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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송한 부분입니다. 바로잡아주심이 필요합니다.
[화엄기]에는 청량국사가 [화엄경 문명품]을 해석한 거기에 나온 초석인데 거기는 [계경]이라고 안나와있고 論이라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論云이라고 옆에다가 적어논거요.
一切가 오직 覺만 있지 所覺의 의미는 모두 없다 말이요. 논에서 이 논은 [성유식론] 제2권에서 설명한거요. 그래서 위에다가 [성유식] 제2권이라고 적어놨죠? 청량국사 거기 [성유식론] 제2권에 말을 갔다가 말한거니까 거기서는「논운」이라고 했는데 연수대사는 論云을 [계경]이라고 한 것은 쪼금 덜 된거지. 論云이라고 해야 정확해요. 청량국사 해석대로
그런 분들은 이런 것에 깊이깊이 신경 안 쓰거든 대충대충 기억 나는데로 막 적은거요. 그 연수대사 같은 이는 그러니까 아까 저 사실도 뭐 술 이야기 같은 거 그것도 쪼금씩 原하고 쪼금씩 약간 차이점이 있어.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꼭딱꼭딱 뭐 왜 그렇게 했나하고 트집잡을 필요가 없어. 그런 분들은 이런 데 신경 안 써요.
能覺所覺分이 各自然而轉이라하니라
能覺과 所覺分이 각각 自然이 저절로 전변한다라고 했거늘「하니라」거까지가 [성유식론] 제2권에서 말한거요.
釋曰
인자 그건 청량국사가 그 말을 해석한 말이요. 해석에 가로되
此即華嚴經이니
이것은 곧 [후엄경]이니. 거기는 [화엄경]이 아니라 [후엄경] 두터울 厚자, 經이 [후엄경]이라는 경도 있어. 嚴자 달린 경이 많아요. [장엄경][후엄경][능엄경][화엄경] 또 [방엄경] 엄자 들린 경은 다 대승경전이요 잉. 그러니까 [후엄경]에 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연수대사는 여 [계경]에 說 그것하고 비슷하니까 그냥 契經說이라고 했겠지.
上半은 明無外境이요
위에 半은 여기서 인자「一切가 覺뿐이지 所覺이는 없다」라고 하는 것이 上半이죠. 外境이 없는 것을 밝힘이요.
下半은 明有見과 相二分이라 各各自從因緣所生을 名自然而轉이라
下半은「能覺所覺뿐이 各自然而轉이라」고 하는 요게 인자 다섯 자 게송이죠. 하반은「능각소각뿐 각자연이전」그 二句를 하반이라 그래요. 사구중에, 하반은 견분과 상분 見相 二分이 있어가지고 各各 스스로 因緣으로부터 生기는 바를 自然이 굴른다고 이름 한거라 말이요. 그걸 밝힌 거라 말이요. 밝힐 明자, 위에다 해도 되고 見分과 相, 相分 二分이 있음을 밝힘이라 그렇게 해도 되고
각각 스스로 인연을 따라서 생기는 바를, 아까「각자연이전」이라는 그 말을 해석한 거죠. 자연이 굴른다라고 이름함이라.
下結正義호대
아래에서는 인자 正義 결론을 어떻게 했냐면, 정의를 맺어서 말하기를 [유식론]이요. 지금 [성유식론]
論에 云
거기는 論자가 또 나와있잖아요.
