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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포럼 36회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 독후감
제출자 : 곽은서 목사
제출일 : 2018년 5월 8일 화요일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를 읽고 묵상하면서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의 삶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 <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을 통해 주님의 길과 제자의 길을 묵상했습니다. “한 방향”은 “같은 방향”을 의미하기에 주님과 함께 “같은 뜻, 같은 마음, 같은 길”로 걸어가는 삶이 더욱 확장되길 소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고백했던 모습처럼, 제게도 그 말씀이 실제 되길 소원했습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그의 고백이 제 마음에 감동이 되어 계속해서 하나님께 이 소원을 아뢰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고 얻고 소유하길 소원합니다.
“오랜 순종”을 묵상하면서 지속적으로 한결같이 순수하게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 즉 신실한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영성을 묵상했고, 지금 이곳에서 공감과 소통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해야 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유진 피터슨의 글쓰기 목표가 지금 이곳에서 삶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는 그의 에필로그를 통해 이해한 것입니다.).
지난 달 <영적 권위>를 통해 하나님의 권위와 위임권위 앞에 순복해야함을 배웠습니다. 이 흐름 안에서 이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삶 속에서 관광객(여행자)이 아닌 순례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열매가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야함을 배웠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깊은 기도 생활 없이는 결코 길고 긴 순종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과, 본서의 골자인 15편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시 120-134편)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그들의 모든 삶을 기도로 옮기고 또 그들이 기도한 그대로 살기를 배울 수 있는 주요 방편이 되었음을 알았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를 통해 독자에게 “회개, 섭리, 예배, 섬김, 도움, 안전, 기쁨, 일, 행복, 인내, 소망, 겸손, 순종, 공동체, 송축”의 열매를 제시하였습니다.
1장 제자도를 통해 제 신앙생활의 태도를 묵상해보았습니다. 나는 관광객인지 순례자인지, 더 나아가 나는 목사로서 관광가이드인지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의 사역자인지 묵상해보았습니다. 제 안에 관광객 같은 태도를 버리고 순례자의 태도를 배우고 채우고 실제 되는 복된 삶이 되길 소원해보았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관광객의 모습을 띄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관광객이 아닌 주님의 제자와 순례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관광객의 자세로는 성숙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제자와 순례자의 삶을 통해 이 세상 풍조를 이겨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우리가 순례자인 것은 평생의 여정이 한 곳, 즉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14:1-6, 히 12:1-3, 시 120-134편, 빌 3:14).
유진 피터슨은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바르게 깨달아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되새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로 살기로 한 이들을 위해 안내서와 지도로서의 실용성뿐 아니라, 여행 노래로서의 흥겨움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2장 회개(시 120편)를 통해 유진 피터슨은 우리를 거짓과 적대의 환경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르는 길로 떠나게 합니다. 여기에서 순례자의 출발점과 전환점(터닝 포인트)에 대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무엇인지, 보배와 배설물이 무엇인지, 실상과 거짓이 무엇인지, 취하고 채울 것과 버리고 비울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처럼, 순례자는 이 세상 속에 속하지 아니하고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출발점과 전환점을 바르게 인식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세상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아니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예’라고 하는 성경적 언어는 회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기에, 이 주제에 맞추어 평생의 회개(회심)를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남은 생애동안 평생 주님 앞에 사랑의 빚진 자, 은혜의 빚진 자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딤전 1:15-16, 딤후 4:7-8)
3장 섭리를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1편은 신뢰의 시로 믿음이 어떻게 시련과 역경 앞에서 효능별 특허약을 사듯 손쉬운 자구책을 마다하고,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시행하시며 너를 지켜 모든 악에서 면케 하신다는 것을 단호하게 신뢰하게 하는가에 관한 증거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이 아닌 것(세상, 우상, 사단)을 믿는 것의 차이를 시편 121편과 예레미야 3장 23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산에서 오는 것인가? 아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즉 산을-역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렘 3:23) 유진 피터슨은 이 시를 해석하고 적용하면서 시련과 환난을 묘사하는 것 그 자체가 시인의 목적이 아니라 시련과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동행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명명하고 묘사하기 위함이라고 밝힙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 견고하고 굳건하며 확고한 체험이며 하나님은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며 우리가 떠날 때나 돌아올 때 한결같이 보호하시며 지금도 또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이 주제를 통해 먼저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함께하심을 묵상했습니다. 둘째, 고린도후서 4장에서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한다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과 시편 23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임마누엘 신앙의 의미를 묵상하고, 저 역시 계속해서 임마누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러한 묵상을 통해 믿음의 연단을 점검하고 주님의 연단하심 앞에 제 자신을 두어 믿음의 사람으로, 소망의 사람으로, 사랑의 사람으로 바르게 성장, 성숙, 변화되길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저 역시 현재성 속에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일을 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원해봅니다.
