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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좌(성경의 힘) - 제36강 선교와 전도 1부
오늘은 우리 교회의 제1사명이 되는 선교와 전도, 선교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시간이 되는데까지 전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가 선교라는 말을 이제는 다 쓰고 있는데, 도대체 선교가 무엇인지, 선교의 정확한 의미는 어떤것인지, 그리고 선교의 사명, 선교의 역사, 선교의 방법 이런 내용을 가지고 같이 나눌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오늘 우리가 다룰 내용은 학문적으로 선교 신학적인 이런 어려운 얘기는 빼고 성도들이면 누구나 이해할수 있는 아주 평이한 쉬운 어려운 용어는 전혀 쓰지 않고, 성경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선교의 정의와 선교의 역사와 선교의 명령, 이런 것을 살펴보아서 선교는 그저 선교사만 하는 것이고 전도는 전도사만 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공부하고 나면 같이 공감하게 될겁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말을 우리는 영어로 선교(mission)라는 말이 아니고, 우리말로 선교라고 할때 좀 달라요. 의미가.
한때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라는 말을 쓸때, 고전적인 의미, 고전적인 뜻은 타문화권에 가서 전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어요. 문화가 다른 그리고 언어가 다른 그런 민족 나라 국경을 넘어서 다시말해 해외에 가서 전도한다 이런 것을 옛날에는 선교라 이렇게 생각해왔고,
한 20년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선교라는 것은 해외에 가서 하는 것,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활동 이런 것을 선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약 20년 30년 그 어간에 ‘국내선교’라는 말도 쓰기 시작했는데, 국내선교라는 말은 그런말을 쓰게 된 것은 우리 지리산 지역에서 ‘지리산 선교 동지회’가 발족되면서 국내선교 이런말을 쓰게 되었고 그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 있는 영락교회가 국내선교라는 말을 거의 동시에 우리와 같이 사용했어요.
지금은 선교라는 것을 그런 해외에 가서 선교하는것만이 아니라, 교회가 펼치는 교회가 전개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적으로 말해서 선교다 이렇게 지금 개념이 좀 바뀌고 있는 것 같애요.
그래서 엇갈린 선교관 혹은 선교에 대한 정의 이런 것이 상당히 어떤면에서는 모호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교회의 실제적인 노력을 전체에다 묶어서 포괄적으로 선교가 아니냐 이렇게 보는 시각이 점점 일반화되는 것 같습니다.
한편은 작금의 우리가 이슬람권에 가서 봉사하러 갔는데 이게 봉사냐 선교냐 하는 것 가지고 일반사회 사람들까지 끼어들어서 그런 해석을 놓고 여론이 아주 분분한 그런것도 보게 되거든요.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선교는 어떤 것이며, 또 우리가 오늘날 혹은 미래 선교는 어떠해야 될것인가? 이런것도 함께 같이 연구하고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선교라는 것을 구약에서는 어떤 선교명령이 딱부러지게 나온데가 없어요.
그냥 이따보면 구약에서도 선교라는 말을 우리가 찾아볼 것이고, 신약성경에 오면 선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기독교 다시말하면 예수님 제자들에게 남긴 유언과 같은 그런 말씀이예요. 유언.
우리 성경 한번 찾아보시면,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까지.
거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처럼 주어졌는데, 그러니까 유언 같은거죠.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씀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가 믿기로는 다른데서도 전도명령도 있고, 전도하는 제자들을 파송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 선교 명령을 내리신 것은 여기에서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까지, 여기가 선교 명령이라고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선교예요. 뭐가 선교냐 할것없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성삼위 이름을 받들어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라는 거야.
그래서 선교(宣敎)한다고 할때, 한문 글자를 놓고 볼때, 우리의 교(敎), 우리의 교가 기독교죠. ‘기독교를 선전한다’ 하는 의미가 있죠. 선교할때 선(宣)자가. 기독교를 선전한다 하는 의미도 있고,
그 다음에 ‘선포한다’ 선(宣)자가 선전한다 하는말도 되고, 선포한다 하는 의미도 돼요.
그래서 제가 한때는 이 선교라는 의미를 성경적으로 비춰볼때, 그 영어로는 미션(mission)하는 것은 좀 의미가 그렇게 개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선교가 오히려 더 낫지 않겠는가. 의미가.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선교라는 것은, 저는 전에 ‘선포와 교육’이라 이렇게 했어요. 선포와 교육이라는 것은 여기 무엇을 선포하는 것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는 겁니다. 주권. 주권이라는 것은 주인된 권리죠. 주권. 그래서 예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한다.’ 그래서 선포와 교육이라. 선전과 교육이라. 우리 교를 선전한다 이런 의미를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교라는 말이 그렇게 단답식으로 답이 하나만 있는게 아니고, 선(宣)자가 ‘선포한다 선교한다 선전한다’ 할때 그 선(宣)자가 선포냐 선전이냐? 어느 하나만이 아니고 저는 둘 다라고 봐요.