達無離識所緣境者는
達 識을 떠나서는 所緣境이 없는 것을 통달한 통달할진댄 해도되고 통달한 것은 해도되고
則所變相分이 是所緣이요
變해진 바, 어째서 변해진 바라고 하냐면은 모든 삼라만상, 육진경계 相分은 識에서 변해진 바라고 唯識所變이라 해서 소변이라는 두 글자를 논거요. 그럼 식은 能變이고 모든 만상들은 所變이요. 적어노세요. 소변은 만상이고 식은 능변이라고 能所로 본다면, 소변의 상분은 바로 이 반연할 바 所緣이고
見分은 名自行相이요
見分은 自行相이라고 이름 한다 말이요. 견분이 들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니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이 견분이라. 見자 하나만 딴거요. 見聞覺知등을
相과 見의 所依自體는 名事니
相과 見의 所依自體를 事라고 말한다. 상분과 견분이 의지할 바 그 자체, 자체는 그 본체지. 그것을 사라고 이름한다. 그런 사실에, 그래서 제6식을 제6식의 별명이 비사심(?)이라고 나오죠? [기신론]이나 다른 데. 비사심이라고도 하고 비사식이라고도 하고 제6식을, 제6식 그 제6의식을 제6의식을 비사심이라고도 하고 비사식이라고, 온갖 사건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 그렇게 온갖 사실을 보고 느끼고 안다해서 그걸 사식이라고도 분별사식이라고도 하죠? [기신론]에서는 분별사식. 온갖 사건들을 분별한다라고, 제6식을 또 별명이 분별사식이라. 온갖 사를 사가 아니라 육진경계지. 육진경계 모든 사법. 사를 분별한 식이라 그래요. 제6식을
事라고 이름하나니. 사는 사법이요.
即自證分이라하시니라
그 자체는 自證分이지 인자. 견분과 상분의 주체는 자증분여. 자증분에 의해서 능동적으로 能見하는 것은 見分이고 거기에 볼 수 있는 대상이 또 거기서 육진경계가 8식에서 나왔잖아요. 그건 소상인 아까 소변상분, 소변상분인 그 아까 견분, 상분할 때 그 상분이라.
釋曰
해석에 가로되
此中에 雖是立二分家나
이 가운데 비록 二分家를 세웠으나 이분은 견분, 상분만 말한 것은 이분이죠.
義已有三이니
그러나 뜻은 그 의미에는 이미 셋이 있음이라. 셋이란 말은 자증분까지 합하면은 세분이죠. 釋曰은 그 인자 청량이 [성유식론]을 해석한 글이다는 그말이죠. 그 청량국사 위에다 써놓은것이, 초문에 자증분 세글자는 없다라고 밑에 인자 나와요.
故로 次論에 云
그러므로 다음 論에 말하기를
若無自證分하면
만약에 自證分이 없다면 그러니까 청량국사 소초에는 에..「若無此者덴」고렇게만 나와요. 自證分 세글자가 없어야 말은 더 좋죠 잉. 그래서 옆에다가 此者라고 밑에 나왔잖아요. 밑에 나온 고대로만 두면 된다 그말이요. 자증분이라는 세글자만 없는 걸로 보면 되아요. 그게 화엄소초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요.
만약에 이것이 없다면, 이것은 바로 자증분이죠. 그러니까 연수대사는 어.. 자증분인 이것이 없다면 알기 쉽게 더 분명하게 할라고, 원래는 자증분이라고 하는 세글자는 이 此자 밑에다가 괄호로 넣어야지. 현대식으로 말한다면 그래야 될것을「자증분인 이것이 없다면」고렇게 연수대사는 쓴거요.
그러나 청량국사 그 소초에는 없는 것을 뭘라고 자증분 세글자를 놓았냐 그말요 잉? 나는 대조해보고 이렇게 한거요. 내가「토」달때는 반드시 대조하고「토」를 답니다. 그리야「토」가 틀리지 않거든 그래서 그놈 찾느라고 얼마나 힘든지 그것 찾는 시간이 몇시간씩 잡아먹어.「토」다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 찾는게 옛날엔 잘 찾았는데 지금은 눈이 침침해가지고 좀 보고나면은 글씨도 알롱알롱하니 잘 안보이고 어떻게 고통스러운지 그래도 이것은 쪼금 기억을 하니까 하는데, 어제 같은 경우 또 하나 뭐 찾아내는데 그놈을 그 저 소승경전 논장을 다 뒤적거릴 정도로 다 뒤적거려가지고 네 게송 [종경록]에 나온 거 찾아냈어. 그런걸 안 찾고 번역을 해 놓으니까 번역이 틀려. 모르고 그냥 아무렇게나 그냥 어룽투룽허니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해 놨어.
