지만 천국가게 해달라는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윤석전 목사의 저 장례방법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악습과 싸우려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목사제도에 반대하지만 목사들 전체를 모든 면에서 정죄하지 않고 개혁주의 신앙으로 잠정적이라 할지라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이면 많은 분들이 이 장례식에 관한한 배울만 할 것입니다.
<< 주님! 미련한 제가 잘 모르고, 그동안에 전통적인 미신을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우상숭배를 행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우리 자녀들이 교회 따라 우상숭배를 행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중략)...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
이런 부분들은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이미 용서해주신 사실을 믿어지게 도와달라는 기도로 이해하겠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용서되지 않은 죄가 있어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보내어 피흘리고 죽게 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는 죄의 자백이나 회개와 구분되어야 합니다.
십여년 전 아침 출근길에 운전하며 방송을 들으면 곽선희 목사가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참으로 반복적으로 멋있게 하는 것을 늘 들었습니다. 그런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과 무지만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고백하는 기도일 뿐입니다. 죄의 자백과 회개는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와는 전혀 별개입니다. 예수님이 회개하라 고 에베소교회에 말씀하신 것은 에베소 교회 구성원들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은 첫 사랑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버렸던 것입니다(계 2:4) . 이제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말 죄사함을 믿지 않아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지 성경의 다윗처럼 구원 받았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 받은 다윗도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 용서 해달라는 기도를 했잖아요 그 것을 보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 같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인들은 속죄를 위해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매년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으며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또 드렸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한번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다는 믿음이나 교훈은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시편 51장 또한 통회하는 마음의 상한 심령으로서 역시 죄의 자백과 회개가 중심입니다. 죄를 용서해달라는 말 보다는 도말해달라는 말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모든 죄는 사해지고 용서되어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처럼 앞으로 희생제사를 드리러 오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니며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 희생을 믿는 믿음위에 서있습니다.
저도 하토브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죄사함을 믿지 않아서 용서해달라고 하는 기도와 단순히 하나님께 겸손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후자는 표현의 차이입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겸손하게 간구하는 표현의 차이라고 봐야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이 듭니다.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미사를 인정하는 주장이나 행위가 됩니다.
죄 용서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한 종교가 바로 로마 카톨릭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역사적 사실로만 인정하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 하나 하나에 대하여 예수님이 미리 값을 치루신 현실적, 실질적 사실로는 인정하거나 믿지 않고 있습니다.
즉 로마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희생을 개념적 혹은 선언적으로만 인정하고 그것의 영원한 효력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효력을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주일의 미싸에서 그들의 신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카톨릭이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면서 용서해달라고 할 때에 들어올리는 것이 모조품 피의 성배이며 모조품 살의 웨하스 쿠키입니다. 이것을 영성체라고 부르지요. 그들은 이것을 성체 성사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죄를 용서해준다고 저들은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효력과 영원한 속죄 사실을 부정하는 어떤 종교도 하나님 앞에 기뻐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반석을 두번 내리 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보인 모세는 그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을지라도 카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비록 천국 갈 백성이라 할지라도 축복이 제한됨을 가르쳐 줍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단번에 죄사함을 믿지 않아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차이이지만 그런 기도 보다는 다 용서해주었음을 인정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보통 단번에 죄사함을 믿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의 누룩을 배격해야 하고 또한 그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카톨릭의 미사가 잘못되었다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 이미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이 충만하다면 다시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입에서 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다시 피흘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스데반도 복음을 전 할때 핍박하는 사람을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간구 한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용서해달라는 기도는 이런때는 할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 구원 받은 사람이 자기의 문제를 놓고 용서 해달라는 표현은 주님의 피의 완전한 죄사함을 부정하는 표현이 될 수 있기에 유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례식장 가면 머라고 생각하며 묵념해야 할지 몰라 부의함에 돈 넣고 그냥 밥 먹으러 갑니다
친한 사람이면 위로하고 옵니다
미가님의 답글을 줄이면 길게 늘어진 글이 줄어들까요? 밑에 댓글들이 있는데 금방 안보일것같아서 줄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토브님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바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윗글을 읽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고쳐야할 부분을 생각해 봤습니다.
(위에 삭제된댓글은 저의글 였읍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던 사람들의 모든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과 진리를 믿지 아니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는 그대로 있으며 그에 더하여 안믿는 죄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스데반은 그 사실읋 알고 저들에게 무서운 형벌이 더하여지는 것을 알았기에 저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 큰 형벌을 받지 않도록 이 죄를 저희에게 부과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스데반이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사해진 사실을 알면서도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십자가 이후에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이미 용서해주신 사실을 변함없는 진리로 믿는다면 누구도 그런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우리에게 범죄한 것을 마음으로 용서하며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는 기도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수시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마음 편한 것이며 우리의 믿음을 크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죄가 용서되지 않았다고 믿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사실을 믿지도 않으므로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어 부과되는 것입니다. 저들의 죄가 용서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다시 피흘리고 죽어야
합니다. 스데반이 자기를 죽이는 자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오셔서 피흘려달라고 기도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미 사해졌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한 제가 알기로 사도행전 3장 19절외에 논거로 가져올 곳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죄가 사해지지 않아서 사해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미 말소되어진 사실에 이르도록 회개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여기 시제는 부정과거 가정법이며 그것은 미래 시제도 아니고 과거의 일회적 사실을 나타낼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이르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저는 스데반을 핍박한 사람의 죄가 용서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표현을 이야기 한것일 뿐입니다.