그래서 한편은 선교라는 것이 전도의 전단계, 전도의 전단계라고 할수 있어요. 어떤면에서는.
아니면 지금 요즘처럼 교회가 펼치는 모든 활동 전체를 포괄적으로 선교라고 한다면 할 말도 없죠. 그러면 정의할 것도 없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선교사 할때는 예수님께서 주인된다는, 이 세상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 하는 사실을 선포할 필요가 다분히 있는거죠.
세상 사람들은 모르잖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죠.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주인되심을 주인 주님 주인된 권리가 이 세상 전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의 모든 만물 만민 전체의 주인된 권리가 예수님께 있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께 있느냐하면, 다 아담 이후에 죄 아래 팔려서 영원히 어둠의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이 지구촌에 있는 모든 생명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예수님 자기피로서 사셨다는 거예요. 피로 사셨기 때문에 주인의 권리가 있는 것이고, 나중에 우리가 선교내용 선포할 내용중의 하나는 이 세상 모든 만물과 만민 만유가 우연히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창조하신 분에게는 창조의 주권이 있습니다.
창조주로서의 주인된 권리가 있는 것이고, 온 세상이 죄아래 팔려서 영원히 어둠의 곳으로 아니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그런 세상을 예수님이 피로 값주고 사셨기 때문에 구속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구세주 구속주로서의 주인된 권리가 또 예수님께 있다 하고 그 선포를 할 필요가 있는다는 겁니다. 선포.
그래서 이 케리소 ‘케리그마’ 혹은 ‘케리소’ 하는 것은 선포라는 의미가 더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의미에서 선교를 선포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된 권리를 선포한다 하는 그 선(宣) 자와 교는 역시 가르칠 교(敎)자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친다는 거예요.
선포를 하고 선포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교회에 나온 사람을 가르쳐서 세례를 주어서, 그러니까 세례준다는 것은 극히 개인적이죠.
한사람 한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된 권리를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서 가르쳐서 지키게 하고,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믿어 순종케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자기 삶을 드리게 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까지 가고..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이 가서 복음을 선포할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데까지, 여기까지 가야 진정한 선교다 그렇게 할수 있어요.
굉장히 이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의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선교의 명령이라고 하는거죠.
여기에 선포하고 가르친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선교학적으로 말하는 것은 별로 마음에 안들어요. 솔직히. 저는 성경대로 모든 개념과 모든 의미와 그 정의를 성경에서 정확하게 읽어낼려고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된 권리 주권을 선포하는 것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선포와 교육이다. 이런얘기는 처음 들었죠.
저 혼자 하는거죠. 그런데 저 혼자 지금 이런 선교관을 펴가지만 지극히 성경적이고 참 이것이 하나님 뜻이 아닌가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선교의 정의를 어찌했던지간에, 우리는 지금 다시 성경을 비춰봐서 다시한번 선교에 대한 정의를 다시한번 정확하게 하고, 그리고 타문화권 다른 종교 사람들에게 공격적 전도는 안된다 이런말도 나오는데, 그러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일이 없죠.
타문화권 다른 종교에 가서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선교 방식은 안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일반 사회에서 함부로 하는 말인데, 다른 종교도 존중해줘야 된다. 물론 존중을 해줘야 되죠.
다른 종교도 옳은 것을 가르치는 것 만큼은 잘하는 것이니까. 무종교인보다는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나을수 있으니까. 종교 자체를 일부러 무시하자는게 아니고,
그러나 어떤 종교가 이세상에 있다 할지라도 그 종교가 정답이냐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그 종교가 정답을 가져왔느냐 할때, 그렇지 않다는거야. 정답은 예수그리스도가 정답이니까. 모든 다른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가서, 다 예수그리스도의 주인된 권리를 모르면 알게해줘야 되고 또 선포해야돼요.
그리고 이 선포한다는데 우리가 선포한다고해서 누가 얼른 쉽게 받아들이냐? 잘 안받아주거든요. 그러니까 다가가서 역사를 천지창조부터 시내산 갈보리산 새하늘과 새땅까지, 역사를 쭈욱 가르쳐주면서 이래서 창조주에게 창조의 주권이 있고, 또 구세주에게 세상을 구속하신 주권이 있다 하는 것을 선포하는것은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 다음에 선교의 기원, 기원을 한번 선교가 꼭 예수님께서 오셔서 선교되느냐 하면 저는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본다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아주 거슬러서 올라가보니까, 아브라함때부터 선교에 대한 마인드, 혹은 선교에 대한 개념이 아브라함때부터 들어있던건데, 우리가 창세기 18장을 펴보세요. 창세기 18장.