此者應不自憶心所法이 如不曾更境을 必不能憶이라하시니라
응당 스스로 心所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예컨덴 일찍 겪어보지 아니한 경계를 반드시 能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전에 보았거나 들었거나 기억을, 보았던 그 경계만을 기억할 수 있지 안 본것은 기억조차 할 수도 없는거죠? 그와 같다 그말요.
心所法이라는 것은 심앙, 심소할 때 심앙은 식의 주체를 심앙이라 하고 식에 부수적으로 여러 가지 식의 소유물로 소유법으로 여러 가지 나타나는 부작용, 정신의 부작용을 다 심소법이라고 해요.
故釋曰
해석에 가로되
此明有自證分이니
이것은 自證分이 있는 것을 밝힌거다 말이요. 이분설로 보면은 자증분이 빠지는데 이분설 가지고는 불완전하죠. 이분설 가운데 二分은 見分, 相分 이분설 그 설명하는 그 중에는 반드시 자증분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말이요. 구체적으로 그냥 해뻐리면 그만이지 뭘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지. 모를까봐 그런거지 노파심에서
意云호대
뜻에 말하기를
相離於見하면
상분이 견분을 떠나면, 외계의 여러 가지 물상이 보는 주체의 見을 떠난다면, 견은 견분이죠.
無別自體요 但二功能이니 故로 應別有一所依體라
별다른 自體가 없고 다만 두가지 功能이니 그러므로 에.. 별달리 하나의 所依體가 있을 것이라 말이요. 소의체는 바로 자증분이지.
若無自證하면 應不自憶 心心所法이
만약에 自證分이 없다면 응당 心과 心所法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심은 심앙이고 심앙에 딸려있는 부수적인 부하들은 심소죠.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如不曾更境을 必不能憶이라
마치 일찍 거치지 아니한, 境자는 거칠 경자요. 과거에 여러번 경험하고 겪어본 그 사실이라야 기억을 하지. 못한 경계를 반드시 能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음이라, 같음이니 해도 되고
謂如見分이 不更相分之境하면 則不能憶이요
말하자면 見分이 相分의 경계를 거치지 안했다면 곧 能히 기억하지 못하고, 그 경자는 요 경자로 썼으면은 알기가 참 쉬운데 괜히 그렇게 어렵게 놨지. 이 자는 경력, 경험, 경력했다고 거친것을 경력, 경력이라고 하죠. 경험했다는 그 경자. 경은 경력이라는 그 경자요.
말하자면 견분이 상분의 경계를 거치지 안했다면은 곧 능히 기억을 못할것이고
要曾更之라야 方能憶之니 若無自證하면 已滅心所를 則不能憶이리니
중요로이 일찍이 경력을 해야만, 거칠 경자. 경유한다, 경과한다 경과보고할 때 경자. 비로소 能히 기억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에 自證分이 없으면은 이미 없어진 心 心所를 심자가 빠졌어요. 그래서 옆에다가 적어놨지. 화엄소초에는 심이 나와있어. 여기는 없어도 심은 심앙이고 밑에 심소는 심소유법이고 能히 곧 능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말이요. 못할 것이니
以曾不為自證의 緣故라
일찍이 자증분의 소연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
則如見分이 不曾更憶을 今能憶之는
곧 見分이 일찍 기억을 하지 못한것을 지금에 能히 기억하니. 거기다 옆에다 표시가 했죠. 그말은 以曾「以曾不爲自證의 緣故라」하는 이증이하로부터서「不曾更憶」까지는 소초에 없다 그말이요. 청량국사의 추문에는 없는 그말을 연수대사는 갔다놓았다해서 그걸 밝힐라고 내가 위에다 써놓고 옆에다 표시한거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고 그렇지.