4장 예배를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2편은 세계 도처의 신앙인이 언제나 행하는 것-지정된 장소에 모여 그들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보여 주는 예배의 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시편 122편을 근거로 다음 세 가지 조항을 꼽고 있습니다. 첫째, 예배는 우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합니다. 둘째,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키워 줍니다. 셋째, 예배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의 결정에 집중시킵니다.
저는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삶의 틀로 예배를 묵상하고, 우리교회와 훈련원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와 제가 속해 있는 소모임 공동체에 감사와 소중함과 의미를 느끼는 복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지체됨을 감사하며 서로 세워주고 세움 받는 복된 자리에 생명의 통로로 설 수 있길 더욱 소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형성되길 소원해봅니다.
5장 섬김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3편은 제자로서의 삶 가운데서 종 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측면을 관찰하게 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주제를 통해 섬김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섬김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올려다보는 것과 함께 시작합니다. 이는 종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창조주이시고 주관자이시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섬김의 시작입니다. 둘째, 섬김의 두 번째 요소는 우리의 기대와 상관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합니다. 셋째, 종에게 필요한 세 번째 덕목은 민첩성입니다. 여기에 유진 피터슨은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적용하여 합당한 섬김에 대해 주석하면서 예배가 분별력 있고 합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종 됨의 관계-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배운 후, 다른 사람을 위해 쓰임 받는 섬김의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롬 12장-16장). 우리는 섬기는 삶의 의미를 옮길 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하는 지속적인 격려와 그 본을 얻을 수 있습니다(요 13:12-17).
6장 도움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4편을 위난 중에 부르는 도움의 노래라고 말했습니다. 124편은 제자가 되는데 따르는 위험 요소들을 묘사하고, 그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선포하는 면에서 탁월합니다. 시편 124편은 고통스런 문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곳에서 우리 편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의 경우입니다. 잡다한 갈등과 사소한 개인사 속에서 존귀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계시됩니다. 믿음은 존재의 가장 유리한 국면이 아니라 가장 불리한 국면에서 자라납니다. 우리는 한없는 자비와 구원의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향해 빛을 따라 여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가 겪는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빚어집니다.
이 주제를 읽고 묵상하면서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신앙여정과 하나님 체험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묵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왕 앞에 선 야곱의 영적 권위에 대해서도 묵상해보았습니다. 더욱더 예수님을 알고 얻고 소유함으로 인해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길 소원해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주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된 삶이 되길 소원해봅니다.
7장 안전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5편의 강조점은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불안정성이 아니라 그 견고성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편 125편을 노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확신을 키우고 불안정을 몰아내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안정감을 위협하는 첫째 요인은 우울한 감정과 의심입니다. 둘째 요인은 아픔이나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약속된 확신을 위협하는 세 번째 요인은 타락의 가능성입니다. 우리가 불안 없이 든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확신 때문입니다(히 12:2). 시편 125편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로 시작합니다. 요약하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우울한 감정이나 고난당한 사실, 또는 타락의 가능성, 그 무엇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는 못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분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란 사실만큼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이 주제를 읽고 묵상하면서 관계의 영성에 대해 더 깊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믿음과 의뢰와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 기초하고 있기에, 더욱 내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되기 위해 힘쓰고자 합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묵상할 때에 사도 바울이 고난 가운데 고백했던 그의 영적 실제가 더욱 제 마음을 울리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더욱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하나님의 다루심으로 인해 더욱 연단되어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제 마음속에 찾아오는 염려, 근심, 두려움, 낙심, 절망을 바르게 처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전환되길 소원해봅니다(고후 7장)
8장 기쁨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순례자에게 나타나야할 참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기쁨은 필요조건이 아니라 결과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경험할 수 있으며, 삶의 정황이 상승과 하강이 교차할 때에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믿음을 통해 환희를 체험하며 기쁨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믿음의 길로 이끌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였다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백성의 존재와 그들의 인생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기억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소망의 양편 경계를 넘나드는 삶임을, 아울러 무슨 일을 당해도 그 중심에는 “우리는 기쁘도다”라는 고백이 메아리칠 수 있는 그들임을 말입니다.