창세기 18장이니까 정말 그야말로 까마득히 오래된 일이죠. 거기 18장 18절. 암기하기도 좋겠죠. 창세기 18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두고 선교 계획을 세우는데 16절부터 보면 좋겠어요.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받게된다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거야.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는 일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고, 나중에는 복을 받는것뿐아니라 생명까지 얻게되는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실려고 하는건데,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겨서 되겠는가 하고 아브라함에게 알게하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하나님은 온세계 만민에 대한 선교 계획을 아브라함때서부터 출발했다고 할수 있겠죠. 나중에 더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도 그 시대에 선교를 했다고 할수 있겠죠. 노아. 나중에 선교 역사를 살필때 살펴 보겠고.
물론 노아는 자기 가족밖에 전도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열매만 결과만 갖고 말할수 없고 역시 그의 사역은 선교했다 할수 있겠죠.
그 다음에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똑같은 말을 합니다. 22장 18절에도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래서 그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된다 하시더니 네 씨로 말미암아서 네 씨는 아브라함의 씨인데, 훗날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해석할 때, ‘네 씨들’이 아니고 ‘네 씨’라고 단수를 말하는걸 볼때,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을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라고 이렇게 하거든요. 천하만민이 누구를 통해서 진정한 복을 받을수 있는가?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서 이렇게 계획이 된거죠.
26장 4절에도 보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때도 ‘자손들’이라 하지앟고 ‘자손’이라 하는데, 그 자손도 역시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할때, ‘자손들’이 아니고 ‘자손’할 때 역시 한사람을 말하는 것 같으니까, 예수그리스도이다.
구약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2000년 후에나 이루어질 아브라함부터 2000년 후에나 이루어질 그런 말씀을 제시하는 거죠.
그 어간에는 거의 예수님 오시기까지는 선교가 거의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은 어느시 어떤 사람이든지간이, 다시말하면 만민이 하나님을 알고 믿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지만 그게 잘 되는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 이전에도 이런저런 선교가 있었다 할지라도, 기원,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에게 어떻게 복을 주시려고 하느냐? 그것은 아브라함때부터 계시하는거야. 기원이.
오랜후에 2000년 후에나 이루어질 일이지만 아브라함때부터 하나님은 선교할 계획을 세운거죠. 그래서 선교라는 것은 우리 사람의 뜻이 아니고, 본래부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이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실 계획중의 하나였다는 거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후에 오랜 세월이 흘러서, 아브라함에서부터 라고 하면 거의 500년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선교의 사명이 주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꼭 한번 같이 봐야되겠죠.
출애굽기 구약성경 출애굽기 19장.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을 보시면,
여기에 하나님의 선교 계획이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5절 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이게 무슨 말이겠어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하는 말을 하나님이 하실 때 이 말은 역시 ‘주권’이죠 주권. 세상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 이 온세상에 대해서 주인된 권리가 하나님께 있다 하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자 이것은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요, 어쩌면 이 말씀 다시말하면 출애굽기 19장 5절 6절 이말씀은 ‘구약성경 전체의 축’이된다할만큼 중요한 대목이예요. 옛 언약을 맺을 때 옛 언약의 목적과 정신이 여기에서부터 비춰나온다는 거야.
그래서 거기도 역시 주권이 있어요. 주권. 주인된 권리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건데, 세계가 다 내게 속한거다. 쉽게말하면 세계가 다 내꺼다 그말이죠. 하나님께서 세계가 다 자기것이라고 하는데 동의합니까? (아멘) 그런데 별로 동의 안하는 눈치 같애.
집에가면 땅이나 아파트나 전부 자기 이름으로 이전등기해놓고 세계는 다 하나님꺼지만, 이것은 내껍니다 하면서. 그러면 곤란하죠. 사실은 세계 전세계 전체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그것을 인정합니까? 안합니까? 안하고 있죠. 그러니까 문제가 어디있느냐하면 세상상이 분명히 하나님 것인데, 공자님 것도 아니고, 무슨 석가모니것도 아니고, 누구것도 아니야. 우리 세상 사람들 것이 아니죠.