次下에 立三分하니
그 다음 아래에는 三分으로 세가지 삼분을 세웠다 말이요. 三分說은 보통 거시기 저 10대 논사중에 거기에는 삼분을 많이 세우죠. 호법논사가 호법보살이 사분설을 세우죠. 삼분설만 해도 대충은 되지요.
論에 云
論에 말하기를, [성유식론]에 말하기를
然心과 心所가 一一生時에 以理推徵에
그러나 心과 心所가 낱낱이 생길때에 이치로써 推徵을 해봄에 따져봄에, 추징컨댄 해도되고
各有三分하니
각각 三分이 있으니
所量과 能量과 量果가 別故로
삼분이 바로 所量과 能量과 量果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이요. 그러니까 밑에 나오잖아요.
相과 見에 必有所依體故니라
상분과 견분 相과 見에는 반드시 所依體 의지할 바 자체가 있기 때문이라. 소의체가 바로 자증분이죠. 자증분이 있다 그말이요. 거까지가 인자 [성유식론] 말인데 또 청량국사 해석을 합니다. [성유식론] 말을 갖다놓고
釋曰
청량국사가 해석한거요. 해석에 가로되
所量은 是相分이요 能量은 是見分이요
所量은 바로 相分이고 能量은 바로 見分이고, 능량은 능동적으로 능히 안다는 말이요. 헤아릴 量자, 헤아려서 아는 거. 어떤 사물을 보고 알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견분아뇨? 시각, 청각, 후각 그런 육각들이, 所量은 알 바 물건들이 상분이죠?「색성향미촉법」
量果는 是自證分이니
量果는 바로 自證分이라. 그러니까 能量, 所量의 결과 그것을 능히 아는 가장 그 실체는 양과요. 양과가 바로 양과자구만, 옛날 과자는 아니고 흠! 그것은 바로 자증분이다 말이요.
自證分이 與相과 見으로 為所依故라
自證分이 相見과 상분과 견분으로 더불어 所依가 되기 때문이라. 자증분에 의해서 견분도 생기고 존재할 수 있고 또 상분도 거기에 의해서 존재하니까 그래서 소의체가 된다. 의지할 대상이 되죠.
그 다음에 論자는 없는데 지금 여기는 갔다 놨어요. [화엄경소초]에는 없어요. 논자는, 옆에다 동그래미 쳐놓고 표시를 해 놨죠. 같게 없다는 뜻이요. 論은 없는데 에.. 論은 만약에 본다면
如集量論伽陀中에 說호대
集量論伽陀中에 해설을 하기를, [집양론]이란 대승론인데 그 집양 법집 거시기 저 뭐여 저 [대승집양론]이라는 논이 있는데 그 논중에도 伽陀는 게송을 가타라고 해요. 이 말이 [신화엄경소] 소초 22권에 17page에 나온 것이라요. 글씨가 좀 애매하게 [신화엄경]이라고 하는것은 [화엄경] 청량국사 소초를 10권으로 이렇게 묶어 놓은게 있어요. 80화엄경을, 거기에 그것을 [신화엄경]이라고 나는 표기를 했어요.
거기에 그말이 좀 자세히 잘 안보이죠? 스물두권째에 스물두권째 에.. 17page에 17쪽에 나와요. 여기에 나온 문장 글이라요. 그 위에다 적어놓은 것이 그거요. 소초가 좀 글씨 쓰기 싫어서「소」자는 한자로 쓰고「초」는 그냥 한글로 쓰고 그렇죠.
似境相은 所量이요
경상 似境相은 所量이요. 경계는 참으로 있는게 아니여. 사이비적 가짜로 허망하게 나타난 거니까 似자를 쓴거요. 사경인 상은 소량이 되고
能取相은 自證이라
能取相은 自證分이라. 능취상 자증분과 자증분과 해도되고 자증분이라.