9장 일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7편은 일을 위한 바른 길과 굽은 길, 둘 다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인도하는 모범을 제시합니다. 127편은 절대적인 활동주의(바벨탑 사건처럼)나 순전한 피동주의(위선적인 자기 의, 염세주의 등)와는 구별된 방식의 일을 제시합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일할 때나 전혀 일하지 않을 때, 또 강박적으로 일에 집착할 때(바벨)나 맡겨진 일을 방치하고 태만할 때(데살로니가 교인) 우리의 수고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본적인 진리는 일은 선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시편은 일 자체를 우상시하거나 죄악시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일을 해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사람 중심적이어야 합니다(살후 3:11-13, 살전 2:9, 창 1장, 마 12:46-50, 요 5:17). 우리의 일의 특징은 업적이나 소유가 아닌 관계의 탄생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내고 발전시켜 나가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순례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노력은 주변적인 것이고 중심에서 일한 분은 따로 있다고,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라고 시편 127편은 힘주어 말합니다.
10장 행복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제시하고 믿음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과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길과 그분의 임재가 있는 곳이야말로 우리가 두고두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1장 인내를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29편의 내용과 예수님의 인내와 사도 바울의 인내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순례자의 삶을 살 때에 믿음과 함께 갖추어야할 덕목으로 인내를 제시합니다. 그는 냉담하고 나태한 중립성이야말로 인내를 소멸시키고 혈관 속의 바이러스처럼 작용하여 제자도의 근력을 약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위선의 핑계나 찾고 넘치는 악을 합리화하고 죄에 대한 거부감을 상실하고 믿음과 부인, 자비심과 이기심의 구분도 모호하게 만드는 이들, 그들이야말로 경계할 대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또한 인내란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꾸준함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시편 129편의 중심 문장은 4절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계시는 분으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보호하심과 신실하심과 선하심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관계와 실제적인 관계를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1절-3절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계신 하나님, 곧 의로우신 하나님 안에서 삶의 중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게 하십니다(빌 3:7-10, 고후 12:9, 약 1:2-4). 신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소망가운데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인내할 수 있습니다.
12장 소망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30편은 고통과 격렬하게 씨름하면서 그것을 헤쳐 나가는 길을 노래한 자의 고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기다림과 파수 곧 지키는 것은 결국 소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기다림과 소망이라는 두 단어는 밤을 새며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의 이미지와 결부 됩니다. 바란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운명에 맡기는 체념 상태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미와 결말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는 확신에서 우리에게 할당된 과업에 매진함을 뜻합니다. 소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일을, 반드시 이행하실 것이라는 든든하고도 기민한 기대감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고삐에 매어 놓은 상상력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방식대로 그분의 시간표대로 행하시도록 기꺼이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림과 파수함으로, 은총과 부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시선을 고정시킬 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의 신앙을 키워 주실 여지가 생깁니다.
13장 겸손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시편 131편은 보존의 시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시편 131편을 정원사의 가지치기로 비유하였는데, 무절제한 야망과 유아적 의존심으로, 지나친 자만심과 떼를 쓰는 습성을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무모해진 열망과 교만의 함정과 스스로를 과신하는 죄를 의식함과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함정 곧 스스로를 지나치게 보잘것없게 여기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최대의 유혹은 어디서든 주인공이 되려는 야심이므로 흠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눈에 띄지 않는 미미한 존재로 죽어지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문제가 어떤 학대라도 감내하는 깔개 그리스도인 증후군과 행주 성도 증후군입니다. 이들은 누구나 짓밟고 다니면서 신발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내는 존재, 타인에 의해 일상의 더러움을 닦아 내는 데 실컷 이용되다가 마침내 버려지는 존재입니다.
고요한 기독교적 겸손이라는 평온한 길! 우리에게는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구석구석 가지치기를 받고 나서 이 시편을 배우게 되면 젖 뗀 아이의 고요함과 성숙한 신뢰가 주는 평온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분별한 오만과 신실한 열망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고, 유아적 의존심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전한 신뢰를 구별할 줄 알아, 열망과 신뢰를 선택할 줄 아는 잔잔한 확신과 조용한 힘이라는 삶의 질, 그리하여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비결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첫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을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순종했던 다윗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입성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을 때 하나님을 경배하고 순종했던 모세의 모습을 묵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제 자신을 두고 주께서 허락하신 소명 안에 마리아의 자리와 마르다의 자리가 항상 있길 소원해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사람들과 주님의 것들을 사랑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원해봅니다.