성경대로 같으면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주실 때, 땅의 경작할수 있는 권리는 주셨지만, 소유권은 한번도 하나님이 이전 등기해준 적이 없어요. 등기하라고 위임장을 써주거나 인감을 내어준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교묘하게해서 자기들끼리 법을 만들어 자기 이름으로 이전등기해놓고 이것은 내꺼다 하며 우기는거야. 다 전부다 자기꺼라고 그러는데, 그러면 하나님것은 어디 있습니까? 없죠.
그래서 세계가 다 우리가 하나님 것이다 하는 것을 인정해야 신자야. 진짜.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과, 모든 생명있는 것,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세계 모두가 과거 현재 미래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그 주권을 인정해야 신자입니다.
그래서 세계가 다 내게 속했는데 이게 잘못되어 오해가 쌓이고 해서 그저 온 세상이 다 내게 등을 돌려대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다. 지금 온 세상이.
그런데 ‘너희가’ 할때 너희는 우리보고 하는말이 아닙니다. 일단 그 사실로 하면 그때 애굽의 바로의 종되었던 집에서 해방되어서 나온 그 이스라엘 사람들, 모세를 따라서 애굽에서 나왔던 그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고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라고 하는데,
이때 그 이스라엘 백성은 만약에 모세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지 않았다면 한 50년에서 80년정도 지나면 조용히 소멸되고 사라지는 민족이야. 왜냐하면 애굽 파라오 바로가 히브리 남자, 히브리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조용히 나일강물에 집어던지니까, 시간만 가면 지구상에서 히브리인들은 조용히 사라질뻔한 그런 민족 아닙니까?
그런 너희를 건져 줬으니까, 세상사람은 내 말 안들어도 너희들만큼은 내말을 잘들어라.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라’고 할때, ‘잘 듣는다’는 말이 무슨말이냐? 저는 이 ‘잘 듣는다’는게 굉장히 중요한데 오늘 우리 한국교회나 온 세계 기독교가 잘 듣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성경을 기록한 민족인데, 성경 66권중에 64권을 이스라엘사람들이 기록했지만, 그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게 아녜요.
그러면 ‘잘 듣는다’는게 어떻게 듣는거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해되도록 들어야돼요. 부분적으로 주일날 예배시간에 설교하는 것 들었다 그것 가지고는 들은게 아니고, 그것은 예배시간에 잠깐 그저 하나님께서 덕담하듯이 종을 통해서 주신 그런 말씀이고, 정말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절도 안빼고 한마디도 안빼고 제대로 다 완전히 알아듣도록 들어야돼요.
그래서 하나님 뜻이 뭔지, 하나님의 소원이 뭔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뭔지, 온전히 알아듣도록 들어야돼요.
제가 선교의 개념 교회교육이란 개념 지난번에 충분히 말씀 드렸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돼고,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돼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되니까. 하나님 뜻을. 일은 그 다음이야. 일은.
그 다음 우리가 교회에 와서 일부터 자꾸 맡기고 성경 한번도 안 읽었는데, 집사를 맡기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 한번도 안 읽어보고 집사님 되신분이 아마 여기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CTS 방송을 듣는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봐요. 성경도 한번 제대로 안 읽어보고 교회 집사님이 되어가지고.. 그러면 곤란하다는 거야.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다는, 하나님이 온세상의 주권이 있다는, 주인된 권리가 하나님께 있다하는 이것을 확실히 가지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잘 듣되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수 있도록 들어야돼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르는것이 거의 없을만큼 들어야돼요. 그정도로 듣고,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언약을 지키는 사람과 일할수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일 못해요. 우리가 무슨 작은 회사를 경영하거나 교회를 이끌어가는데도 약속을 번번히 안 지키는 사람과는 아무일도 못하죠.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평가하실 때, 제일 먼저 약속을 해봐가지고 그 약속을 잘 지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야. 비교적. 절대적으로 의로운게 아니고 비교적 상대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약속을 잘지키는 거예요.
우리가 다 아담의 자손치고 그 원죄와 관계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 죄성이 있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인간성을 가지고 약속하나라도 잘 지킬려고 최선을 다해서 약속을 지킬려고 하면,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다니까. 왜냐하면 약속을 지키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 약속을 지키는 거니까.
내가 이렇게 약속을 지키면 상대방도 약속을 지킬거라고 믿음이 있어야 약속을 지키는것이거든요.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신실한 자, 충성된 자, 혹은 의로운 자로 해요. 의로운 자.
우리는 이 언약을 지킨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말이 되는데, 그 언약을 지키면 인격이 되는 것이고,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인격이라 할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비록 범죄하고 타락했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킬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나’라고 하고 타락한 사람 우리를 ‘너’라고 하는거야. 나하고 너라는 관계는 인격적 관계거든요.