即能量과 及果가 此三이 體無別이라하니라
및 能量과 果, 과는 量果죠. 이 세가지가 어.. 자체가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집양론] 게송에서 거까지 말한거요. 긍게 所量 能量 量果 고렇게 세가지로 지금 설명을 했죠. 소량은 상분이고 아까 적어놨지만은 다시 적어놓고 보세요. 상분을 소량이라하고 상분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견분이고 능량, 소량을 전부 다 통달해서 거기에 결정체는 량과라고 해요. 량과는 자증분이죠. 삼분설을 지금 말한거요. 세가지 相分 見分 自證分
상분은 객체고 견분은 주체가 되고 能이 되고 이건 所가 되고 자증분은 그걸 총괄한 본체가 되는거고 그걸 설명할라고 또 어.. 비유로 말했죠.
釋曰
청량국사가 인자 해석하기를
所量如絹하고
所量은 천과 같고 저런 저 어.. 인조 천과 같다 말은 비단, 인조와 같고
能量如人하고
能量은 잣대와 같어. 자 尺자가 사람 人자로 써졌어요. 옆에다, 잣대로 재죠. 천을, 그 인조 같은 거 팔때나 인조 같은 거 몇자가 되는 가 잣대로 재잖아요. 국제시장에서 싸움나면 잣대가지고 설쳐. 그건 포백전에서 잣대를 늘 가지고 있으니까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막 쌈 할때 그렇게 설치는데, 자갈치 시장에서는 조개까고 생선잘르는 사람들은 칼로 사용하니까 싸움나면 막 칼로 막 노발대발하면서 칼부림난다고 그러니까 자기 익히는 데로 업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거요.
부산에 똑같은 부산시도 자갈치 시장사람들은 싸우면은 칼로 싸우고 저저 포백점 국제시장 사람들은 싸우면은 잣대로 싸운다고 어떤 신도가 그런 말 하데요. 내가 만든 말도 아녀. (하하하) 그 잣대가 바로 그거요.
量果如解數智라
量果는 그 數를 아는 지혜. 몇자가 되는지, 천이 얼마나 되는지 그거 아는 지능이 量果다 말이요.
果是何義오 成滿因義니라
果는 어떤 의미냐? 과란 것은 因을 成滿하는 의미다. 因은 아까 능량, 소량은 인이라면 량과는 결과기 때문에 결과 량과라고 했죠. 그러니까 앞에 견분, 상분을 성만시키는 그런 의미가 과의 의미다. 인의 반대가 과아뇨? 인과할 때
言無別體者는 唯一識故니
言無別體라고 별체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별체는 뭐냐? 오직 하나의 識뿐이다 말이요. 하나의 식이 들어서 온갖 물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또한 물상도 식에서 생겼다라고 보는게 유식철학이요. 그럼에 그러기 때문에
則離心無境이니라
곧 마음을 떠나면 경계가 없다.「唯心唯識無境」이라. 식뿐이지 경계는 없다는 거요.
次立四分하니
그 다음에 또 四分을 세웠으니, 사분은 증자증분까지 하면은 사분이죠. 아까는 삼분설이고
論에 云
論에 말하기를
又心과 心所를 若細分別하면 應有四分하니
또 心과 心所를 만약에 자세히 分別하면 응당 四分이 있으니. 이 사분설은 호법보살이 [성유식론]에 밝힌 네 가지 부분이요. 네 가지 분류법요.
見分과 相分과 自證分은 如前이요 第四는 證自證分이라
見分과 相分과 自證分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고 네 번째는 證自證分이라.
若無此者인댄 誰證第三고
만약에 이것이 없다면 이 此자는 證自證分을 가르키는 거죠. 어느 것이 第三을 증명할 수 있느냐! 어느 것이 들어서 그 자증분을 알겠느냐. 인증을 하겠느냐.
心分別이 既同하니 應皆證故라하니라
마음 分別이 이미 같으니 응당 다 증거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論에 [성유식론]에 그렇게 나와 있다 말이요.
釋曰
인자 청량국사 해석한거요.