둘째, 자기 사랑에 기초한 연민과 자기화의 함정에 대해 묵상해보았습니다. 영성형성의 과정에서 무서운 함정이며, 구속사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도 무서운 함정이기에 또다시 경계하고 주의하고자 합니다. <한 길 가는 순례자>와 사도 바울의 영성을 통해 이를 묵상하게 하시고 점검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 존 베일리
겸손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이면이다.
반면 교만은 자아에 대한 확신의 이면이다.
14장 순종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안정된, 그러나 무디지 않은 그리스도 제자의 삶을 제시합니다. 시편 132편은 다윗이 어떻게 “여호와께 맹세하며 전능자에게 서원했는가”를 보여 줄 순종에 관한 시입니다. 아울러 순종이란 역사적 사실에 뿌리박고 약속된 소망을 부여잡는 모험도 마다 않는 생기발랄한 믿음의 응답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입니다. 지탱할 힘과 도약의 의지 그리고 언제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바로 순종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바로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정확한 기억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소망을 겸비한 자에게 포착됩니다.
이 주제를 읽고 묵상하면서 “안정되고 무딘 제자의 삶”이라는 단어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주 경계하기 위해 묵상했던 주제였지만 또다시 제게 부담을 준 주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 4장에서 디모데에게 권했던 말씀들이 제 마음속에 울림이 되었습니다. 저로 하여금 더욱더 분발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매너리즘과 라오디게아교회와 늙은 선지자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뜻을 정하고 날마다 지도를 수정하기 위해 추구하고 있지만, 늘 부족한 모습이 발견됩니다. 더욱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께서 날마다 빌라델비아교회로 이끄시길 소원합니다.
* 칼빈: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앎은 순종으로부터 온다.
15장 공동체를 통해 유진 피터슨은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과 역할에 대해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주 안에서 인간관계를 학습하고 훈련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서로 세워주고 세움 받는 생명의 공동체(엡 4:15-16)로 세워지기 위해, 서로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 섬기고 있습니다. 15장을 읽고 묵상하면서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제 자신을 점검해보았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교회 공동체를 주 안에서 사람 중심, 관계 중심으로 볼 것을 강조합니다. 소명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사역(일) 중심보다는 사람 중심의 공동체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각 사람을 풀어야 할 문제들로 다루어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공동체의 소중함을 약화시키고 문제해결에 초점을 둔 공동체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를 하나의 제도로 바꾸어서 성도들을 인격적인 관계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기능에 의해서 다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면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서로 담당하는 사랑의 섬김보다는, 서로 발을 씻으라는 상호 섬김보다는, 일의 효율성에 치우쳐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 없는 교회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16장 송축을 통해 유진 피터슨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첫 시편 120편 회개(테슈바)로 시작되는 제자의 길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인 시편 134편 찬양(송축, 베라카)의 삶으로 마무리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순례자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끝나야합니다. 우리가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 이유도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함입니다.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은혜와 은혜의 목적에 대해 묵상해보았습니다. 은혜의 목적을 날마다 인식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복된 삶이 되길 소원해봅니다.
유진 피터슨은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을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 감정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느낌을 거절하고 의지를 사용하고 의지를 드려야 합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송축은 순례 길의 끝에 있습니다. 그리고 길의 끝에 있는 것은 길에서 생기는 모든 일에 영향을 줍니다. 목적이 수단을 모양 짓습니다. 시에나의 캐서린(Catherine of Siena)은 “천국으로 가는 여정 전체가 천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인생에 제일 되는 목적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첫 번째 질문의 답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카리스(charis)는 항상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라는 답을 요구합니다. 즉 은혜는 항상 감사의 답을 요구합니다. 은혜는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입니다.
이 주제를 읽고 묵상하면서 은혜의 목적에 맞추는 삶과 은혜에 도취된 삶을 잠깐 묵상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생명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이유도 묵상해보았습니다. 은혜가 감사를 부르고, 감사를 통해 하나님을 송축하고, 하나님께서 또다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삶을 묵상하면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는 말씀의 의미도 묵상해보았습니다. 제 삶 속에 지속적으로 생명의 열매인 찬양과 감사가 넘쳐나길 소원합니다. 끝으로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처럼 어느 누구도 빼앗아가지 않는 복이 함께하길 소원해봅니다(눅 10:38-42).
제36회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 독후감.hwp