여러분 우리가 소나 혹은 말이나 개나 돼지나 이런 것 보고는 너라고 하면, ‘나 말이요?’하고 소가 그래봐요. 그러면 큰일 나는거죠.
소는 너라고 해도 자기가 알아보지 못해요 ‘너와 나’의 관계가 안돼요. 소라는 것은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약속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니고 소는 ‘나와 그것’의 관계예요. 인격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와 약속을 할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약속을 해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격을 이렇게 끌어, 인격을 인도하거나 끌어오는 것은 약속을 통해서 끌어올수 있는거예요.
그리고 인격을 끌수 있는 두가지 줄이 있는데, 하나는 ‘약속의 줄’이고, 하나는 ‘사랑의 줄’이죠.
약속의 줄과 사랑의 줄이 있어요. 그래서 일차적으로 약속을 일단 해보는거야. 약속을 잘 지키는 것.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 그리고 언약을 지키는 것, 하나님 많이 요구하는게 아닙니다. 세가지를 요구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주인된 권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라.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라. 그리고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잘 지켜라. 이 세가지만 하면 뭐라느냐?
너희가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 소유. 이 ‘세굴라’ 하는 히브리어는 소유는 소유인데 보통 소유가 아니고 보배로운 소유, 마치 여인들이 패물을 아끼는 것처럼 보물같은 보배로운 소유. 그런 소유가 되겠다 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소유가 필요하냐? 저는 이것가지고 상당히 고민을 해 봤는데, 인격이라는 것은 그 내가 누구에게 나를 누구에게 증여하기 전에는 소유가 안되는 거야. 일반 물건 같으면 내가 만들면 내것입니다. 맞아요? 내가 만들면 내것이죠?
그리고 내가 값주고 사면 돈주고 사면 내것이 됩니다. 일반 물건을. 그런데 인격이라는 것은 만들어도 내것이 안되는 수가 있어요. 완전한 자유를 자기 결정권을 자기 결정권과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완전히 부여한 후에는 인격은 내가 만들었어도 내것이 안될수도 있어요.
그래서 인격이라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니까. 일반적인 일반 다른 물건은 내가 만들면 내것이고, 내가 댓가를 지불하고 사면 분명히 내것인데, 인격은 반드시 나는 당신 것입니다. 하고 헌신을 해야..
우리 예수 믿으면 다 하나님 것이다 싶어도 전혀 하나님 마음대로 할수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드린적이 없기 때문에..
이 다음에 헌신이라는 것을 따로 다룰텐데, 헌신이라는게 주일저녁예배때 헌금 조금했다 이것이 헌신이 아니고, 자기의 인격과 자기의 전 삶을, 자기의 생명을 영원히 단번에 전체로 하나님께 드려야돼요.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내 생명이 하나님 것이고, 나를 하나님이 길러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것이고,
죄값으로 팔린 나를 자기 피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이중으로 삼중으로 내 생명이 하나님 것이다 하는 철이 들어서 그런 믿음이 생겨서..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나를 위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살 수 없고 이제 남은 삶은 나를 위해서 죽었다가 사신 그분만을 위해 살겠다 하는 믿음이 들어서 그래서 오늘부로 내가 내 생명을 영원히 단번에 전체로 전 인격적으로 전 삶을 하나님께 드리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드려야, 그래야 하나님이 하나님것이 하나미의 소유가 되어서 하나님이 쓰실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 바로왕의 노예가 되어가지고 사내아이만 낳으면 다 나일강에 빠지게 되어 조용히 소멸될 그런 민족을 건졌으니까, 세상사람들은 내말 알들어도 너희들만큼은 내 말 잘듣고 내 언약을 지켜서 내 소유가 되어달라 내편 하나님 편이되고 하나님 소유가 되어달라 이게 참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민을 창조했는데, 아무도 하나님께 다가오지 않고 인간들이 끝없이 하나님으로부터 피하고 숨고 도망가고, 피하고 숨고 도망가고 이렇게 해왔는데 그저 이 이스라엘 민족들 사실은 지질이 못난것들입니다.
여러분 에스겔서 16장 같은데 보면 가장 못났기 때문에 택했다는 거야. 잘난 사람은 너무 잘나서 교만하니까 하나님이 쓰실수 없어서 세상 못난 백성. 셈에게 아들이 다섯이 있었는데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산과 룻과 아람이요 하는데, 이 아르박삿이라는 이 가운데 아들, 가운데 아들 아르박삿은 나라도 차지하지 못했어요.