見分은 是心分이니 說(須)有自證分이요
見分은 바로 이 心分이니 모름지기 自證分이 있어야 할 것이요. 說자는 청량국사 소초에는 모름지기 須자로 되어 있어요. 반드시 자증분이 있어야 견분이 견분 역할을 한다 그말이요. 그런데 이 책에는 설자로 되어 있죠. 자증분이 있다고 말하고
自證은 應無有果니
自證은 應無有果니, 그 말이 화엄소초에는 많이 나오는데 빠트렸드라고 그 옆에다가 거시기 저 70page 제일 첫째줄 옆에다가 써논것이 화엄소초에 나온 말이요. 거기에 인자 須有 모름지기 수자, 있을 유자 그 다음에가서 自證果가 있을것이요 하는 그 말이 인자 밑에는 나오는데 여기는 지금 자증 다음에는 어.. 分자가 있지요. 나눌 분자, 나눌 분자가 거기는 없고 그 다음에
自證은 是心分이니 應有第四證이니라
마음쪽에 마음의 分이다 말이요. 견분, 상분 하듯이 응당 第四證이 있어야 될것이라. 제4증은 아까 지금 70page 제일 첫째줄 옆에다가 똥그래미 쳐가지고 써논것을 지금 설명합니다. 그것이 요쪽으로 갈 거라고 해서 선을 그어가지고 저 밑에 자증 밑에다가 해 논거요. 선이 근데 중간에 가다가 끊겨버렸죠. 복사가 잘 안되가지고, 이 책은 선이 이어졌는데 복사에는 중간 선이 전깃줄이 끊어져버렸어.
論에 云
論에 말하기를
又自證分은 應無有果니
또 自證分은 그다음에 應無有果라 말이요. 응당 과가 없다 그말이죠. 없으니
諸能量者皆有果故라하니라
거기도 인자 청량소초에는 皆자가 없어. 위에다 적어논 적어논 것은 論本에 必字지 皆자가 아니죠. 논본에는「必有果故라」반드시 과가 있기때문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釋曰
거기에 대한 해석이요. [성유식론]의 말을 갔다 놓고 청량국사가 또 소초에서, 초에서 해석합니다. 해석에 가로되
見分은 是能量이니 須有自證果요
見分은 이 能量이니 모름지기 自證의 果가 있어야 할 것이요. 그것도 빠져서 옆에다가 自證果 세글자를 써넜죠. 화엄소초를 보면은 자증과라고 하는 세 글자가 있어요.
自證은 量見分이니
그 다음에 自證은 어.. 自證 量見分이니 견분을 헤아리는 거라 말이요. 그래서 이 證자는 인증한다, 헤아린다, 안다는 그런 量자로 보는 거죠. 견분을 헤아림이니
說(須)有第四果라
반드시 모름지기 第四果가 있어야 할 것이라. 거기도 說자가 되어 있죠. 모름지기 須자가, 원래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저 화엄소초에는, 제사과는 증자증분이요. 증자증분이 있어야 된다 그말요.
恐被救云호대
저가 구원하여 말하기를, 저 인자 삼분설을 말한 사람이 인자 자기 이론이 옳다라고 자기 자기가 궁지에 몰리니까 궁지에 몰린것을 벗어날려고 그 인자 구출을 하는거지요. 구출하여 말하기를, 말할까 두렵다는 것은 저 밑에까지「두렵건덴」해도되고 그럴수가 그럴 염려가 있다고 해서 그냥 恐자를 쓴거요.
却用見分하야 為第三果라할새
문득 見分을 써서 第三果를 삼을것이라고 할까 두려울새. 그런 염려가 되기 때문에
故次論에 云
그러므로 다음 論에서 다음 [성유식론]에서 말하기를
不應見分이 是第三果니
응당 見分은 이 第三果가 아니라고 이렇게 판명을 한 거죠. 견분이 제삼과 저 자증분은 아니다말요. 어떻게보면 견분하고 자증분하고 비슷한것 같지요 잉? 볼 수 있는 능력이니까
見分은 或則(時)非量攝故라
「或則」이라고 되아 있지만은 화엄소초에는 때 時자로 되아 있어요. 或時 量의 攝이 아닐 경우가 있다 말이요. 량이란 말은 그 어.. 자증분 그 량을 말한거죠.