문자적인 표현은 저들의 죄를 기억하지 말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말하는 것 입니다.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이것은 용서와 관련이 있기에 그렇게 말한 것 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가져오는 또 하나의 구절이 요한 20:23절입니다. 그러나 그 구절에서도 예수님은 이미 죄가 사해졌다고 완료시제로 가르칩니다! 성경은 놀라운 문법을 보여줍니다!
요한 20:23
23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하면, 그것들이 저희에게 이미 사하여졌으며(3복,현재완료수동), 너희가 누구의 죄들이든지 사하지 않고 붙들면, 그것들이 붙들려있느니라.”
이것은 우리가 기도함으로 누구의 죄를 사해준다 해도 그 사함이 하나님께 연결되는데 있어서는 십자가의 역사적 과거의 1회적 사건에 기초함을 확인해주는 구절입니다.
또다시 용서해달라고 기도할 이유가 없고 다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용서는 이미 끝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용서해주신 사실을 못 믿거나 인정하지 않을 때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
<< 19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돌아서라, 그리하여 너희 죄들의 말소되었음에 이르러(말소되어졌음으로 돌아가), 주의 얼굴로부터 마음을 새롭게하는 시간들이 오도록하고 >>
아오리스트 부정과거 가정법
여기 윤석전 목사는 이런 기도를 비판하였습니다.
<< 또,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장례예배 인도하는 목사가 "이 분이 좋은데 가게끔 도와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
이 분 스스로도 이런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도 자기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죄가 잘못임을 인정하고 이미 용서되어진 사실을 믿고 감사하며 회개하고 돌아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용서해달라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미 용서해주신 것을 믿는 믿음위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외형적인 문자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입니다. 서로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안타깝습니다. 옛날 신사참배 반대한 한국 목사(최권능목사)들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했었고 순교 했던 중세 유럽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핍박자들을 용서해달라고 부르짖었던것으로 압니다. 그들의 모습중에서 불건전한 요소가 꽤 심각했던것이 드러나니까요.
근데 미가님 댓글후에 넓은 흰공간은 왜 생긴건지요?
이글은 옥에 티라고 할까, 맨 마지막에 회개합니다, 까지도 좋았는데 용서해달라고 말한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인류의 모든 죄는 과거의 죄든 현재의 죄든 미래의 죄든 모두 사해졌습니다. 이것을 안믿는 사람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 죄사함을 위해 하실 일은 모두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이 이루어졌다(요 19:30) 하셨을때 인류 구속의 대역사는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흠없는 제사장 예수께서 흠없는 어린양 자기 몸을 드리시고 피흘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용서되어졌습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은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정말 믿지 않아서 그런 발언을 한 사람과 믿었는데 습관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 사람과 구분해야 할듯 싶습니다. 잘못된 전통에 미혹이 되다 보면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옳지 않고 불건전한 발언이라는 것은 사실 입니다.
그것외에 이 글은 광범위한 사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적용해보려는 사람에게서만 나올수 있는 간증이요, 교훈이라 믿어집니다. 화촉을 밝히는 것도 무심코 전통에 그냥 빨려갈 수 있는 사안인데 잘 지적해주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문제도 그것의 역사적 시발점을 지적해준 것은 앞으로 신자들이 세상과 대적할 때 아주 좋은 지적사항입니다. 분명 태양신 숭배의 일장기에 대한 경례에서 비롯된 것이 확실합니다. 또 세계에서 한국만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행하고 있다는 말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입관예배, 장례예배, 하관예배 발인예배 등의 남용도 잘 지적해주었습니다.
국화꽃 한송이 놓기, 화환 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습관을 좇아 근조(謹弔) 화환을 회사 이름으로 보내기도 하였는데 생각해볼 점이라 생각됩니다. 명복을 빕니다는 잘못된 것을 쉽게 알수 있던 사안입니다. 1974년 815때 육영수 여사가 죽었을 때 목사들 중에 명복을 빈다고 조사를 읽은 사람이 있어서 당시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명복이란 말은 기독교인들이 쓸 수 없는 말입니다. 거듭났으면 이미 천국의 복을 받은 것이고 안믿고 죽었으면 따끈 따끈한 지옥 아랫목을 차지하게 해달라는 말 외에는 할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복을 하나님께나 누구에게나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장례예배 발인예배 입관예배 등의 수많은 이름의 예배를 붙인 것은 목사들이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붙인 호칭들입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요 4:22-24) 더 큰 의미로는 우리의 삶 전체를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입니다(롬 12:1) 그렇다면 작은 의미로 예배를 우리가 드릴 때는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도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은자 앞에 모여서 모임을 갖는다면 그것은 위로 집회가 되어 유족들을 위로하고 한편으로 영혼을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의탁하는 모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기독교 장례가 위로의 말씀과 위로 기간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 시신을 숭배하거나 섬기거나 치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성경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죽은 자를 나무위에 두지 말라는 말씀이나 모세가 죽었을 때 애곡하던 기간이 있었던 것 등을 감안할 수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세의 장례식을 주관했던 여호수아는 믿음이 없었던 사람으로 분류될 것입니다. 그외에도 포로된 여자에게 자기 부모를 위해 애곡할 기간을 하나님이 직접 허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외의 예식들은 어느 정도 허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당일에 매장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참고로 윤석전 목사에 대해서는 교파에서 이단 시비가 있는 목사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교파교회의 목사들은 위와 같은 현실을 무시할려는 모습이 많아서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