엘람은 엘람을 만들었고, 앗수르는 앗수르나라를 만들었고, 룻은 루디아를 만들었고, 아람은 아람나라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아르박삿만 나라를 만들지 못했어요. 가운데 아들 아르박삿. 그 아르박삿의 자손이 바로 아브라함 아닙니까. 그 아람땅에 유리하는자. 아람 제일 막내동생 아람땅에 아람 나라에 유리하는 자, 떠돌이. 유리한다는 말은 흘러 떠다니는 사람들, 유리방황하는 자, 양떼나 따라다니면서 정착도 못하고 이렇게 떠밀리는 그런 아브라함을 택했다하는 얘기를, 에스겔서 16장에서 날때부터 벌거벗은바 되어서 피도 안닦고 탯줄도 안자른채, 풀섶에 내팽겨쳐진 여자아이같은 그런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주워서 키워서 애굽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통통하게 살쪄서 나오는 그런 이스라엘로 묘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사람은 내말 안들어도 너희는 내말 잘들어야된다.
그런 얘기를 하면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뭘 해달라느냐 하면 제사장나라가 되어달라 이게 선교죠.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말은 세상 모든 나라가 다 하나님을 등지고 있을때, 이스라엘백성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언약을 잘 지켜서 내 소유가 되어서 그리고 내편이 되어서 세상 모든 나라가 내게돌아올수 있도록 중간역할을 잘 해달라. 이 중간역할을 잘 해달라는 말이 바로 제사장 나라라는 말이고 따라서 이게 선교라는 거죠.
이말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사명입니다. 이스라엘의 봉사와 헌신과 선한 삶을 통해서 거룩한 봉사를 통해서 세상 모든 나라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돌아올수 있도록, 그런 중간 역할을 해달라하는 그런 말씀을 하신 거거든요.
이게바로 선교적 이스라엘 민족의 선교적 사명인데, 제가 알고있기는 아직까지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해요. 이 말씀을 제가보기로는 깨닫지도 못하고 발견도 못하고, 이 자기 민족적 사명이 온 세상나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교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과 화목되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민족적 사명이라는 것을 지금 이시간까지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저는 이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사명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소원이예요.
절대사명이예요. 이것은 피해갈수 없는 이스라엘 온 민족이 모든 혼신을 심혈을 다 바쳐서 이 목적을 이루어내야만 했었는데, 이것을 전혀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다. 이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만 사랑하지 세상 모든 이방인들은 사랑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어요.
이방인들은 왜 만들었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이방인을 만든 목적은 지옥의 땔감용으로 창조했다. 이렇게 생각해요. 진짜입니다.
유대인들 되먹지 않은 유대인들은 뱀을 죽이는것도 잘하는 것이고 전갈을 죽이는것도 썩 잘하는건데, 그보다 더 잘하는 것은 이방인을 많이 죽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군대가 가자지구라든지 여리고라든지 아니면 위쪽으로 레바논에 가서 폭탄 던져서 비유대인 이방인이 죽었다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주 못된 사람들이야. 그 사실을 오늘날도 우리 성도들이 잘 몰라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게 아니고 성경을 잘못 배우니까, 잘못 가르치고 잘못 배워서 그런거예요. 그 사람들도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았다면 그렇게 안되죠. 여러분 제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가장 거룩한 사람, 가장 진실한 정직한 좋은 사람들도 유대인중에 있어요. 가장 똑똑하고 착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이런 사람들 유대인중에 있고 천하에 못된 사람도 유대인중에 있어요.
그것은 지난번에 우리가 마지막 바벨론 얘기할 때, 언급을 했죠?
그래서 이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지금도 우리가 얼마든지 실수하고 악을 행하고 선교가, 잘못되고 전도가 잘못되고 교육이 잘못되었을때는 누구든지 그렇게 잘못될 수가 있어요. 여러분 세상에 모든 사이비 종교가 이단들이 거의 다 성경을 잘못배워서, 잘못배웠다는 것은 누군가 잘못 가르친거죠.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 이런저런 이단 사이비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사실 우리 목회자들의 책임이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도 목회자이지만 신학교 교수님들이 성경을 안가르치거나 못가르치거나 잘못가르친거야. 신학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이단이 나오는 겁니다.
또 한편은 왜 이단이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 한국 교회가 진짜이기 때문에 가짜가 많이 나와요.
여러분 짝퉁이 왜 나옵니까? 짝퉁이 왜 나오는거요? 명품이 있으니까 짝퉁이 나오는거요. 명품이.