因此하야 見分이 不證第三이요 證自體者는 必現量故라하니라
이로 因하여 見分이 第三을 알 수는 없다 말이요. 제삼을 인증하지는 못하고 증자증분이라는 것은 반드시 증자증분이 있어야 자증분을 반드시 現量하기 때문이라. 현량은 현재 그걸 잘 양탁해서 헤아려서 알 수 있다라고 논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釋曰
해석에 가로되
意明見分이 通於三量이니
뜻이 見分에 三量에 通하는 것을 밝힌 것이니, 청량국사의 해석이요.
三量者는 謂現量과 比量과 非量이라
三量이라는 것은 現量과 比量과 非量이라. 성언량을 말하는 삼량도 있지만은 여기는 현량 직접적으로 잘 보고 즉시 알아내는 것을 현량이고, 비량은 직접적으로 못 봤어도 간접적으로 비유해서 비교해서 아는 것을 비량이고, 밑에 非量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대로 모르는 것이 現量도 比量도 아닌 그야말로 잘못된 판단을 비량이라 그래요. 여기서 아닐 비자 비량은, 잘못된 판단이요.
即明見緣相時에
즉 緣相을 분명히 볼 때, 어떤 연상이라는 것은「색성향미촉법」빛깔, 소리, 냄새따위 그런 육진경계를 분명히 볼 때
或量非量이나
或은 量이기도 하고 量아니기도 한다 말이요.
不可非量法이 為現量果라
그러나 可히 非量의 法이 現量의 결과는 되지 못한다. 或 量非量은 정식으로 잘 판단할 경우는 량이고 정식으로 판단 못하는 것은 비량이고 그렇지만은 비량의 법은 현량의 과는 아니다고 현량과 상반되는 것이 비량이죠.
或見緣相은 是於比量이요
或은 緣相을 보는 것은 어.. 이것은 比量이고
及緣自證은 復是現量이라
자증분에 및 반연한 것은 또 다시 現量이 된다.
故로 自證은 是心體일새 得與比量과 非量으로 而為果요
그러므로 自證分은 이 마음의 자체기 때문에 比量과 非量으로 더불어 果가 될 수가 없고
見分은 非心體일새 不得與自證으로 而為其量果니
見分은 마음의 본체가 아니기 때문에 자증분과 더불어 그 量果가 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사분설이 있어야 완전하다고 하는 호법보살의 주장이요. 이런것은 인자 [성유식론] 따지고 [성유식론] 공부할 때 필요한 건데, 지금 [성유식론]을 청량국사께서 화엄소초에 인자 말씀을 하신거요.
故로 不得見分이 證於第三이요
그러므로 見分이 第三을 인증할 수가 없고 제삼은 자증분이요.
證自體者는 必現量故라
그 자증분이 自體分이니까 그 자체 자증분을 알아낼 놈은 반드시 現量이기 때문이라. 그래서 현량인 아까 말한 쉽게 말하면은 證自證分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
第三四分이 既是現量일새
第三四分이 이미 다 이미 그것이 現量이기 때문에, 증자증분을 지금 가르키는 거죠. 제삼의 사분설 말한 거. 相分 見分 自證分 證自證分 그거래야 제대로 보는 현량이라.
故得相證하야 無窮過矣라
그러므로 相證을 얻어서 無窮한 허물이 없다 말이요. 그 책에는 過자를 失자로 되았으니까 과자나 실자나 똑같죠. 그거는 같은거니까, 잘못된 과실이 없다 말이요.