한국교회에서 정말 바르게 믿고 바르게 가르치는 기독교 명품이거든요. 정말. 온 세계에서 우리 한국기독교인처럼 예배 성실히 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고 찬양하고 헌금학 예배 출석율 세계기독교 1위고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그런 기독교가 없고, 정말 세계에서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교회중에 한국교회가 가장 열심이 있는 교회인데 그런 열심이 있는 교회 옆에 열심히 이단이 나오는거야. 짝퉁이. 진짜가 있다는 거죠. 진짜가 없으면 가짜가 안 나오는거죠.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선교하고 전도할 때, 바르게 선포하고 바르게 교육해서 바르게 배워야 그런게 안나온다는 거야.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중간 역할을 하는건데, 세상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의 선교와 봉사 교육을 통해서 거룩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되게 하는 것, 이런 민족적 사명을 망각하고 그저 이방인이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온갖 저주가 임하게 되어 있어요. 나중에 시간나면 언약을 지켰을때 어떻게 되며, 언약을 지키지 않았을때 어떻게 되어있는지 소개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가 될뿐 아니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말인데, 그냥 구별되는 게 아니고 좋은 쪽으로. 선하게 구별되고, 정직하게 구별되고, 건강하게 구별되고, 건전하게 구별되고, 아름답게 공평하게 온갖 좋은쪽으로 구별되는..
그런 모습의 민족이 되어야 제사장 나라를 감당할수 있고,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뜻은 선교니까, 그런 민족이 된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당하지 못한 선교적 사명을 누가 해야 되느냐하면, 오늘 교회가 하는거야. 교회가.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함께 세례 받아 연합된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했던 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기본은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는 것이니까,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주권됨, 창조주 구세주 심판주 성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와 만물과 인간과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전체 만유의 주가 되신다 하는 주권을 바르게 선포하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우리 자신부터 하나님과 맺은 옛언약 새언약 꼭 지켜야 될 언약을 잘 지켜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 소유가 되어서,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 중간에서 그 하나님 입장을 대변하면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데까지. 이런 사역을 우리가 선교라고 합니다. 선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지 못하던 것을 오늘날 교회가 하는거예요.
이것이 선교의 사명이라는건데, 처음에는 세계선교의 사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감당 못하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가야됩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모든 족속에게 가야돼요.
그러니까 지난번에 아프카니스탄에 가면 안된다. 물론 시기가 좀 안좋았지만 가면 안되는게 아니죠. 가야되죠. 안가면 안되는거죠. 시기가 좋지 않았고 조금 부주의한건 잘못된거죠. 잘못되었거나 예수님 말씀을 받들어 가는 것은 맞는거야. 모든 족속에게 가야돼요. 여러분 오지말라해도 가야됩니다. 누가 선교사 초청하는 사람 없습니다. 예로부터.
그러니까 오지말라한다고 안가면 안돼요. 오지말라면 더 가야돼. 오지말라 하는데는 하나님 전혀 모르는 곳이니까 더 가야되고,
또 초대교회 우리 사도들의 선교는 다 당연히 선교하러 간다는 것은, 주님을 증거하는건데, ‘증거한다’는 말이 ‘마르티오’라는 말인데, 마르티오라는 증거한다는 말이 ‘순교한다’는말과 똑같았어요. 순교도 ‘마르티오’, 증거도 ‘마르티오’야. 동의어입니다. 죽음으로써 목숨을 바쳐서 목숨을 걸고 증거하는 저 증언은 진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말씀에 ‘너희는 가서’라고 할때, 우리가 한국에 있을때는 사람 사는 모든곳에 가야되는 것이고, 해외선교 간다고 할때는 모든 민족에게 가야돼요. 모든민족.
단, 때와 시기와 분위기와 방법은 우리가 지혜롭게 해야됩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하고 그리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가야돼요.
그 다음에 선교의 역사를 한번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이것을 꼭 선교라고 할 필요가 있냐 싶어도, 어떻든 하나님 뜻을 전할려고 했던 사람들은 노아가 당시에 홍수로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면서 부단히 선교하고 했는데 아무도 뭐 안들었죠. 자기 사위될 사람들도 빈정거리고 그렇게 했을 거예요.
아브라함과 롯이 또 선교한건데, 롯의 선교는 실패했죠? 소돔과 고모라에서 실패했는데, 아브라함은 선교를 하되, 자기가 살던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이란 곳에 갔는데, 그 가나안 땅은 당시에 굉장한 무역로입니다. 그쪽이 아브라함이 살았던 모레 상수리 나무 밑에, 아니면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니면 헤브론 아니면 브엘세바 그 길 전부다 길목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왕래하는 그런곳에 살게하면서 오는사람 가는사람 다 영접해요.
여러분 잘 아시는대로 아브라함은 그저 별일 없으면 대문간에 나가 앉았다가 오는 사람 가는사람 불러들여서 집으로 초청해요. 요즘 우리 기독교 여성들 같으면 바로 이혼이죠 그렇죠? 오는사람 가는사람 다 불러들여봐 벌써 이혼하고 삼혼 사혼 다 했을거야.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모시고 오면 사라가 종들을 불러서 살찐 송아지 잡아서 대접을 하는거야. 이게 선교죠. 여러분 아브라함의 선교는 대단한 선교예요.
그래서 그 길목에서 오고가는 대상들을 영접하면서, 하나님 믿는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사랑을 베풀고 이렇게 하는거야. 그래서 아브라함 선교사는 딱 가서 얼마안되어서 막벨라라는 굴을 사서 거기 묻힐 것을 다 마음에 염두에 두고 거기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사역을 했어요. 너무너무 거룩하게 사니까 사람들마다 아브라함을 믿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돼요.
애굽에 한번 내려갔었다가 까딱하면 아내도 뺏기고 하마터면 자기도 죽을 것 아닌가 했는데, 그때도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소개되는거죠.
괜히 바로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빼앗았다가 죽을뻔 했잖아요. 너 죽으래 살래? 해서.. 그래서 돌려보낸 것 아닙니까.
그 뒤에 아브라함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왔을때, 그랄 왕과 군대장관 비골이 찾아오죠? 찾아와서 뭐라고 해요? 당신의 삶을 우리가 멀리서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당신과 함께 하는 것 같다. 그러죠? 이게 진짜 선교예요. 아브라함의 선교야말로 생활 선교야 생활 선교. 아주 중요한.
오늘 우리가 도무지 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하도 인생을 개떡같이 사니까, 세상사람들이 이르기를 밤낮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 사는거야. 우리가 거룩하게 살고 복되게 살고 아름답게 살고 선하게 정직하게 이렇게 해서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하는것을 세상사람들이 볼수있게끔 살아가는 것. 이게 생활 선교라는건데, 이게 아브라함의 선교예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브라함은 대단한 선교사죠? 타문화권에 가서. 그래서 그 땅이 나중에 결국은 이스라엘 땅이 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 땅이 되는거죠.
정말 선교의 맨 기초를 아브라함이 잘 놓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로 가실분들에게 꼭 아브라함 얘기를 하면서 그땅에 가거든 결코 돌아오지말고 편지도 하지말고 전화도 하지말고 막벨라굴을 사서 내가 죽거든 한국으로 내 뼈를 옮기지 말라. 나는 한국의 국립묘지보다 여기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써놓고 그렇게 선교하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문을 열어요 마음의 문을. 얼마 있다가 갈거야 그러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우리 지리산 지역에 지리산 선교회가 있는데, 선교회에 어떤 전도사님이 한 70여호 되는곳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거기 한 성씨, 김산 김씨라는 한 성씨가 사니까 도무지 전도가 안되는거야. 70여 호. 그러니까 그 앞에 전도사님 두분이 한분도 전도 못하고 울고 갔어요. 세 번째 갔는데 역시 안되는거야. 안되니까 열일곱집밖에 안되는 곳으로 옮겼어요. 촛대를 옮겼어요. 거기가서 너무너무 열일곱집을 사랑하고 하니까 그 동민들이 하나씩 둘씩 교회에 나오는겁니다.
그래도 그 동민들이 조금 서먹하게 저사람 앞에 두사람 가는걸 봤으니까 저사람은 얼마있다가 가는가 왜 안가는가? 그러고 있었는데, 그 전도사님의 부친이 별세하자 무덤을 그 마을에 어느 산지를 사서 무덤을 거기다가 만들었어요. 그러고나니까 그 주민들이 아 저 전도사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 사람이구나 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협조하고 예배당 짓는데 마치 노력봉사를 하고. 동민들이. 믿지 않으면서도. 그런 그 전도사님은 예배당 교회에 나와서 정식으로 예배하는 사람은 10명 20명 밖에 안되지만 교회에 안나와도 다 신자로 성도로 생각하고 다 돌보고 해요. (2부에서 계속...)
[정리]
◎ 선교의 정의
: 선교의 고전적 어의는 타 문화권 전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가 펼치는 모든 사역”을 포괄적으로 말해서 선교라고 하게 되었다. 엇갈린 선교관, 즉 혼란된 선교 개념 때문에 선교에 대한 교회의 실제적인 노력은 더욱 더 모호한 것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선교에 대한 이해의 차이 때문에 야기된 갈등과 혼란이 심해 지고 있다.
◎ 선교의 명령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 선교의 기원
- 창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 창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 선교의 사명
: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5-6)
◎ 선교의 역사
1. 노아의 선교
2. 아브라함과 롯의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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