意云 若以見分으로 為能量인댄
뜻에 말하기를 만약에 見分으로써 能量을 삼는다면
但用三分이 亦得足矣요
다만 三分을 쓰는 것이 그러니까 증자증분 필요없이 그냥 자증분까지만 쓰는 것이 또한 만족할 수가 있고
若以見分으로 為所量인댄 必須第四하야 為量果요
만약에 見分으로써 所量을 삼을 경우는 반드시 第四를 필요하여, 필요한 須자여 필수라는, 第四는 증자증분. 증자증분이 있어야 견분의 거시기 저저 뭐여 자증분의 量果가 된다 말이요. 量果가 됨이요.
若通作喻者인댄 絹如所量하고 尺如能量하고 智所量果니 是(卽)自證分이라
만약에 作喩에 通할진댄 비유로 인자 말한다면, 마치 인조는 所量과 같고 인조를 재는 잣대는 能量과 같고 또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所量의 결과 自證分이죠. 그것은 곧 이 자증분이라. 量果가 自證分이라 말이요. 是자가 卽자로 되어 있어요. 소초에는
若人(尺)為所使하고 智為能使인댄 何物이 用智리요
그리고 사람 人자는 아니고 잣대 尺자로 되어 있고 척도라는 척자. 만약에 잣대는 부리는 바가 되고 사람 인자는 틀린 거 아뇨. 비슷하게 생겨서 글자를 오자로 쓴거요. 사람이 所使가 아니잖아요. 잣대가 소사지. 잣대를 사람이 부려먹으니까
智는 能使가 되요. 사람이 잣대를 가지고 잼으로써 길이가 얼마 되는지를 알잖아요. 그렇다면 어느 물건이 智를 썼느냐? 그 지를 쓰는 그 존재가 바로 증자증분이다 말이요.
即是於人이 如證自證分이니
곧 이 사람이 證自證分과 같다며
人能用智하고 智能使人일새 故能更證이라
사람은 能히 지혜를 쓰고 지혜는 能히 어.. 사람을 부릴 새 그러므로 能히 다시 증명, 인증을 한다. 인증이나 증명이나 같은 말이요. 그게 증자증분이 있어야 된다라는 그런 주장은 호법보살의 주장이요.
亦如明鏡에 鏡像은 為相分이요
또한 밝은 거울에다가 비유를 한다면 거울에 비쳐진 거울에 영상들은 相이 되고 相分이 되고
鏡明은 為見分이요
그리고 거울 밝은 것은 見分이 되고 [화엄경]책에는 分자가 없다라고 했죠 잉. 상이 되고 鏡明은 分자 있는 것은 더 좋죠. 여기는 뭐, 경명은 견분이 되고
鏡面은 如自證分이요
거울 얼굴은 自證分과 같고 거울 그 면체는 鏡面. 경면주사할 때도 요자 쓰죠 응? 빤짝거리는 거울 면과 같다고 해서 주사, 빨간 주사를 경면주사 요자 써요. 나는 첨에 밝을 明잔줄 알았어. 경명주사, 경명이 아니라 경면주사요. 부적쓸 때 빨간 그 주사. 경면은 자증분과 같고
鏡背는 如證自證分이니
거울 등 뒤는 證自證分과 같에요. 그거보다 더 배후에 있는 거
面依於背하고 背復依面일새 故得互證이니라
그래서 거울 얼굴은 등에 의지했고 등은 또 거울 경면에 의지하기 때문에 서로 互證을 해. 그러니까 자증분도 인증을 해서 알아내기도 하고 증자증분도 또 알아내기도 하고
亦可以銅으로 為證自證分이니
또한 可이 거울로써 어.. 自證分을 증거할 수 있다 말이죠. 거울 동경을 가지고 거울로 된 아니 銅으로 된 거울.
鏡依於銅하고 銅依於鏡이라하니라
거울은 銅에 의지하고 銅은 또 거울에 의지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그만합시다. 너무 많이했네.
첫댓글 ()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_()()()_
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_()_
_()()()_
내용이 많이 어렵네요
읽기도 어려운데
녹취하는 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화풍정님, 너무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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